"대상 배우라고요? 이제 연극 맛 알아가는 주요한입니다."

'정구'가 청테이프를 찢더니 자신의 입에 갖다 붙인다. 마스크를 쓰고 세탁소 옆에 차린 붕어빵가게에서 달콤한 앙금을 넣은 빵을 굽기 시작한다. 정구는 언제 튀어나올 줄 모르는 욕설 탓에 긴장하고 의기소침해있다. 틱장애를 앓는 정구는 "씨발새끼", "씨발년", "개새끼"를 연발한다.

창원 극단 미소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작 장종도·연출 천영훈)의 한 장면이다.

미소는 지난 3월 20일부터 4월 3일까지 창원에서 열린 '제33회 경상남도연극제'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였다.

미소는 단 한 번의 무대로 금상과 희곡상, 연기 대상을 휩쓰는 저력을 발휘했다.

특히 정구 역을 맡은 주요한(30) 씨는 생애 첫 수상을 연기대상으로 장식했다. 경남의 젊은 연극인으로서 원로 선배들에게 인정받았다.

지난 4월 14일 창원 도파니아트홀(극단 미소 전용소극장)에서 그를 만났다.

첫 상이 연기대상이라니!

"대상 수상이 아직도 얼떨떨합니다. 우수상 정도는 받을 것 같다는 얘기를 들어 사실 조금 기대는 했습니다. 그런데 경남연극제 폐막식 당일 우수연기상 명단에 제 이름이 없더라고요. 한참 후 연기대상이 발표됐고 진주 극단 현장의 정대영 선배가 호명됐어요. '아 나는 안되는구나' 싶었는데 마지막에 제 이름이 나온 겁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주요한 씨는 웃으며 그날을 회상했다.

인터뷰를 진행한 도파니아트홀에는 덕분세탁소가 차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정구의 붕어빵가게도 서 있다. 사흘 후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가 무대에 올려진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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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경상남도연극제'에서 선보인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 장면./극단 미소 제공

친구 따라 강남이 아니라 연극판 갔다

극단 미소 소속 배우인 주요한 씨는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해 곧바로 극단에 입단했다.

소위 떴다고 말하는 스타들의 연예계 입문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어보면 '친구 따라갔다'가 많다.

주 씨도 마찬가지.

창원고등학교 1학년 시절, 옆자리에 앉은 친구가 대본을 읽고 있었단다. 평소 내성적인 성격 탓에 남들 앞에 서보지 않았던 그는 호기심이 발동했고 친구 따라 '미소랑'에 입단했다.

미소랑은 극단 미소가 2009년까지 운영했던 청소년 극회다.

"대본을 읽는 친구가 신기하고 재밌어 보였어요. 친구 따라 극단 구경을 갔다 연극인이 됐죠. 처음에는 소심한 제 성격을 바꿔볼까 싶어 시작했는데 저도 모르게 흥미가 생겼어요."

미소랑은 입시와 관련이 멀었다. 연극인이 갖춰야 할 소양과 훈련을 하는 데 집중했다. 그래서 연극학과를 진학하려고 몰려든 친구들은 하나 둘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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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배우 주요한 씨/박일호 기자

그는 창원운동장에 있었던 극단 미소 사무실에서 발음 연습을 하고 체력 훈련을 했다.

현재 함안 극단 아시랑의 공동대표인 김수현 연출가가 연기 지도를 했다.

방학에도 일주일에 서너 번 연습실을 찾았다.

그는 연극인이 되기 위한 걸음마를 제대로 배웠다고 했다.

주 씨처럼 친구 따라 강남 간 경우는 하나 더 있다.

바로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를 쓴 극작가 장종도(30) 씨. 주 씨가 대본을 읽는 것을 신기해해 미소랑에 따라갔고 지금까지 같이 활동하고 있단다.

"부산예술대 연극과를 졸업했고 경남대 문화콘텐츠학부로 편입해 졸업했습니다. 2002년 경남연극제 출품작 <고추말리기>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는데요. 김수현 선생님이 연출을 맡은 작품이었어요. 그 이후 군대 공백 2년 2개월을 제외하고는 쭉 극단 미소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첫 무대를 생생히 기억한다. 남아선호사상을 비판한 작품에서 단역을 맡았다. 인형가게에 진열된 로봇인형과 잠시 지나가는 경찰관이 배역이었다.

"담담했어요. 아마도 당시 실감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아요. 현실성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틱장애 제대로 표현하고 싶었다"

그는 정구 역이 첫 주인공은 아니라고 했다.

2007년 <코미디 클럽에서 울다>(작 김태수·연출 천영훈)에서 주인공 '덕배' 역을 맡았다. 코미디언 클럽이라는 무대에 서고 싶은 3류 개그맨 역할이었다.

당시 극단 미소의 젊은 배우들이 총출동해 만든 비극적 코미디였다. 그해 12월 함안문화예술회관에서 공연했는데 아쉽게도 단 1회 공연에 그쳤다.

"전체 대사의 70%가 제 분량이었어요. 부담이 엄청났죠. 당시 만족스러운 공연을 못 보여줬어요. 지금 해보라고 하면 잘할 수 있을 텐데요(하하)."

그래서 주 씨는 정구를 제대로 하고 싶었다.

틱장애에 대한 기본적인 정의부터 조사했다.

틱은 특별한 이유 없이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나 목, 어깨, 몸통 등의 신체 일부분을 아주 빠르게 반복적으로 움직이거나 이상한 소리를 내는 것을 말한다.

