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산타클로스와 한글

산타클로스 존재에 대한 논란에서 벗어나고자 일찌감치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포터>에 맞먹는 세계관을 딸에게 심어줬어.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아.

- 먼 옛날 지구에는 어린이가 적었는데 지금은 몇십 억이 되는 어린이에게 산타가 하룻밤 만에 선물을 나눠줄 수는 없다. 그래서 전 세계 곳곳에 산타 지부를 둬 일을 돕는 사람을 심어뒀다. 그들이 누군지는 엄마와 아빠도 모른다. 어쨌든 세계 곳곳에 있는 산타를 돕는 사람들 덕에 오늘날에도 착한 어린이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선물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그렇게 6~7세를 넘겼는데, 얼마 전 딸이 지난해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들고 성큼 다가오더니 묻더군.

"아빠, 그런데 산타 할아버지가 어떻게 한글로 카드를 써?"

갑작스러운 '선빵'에 적잖이 당황했잖아. 지난해 카드를 아직도 갖고 있다니. 웬만한 아빠라면 자신도 믿지 않는 산타 존재를 증명하고자 어설픈 연기를 동원했겠지만 침착하게 대응했어.

"옛날에 산타를 돕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고 했잖아. 산타는 영어를 쓰는데 혹시 예지가 영어를 잘 모를까 봐 돕는 분들이 한글로 해석해 준 것은 아닐까?"

딸은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어. 위험한 순간이었지. 당시 카드 필체를 평소 내가 쓰는 필체와 완전 다르게 써두기를 잘했어. 그나저나 올해부터는 크리스마스카드 메시지를 영어로 써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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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00점 받고 싶은 사람

웬만한 시험은 100점을 받아 오는 딸이 산수는 잘 안 되나 봐. 3개를 틀려서 85점을 받았더군. 그 정도면 괜찮잖아. 딸이 태어날 때부터 시험 성적 따위는 신경 쓰지 않겠다고 다짐한 나는 아무 문제 될 게 없었어. 물론 아내도 마음이 쓰일지언정 그 정도는 티 내지 않는 현명한 사람이지. 그런데 막상 딸은 괜찮지 않았나 봐.

느닷없이 엄마에게 시험지를 내밀며 "엄마, 세상에서 가장 100점을 받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라고 오히려 물었다네. 이른바 '선빵'인 셈인데….

그러고 보니 정말 세상에서 가장 100점을 받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다시 생각하게 되는 거야. 당사자 아니겠어? 지금은 물론이거니와 앞으로 더 크더라도 100점을 받지 못해 섭섭한 사람은 엄마, 아빠가 아니라 예지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정말 성적으로 뭐라 할 이유가 없겠더군.

그나저나 딸이 내민 예상하지 못한 '선빵'에서 그동안 아내에게 차마 하지 못했던 말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었어.

"여보, 세상에서 가장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사람이 누군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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