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것 좋아하는 축구 마니아가 만든 회사는?

1인 기업 스포츠에픽의 윤거일(32) 대표를 만났다. 윤 대표는 한 회사의 대표자이기 전에 '스포츠라이터'다. '스포츠(Sports)'와 '에픽(Epic:서사시)'을 더한 회사 이름 '스포츠에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윤 대표는 주로 스포츠를 주제로 글을 쓴다. 이유는 단순하다. 스포츠와 글 쓰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서른 살 초반에 좋아하는 것을 가지고 창업을 했다.

스포츠에픽을 연 지 2년, 아직은 스포츠에픽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야 하는 자리가 더 많지만 그만의 영역을 스스로 만들어가며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젊은 창업가를 만나보았다.

성적 맞춰서 간 철학과

윤 대표는 오랫동안 성실하고 번듯하게 지내온 인상이었다. 차분하고 빠르지 않은 말투가 그런 인상을 주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학창시절에는 공부는 멀리하고 그저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대학에 갈 때는 선택의 여지가 많이 없었다. 가장 가까운 국립대 중에서 당시 문턱이 가장 낮았던 철학과를 선택했다. 얼떨결에 철학도가 되었지만 글을 좋아했던 윤 대표에게 학과 공부는 꽤 재미가 있었다. 윤 대표는 항상 바쁜 대학생이었다. 뒤늦게 재미가 붙은 공부를 충실히 하면서 결혼정보업체, 레스토랑, 백화점, 대형 마트 등 스무 가지가 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번 돈으로 학비도 충당했으니 일석이조였다.

"다행히 철학이 재미있었고 복수전공으로 국제관계학을 함께 공부하기도 했죠. 성격 자체가 원래 진득하지가 않기도 하고(웃음)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편이에요. 학교 도서관에서 근로장학생 일도 하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지냈어요. 학교 다니면서 토론회를 동아리 같은 형태로 조직해서 이끌기도 했었고 학과에서 하는 철학 토론회나 학교에서 하는 취업 토론회를 진행하기도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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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 장관과 함께./윤거일 제공

특히 기억에 남은 건 제11회 전국 대학생 모의 유엔회의에서 수상을 한 일이다.

"매년 전국 대학생이 모여서 하는 모의유엔회의라는 대회에 창원대에서는 네 팀이 대표로 나갔어요. 그런데 참가했던 분야에서 저희 팀이 1등을 해서 외교통상부 장관상을 받았어요. 그게 저한테 굉장한 자극이 되었던 것 같아요. 자신감을 얻었고 시야를 더 넓게 가진 계기가 되었죠."

국회의원회관에서 일하고 고시원에서 살다

상을 받은 후 국회의원 비서 인턴으로 일할 기회가 생겼다.

"제가 대회에서 상을 받은 걸 아신 어느 교수님이 추천해주셨어요. 수상한 다음 해에 국회의원 비서 인턴십으로 6개월 동안 일할 기회가 생겼죠. 국회의원회관 의원실에서 비서로 일을 하게 되었죠."

추천을 받기는 했지만 대학생들이 취업하고 싶어 하는 일반적인 기업이 아닌 여의도에서 흔쾌히 인턴생활을 했던 것은 정치에 대한 생각이 있어서였던 것은 아닐까.

"큰 곳에서 뭔가를 배워보고 싶었고 정치에 대한 관심도 있었어요. 그런데 직접 가서 정치판을 보니까 회의감이 들었어요. 힘들고 외로웠던 이유가 더 크기는 했지만요."

휴학을 하고 서울에 올라가 작은 고시원을 구해 지냈다. 윤 대표는 서울 생활이 잘 맞지 않았다고 했다. 정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서울 생활이 안 맞더라고요. 혼자서 갑자기 살려니까 어려운 것도 있었고요. 6개월 동안 인턴생활을 하고 창원으로 돌아왔죠."

돌아와서는 복학을 했다. 취업을 하기 위해 이곳저곳 원서를 써냈다. 하지만 생각보다 취업은 힘들었다.

