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별명이 '돈키호테'인 까닭은?

'적수공권'.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으면서도 창원에서 시작한 '부부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만들었으며 UN을 통해 '세계 부부의 날' 기념일로 만들고자 애쓰고 있는 권재도(52) 목사와 최근 우연히 연락이 됐고, 그가 창원에 와서 부부의 날 기념관을 설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돈키호테'적 기질 때문에 약간 망설여지긴 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이기열전'이라는 꼭지에 잘 맞는다 싶어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결과물을 독자 앞에 내 놓으려니 여전히 조심스럽다. 상식(common sense) 차원에서 봤을 때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발언이 꽤 많이 나왔기 때문이다.

-먼저 축하합니다. 언제, 어떻게 창원으로 왔습니까?

"지난 9월 1일 창원시에 전입했습니다. 제가 원래 제가 부부의 날을 UN기념일로 삼고자 해외로 나갈 생각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올해 부부의 날 행사 하고 6월쯤 돼서 편도선염이 심해져 귀로 전이가 됐고 중이염이 왔습니다. 중이염이 오면서 전정기관에 이상이 오고 그러면서 평형이 안되고, 또 통증이 심해지니 4가지 정도 합병증이 오는데 감당할 수가 없었어요. 지병이긴 하지만 이렇게 심한 적은 없었습니다. 어떻게 방법이 없었지요. 그래서 제가 느낀게 '만약 내가 해외로 간대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심각하겠다. 그래서 내일 죽더라도 일단은 고향에 가서 기념관을 지어야겠다. 유엔에서 실사단이 와서 실사할 때 보여줄 게 있어야겠다'는 거였어요. 내 꿈은 정부나 지자체 지원으로 기념관을 짓는 것이었지만 경남도나 창원시가 움직이지 않으니 사비를 들여서 기념관을 마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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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도 목사./김구연 기자

-부부의 날을 주창해서 국가기념일로 만들었는데요, 그에 얽힌 얘기를 좀 해주시죠.

"1995년 어린이날이었습니다. TV 취재기자가 옆에있던 어린이에게 어린이날 소원이 뭐냐고 물었는데 그 아이가 '우리 엄마 아빠 함께 사는 거예요'라고 답하더군요. 마치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듯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제 사흘 후면 어버이날, 스승의 날, 그리고 또 얼마 후면 성년의 날 등 여러 날들이 있지만 정작 가정의 중심인 부부관계를 강화하고 증진시킬 날은 없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그해 5월 21일에 부부의 날 기념행사를 했습니다. 21일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날이 일요일이었습니다. 교인이 많이 모이는 일요일 예배 때 순서에 부부 관련 프로그램을 넣어서 진행했지요. 주일 명칭도 '부부주일'로 하고 설교 내용도 부부관계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설교 이후엔 부부간에 서로 손을 맞잡고 포옹하면서 부부사랑과 고백의 시간을 갖도록 인도했습니다. 남편은 아내에게 사랑과 정열의 표시로 빨간 장미를,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과 존중의 표시로 분홍장미를, 그리고 미혼 남녀는 개화 안된 장미를 선물하게 했습니다. 이후 꾸준히 부부의 날 기념행사를 하면서 국가기념일로 제정하고자 애썼는데 2003년 12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07년 5월 대통령령이 제정되면서 국가기념일이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강한 추진력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디서 그런 추진력이 나오는 거죠?

"대학 때 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그때 '추진력이 강하다'는 얘기를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추진력'이라는 단어 자체를 몰랐을 정도니까요. 내게는 별명이 여럿 있는데요 가장 많이 들은 게 '돈키호테'입니다. 하지만 나는 이게 싫었어요. 그래서 스스로 '장미목사'라고 별명을 붙였습니다. <장미를 든 목사>라는 책을 쓰고서였습니다. 또 '열·아·비·추'라고도 해봤습니다. '열정·아이디어·비전·추진력의 목사'라는 뜻입니다. <우리 부부 이렇게 산다우>라는 책을 낼 때는 아예 표지에 '열·아·비·추'라고 써넣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돈키호테'라는 별명은 도무지 떨어져나갈 생각을 안 하더군요. 아닌 게 아니라 그동안 '돈키호테' 정신으로, '열·아·비·추' 마인드로 부부의 날 국가기념일 제정에 정열을 쏟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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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도 목사./김구연 기자

-모태신앙인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만….

