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속 경남-마산 씨름]외환위기·지나친 지역주의에 팬들 등 돌려

씨름 전성기였던 1980~90년대 스타들은 저마다 별명이 있다.

이만기는 '모래판의 황제', 이승삼은 '뒤집기의 달인', 이봉걸은 '인간 기중기', 이준희는 '모래판의 신사', 손상주는 '오뚝이', 모제욱은 '잡초', 백승일은 '소년장사'로 불렸다.

개개인 특징을 좋은 쪽으로 담고 있다. 그런데 예외인 선수가 있다. 바로 장지영이다. 그에게 따라붙는 말은 '샅바 싸움'이다.

장지영은 1984년 제3대 천하장사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박수 대신 비난을 받아야만 했다. 1984년 3월 9일 자 동아일보 기사 한 단락을 보자.

'모래밭의 신사라 불리는 이준희와의 준결승에서도 한사코 샅바를 내 주지 않으려고 왼쪽 어깨를 빼는 등 천하장사로서 걸맞지 않은 추태를 보였다.'

당시 팬들 비난은 상상 이상이었다. 그런데 TV 편파 해설이 이를 부추긴 측면도 있다고 한다. 당시 준결승 상대인 이준희는 경북 의성에서 씨름을 했는데, 해설위원이 같은 경북 사람이었다고 한다. 이에 좀 과하게 장지영을 몰아세웠다는 것이다.

장지영은 이후 별다른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쓸쓸히 모래판을 떠났다. 은퇴 이후에도 '샅바 싸움'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고 한다. 한 씨름인은 "사업을 했지만 그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장지영은 훗날 해설위원으로 데뷔하면서 "내 특기가 들배지기였는데 상대도 이를 알고 철저히 대비했던 것 같았다. 이기기 위해서는 샅바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고 그 정도는 있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 TV 해설을 꼭 해 보고 싶었다. 1984년 당시 편파적인 해설에 거의 매장되다시피했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장지영이 샅바 싸움을 과하게 하긴 했지만, '팔이 안으로 굽는' 편파 해설이 지울 수 없는 멍에에 한몫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때 잘나가던 씨름계가 휘청한 데에는 IMF외환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지역·계파별로 나뉜 내분도 큰 악영향이었다. 현재도 '특정 지역 사람들이 씨름계를 좌지우지하려 한다'는 말이 들린다. 내 고장 씨름에 대한 '자부심'은 좋지만, 그것이 '지연이라는 독'에 빠져서는 안 될 노릇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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