"취업이 잘 되지 않았어요. 제가 부족한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다양한 곳에 원서를 넣기 좋은 전공이 아니기도 했고요. 저는 토익 공부를 하기 싫어서 안 했어요. 그래서 더 취업하기 불리한 조건이었어요. 남들이 하는 것처럼 지역에 있는 대기업에 넣어보고 했는데 당연히 잘 안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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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거일 제공

졸업을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던 중 다행히 부산의 한 해운회사에 취업을 했다.

"크루즈선을 운항하는 회사인데 일본 오사카와 부산을 다니며 화물 운송을 하고 여객 사업도 하는 곳이었어요. 운이 좋았던 게 그때가 최초로 크루즈선을 국내 해운회사가 운행하는 시점이었어요."

그러다 보니 인력이 많이 필요했고 다양한 분야의 신입사원을 많이 뽑았던 것.

"그래서 저같이 좀 특이한 전공이나 경험이 있는 사람을 뽑았던 것 같아요. 어학에 능통한 것도 아니고 회사가 선호하는 전공도 아니었지만 홍보실에 들어갔었어요."

정식으로는 첫 사회생활인 데다가 회사가 새롭게 변하는 시기에 입사한 탓에 힘이 들었지만 일은 재미있었다.

"회사가 급변해서 새롭게 만들어가는 게 많다 보니까 신입 입장에서는 쉽지가 않았죠. 그래도 홍보실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면서 일에 대한 재미를 느꼈던 것 같아요."

1년 동안 회사를 치열하게 다녔다. 마케팅 업무를 하다 보니 더 전문적으로 공부하고 싶어졌다.

"부산대 대학원에 가기로 마음먹었는데 입학 시기가 안 맞아서 반년 정도 있다가 입학했어요. 필리핀에서 2개월 어학연수 겸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요. 일 년 열심히 일했으니까 쉬면서 지내다가 입학을 했죠. 경영학과를 갔는데 그 안에서 마케팅 전공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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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에픽 윤거일 대표./서정인 기자

스포츠에픽 창업은 경남FC 때문

윤 대표는 마케팅을 제대로 공부해 스포츠마케팅 회사에 들어가고 싶었다고 했다. 아주 예전부터 스포츠에 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본격적으로 스포츠 현장을 찾아다닌 것은 2006년도 경남FC가 생기면서부터다.

"저는 한일 월드컵 때에도 그렇게 열광적이지 않았었어요. TV로 경기를 보고 즐기는 정도였지 거리응원도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데 우리 지역에 연고팀이 생기면서 급속도로 빠져들었죠."

축구를 시작으로 다양한 스포츠에 관심이 생겼다.

"제가 지역에 대한 애착이 좀 큰 편인 것 같아요. 그걸 대표하는 축구단이 나오니까 그저 행복했고 축구가 좋아져서 가까이에 있고 싶었죠. 그래서 축구 관련 단체에서 운영하는 여러 기자단에 지원해서 축구 현장을 취재하고 글 쓰는 일을 했어요. 2007년 정도부터인데 그러다가 배구, 핸드볼 등 여러 스포츠 현장을 누빕니다. 그런 활동이 대학원 때까지 이어졌죠."

스포츠 현장을 다니다 보니 스포츠를 둘러싼 산업에 대해서도 흥미가 생겼다.

"대학원 1학년 여름방학 때 스포츠 브랜드 회사에서 주최한 공모전에서 수상을 했어요. 수상 혜택이 그 회사에 입사 지원을 하면 서류전형은 바로 통과시켜 주는 거였거든요. 그래서 대학원 졸업하면 거기에 들어가서 스포츠마케팅 분야의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그런데 졸업할 때가 되니까 그 회사 제도가 대학생 졸업예정자만 채용하게 바뀐 거예요. 지원조차 할 수 없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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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에픽 윤거일 대표./서정인 기자

막막해졌지만 손 놓고 있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분야가 뚜렷했기 때문이다.

"스포츠마케팅 관련 분야에서 일하겠다고 결심했죠. 스포츠 관련 자격증도 따고 여러 준비를 했어요. 축구심판, 스포츠경영관리사 자격증을 땄는데 나중에 도움이 되더라고요. 그래도 취업이 잘 되지 않았어요. 대학원까지 나왔지만 나이가 30대 초반이었고 신입사원으로 취업하기가 어려웠어요."