그는 틱장애가 왜 생기는지 어떻게 발전하는지, 치료할 수 있는지를 공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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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배우 주요한 씨./박일호 기자

"아무래도 장애를 가진 사람 이야기라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틱장애는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없었고 극을 이끌고 가는 주인공이라 부담이 컸습니다. 주인공은 호흡을 길게 끌고 가야 하는데 그동안 1인 다역을 주로 맡아 호흡 훈련이 힘들었어요. 또 장애를 가진 사람을 너무 과장하면 오히려 비하한다는 말을 들을까 고민도 했고요."

주 씨는 틱장애를 다룬 동영상을 일일이 찾아봤다.

실제로 고 홍기호 씨가 이번 연극의 모티브가 됐다.

고 홍기호 씨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욕설을 내뱉는 틱장애를 앓았다. 그는 장애를 스스로 인정하고 자신의 명함에 '틱장애인 홍기호'라는 글자를 넣어 주위 사람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이해를 시키려 노력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많은 사람의 동영상을 보며 어떤 특징이 있는지 파악했습니다. 틱장애에 대한 영화를 보며 표현법을 연구했고요. 배우들의 공통점도 찾으려고 애썼어요."

하지만 연습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욕이 나오지 않았다.

"처음에는 욕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않고 끝을 흐렸어요. 그런데 단원들이 이상하다며 분명하게 발음하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굉장히 어렵더라고요. 답은 연습뿐이었습니다. 매일 욕을 내뱉는 연습만 했습니다. 상대 배우도 기분 나빠하지 않고 연기로 받아주어 훨씬 편하게 했습니다.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에서 욕설이 50회 정도 나와요."

연극인만큼 흥미로운 인생 또 있을까

그는 추천하고 싶은 인생이 연극인이라고 했다.

"여러 사람의 인생을 살아볼 수 있고 다양한 처지에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롭죠. 연기할 때 머릿속 고민이나 잡다한 생각도 없어져요. 세상에서의 탈피를 한다고 될까요? 몸은 고되지만 마음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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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경상남도연극제'에서 선보인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 장면./극단 미소 제공

하지만 조건이 붙는다. '살림'만 문제가 없다면.

지역에서 꼬박꼬박 월급을 받는 연극인은 아주 드물다. 그래서 전업 배우만 할 수 없는 현실이다.

"솔직히 지역에서 연기만 하면 살기 쉽지 않아요. 아무래도 금전적인 부분이 가장 큰 문제죠. 배우로만 활동하는 연극인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다들 예술강사로 활동하거나 스태프 일을 병행하죠. 그래서 젊은 학생들은 지역 연극을 꺼리기도 합니다."

주 씨는 예술강사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전국 초·중·고등학교 8200여 곳에 예술강사를 보낸다.

국악·연극·영화·무용·만화애니메이션·공예·사진·디자인 8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강사 4900여 명을 파견한다.

주 씨는 2012년부터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올해는 창원토월고등학교와 김해영운고등학교, 김해삼방고등학교 등에서 연극 수업을 한다.

시급 4만 원짜리 직장이다. 주 씨는 올해 총 280시간을 근무한단다.

"작년에는 404시간을 뛰었어요. 올해는 학교 수가 줄었어요. 제 연봉도 같이 적어진 셈이죠. 미소는 각자 단원이 버는 만큼 가져가는 시스템이에요. 미소 소속 단원이라고 일종의 수수료 같은 것을 전혀 내지 않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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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회 경상남도연극제'에서 선보인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 장면./극단 미소 제공

그는 5월에 열릴 '제19회 경상남도 청소년 연극제' 준비로 바쁘다고 했다.

연극 수업을 하는 학교 두 곳이 경연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김해영운고 연극동아리 '나르샤', 김해삼방고 연극동아리 '초아'를 지도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에는 연기 지도를 했던 김해삼방고 출품작 <사랑의 집>이 단체 최우수상을 차지해 전국 청소년 연극제에 나가기도 했다.

"두 학교 가운데 한 곳이 상을 받으면…. 난처할 수도 있지만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극단 미소가 대상 받는 날 꿈꿉니다"

주 씨는 여름까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 같다고 했다.

먼저 <세탁소엔 붕어빵이 있다>를 도파니아트홀에 몇 차례 올릴 예정이다.

오는 7월에는 통영연극예술축제에 초청을 받아 연극 애호가들에게 정구를 보여준다. 8월에는 <돼지사냥>을 창원 성산아트홀 무대에 올리고 <뒤집기 춘향전>도 지역을 돌며 공연할 예정이다.

"하면 할수록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더군다나 대상까지 받았으니 못하면 큰일이에요. 기본적인 호흡과 발성훈련뿐만 아니라 제 의지를 다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또 일상에서 관찰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길을 걸을 때 특이하거나 특징이 있는 사람을 보면 기억을 해놓죠. 연기를 할 때 활용하거든요."

서울 진출 욕심은 아직 없단다.

"서울요? 글쎄요. 서울에서 많은 공연을 보지 못했지만 지역보다 수준이 떨어지는 무대도 많아요. 그리고 경남 연극의 저력 아시잖아요? 전국 연극제 수상 경력이 화려하고 극단도 많고요. 지역에서 다양한 배역을 맡아 연기 폭을 넓힐 거에요. 제 이미지와 반대되는 강한 배역도 맡아보고 싶고요."

천영훈 대표를 존경한다는 주 씨는 극단 미소가 경남연극제 대상을 타는 게 목표 중 하나고 했다.

"미소가 대상 수상을 한 번도 못 해봤습니다. 꼭 해봐야겠죠. 저는 제 연기를 통해서 관객들에게 웃음과 행복을 주고 싶어요. 매사에 긍정적인 연극인이 될 겁니다. 연기는 가늘더라도 오랫동안 하고 싶어요. 방송과 다른 '생 연기'의 매력, 온몸을 써야 하는 노동, 커튼콜의 희열 모두 좋습니다. 무엇보다 사람 냄새 나는 연극판이 최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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