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양 스토리텔링하면 유럽 관광객도 올 수 있다

미국 공인회계사(AICPA). 아내는 한국 공인회계사. 서울의 잘나가는 세무법인 영남지점을 밀양에서 운영하고 있다. AICPA는 자본시장 개방화와 글로벌 시대를 맞아 외국인 기업이 많이 활동하는 서울에서 영업하는 게 훨씬 큰돈을 벌 수도 있을 텐데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는 1년에 너덧 번은 유럽 여행을 즐긴다. 그러면서 밀양이 유럽의 어느 유명 관광지와 비교해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보고 밀양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게다가 세무사 사무실과는 별도로 10여 평 공간을 임대해 자신만의 국선도 수련장으로 활용하고 있는 박순표(44) 회계사를 밀양시 단장면에 있는 구천요에서 구진인 도예가와 함께 만났다.

-서울에서 잘 나가다가 귀향했는데 계기가 있었습니까?

"첫째는 직장생활이 재미가 없었고요, 남들이 부럽다는 외국계 은행에서 근무했는데 넥타이를 매고 지하철 타고 왔다 갔다 하는 게 싫더라고요. 금융 자체는 좋았지만, 경직화된 은행은 안 맞았어요. 은행원이란 게 보기에는 화려하지만 실제로는 숫자로만 일하니까 만 원짜리 한 번 만져본 적 없고요. 굉장히 인간미가 없습니다. 다음으로 아내가 서울 생활을 몹시 힘들어했습니다.

01.jpg
▲ 박순표 공인회계사./정성인 기자

-고향이라지만 오래 떠나있었기에 정착이 쉽던가요?

"쉽지는 않았어요. 10대 이후 고향을 떠났기 때문에 밀양에 대한 향수가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돈을 버는 생활인으로 밀양에 와서 살아보니까 안 좋은 것만 보입니다. 제가 고향을 떠났던 80년대 후반에는 밀양 인구가 30만에 육박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겨우 인구가 10만을 넘습니다. 인구가 줄어들다 보니 안 좋은 것만 남은 것 같아요. 좀 상식으로 이해 안 되는 행동이 너무 많다는 것도 그렇고요. 전부가 적 아니면 동지로 양분화돼 버리는 거예요. 나와 다름을 인정한다는 가치가 소중한데. 개개인이 나빠서 그런 게 아니라 그런 집단성이랄까, 갈가리 찢어진 게 아쉬웠습니다. 가고 싶었던 고향이기 때문에 답답했는데 어쨌든 밉지는 않았어요. 또 지금 당장 내가 어떻게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기에…."

-개인적으로 수련활동을 한다던데 계기는 뭔가요?

"22살 때부터 했으니 22년 됐습니다. 저는 되게 약골이었어요. 선천적으로 약골인 데다 군대서 몸을 좀 상했어요. 싸우기도 많이 싸우고 이도 많이 부러지고 기질적으로 반골 기질이 있나 봐요. 얼마나 몸이 안 좋았느냐 하면 제대를 하고 밀양에 내렸는데 육교를 오르기가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단식을 한 달 했어요. 피골이 상접 했는데 신기한 게 피부가 굉장히 안 좋았는데 피부가 깨끗해지고 힘은 빠지는데 머리가 그렇게 맑더라고요. 조금 회복하고 나니 갑자기 중학교 불교학생회 때 읽었던 경전이나 명상에 굉장히 호기심이 가더라고요. 그래서 서울 가서 온갖 명상단체 다 다녀봤는데 이상한 단체가 너무 많았습니다. 명상을 빙자해 물건을 판다든지 제를 지내는 데 재산을 바치라든지. 그러던 중 우연히 학교 근처 마포에 있는 국선도라는 곳에 가봤어요. 낡았고 분위기 가라앉아 있는데 거기에 원장님이나 회원들이 상당히 끌렸어요. 그래서 첫발을 국선도에 들였어요.

02.jpg
▲ 박순표 공인회계사./정성인 기자

-도장을 중간에 그만뒀다고 했습니다만 이유가 있었나요?

