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창녕'비사벌국' 살리지 못해 아쉬워, 독자성 유지한 '합천 다라국' 가락국 왕 무덤 산청에 존재 증손자 김유신 조성 추측도

창녕은 '비사벌국' 중심이었다고 하지만, 좀 묘한 분위기가 있다.

창녕박물관 주변에는 교동·송현동 고분군이 있다. 1911년 일본 학자에 의해 처음 발견됐다. 유물 양이 엄청나게 많았는데, 별도 철도 개설 계획까지 세웠을 정도라고 한다. 출토 유물, 구조를 볼 때 5~6세기 고분군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고분군은 '비사벌국'과 연관된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다.

그럼에도 오늘날 이 지역 사람들은 비사벌국보다는 이를 정벌한 신라에 좀 더 방점을 두는 듯하다. 오히려 처음부터 가야 아닌 신라에서 출발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싶은 사람들도 있어 보인다. 들여다보면 이렇다.

만옥정공원에는 '신라진흥왕척경비'가 있다. 신라가 비화가야를 합병한 이후인 561년에 세워졌다고 한다. 비문에는 새 점령지를 다스리는 내용과 관련된 사람들을 열거해놓았다. 창녕이 신라의 역사에 포함돼 있다는 출발점과도 같다.

창녕은 비사벌국(비화가야) 흔적을 안고 있다. 창녕 교동·송현동 고분군은 1911년 일본인 학자에 의해 처음 발견되었다. 출토 유물, 고분 구조를 볼 때 5~6세기 고분군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석형 기자

이곳을 중심으로 7~8km에 걸쳐 '진흥왕행차길'이라는 문화 탐방로가 조성돼 있다. 군은 이에 대한 설명도 '가야 정벌과 신라 부흥이라는 큰 꿈과 불교에 대한 굳은 신념을 가졌던 진흥왕을 따라…'라고 해놓았다.

이러한 분위기에 대해 창녕 사람 누군가는 "가야의 후예라기보다는 역사적 승자인 신라만 내세우는 것 같습니다. 여기 처지에서 보면 멸망의 아픔이 있는데, 뒤집힘이 있는 것 같습니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고성을 중심으로 한 '고자국'은 '소가야'라고도 하지만 이것은 '쇠가야'가 잘못 전해진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생각해보면 스스로 '작은 가야'라 칭했다는 것도 우스운 노릇이다.

고성이라는 지금 지명은 고자국과 떨어져 있지 않다. 20개가량 되는 성곽이 분포하는 고성(固城)은 '단단한 성곽' 정도로 풀이할 수 있겠다. '성'은 우리말로 '재'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또 방언으로 '재미' '자미'로 부른다고도 한다. 이것이 곧 고자미·고자국·고차국 같은 옛 이름이기도 하다.

고성읍 중심가에는 송학동고분군이 자리하고 있다. 이 무덤은 '고자국' 왕 무덤으로 추정되고 있다. 겉모습이 일본 왕릉과 비슷하다 하여 한때 한일 간 설왕설래하기도 했다. 이를 떠나 너른 잔디에 우뚝 솟은 봉분은 이국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합천을 중심으로 한 '다라국'은 562년 신라에 종속되기 전, 탄탄한 독자성을 유지하며 후기가야 세력의 한 축을 이뤘다고 한다. 이는 지리적 여건이 큰 몫을 차지한다. 황강·낙동강 물길을 끼고 있어 군사·교통·교역 요충지였다. 철기 제품·구슬 생산도 활발했다. 오늘날 합천군 쌍책면에 있는 옥전(玉田·구슬밭)고분군에서는 2000개 넘는 구슬이 나왔다고 한다. 다라국은 멸망 후 신라에 편입되었는데, 이곳을 놓고 백제와 치열한 전투를 벌이기도 했다.

합천에 자리한 가야산은 '다라국' 아닌 가야 후기 맹위를 떨친 '대가야(지금의 경북 고령 중심)' 건국 신화가 자리하고 있다고 하니 재미있는 사실이다.

산청에는 아주 특이한 무덤이 있다. 가락국 마지막 왕 무덤으로 전해지는 '전(傳) 구형왕릉(사적 214호)'이다. 고증되지 않았기에 앞에 '전할 전(傳)'이 붙은 것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이 일대에 왕이 찾는 절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왕이 산청 차황면을 지나다 수레가 빠졌다는 얘기, 왕이 삼장면 왕등재를 넘었다는 얘기 등이 덧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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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 '전' 구형왕릉.

이 무덤이 가락국 중심지였던 김해 아닌 산청에 자리한 이유가 궁금하다. 구형왕이 말년에 이곳으로 들어왔거나, 구형왕 증손자가 신라 김유신이라는 점으로 미뤄 가락국 멸망 이후 신라가 베푸는 마음으로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수 있다.

내용은 뒤로하고 외관만 놓고 봤을 때 눈길 끌기에 충분하다. 전체 높이는 7.1m인데, 돌로 일곱 개 층을 쌓아올렸다. 반듯한 모양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판 피라미드'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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