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모터사이클로 웨딩카를 에스코트하다

얼마 전 내가 소속된 모터사이클동호회 '블랙라벨'에서 함께 활동하는 후배가 결혼을 했다.

결혼식은 진주시 외곽의 한 결혼식장에서 진행됐다. 토요일이었다.

내가 클럽 회장을 맡았던 2013년~2014년, 새신랑이 총무를 했었다. 회원들에게는 '칼 총무'로 통하는 친구다. 정기투어 때 클럽 인터넷카페에 투어 참석 여부를 분명히 밝히지 않거나, 약속한 시간에 집결지에 나타나지 않거나 하는 회원은 어김없이 총무에게 욕을 얻어먹어야 했다.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강제력이 없는 동호회의 특성상 좋으면 모임에 나오고, 싫어서 떠나면 그뿐이기 때문에 회장이나 총무 둘 중 하나는 강력한 통솔력을 발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클럽 운영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회원을 그냥 두면 결국 클럽이라는 배가 바다가 아니라 산으로 가게 된다. 회원들도 그런 점을 잘 알기에 나이 어린 후배라 하더라도 회장과 총무의 의견을 존중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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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는 언제나 회장 또는 로드마스터가 당일 일정과 유의사항을 브리핑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조재영 기자 jojy@idomin.com

 

모터사이클동호회 회원이 결혼을 하면 많은 동호회가 에스코트 놀이를 한다. 결혼식이 끝나면 모터사이클로 신랑 신부가 탄 웨딩카를 앞뒤로 에워싸고 신혼여행을 떠나는 공항까지 데려다 주면서 결혼을 축하해주는 것이다.

한겨울에 열린 결혼식이었지만 우리 동호회에서만 회원과 가족 등 30여 명이 참석했고, 모터사이클은 스무 대나 모였다. 결혼식이 열리는 곳이 진주였고, 창원·김해·함안지역 회원들이 많아서 오전에 결혼식장까지 찾아가는 것 자체가 하나의 투어였다.

오전 10시. 창원시 마산회원구 진전면. 통영 거제 방면 14번 국도와 진주 방면 2번 국도가 분기하는 지점에 회원들이 집결했다. 운영진이 당일 일정과 유의사항을 브리핑하고 진주로 출발했다.

모터사이클 계기판에 나타난 기온 표시는 0도였다. 옷을 두껍게 껴입었지만 목덜미로 한기가 느껴졌다. 겨울 라이딩 때 가장 고통스러운 것은 손가락이 끊어질 듯 시린 것인데, 전기열선을 넣은 장갑을 끼면 이런 고통을 면할 수 있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열선재킷과 열선바지, 열선 (신발)깔창까지 하기도 한다. 그렇게 완전무장을 하면 혹한에서도 얼마든지 라이딩을 할 수 있지만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나는 열선 장갑만으로 버틴다.

할리데이비슨과 BMW 대형모터사이클 스무 대가 지축을 울리면서 결혼식장에 도착하자 하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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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을 출발한 20대의 모터사이클이 진주 결혼식장에 무사히 도착했다. /조재영 기자 jojy@idomin.com

 

"새신랑이 오토바이 탄다더니 친구들인가 보네!"

회원들은 모터사이클을 나란히 주차해놓고 식장으로 가서 새신랑에게 축하의 뜻을 전했다. 신부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에게는 신부도 익숙하다. 두 사람은 모터사이클이 인연이 되어 결혼까지 하게 됐다. 내가 지금 소속된 동호회를 만들기 전에 활동하던 동호회가 있었는데, 나와 두 사람은 그 동호회의 회원이었다. 새신랑은 그때 할리데이비슨 883 아이언을 탔었고, 신부는 국산 대림자동차의 스쿠터를 탔다. 동호회 정기 투어 때 신부는 스쿠터를 타고도 대형모터사이클을 곧잘 따라다녔었다. 그렇게 둘은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사랑을 키웠고, 마침내 한 가정을 이루게 됐다. 결혼식에서는 그 동호회에서 활동하던 반가운 얼굴들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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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혼가를 부르는 새신랑을 사랑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신부./조재영 기자 jojy@idomin.com

 

결혼식이 끝나고 사진 촬영 때에는 신랑 신부와 동호회 회원들만 별도로 사진을 찍었다. 신랑 신부는 물론이고 우리 회원들도 잊지 못할 추억을 새긴 셈이다.

이제 신랑 신부를 공항까지 데려다 줄 일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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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에게 청혼가를 부르는 멋진 새신랑./조재영 기자 jojy@idomin.com

 

폐백까지 끝낸 신랑 신부가 웨딩카에 올랐다. 앞에 모터사이클 3대, 웨딩카, 뒤에 나머지 모터사이클 17대를 배치했다. 선두(로드마스터 또는 로드캡틴이라 부른다.)는 올 때와 마찬가지로 내가 섰다. 행렬은 출발 신호와 함께 예식장을 떠났다. 신랑 신부의 가족과 친지, 친구들이 아낌없이 박수를 보내주었다.