윤 대표는 일 년에 한 번 열리는 축구 에이전트 자격시험을 쳤지만 떨어진다. 점점 창업 쪽으로 생각이 기울게 된다.

"2012년도 여러 준비를 할 당시 지인이 창업을 하고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스포츠마케팅 분야에서요. 그걸 옆에서 지켜보면서 에이전트 시험이든 취업이든 안되면 창업을 해야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시험 떨어지고 취업도 안 되었고(웃음) 결국 창업을 하게 됐죠."

스포츠 콘텐츠 에이전시 스포츠에픽

"스포츠 에픽의 슬로건이 '스포츠를 글에 담다'예요. 제가 좋아하는 스포츠와 글 쓰는 것을 합친 겁니다."

윤 대표는 창업할 때 창원시 1인창조기업 비즈니스센터의 지원으로 창업 지원금과 사무공간을 얻을 수 있었다. 지원금으로는 든든한 사업 밑천인 노트북과 카메라를 구입했고 일을 꾸려나가면서 드는 비용은 스스로 충당했다. 유형의 가게를 차리는 것이 아닌 지식서비스업을 시작하는 것이었기에 다른 창업에 비해 많은 비용이 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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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아시안컵을 취재하는 윤거일 대표./윤거일 제공

"일단 사업자등록을 했어요. 그리고 원래 사용하던 개인 블로그에 도메인을 구매해서 스포츠에픽 홈페이지를 만들었어요. 일단 스포츠에픽을 알릴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했고 영업을 본격적으로 다녔죠."

윤 대표는 스포츠 관련 기사, 칼럼 등을 쓴다. <경남이야기>, <창원광장>, <창원시보>, 축구 전문지 <사커뱅크>에 기사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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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에픽 윤거일 대표./서정인 기자

"제가 스포츠에픽을 만들고 본격적으로 취재를 다니면서 한 학생 축구선수를 인터뷰해서 기사화했어요. 매체를 통해 기사를 올렸는데 나중에 지인이 사진을 하나 보내주더라고요. 그 학생 선수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당에 제가 쓴 기사가 크게 액자로 걸려있는 사진이요. 자식에 대한 내용이니까 그랬겠지만, 글을 쓴 사람으로서 굉장히 보람이 느꼈던 것 같아요."

스포츠에픽은 의뢰받은 스포츠 관련 콘텐츠를 대행해서 만들고, 마케팅 조언을 하고 강의나 강연도 꾸준히 한다. 스포츠에픽이 하는 일은 굉장히 넓어 보여 한 번 들어서는 제대로 틀을 잡아 이해하기가 힘들다. 윤 대표는 스포츠에픽과 대표자인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이 스포츠에픽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스포츠에픽이 하는 일은 분명해요. 콘텐츠 에이전시예요. 스포츠 관련 콘텐츠를 대행해서 만들고 또 Sportepic.net이라는 플랫폼을 통해 무료로 지역의 스포츠 관련 소식을 공유하기도 하죠. 또 스포츠에픽이 사업자등록 상으로는 출판사이기도 해요. 스포츠에픽의 이름으로 스포츠 관련 책을 만드는 것도 목적이죠. '창업코치' 등의 활동은 스포츠에픽이 아닌 윤거일이라는 제가 하는 사적인 활동이라고 볼 수 있죠."

윤 대표가 경남FC를 통해 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듯이 창원은 스포츠를 즐기기 좋은 지역이다. 축구, 농구, 야구 프로팀이 있고 그 외 실업, 아마추어 스포츠도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스포츠를 둘러싼 산업에 대해서는 아직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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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포츠에픽 윤거일 대표./서정인 기자

"창업을 하고 창원에도 스포츠에 대한 이런 일을 하는 곳이 있다고 알리려고 프로구단이나 스포츠 관련 단체를 찾아다녔어요. 콘텐츠 에이전시라는 게 말 그대로 일을 대행해주는 곳이잖아요. 취재나 마케팅을 대신해서 한다고 설명을 드려도 스포츠 분야의 클라이언트들이 이해를 잘 못 했어요. 다행히 좋은 분들을 만나서 일을 하나씩 차근차근 맡았었죠. 초기에는 스포츠 관련 마케팅보다 작은 업체의 마케팅 같은 걸 맡아서 했었어요. 마케팅 전략을 짜고 블로그나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고 SNS를 통해 콘텐츠를 담아서 홍보하고 알리는 일을 대행했죠."