"대학 3학년 때였어요. 허리 디스크로 3분을 앉아있질 못할 만큼 고통스러웠습니다. 이대로는 결혼도 못하겠다 싶어서 여러 종교에 의지했습니다. 처음에는 불력을 빌어 치료하고자 구인사에 가서 3일 기도를 했습니다. '부처님 제 몸을 낫게 해 주세요. 그러면 내가 믿고 열심히 종교적인 일을 하겠습니다'고 간절히 기도했지만 효험을 못 봤습니다. 천주교에도 가봤지만 역시 효과 없었지요. 사천에 있는 다솔사 큰스님은 이미 돌아가셔서 못 뵈었고, 절 입구에서 진주에 있는 지인이 개신교 쪽 기도원을 소개해줘서 그리로 갔습니다. 기도의 대상만 부처님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었을 뿐 내용은 다 똑같았습니다. '하나님 제 몸을 낫게 해주세요. 그러면 내가 믿고 열심히 종교적인 일을 하겠습니다'고 기도하는데 그때 딱 싸인이 들어오는 게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는 거였습니다. 그때까지 나는 조건부 기도를 했던 겁니다. 이게 뭡니까. 낫게 해주면 믿겠지만 아니면 믿지 않겠다는 거고 곧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었지요. 그래서 '내 몸을 낫게 해 주시든지 아니든지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겠습니다'고 고백을 하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그렇게 절대자를 만나게 됐습니다."

-여러 종교를 거쳤다니 드리는 말씀인데, 종교 간의 '통섭'에 나설 의향은 없습니까?

"부부의 날을 매개로 종교간 통섭도 가능하다고 봅니다. 불교 합장의 의미를 나중에 들었는데 두개가 하나 된다는 그런 의미라고 하더군요. 개인적으로는 원불교에서 저를 초청해서 장시간 인터뷰를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행사 때도 승려나 수녀 신부님을 초청하기도 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불교 쪽에서 저를 초청한다면 기꺼이 제가 가서 강의할 용의는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종교와 통섭에서도 서로가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절대 진리라는 부분은 있는 것이니 그것을 건드리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가치는 상대가치 절대가치로 나눌 수 있는데, 캘빈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비본질적인 것에는 자유를 본질적인 것에는 일치를 모든 것에는 사랑을'이라고요. 모든 것에 사랑을 펼치는 부분에 관해서는 타종교와 통섭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리고 현대 한국은 다종교 시대인데 우리 개신교가 그 중에서 상당히 폐쇄적이라는 그런 비판을 받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독교가 지나치게 폐쇄적'이라고 비판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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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도 목사./김구연 기자

-다종교 시대라고 말씀 하셨는데 최근 이슬람권에서 온 결혼 이주여성이나 외국인 노동자 등을 통해 이슬람 문화가 급속히 유입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견해는?

"절대가치에 대해선 우리 개신교보다 훨씬 강한 쪽이 이슬람권이거든요. 사실은 우리가 이 문제를 깊이 고민해야할 이유가 있는 것이 지금 이슬람 문화에 대해 언론이 아주 다양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한국 언론이 이슬람 문화에 대해서 갑자기 개방되고 있는데 이는 국민들의 일반 인식과는 갭이 크다고 봅니다. 예컨대 한국 국민 중에서 3분의 1이 개신교라고 하는데 개신교 중에서 거의 절대다수는 이슬람 문화가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반대할 것입니다. 개신교가 제사 문제로 한국 내에서 갈등이 큰데요, 만약 이슬람 문화가 대중화된다면 훨씬 더 큰 사회문제를 야기할 것입니다."