행렬은 길었다. 주행 중에는 백미러로 뒤를 봐도 끝이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이럴 때는 행렬을 이끄는 선두가 속도조절은 물론이고 교통신호 등을 유의해서 달려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행렬이 중간에 끊어지기 십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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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이 끝난 후 모터사이클 동호인들만의 기념촬영. 잊지못할 추억이다. /조재영 기자 jojy@idomin.com

 

목적지는 김해공항이었다. 진주시내를 관통해서 2번 국도를 타고 마산-창원-진해를 거쳐 부산 강서-김해공항까지 장거리를 가야 했기 때문에 마냥 천천히 달릴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신랑 신부를 공항에 데려다 주고 나서 회원들이 안전하게 귀가하는 것까지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행렬은 무사히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날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고, 기온도 떨어져 있었다. 회원들은 공항 카페에서 따듯한 커피로 몸을 녹였다. 그리고 신랑 신부에게 신혼여행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하고 공항을 빠져나왔다.

하와이로 신혼여행길에 오르는 신랑 신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회원들이 있었다. 바로 총각 회원들이었다. 우리 동호회에는 총각 회원들이 적지 않다.

며칠 후 신혼부부는 동호회 밴드를 통해 신혼여행을 잘 다녀왔다고 알려왔다.

그런데 새신랑은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자리에서 "결혼 했음을 실감한다"라고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결혼하기 전에는 밤이건 낮이건 오토바이 타고 싶을 때 언제든지 탔는데 이제는 그렇게 안될 것 같다. 벌써 저녁에 오토바이 타고 나간다고 견제를 하기 시작했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하긴 모터사이클 라이더에겐 결혼이 무덤이라는 말도 있다.

그렇다. 모터사이클 라이더에게 가족, 특히 아내는 취미생활을 즐기는데 '방해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커플 새신부는 자신이 모터사이클을 즐기는데도 이 같은 반응을 보이니, 모터사이클을 모르는 사람은 오죽하랴!

남들에게 모터사이클을 탄다고 하면 되돌아오는 반응 중 십중팔구는 "오토바이는 과부제조기라던데…."이다.

정말 지겹게도 듣는 소리다. 한편으로 맞는 말이고, 한편으로는 맞지 않는 말이다. 옛날, 그러니까 1980년대까지는 술을 마시고 모터사이클을 운전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포장 등 도로 사정도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다. 거기다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고 일정 시기까지는 고속도로에도 모터사이클이 합법적으로 다녔었다. 당연히 사고가 잦았고, 인명피해도 컸다. 그러니 '과부 제조기'라는 별명이 생겨났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가? 경찰의 음주단속은 모터사이클이라고 해서 예외가 없다. 또 취미로 모터사이클을 즐기는 이들치고 술을 마시고 모터사이클을 운전하는 사례를 본 적이 별로 없다. 음주 모터사이클 운전이 얼마나 치명적인 결과를 낳는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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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터사이클들이 웨딩카와 함께 김해공항으로 달리고 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2번국도. /조재영 기자 jojy@idomin.com

 

바퀴가 두 개뿐인데다 자동차처럼 보호막이 없어서 모터사이클이 자동차보다 더 위험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안전장비를 갖추고, 교통법규를 준수하면 '과부 제조기'라고 불려야 할 만큼 그리 위험하지는 않다.

어느 기사에서 본 통계에는 요즘 우리나라 모터사이클 사망사고는 대부분 10대와 20대 초반에 집중되어 있고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사망사고 발생률이 극히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모터사이클을 타더라도 법규 준수 등 기본을 지키면 그리 위험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모터사이클을 모르는 사람들은 막무가내로 "위험하다." "안된다."라고만 한다.

최근 내근부서로 발령이 나서 새로운 업무를 하게 됐다. 경남 도내 한 대기업에서 보도자료를 하나 받았는데 보낸 사람이 몇 년 전에 나에게 할리데이비슨을 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물었던 사람이었다. 그때 나는 내가 나름 아는 대로 설명을 해주었었다.

궁금했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물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는지.

돌아온 대답은 예상했던 대로였다. "집사람 반대가 너무 심해서 포기했습니다."

그런 사례를 너무 많이 봐왔기 때문에 긴말 없이 위로의 뜻만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대형모터사이클을 타는데 필수인 2종 소형면허를 따고 2000만 원이 넘는 중고 모터사이클을 사 갔다가도 "마누라 반대 때문에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제가 손해를 조금 볼 테니 오토바이 돌려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모터사이클은 타고 싶은데 아내의 반대가 심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묻는 사람들이 많다. 이럴 때 쓸 수 있는 방책이 몇 가지 있기는 하지만 여기에는 쓸 수가 없다. 비법이 공개되면 이글을 본 '아내'들이 서로 공유해서 '남자의 로망'을 짓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비법을 알고 싶은 분은 경남도민일보(055-250-0184)로 전화하거나,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http://32day32.blog.me)에 흔적을 남기면 친절하게 알려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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