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다라이 그림대회를 아시나요?

통영항에서 강구안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를 따라가면 서호시장이 있고 통영중앙시장이 있다. 서호시장이 통영항을 앞에 끼고 있다면 통영중앙시장은 동피랑과 강구안, 남망산공원을 끼고 있다.

먼저 서호시장 활어 골목에 들어서면 펄떡대는 횟감들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게 빨간 대야이다. 경상도 사람들에게는 '대야'보다 '다라이'가 익숙하다. '다라이'라고 말해야 그 순간 온갖 추억과 감정이 살아나는 듯하다. 거기에다 꼭 '빨간 다라이'여야 한다. 

'빨간색'은 복과 길을 점쳐 서민들은 빨간 내복, 빨간 장화 등 흰색 다음으로 우리 민족이 많이 사용하던 색깔이다. '빨간 다라이'는 고무 다라이에서 시작됐다. 좀 더 가벼운 플라스틱이 재료가 되고 나서는 파란색 등 여러 색깔이 나오기도 하지만 여전히 시장 상인들에게는 '빨간 다라이'가 대세다. 다만 이제는 무거운 고무보다는 가벼운 플라스틱이 주를 이룬다.

서호시장 바닥에 깔린 크고 작은 빨간 다라이에는 이곳 상인들의 얼굴처럼 제각각의 표정이 담겨있다. 희한하게도 어느 계절에 뭘 담는가에 따라 빨간 다라이는 다르게 다가온다. 요즘은 둥근 다라이만이 아니라 네모 모양의 다라이도 제법 많다. 주로 활어를 담는 다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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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어 골목이 끝나고 왼쪽으로 꺾이는 곳부터는 소라, 전복, 멍게, 대합 등 어패류 들이다.

"이름이나 표시 같은 것 안 해도 지 꺼는 잘 안다. 이리 오만 데 섞여있어도 누구 껀지 한눈에 안다안쿠나. 한 밤중에 지 서방 찾듯이 금방 아는기라."

골목 어귀보다 한산한 곳이지만 노닥거리는 아지매들 입담은 세다! 

"이기 요새는 비닐봉다리처럼 흔해빠졌지만 처음 나올 때는 어찌나 잘 훔쳐가던지…."

"그때사 비닐봉다리 한 장도 귀허게 썼제. 썼던 거 씻었다가 다시 쓰고…."

"서로 지 끼라고 머리 뜯고 싸운 적도 있다아이가. 아무리 봐도 내 낀데 지 끼라고 우기는데 환장하제."

빨간 대야 하나를 두고도 금세 이야기꽃이다. 플라스틱 대야가 나오기 전에는 고무 대야가 먼저 사용됐다. 196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한 고무 대야는 1970년대 후반부터 대중화되었지만 아직은 한 개라도 귀하게 쓰이던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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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자(72) 아지매는 산양면에 살고 있다. 이곳 시장에서 30년 넘게 장사를 했다. 30대 초반부터 시작한 생선 행상이었다. 갓난아이를 둘러업고 대야를 이고 골목골목을 다녔다. 

"그날은 장사가 젤루 안 좋았제. 팔리는 거는 없고 다라이에 아침에 떼갔던 물건들이 그대로인기라. 인자 우짜노 싶어 도남동 길을 내려오는데 다리에 힘이 없어. 근데 무단이 다리를 잘못 짚은 기라. 뒤에 업은 머시마가 다치모는 안되니께 아이부터 잡았제. 그러니께 머리에 있던 기 고마 앞으로 패대기를 쳤제. 머시마는 악을 써대며 울제 내도 서럽더라고. 멍해 있다가 흙을 탈탈 털어 가꼬 다라이에 명태랑 생선을 담는데 이노무 머시마가 울음을 그치질 않어, 내도 우찌나 눈물이 나던지…."

도자 아지매는 다 옛날 일이라고 말했다. "그 머시마가 인제는 학교 선생 헌다 아이가. 고등학교 말이다"며 자랑했다. 

통영중앙시장은 서호시장보다 지역에서 오래된 시장이다. 서호시장이 해방 전후 들어선 시장이라면 통영중앙시장은 바다와 함께 살아온 통영 사람들의 더 오랜 삶과 역사가 담긴 시장이다. 

통영중앙시장에서는 재미있는 행사를 한다. 2012년부터 '빨간다라이 그림대회'를 열고 있다. 이 대회는 빨간 다라이가 캔버스다. 지역 학생들이 많이 참여하는데 학생들이 그린 빨간 다라이에는 바다와 시장을 터전으로 살고 있는 상인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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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다라이 하모는 시장 사람들 아입니꺼?"

이 물음에 누구나 고개를 끄덕인다. 시장통 빨간 다라이에 대한 기억 하나 쯤은 저마다 가져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빨간 다라이는 어머니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시장 어귀에서부터 상인들이 앉은 자리를 따라 골목 끝까지 줄지은 빨간 다라이는 상인들의 붉은 심장이고 상인들의 얼굴이다. 그리고 다시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그리운 어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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