"몸도 많이 좋아지고 머리도 맑아지는데 재미있었던 게 그 당시 수련생 평균 연령이 60세가 넘었어요. 유일하게 20대 초반이다 보니 많이 귀여워들 하셨죠. 그런데 알고 보니 옆에 계신 분이 마포구청장이었고 현역 국회의원이었고 차관이었고 그러니까 굉장히 고위관료가 많았어요. 한 분은 4선 의원이었는데 YS 최측근이었죠. 나중에 게이트로 감옥에 가셨지만. 처음에는 젊은 나이에 그런 분들과 수련하니까 굉장히 업됐죠. 몇 개월 지나고 그네들이 삶의 이면을 보다 보니까, 그게 내 미래의 모습이잖아요. 그분들이 은퇴하고 권력을 잃고 게이트에 휘말리는 것을 보니까 정말 무상하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에 대에 돌아보게 되었고 그게 큰 계기가 됐어요. 아, 뭔가를 추구하는 게 허무하다는 것을 20대 초반에 느껴버린 것이죠. 그때부터 외적인 평가나 욕망이 싫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계속 수련은 했지만, 도장을 안 나갔지요."

-따로 수련장을 마련해두고 개인 수련은 계속한다면서요?

"수련은 하루에 6시간 정도 합니다. 새벽 3시에 일어나 3시간 명상하고 틈날 때마다 수련하는 거죠. 기본적으로 꾸준히 수련하면 건강해지죠. 일상생활을 하는 데 약간의 힘이 되는 거죠. 나를 돌아보는 계기. 80~100세도 못 살겠지만 사는 그 날까지 건강하고 소박하게 살자.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돈을 벌면 좋잖아요. 첫 월급을 받으면. 굉장히 뿌듯하지만, 나중에는 그 돈이 도구가 되고 욕망이 되면 사람을 옥죄어버린단 말입니다. 왜 버는지도 모르고 돈 만 쫓아가게 되죠. 수련도 똑같습니다. 그걸 제어하지 못하면 호흡의 길이나 동작에 얽매이게 되니까 나를 편안하게 하고 힘있게 하는 수련이 족쇄가 돼버리죠.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어설프게 수련하면 아집이 더 생겨버리죠. 심신의 자유를 얻으려고 하는 건데."

03.jpg
▲ 박순표 공인회계사./정성인 기자

-부인께서는 크리스찬이라고 하던데 충돌은 없나요?

"아내도 같이 수련했습니다. 애 낳고 요통 있어 함께 했지만, 기본적으로 크리스찬은 영적인 수련을 좋아하지 않아요. 서로 인정해주죠. 제가 와이프 교회 가는 데 대해 터치하지 않고 와이프는 내가 한 번씩 명상하고 사찰 가는 데 대해 관여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종교의 자유가 있잖아요. 자기의 종교가 좋다고 해서 타인의 종교를 폄하하거나 욕하는 것은 헌법에 위배되는 거죠. 헌법에 위배된다는 것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므로 국가전복세력이죠. 남의 종교를 폄하해서는 안됩니다. 제가 볼 때 우리는 법 공부를 다시 해야 해요. 헌법을 다시 공부해서 전부 알고 있어야 기준으로 삼죠. 아무리 나에게 좋고 편해도 법에 위배돼서는 안되거든요. 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혼탁한 게 종교지도자나 정치지도자가 헌법을 위반하기 때문이죠."

-그 말씀은 국가 전복세력이 이 나라를 이끌고 있다는 뜻으로 들리네요?

"실제로 법대로 해석하면 그렇죠.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데 지키지 않고, 국민을 보호해야 하는데 보호하지 않고 종교의 자유가 있는데 타인의 종교를 폄하하고 이런 게 죄다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는 거죠. 그런 상식을 갖지 못한 사람이 국가 권력을 쥐고 있으니 불행한 거죠. 철저하게 헌법 정신은 존중해야 합니다. 법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의 어떤 것도 인정해주고 싶어요. 그게 대학 때 배운 가치라고 볼 수 있죠. 대학 다닌 보람이 다름을 인정한다는 것 하납니다. 현행법을 위반하거나 급격한 위해를 가한다면 제재를 해야겠지만 헌법에서 분명히 종교의 사상의 정치의 자유가 있는데 어떻게 내게 전부라고 얘기할 수 있느냐는 거죠. 그런 걸 배우지 못한 사람이 권력을 잡고 자기를 챙기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게 유럽에서 배운 거고 선진국에서 배운 겁니다."

