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섭의 술상'은 마산통술·통영다찌·진주(사천·고성)실비가 대표적이지만, 이것만은 아니다. 타 지역으로 넓혀 보면 전주막걸리·군산실비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것들은 저마다 어떠한 특징이 있는지 '통섭의 술상' 순례길에 올랐다.

◇군산 '진정한 서민 술상'

먼저 '군산실비'다. 군산 신영동 쪽에 실비집 몇 개가 몰려 있지만 활기는 그리 없다. 4~5년 전 새만금 방조제 개발로 항구가 축소되면서 그 일꾼들이 줄었기 때문이라 한다.

현지인이 자신 있게 추천해준 가게 문을 열었다. 오후 3시밖에 안 돼 장사를 할까 싶었지만, 이미 한 테이블 차지하고 있는 손님이 있다. 술 아닌 배 채우기 위해 찾은 부부였다.

벽면 메뉴판에는 맥주 기본 3병 1만 원, 소주 기본 2병 1만 원, 생막걸리 기본 3병 1만 2000원이라 되어 있다. 술값만 매기는 방식이다. '이 가격에 안주가 나와봐야 얼마나 나오겠나' 싶었다. 하지만 호래기·생굴에서 시작해 새우·가오리무침·조개탕·선짓국·번데기·감·밤·완두콩·고구마·옥수수·양배추 등 14~15가지 안주가 상을 가득 메웠다.

전북 군산의 실비집 술상.

잠시 후 중년 여자 4명, 남자 1명이 우르르 들어왔다. 남자는 음식이 깔리기도 전 '오늘 내가 계산한다'며 만 원짜리 한 장을 호기롭게 꺼냈다. 군산실비는 적은 돈으로 큰 인심을 베풀 수 있는, 진정한 '서민의 술상'이었다.

◇전주 '정형화된 술상'

전주는 인근 김제평야 등 곡창지대를 끼고 있어, 오래전부터 음식 인심이 후하고 술 문화가 발달했다고 한다. '전주막걸리 문화'는 2007년께 전주시에서 관광상품화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전주막걸리 밀집 골목은 7~8군데 된다. 이 가운데 원조라 할 수 있는 삼천동 골목에는 15~16개가 몰려 있다.

여기 가격은 막걸리 1주전자(혹은 소주 2병 혹은 맥주 2병) 2만 원, 추가 막걸리 1주전자(혹은 소주 2병 혹은 맥주 2병) 1만 5000원이다.

고등어조림·꽁치구이·두부김치·파전·새우·굴·밤·귤·데친 오징어·호박·김치찌개·번데기·잡채·양념게장·편육·나물무침 등 20여 가지가 나온다. 술을 추가하면 과메기·계란찜 같은 것도 맛볼 수 있다. 또한 간장게장 정식이 별도 메뉴로 있다. 이 때문에 식사하기 위한 가족을 비롯해 대학생·노인·직장인·아주머니·부부 등 다양한 계층이 조화를 이루는 분위기다.

전북 전주의 막걸리상.

전주막걸리 골목은 관광상품화되면서 간판·메뉴판이 모두 통일돼 있다. 그러하듯, 안주는 푸짐하기는 하지만 '정형화된 술상' 느낌도 강하다.

◇진주 '실속' 통영 '관광객' 마산 '대접'

'진주실비'는 과거 평거동·중앙동·도동 쪽에 몰려있다가 논밭이던 신안동 주택가 쪽으로 들어왔다. 여기 셈하는 방식은 안줏값 없이 맥주 1병 5000~6000원, 소주 1병 1만 원이다. 과메기·낙지·석화·호래기 등 바다에서 나는 것도 깔리지만, 마산통술·통영다찌에 비하면 육고기 비중이 높은 편이다. 주인장은 주로 진주중앙시장에서 장을 보는데, 예약 손님이 많을 때는 50만 원어치 장을 봐야 넉넉히 내놓을 수 있다고 한다. 진주실비는 안주를 먹는 만큼 다음 메뉴가 추가로 나온다. 말 그대로 주인·손님 모두에게 '실속의 술상'이다.

실속 가득한 진주 실비.

'통영다찌'는 가격·차림이 비교적 많이 변화했다고 할 수 있다. 애초 술값만 셈하다, 좀 지나서는 한 상 가격으로 바뀌었다. 그러다 지금은 1인당 3만 원(소주 3병 혹은 맥주 5병 포함)을 받는 식이다.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가 들어선 이후 외지인 발길이 더욱 늘었다. 그러다 보니 오늘날 다찌집을 찾는 이도 관광객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술보다는 안주 먹는 데 더 집중한다고 한다. 술이 많이 나가야 수지타산이 맞는 주인장 처지에서는 애가 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좀 비싸다 싶은 가격에 1인당 셈하는 방식으로 바꿨다고 한다. 관광객들은 까탈도 많이 부린다. 이런 상차림이라는 게 그날 재료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그런데 몇 달 전 올라온 인터넷 블로그를 보고서는 그것과 다르다며 투덜거린다 한다. 그래서 통영다찌집은 되도록 그들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 보기 좋은 안주를 내놓거나, 현지인보다 외지인 손님한테 하나라도 더 챙겨주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관광객을 위한 술상'으로 많이 이동한 것이다.

통영다찌.

'마산통술'은 가히 해산물 성찬이라 할 만하다. 4인 기준 기본 5만 원에 맥주 4000원, 소주 5000원을 받는 식이다. 통영다찌 못지않게 가격 부담이 있다. 통술집에서 만난 70대 할아버지는 "내 또래는 호주머니 사정이 안 돼 큰 마음 먹어야 한 번 올 수 있지"라고 말한다. 요즘은 타지에서 지인이 찾아왔을 때 자신 있게 데려갈 수 있는 '대접의 술상'으로 많이 이용하는 분위기다.

마산통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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