-그렇겠지요.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문화가 유입된다면 다양한 층위에서 문화 충돌이 일어나겠지요. 하지만 개신교 쪽에서 이슬람 문화를 굉장히 호전적인 것으로 알리고 있는데, 사실 구약에서 신약까지 어떻게 보면 전쟁의 역사라고 할 수도 있을 만큼 기독교도 호전적이지 않나요? 중세 십자군 전쟁뿐만 아니라…. 또 국내 선교 120년 역사 속에서 개신교 진영이 보여 온 모습에 대한 국민적 반발이 오히려 이슬람에 우호적으로 나타나는 측면은 없을까요?

"부인할 수는 없죠. 예를 들어 가까이 있는 못된 친척보다는 멀리 떨어져 있어 당장 내게 손해를 주지 않지만 내게 손짓을 한다면 그 사람이 좋을 수도 있어요. 나당연합군도 그렇게 해서 백제를 그리한 것 아닙니까. 추수감사절 유래도 그래요. 메이플라워를 타고 온 일단의 청교도들이 미국에 도착해가지고 추수를 하고는 원주민을 초청해 추수감사절을 했단 말입니다. 그리고 상호 불가침 조약 비슷한 것을 했지요. 그러고 난 뒤 어떻게 했느냐. 청교도들이 몇 년 뒤 인디안 땅을 다 점령해버렸어요. 선교사를 보내고 군함이 뒤따라 들어가는 것도 현대 초입에서는 일상적이었죠. 어찌 보면 인생도 전쟁입니다. 개신교에서 '영적인 전쟁'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개신교회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무차별 영입에 대해 상당히 민감해하고 아주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사실인데, 왜냐면 십자군 전쟁에서 기독교의 무차별 침략전쟁이었지만 결국은 이슬람 문화를 이기지 못하고 상당히 밀렸거든요.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 중 하나가 자기들은 총을 들고 쏴버리기 때문에, 개신교에서는 사랑 포용 이런 메시지를 들고 가지 옛날 십자군 전쟁처럼 실제로 총칼 들고 가는 것은 아니잖습니까. 제가 봤을 때 갈수록 밀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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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도 목사./김구연 기자

-종교인 처지가 아니라 보통 사람 생각으로는 획일화된 문화보다는 그래도 다양한 문화가 섞여 상호 교류하는 것이 훨씬 건강한 사회일 수 있다는 생각도 하지 않을까요?

"제가 '자식을 바다에 내보낼 때에는 한번 기도하고 전쟁터에 내보낼 때에는 두 번 기도하고 결혼 시킬 때에는 세 번 기도하라'고 말했지만 '다문화 가족으로 결혼하는 것은 네 번 기도해라' 그렇게 얘기합니다. 사실 일반 한국 일반 국민의 이혼율보다 다문화 가정이 더 높습니다. 유럽 각국에서는 50년 다문화 정책 실패 선언을 다 했거든요. 우리 한국에서도 다문화 정책 실패했다는 선언을 언제할지 그 시기만 보고 있지 않을까요. 사실 국력을 나타내는 척도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군사력도 중요합니다. 국가가 어떻게 유지되느냐는 거죠. 군대 내 성 군기사태 이런 것이 생기는 이유는 입대예정자 중 제대로 정신 박힌 사람을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솎아내야 하는데 그러지 않다 보니 그런 문제 생긴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근본 처방보다는 군대 백서를 바꿔 민족에 대한 교육을 안 합니다. 우리가 어릴 때는 '단일민족'이라는 자부심을 배웠지만, 지금은 교과서에도 군대에도 사회 어디에도 '단일민족'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그 말을 금기시까지 하죠. 민족문화에 자긍심이 없는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군대에 입대한다고 생각해 보세요. 전쟁 때 써먹으려고 군인을 키우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전쟁 때 그 다문화 가정 사람들이 진정으로 한국을 위해서 자기가 피 흘려 죽을 준비가 돼 있는가 말입니다. 민족관이 없는데……. 이걸 생각한다면 다문화 축제 맘프 이런 거 마냥 좋아할 것은 아니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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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재도 목사./김구연 기자

