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양공작소 대장장이는 언제 올까

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골목 안쪽 깊숙이 들어가면 문을 연 지 30년이 훌쩍 넘은 대장간이 있습니다. 산양공작소. 한참을 기다려도 주인은 오지 않습니다. 좁은 골목길로 자전거 한 대가 지나가고 오후의 햇살 한 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습니다. 

"계십니꺼? 계세요? 아재요!"

아주머니가 들어서며 두리번거리다가 소리를 합니다. 아 골목 맞은편 유리문이 열리면서 목이 굵은 아저씨가 다시 나옵니다. 한참을 설명하더니 아주머니는 빈손으로 돌아섭니다. 찾는 것이 없나 봅니다.  

잠시 후 모자를 푹 눌러쓴 늙수그레한 아저씨가 들어섭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또 맞은편 유리문이 열리며 목이 굵은 아저씨가 나옵니다.

"박 선장, 이 아재가 잠깐 나간다꼬 나가더니 아즉이네. 맡기두고 가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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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서호시장 시락국 골목 안쪽에는 산양공작소가 있다.

목이 굵은 아재가 활달하게 말을 걸어도 별 다른 대꾸도 하지 않습니다. 박 선장은 그저 한 손에 든 묵직한 봉지를 내려놓습니다.

"요 놔두고 나중에 다시 올끼요."

박 선장은 골목을 따라 휘적휘적 걸어갑니다. 오른 다리가 약간 갸우뚱합니다. 

서호시장은 서호만을 메운 자리에 통영항이 들어섰을 때 곧이어 생겼습니다. 항구와 뱃사람들을 연결하는 곳이었지요. 통영항은 1940년부터는 일본 군항이었고, 서호시장은 해방 전후 일본에서 귀국한 삶들이 정착한 해방촌 같은 곳이었습니다. 

박 선장은 골목 중간 선원휴게실 낡은 간판 아래서 잠시 멈췄다가 걸어갑니다. 골목이 떠들썩하도록 뭉쳐 다니던 뱃사람들도 이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유리문이 다시 열리고 목이 굵은 아저씨는 어깨위에는 검은 비닐봉지가 뭉치째 올려져 있습니다. 그는 "비닐봉다리 사이소~" 두어 번 길게 소리치며 골목 끝으로 사라집니다.

어두침침한 공작소에는 아궁이 속 불길이 뻘겋습니다. 담금질하던 쇠는 이미 식었습니다. 산양공작소 대장장이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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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기다려도 산양공작소의 주인은 오지 않았다.

2. 옥봉동 사이고개는 시장가는 길

진주시 옥봉동 금산을 헤매다보면 어딘가 어딘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르락내리락하는 골목길도 어지럽기만 하고 등줄기에는 금세 땀이 줄줄 타고 흐릅니다. 이럴 때 딱 바람 한줄기 불어왔으면, 하는 마음 간절해도 바람은 그따위 아랑곳 하지 않습니다. 

시영아파트 뒤 비탈길을 오를 때는 자연스레 땅바닥만 보게 됩니다. 그러다가 머리를 들어 위를 보니 어느 집 옥상의 빨래가 눈에 들어옵니다. 금산 어디쯤인지 조차 모르겠습니다.

"야, 저 집 봐. 빨래 널어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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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봉동 사이고개를 오르다보면 옥상 위 빨래들이 참 따뜻하기도 하고 서럽기도 합니다.

누군가가 가리키며 꼭 그리 얘기하지 않아도 빨래가 있는 풍경은 참 따뜻하기도 하고 까닭 없이 참 서럽기도 합니다. 허공을 횡으로 가른 빨랫줄에서는 어느 가족의, 낯선 사람들의 결이 만져집니다. 

옥봉동 금산은 1972년 8월에 도시공원으로 공시됐습니다. 금산을 가운데 두고 앞뒤로 동쪽, 서쪽, 안골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사이고개는 씨앗고개라고도 합니다. 참 많은 애환이 담긴 길이라 그만큼 이름도 많습니다.  보리당 북쪽 고개, 무명 씨앗 까는 고개라고 합니다. 고개 모양이 보릿대를 쌓아둔 뭉치처럼 생겼다고 하여 보리당고개라 하지요. 또 향교 쪽에서 시내 쪽으로 넘어올 때는 씨앗고개라 했고, 시내에서 향교 쪽으로 넘어가면 떡전골 고개라 했습니다. 또 엄동설한에 나막신을 신은 소금장수가 얼어 죽은 고개라 하여 '나막신짝 고개'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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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봉동 사이고개 갈래 길에서.

옥봉동 금산 사이고개는 진주중앙시장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비탈길을 오르다가 길모퉁이 아래 벽면에서 페인트로 찍은 듯한 '시장가는 길' 글자를 발견합니다. 표지판도 없이 그저 큰 글자로 그리 써놓았습니다. 시내버스가 제대로 오지 않던 시절, 옥봉동 사람들은 좀 더 빨리 시장에 닿기 위해 이고지고 이 길을 넘었을 겁니다. 언제 쓴 건지 알 수 없지만 여러 갈래 길에서 헤매지 않아 다행입니다. 

사이고개에 오르니 두서너 걸음 앞에 허리 꼬부장한 노인들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겨드랑이가 젖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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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봉동 골목을 이리저리 헤매다보면 어느새 겨드랑이는 젖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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