04.jpg
▲ 박순표 공인회계사./정성인 기자

-여행을 많이 다닌다고 들었습니다. 얼마나 다녔나요?

"지금까지 100번까지는 아닐 거고 수십 번 이상 유럽 쪽으로 다녀왔습니다. 일 년에 네다섯 번은 다녀옵니다."

-회계사가 아무리 많이 번다고 해도 비용도 만만찮을 건데요?

"누나 덕을 크게 보고 있고요, 누나가 외국계 항공사에 다니고 있습니다. 이 회사는 가족 1명에게 모든 항공권을 90% 할인해주는데 누나가 싱글이다 보니 저를 가족으로 회사에 등록해줬거든요. 그리고 자주 다니다 보니 나름대로 저렴하게 다닐 수 있는 노하우도 생겼고요. 그렇다 하더라도 버는 돈 여행에 다 쓰고 빈털터리랍니다. 하하."

-지금까지 다녔던 여행지 중 좋았던 곳을 소개해 주세요.

"풍광은 다 좋고요.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보고 폴란드 크라코프에 갔습니다. 크라코프가 특이한 게 폴란드 수도였고 2차대전 때 폭격을 안 받았어요. 그래서 건물이 고스란히 남아있죠. 거기서 30㎞ 가면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있어요. 독일 정치인들이 매년 추모하러 온다더라고요. 다른 한 곳은 독일 여행 중 오스트리아 산골로 들어갔다가 휴가온 독일인을 만났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잘 들어주더라고요. 나이 지긋하신 분이 동양에서 온 젊은이 얘기를 정말 경청해주더군요. 불교에 대한 얘기에 관심 많았고요. 나중에 주인에게 저 사람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어보니 전직 독일 총리라 하더라고요. 그 정도 지위가 되는 사람인데 스스럼없이 대하는 자세나 성품이 우리나라에 비해서 부럽더라고요."

05.jpg
▲ 박순표 공인회계사./정성인 기자

-밀양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고 들었습니다.

"대한민국 어디를 가도 금수강산이라고 아름답습니다만, 밀양은 한국 정신문화가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살생해서는 안 되는 불교 승려가 외적을 맞아 의병으로 일어난 곳이기도 하고 조선 성리학도 밀양입니다. 또 약산 김원봉 선생 등 독립운동도 굉장히 활발했습니다. 그런 정신문화를 스토리텔링하면 유럽인들을 불러들일 경쟁력이 있다고 봅니다."

-불교나 독립운동은 알겠습니다만, 성리학은 의외입니다.

"성리학의 뿌리를 거슬러 가보면 이황 이전 조광조가 있었고 조광조 이전에 김굉필이 있었고, 그 꼭대기에 점필재 김종직이 있었습니다. 영남 사림의 근본은 김종직이었지요. 고려말 권문세족에 이어 조선 신진사대부가 등장한단 말입니다. 어쨌든 간에 세조의 권력 찬탈한 이후 세조에 반대한 사람들이 사림이었거든요. 김종직은 무오사화로 부관참시 됐지만. 그분들이 추진한 게 도덕적인 극치를 이루는, 모든 사람을 성인군자로 만들겠다는 거였어요. 그게 서양에서 말하는 사상에 절대 뒤지지 않는다고 봅니다. 단지 그것이 크게 부각되지 못하고 말살돼버렸기 때문에 새로운 사상이 필요합니다. 성리학이 충분히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점필재 김종직 선생의 뜻은 알겠습니다만, 밀양에서 그 학맥을 이어온 것이 있나요?

"없습니다. 다 흩어지고. 나중에 꽃핀 곳은 안동이죠. 실제로 밀양은 안동의 할아버지뻘 되는 거죠. 하지만 그 정신은 고스란히 살아있기 때문에 가꿔나가야죠."

-밀양의 그런 장점이 있다 하더라고 그것만으로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기에는 뭔가 부족해 보입니다.

