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음식인문학자가 말하는 '마산아구찜'

1960년대 중반 마산 부두 노동자가 버려진 아귀를 식당 할머니에게 들고 와서는 요리해달라 한다. 이 할머니는 흉측한 생선이 못마땅해 그냥 버렸다가, 며칠 뒤 바싹 말라 있는 것을 다시 주워와서는 양념과 채소를 넣어 제법 그럴 듯한 음식으로 만들어낸다. 다시 찾은 부두 노동자들이 독한 술에 이 매운 안주를 곁들여보니 꽤 괜찮았던가 보다.

마산에 아귀찜집이 하나둘 들어서게 된 지난 이야기는 이제 꽤 귀에 익다. 지금은 아구데이 축제가 여러해를 맞았고, '아구찜이 좋아'(김산)라는 노래도 있다. 그리고 임영주(61) 마산문화원장은 이렇게 이야기를 엮기도 한다.

"아귀찜에는 마산사람 기질이 담겨 있다고 봅니다. 3·15의거, 부마항쟁 등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은 아귀찜의 화끈한 맛과 같습니다. 동치미 국물 하나만 있으면 되는 수수한 상차림 또한 어수룩한 외모지만 얕잡아보는 이들에게 얼얼한 매운 맛을 보여주는 여기 사람 모습과 비슷하지요."

그런데 전라북도 군산도 아귀찜이 유명하다는 점은 이곳 사람들에게 생소한 분위기다. 군산은 탕에 좀 더 무게 두는 분위기지만 찜 역시 빠지지 않는다. 군산 사람들은 "군산이나 마산이나 역사는 비슷하다. 저쪽에서 먼저 내세워 유명해졌을 뿐"이라고 한다.

음식인문학자인 주영하(53)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마산이 고향이다. 어릴 적 말린 아귀를 연탄불에 구워 먹던 기억도 있다. 하지만 군산 아귀찜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는 <식탁 위의 한국사> 등을 쓴 음식인문학자다. 그는 마산에서 태어나 스무 살 때까지 고향에서 살았다. 그는 '마산아구찜'이 진정한 국민 메뉴가 되려면 '건아귀 유통'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남석형 기자

"1960년대 서울은 농촌을 떠나온 이주민 도시가 됩니다. 특히 전라도 사람들은 언덕배기에 모여 집단 거주지를 형성합니다. 서울이라는 중심부로 들어온 이들이 자기 지역 음식을 찾게 되는 거죠. 전주비빔밥이 유명해진 것도 그러한 이유입니다. 서울에 아귀찜이 정착한 것도 마산보다는 군산 영향이 컸을 겁니다."

실제 서울 낙원동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아귀찜집이 전라도 사람 귀띔에 따라 시작됐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마산아구찜'은 1970~80년대 그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주 교수는 이렇게 설명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신문에 맛 칼럼이 조금씩 나오기 시작합니다. 제가 찾은 자료로는 '마산아구찜'이 제일 처음 언론에 소개된 것이 1973년입니다."

그가 건넨 자료는 1973년 8월 28일 자 <조선일보>다. 전국 향토음식을 소개하는 '별미진미'라는 고정란에 '馬山 아구찜'이 소개됐다. 내용은 이렇다.

▲ 1973년 <조선일보>에 보도된 '마산아구찜' 기사

'처음엔 막걸리 안주로 등장했었다……식욕이 없을 때 입맛을 되찾아 누구나 밥한그릇을 거뜬히 먹을 수 있어 밥반찬으로 일품이다……지금은 널리 퍼져 아구찜 파는 집은 마산시내만도 50여 곳, 부산 대구 서울 등지까지 '마산아구찜' 전문이란 간판을 볼 수 있다.'

이렇게 언론을 통해 조금씩 알려지던 것이 1981~1982년 큰 계기를 맞게 된다.

"여러 향토음식들이 전국에 퍼지는 과정에서 중요한 지점이 하나 있습니다. 1981년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문화행사인 '국풍81'입니다. 이때 각 지역 향토음식이 대거 소개됐는데, 충무김밥이 알려진 것도 이때부터죠. 저도 당시 행사에 직접 갔었습니다. 그런데 제 기억으로 아귀찜은 본 기억이 없는 것 같은데…."

하지만 자료를 찾아보니 '마산아구찜' 역시 이 행사에 등장했다. '마산아구찜' 대중화에 발벗고 나선 '오동동아구할매집' 김삼연(68) 씨가 놓칠 리 없었다.

주 교수는 그 이듬해 있었던 또 다른 사건을 언급했다.

"1982년 전국체전이 마산을 비롯한 경남에서 열렸습니다. 당시에는 올림픽 못지않은 큰 행사였잖아요. 그때 전국에서 찾은 사람들이 '마산아구찜'을 맛볼 수 있었던 거죠."

실제로 1982년 10월 16일 자 <경향신문>에 보도된 내용이 이를 잘 전해준다.

▲ 1982년 <경향신문>에 보도된 '마산아구찜' 기사

'마산에 아구가 동났다. 갑자기 늘어난 수요 때문에 수협공판장엔 이른 새벽부터 아구를 사러온 음식점 주인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매일같이 값이 뛰고 있다. …… 제63회 전국체전에 참가한 1만 7000여 명의 임원과 선수들은 물론 수많은 관광객들까지 즐겨 아구찜 전문음식점을 찾는다. 마산시 오동동 번화가에 자리잡은 '할매집' 등 30여 군데 아구찜집엔 매일 300~500여 명의 손님이 몰려 붐비는 바람에 일부 식당에서는 몰려드는 손님을 수용키 위해 아예 종합운동장 근처에 분점까지 내고 있을 정도다.'

이때를 기점으로 1980년대 후반 '마산 아구 거리'가 본격적으로 형성됐다고 알려져 있다.

주 교수는 마산을 찾을 때 잊지 않고 아귀찜 맛을 본다고 한다.

"향토 음식에는 두 가지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는 관광객 입맛에 맞게 갈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토박이식으로 갈 것인지입니다. 마산에서도 외부 사람 입맛에 맞게 변형됐다가 다시 건아귀 쪽으로 가는 분위기인 것 같은데요. 사실 스팀을 이용하는 조리법인 '찜'을 만들려면 건아귀만이 가능합니다. 생아귀로는 찜이 안 되죠. 말하자면 '콩나물 매운양념 볶음요리'라 하는 게 맞죠. 서울에서 '마산아구찜' 간판 단 집이 많지만, 생아귀로 하는 것이니 찜요리라 할 수 없는 거죠.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마산에는 덕장도 있고 하니 건아귀를 다른 지역에 유통할 수 있는 고민을 한다면, 그것이 '마산아구찜'의 진정한 전국화라 할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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