-다문화 사회로 갈 수밖에 없는 현실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한국이 처한 여러 현실이 그런 다문화 사람들을 안 받아들일 수 없는 그런 상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인정을 해야겠죠. 하지만 인정과 존중의 차이를 봅니다. 많은 사람이 얘기하기를 그런 사람을 존중하자고 그러거든요. 존중이란 단어는 존귀히 여긴다는 존하고 중시한다는 중이란 말입니다. 우리가 인정하는 것은 가능한데 이슬람을 존중하자? 문화를 존중하자는 것은 제가 봤을 때는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우리는 차별말자가 아니라 다 존중하자는 입장인데 경시하지는 말고 인정해야지 존중하자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어디서 이런 문제가 시작된 걸까요?

"결혼에 ABCD 이론이란 게 있는데 A급 남자가 한 단계 낮은 B급 여자를 택하죠. 그러면 B급 남자는 C급 여자를 택하고, C급 남자는 D급 여자를 택하게 되죠. 그럼 D급 남자는 누구를 택하느냐. 여기서부터 제 이론인데, D급 남자는 한국에서는 결혼할 여자가 없으니 외국, 특히 동남아나 중국 조선족 등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여자들과 국제결혼을 하게 됩니다. 그럼 남은 A급 여자는 뭐냐. A급 여자는 한국에 있는 A급 남자하고 결혼해야 하는데 이 사람은 한국에 자기하고 맞는 남자가 없다보니까 우리 한국에 성비례 불규칙 현상은 가속화 돼서…. 제 말은 A급 남자하고 A급 여자가 많이 결혼해줘야 유전자가 좋은 대한민국 국민이 태어나고 국가발전에 보탬이 될 건데, A급 남자가 A급 여자하고 결혼을 안 하니까 대한민국에 천재가 많이 안 나오는 거죠. 우리 한국의 교육열하고 동남아지역 교육열하고는 천지차이지 않습니까. 우려되는 게 지금 계속해서 정부의 예산 같은 것들이 건강가정지원센터 다문화가정 지원센터 그런 데로 가거든요. 이것이 과연 이 아이들을 키워서 어떻게 될 것인가. 농촌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 교육이나 여러 여건이 여의치 않다 보니. 지금은 아직은 어려 초등학생 유치원 그런 정도인데 조금만 더 커서 10년이나 5년 후 청소년기를 넘어서게 되면 그때는 한국 학생들하고 비교하면 레벨이 떨어지니까 우선 한국어가 잘 안되잖아요. 그러니 이 아이들이 범죄를 저지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정말 얼마 안 남았어요. 마냥 좋아할 만한 것은 아닌데 어떻게 우리가 그런 것을 생각할 때 걱정이 돼서…. 이런 얘기를 하면 저를 보고 오히려 수구적이다 닫힌 민족주의라고 얘기할 것 같아요."

-제가 보기엔 나치 냄새가 나는데요?

"이걸 사실은 일본이 정책을 굉장히 잘 펼쳤어요. 그걸 한국이 일본의 폐쇄적인 민족주의 그렇게 화를 내고 정말 일본을 싫어하고 했지만, 그러나 싫어하면서 따라가야 할 정책도 있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일본은 우리 한국인을 차별하는 정책으로 자기네들의 정체성을 지켜나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한국은 지금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거든요. 우리가 어떤 면에서는 일본의 그런 모습을, 국익을 위해서 그것이 괜찮다 싶으면 선별적 영입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처럼 무제한적으로 들어오는 것에 대해서 적어도 일본인들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 철저히 제한적으로 했던 점을 참조할 필요가 있는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전혀 없어요."