사업 더 키우기보다 전문가가 되고 싶어

창업 이후에는 혼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고 주말도 당연하게 일로 채우며 지내는 윤 대표. 스포츠에픽은 계속 1인 기업일지 궁금했다.

"사업체를 운영하는 대표자라고 자각은 하지만 이걸 더 크게 벌리기보다는 이 분야에서 제가 전문가로서 자리 잡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커요. 직원은 없지만 같이 일을 하는 동료라고 할까요. 그런 분들이 몇 명 있어요. 프로젝트 있을 때마다 힘을 합치고 있는데 앞으로도 그런 식으로 할 것 같아요."

스포츠에픽 홈페이지를 통해 어린 학생들이 상담 요청을 많이 해온다고 했다.

"<축구에 관한 모든 것-에이전트>, <축구에 관한 모든 것-심판> 이런 책을 내다보니까 축구심판, 에이전트라는 직업에 관심이 있는 중·고등학교 학생들이 상담 요청을 해요. '내가 대답을 해줄 만한 사람이 되는가' 라는 생각은 들지만 보람이 있어요. 저도 이쪽 분야에 관심이 있었지만 쉽게 정보를 얻을 수가 없었거든요. 학생들한테 작은 정보라도 줄 수 있다는 게 기분 좋죠."

윤 대표는 얼마 전 <나는 취업 대신 꿈을 창업했다>라는 책을 냈다. '창업' 역시 윤 대표의 콘텐츠 소재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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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아시안컵을 취재하는 윤거일 대표./윤거일 제공

"창업 후에 창업 사례집 의뢰를 받고 창업자들 인터뷰를 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결과물도 반응이 좋았고요. 이 책을 내게 된 계기도 제가 창업을 하면서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는데 하나하나 스토리가 흥미로운 거예요. 저만 알고 넘어가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나의 콘텐츠를 발견한 거죠."

윤 대표는 창업코치로서 강의도 꾸준히 하고 있다.

"2014년부터 대학생들 앞에서 창업 관련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어요. 창업을 한 입장에서 학생들에게 현실적인 얘기를 해주었는데 자꾸 기회가 와서 하다 보니까 전문적으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창업코치로서 윤 대표는 창업을 생각하는 대학생들에게 일단은 창업을 하지 말라고 한다.

"대학생들한테 늘 하는 말이 창업하는 것은 정말 쉽다고, 금방 할 수 있다고 해요. 그런데 그걸 유지하기가 어렵죠. 평생직장이 없는 시대에 수명은 늘어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창업을 할 거라고 생각해요. 성공률을 높이려면 경험을 쌓고 창업 자금을 마련한 다음에 하라고 얘기를 해요. 그리고 창업할 때 돈을 많이 들여서 시작하는 것보다는 저처럼 지원을 받아서 시작할 수 있는지 잘 알아보기도 해야 하고요. 돈은 창업하고 나면 생각보다 계속 들어가요. 처음에는 남들 눈치 보지 말고 아끼면서 작게 시작하면 좋겠어요. 사업을 남 의식하면서 하면 망하기 쉬운 것 같아요."

윤 대표는 앞으로도 가치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글 쓰는 일을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어요. 계속 글을 써서 많은 사람들에게 가치가 있는 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요. 주제를 한정하진 않을 거지만 스포츠와 창업에 관한 책 위주로 정기적으로 낼 생각이에요. 저술가와 강연가로서도 더 많은 활동을 하고 싶어요. 앞으로도 경남 창원에 있을 거예요. 저는 창원이 좋거든요. 많은 분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열심히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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