"제가 유럽에 가면서 느낀 게 굉장한 지역 엘리트들이 그 지역의 문화 해설을 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풍광도 자주 보면 질리거든요. 하지만 그 사람들이 역사적인 배경이나 철학에 대한 설명을 들으면 동일한 풍광일지라도 굉장히 의미 있게 다가옵니다. 내가 왜 밀양을 좋아했느냐면, 물론 아름다운 요소도 많아요. 근데 저희가 추구하는 게 자유민주주의고 자본주의인데, 실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서구 것이죠. 엄밀히 말하면 한국사람이 양복을 입어도 우리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저는 한류를 봐도 국악이나 철학을 봐도 그것을 넘어서는 굉장히 뛰어난 것이 많아 보였어요. 그것이 근대화하면서 산업화하고, 식민지배를 받으면서 급격히 무너졌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저는 한국의 철학이나 성리학이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봐요. 어떤 형태로 갈지는 모르지만 사림이 기반이 되는 식이어야겠죠."

-박일호 시장이 문화관광 진흥을 공약했고 관련 사업도 하는 것 같던데요.

"민선 시장이 5기 20년 했잖아요. 초대 민선 시장은 그다지 문화관광에 관심은 없었어요. 하지만 밀양강은 잘 가꿨어요. 두 번째 시장은 대놓고 공장 유치하려 하셨어요. 그때는 가만히 있다가 굳이 밀양에 관심을 가진 것은 지금 밀양시장님은 문화관광을 천명하셨거든요. 과연 어느 정도 깊이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준비된 시장이라 하더군요. 하지만 한계도 있는데, 오랫동안 밀양을 떠나있었고, 고위 관료 출신이고. 고시를 통한 관료 입장에서는 밑바닥을 잘 모릅니다. 그리고 저는 수많은 여행을 다녔기 때문에 여행을 소비하는 소비자 입장이거든요. 그런데 정책 입안자들은 그런 경험을 통한 소비자 입장을 잘 모릅니다. 그런 간극을 줄이려면 열린 자세로 지역에 뿌리박고 사는 사람들의 얘기를 많이 들어주고 만들어나가야 하는데 흔히 관료가 그렇거든요. 항상 다음 선거를 준비해야되고, 하더라도 표를 잃지 않는 것. 실적으로 드러내 보여야 하다 보니 하드웨어 중심이 된단 말입니다."

-지역 이슈가 되는 신공항에 관해서도 얘기해 보죠.

"저는 개인적으로 공항 찬성이니 반대니 하는 데서 벗어나 있습니다. 공항은 국가 정책이 맞고, 국가에 맡겨둬야 한다고 봅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보인다고 해도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올 수도 있단 말입니다. 오느냐 마느냐 문제가 아니라 왔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 안 온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가 지역에서 논의해야 할 내용이라고 봅니다. 결과가 떨어지면 밀양은 거기에 걸맞게 당당히 요구해야 합니다. 오면 오는 대로 아니면 아닌 대로, 그런 생각이 시장이나 공무원들 머리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준비하는데 감추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요. "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공항이 왔을 때 가장 큰 문제가 하남이 문전옥답 옥토거든요. 저게 공항이 돼버리면 밀양의 농지 20%가 날아가 버리는 겁니다. 밀양 농업 소득이 1조 가까이 되는데 2000억이 날아가는 거죠. 그 순간 각종 소음에 시달리고 공항 주변은 개발이 묶여버립니다. 밀양 입장에서는 공항 들어오면 잃는 게 많거든요. 그러면 반대급부로 밀양이 준비해야 할 것은 공항 이용객들이 창원 대산으로 흘러나가지 않게 준비해야죠. 실질적으로 밀양이 잃는 것이 많으므로 신도시를 조성한다든지 대비를 해야 하는 데 지금 밀양시가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리고 공항이 들어선다고 하는데 바로 앞에 주물공단이 조성되고 있습니다. 전 세계 어디를 가봐도 공항 앞에 저런 공단이 있는 지역은 없습니다. 매연과 소음과 분진 같은 환경문제가 있는데 턱 공항에 내렸는데 저런 문제가 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거기에 대한 대책이 사실상 없어 보이고요. 지금은 밀양이 경부선인데 지금 추세는 공항까지 철도가 이어지는 겁니다. 제가 볼 때는 철도 건설이 어려운 상황입니다. 공항에서 밀양역까지 최단거리로 이어줄 고민이 뭔지 이런 걸 밀양시가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에 안 들어왔을 때 지역과 연계하면서 밀양을 보존하면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과연 그런 플랜이 밀양시에 있을까. 싱크탱크가 부족하지 않나 싶습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