-지나치게 정치적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저는 캘빈의 국가론을 전공했습니다. 캘빈의 기독교 강요는 보수 장로회 핵심 교리인데 그중에서 국가에 대한 논의가 국가론입니다. 캘빈의 국가론은 곧 정부론입니다. 국가론 중에서도 국가와 교회에 대해서 전공했고 국가와 교회에다가 부부의 날 운동을 하면서 국가와 교회 가정 세 개를 삼위일체식으로 연결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예컨대 교회에서 국가에 세금을 내야하느냐는 문제가 있는데요. 그 문제는 국가하고 교회하고 레벨을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하고도 맞닿아 있습니다. 개인적인 신념이기도 한데 교회는 국가하고 대등한 관계입니다. 교회가 국가에다가 세금을 내는 것은 동급기관에 내는 것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고 정리됩니다. 왜 국가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느냐. 이유가 있어요. 국가도 큰 가정입니다. 지자체도 큰 가정이고 회사도 큰 가정입니다. 다른 얘깁니다만 민족도 가정이에요. 우리나라 사람이 어느 일정시점이 되면서 민족이란 단어를 아주 거부하기 시작했어요. 저는 그것은 잘못이라고 생각합니다. 민족을 거부하면 가족을 거부해야됩니다. 가족 씨족 부족 종족 그담에 민족이거든요. 우리 여성가족부 있지 않습니까. 제가 이를 연결해가지고 언론에 공론화시키지 않아서 그렇지, 민족을 거부하려면 가족을 거부해라고 이 문제를 공론화 시키면 이를 거부할 논리적 명분을 찾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정치 성향이 강하다는 데 대해 답하지 않으셨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통치라는 것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통치라는 것이 정치용어이거든요. 그 기준으로 봤을 때 저를 두고 정치적이라는 것이 저는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인생이 곧 정치다. 인생이 곧 전쟁이고 인생이 곧 정치고 인생이 곧 문학이고 인생이 곧 연극이고…. 만약 경제적인 관점에서 저를 봤을 때는 저는 CEO라고 할 수 있죠. 또 문학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제가 사실은 졸저이긴 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이라고 볼 수도 있죠. 다른 관점에서 봤을 때 는 저를 시민단체 관계자라고 볼 수도 있고. 집에서는 가장이고 여기 교회에서는 목사고 또 여기서는 관장이고 그런 각도로 봤을 때 그분들에게 말씀하십시오. 진짜 그양반 정치적이더라. 제가 사실 듣고 싶은 것은 저는 문학도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일부 대형교회 목사 같은 분들은 설교를 한다든지 할 때 현실 정치에 매우 구체적으로 관여하고 있지 않습니까? 아주 편향적인 노골적으로 그런 활동 하는데 대한 생각을 말씀해 주십시오.

"극 보수가 많죠. 고 김중곤 목사님이 기독교인들이 정치에 많이 참여해야한다는 말씀 했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국회의원 출마도 얘기하고 하셨어요. 저는 조용기 목사님의 그런 정치적인 발언에서 내용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부분도 있고 동의 안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만, 그러나 정치적인 발언을 강대상에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할 수 있는데 다만 상대정당이나 사람들을 가려서 하는 것은 필요하다는 거죠. 정치적인 비판활동을 강대상 외 다른 자리에서 나와서 하게 되면 그건 정치관계자들이 할 일이지 목회자들이 할 일은 아니지 않으냐 싶습니다. 그러면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 생겼다면 나는 강대상에서만 하고 바깥에서는 안할 수 있느냐. 솔직히 나는 장담 못하겠어요. 안 겪어봤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은?

"해서는 안 될 얘기도 많이 했는데, 언젠가 이게 문제가 된다면 저는 이게 모두 국익차원에서 한 얘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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