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술·다찌·실비의 여주인장 살림 꾸려나가기 위한 선택

통술·다찌·실비집은 저마다 특징이 있지만, 명확한 공통분모가 있다. 소규모인 곳은 여주인장 혼자, 좀 규모 되는 곳은 홀 담당 '이모'가 별도로 있다. 혼자든 둘이든, 사장이든 일하는 이든, 모두 여인네들이다. 즉 통술·다찌·실비는 남자 아닌 여인네 손길이 담겨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 배경에 대해 살펴보자.

쉽게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생계'다. 맛칼럼니스트 황교익(52) 씨 말을 들어보자.

"일제강점기 직후까지는 남자 요리사 문화였습니다. 그러다 한국전쟁 이후 조금씩 여자가 하는 식당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향토 음식문화 역사를 뒤져보면 거의 다 생계를 위한 것입니다. 남편이 돈벌이를 못해 여자 혼자 살림을 꾸려나가기 위한 것들 말이죠."

이는 꼭 통술·다찌·실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것만으로는 명확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 요정문화와의 교차점이다.

마산 통술은 특히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1970년대 마산은 어시장·한일합섬·수출자유지역이 한창 번성하면서 돈이 돌았다. 고급 요정문화도 자연스레 뒤따랐다. 오늘날 마산 코아양과 뒤편은 요정골목이었다. 지역 유지, 돈 많은 선주, 기업인들이 주로 이곳을 찾았다. 여기서는 이런 말들이 전설처럼 나돌았다.

'아무개가 돈 깔고 앉아, 그러니까 말 그대로 돈방석에서 술을 먹더라.'

'어느 아무개는 선풍기 앞에 돈다발을 대고서 온 방에 지폐가 흩날리게 했다. 술 한잔 먹은 돈 주인이 그냥 가버리면, 남자 종업원이 빗자루로 쓸어 담기 바빴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요정도 쇠퇴기를 맞으며 하나둘 사라졌다. 그것을 좀 다른 형태로 대체한 것이 통술이었다.

이승기 마산문화원 영화자료관장은 옛 기억을 떠올렸다.

"1980년대부터 통술집에 본격적으로 드나들었던 것 같아요. 통술집마다 단골손님 특징이 있어요. 어느 집은 체육인들이, 다른 집은 각 단체 회장님이나 언론인들. 그리고 또 어느 집은 나이 많은 어르신들이 몰리는 식이었죠."

그러면서 이야기를 여주인으로 옮겨갔다.

"통술집을 남자가 하면 다 망하지. 그때는 여사장들을 마담이라 했는데, 음식도 음식이지만 마담 얼굴 보러 많이들 갔어요. 혼자서 운영하며 음식만 정성스레 하는 당찬 여주인도 있지만, 술도 한 잔씩 따라주는 마담이 별도로 있는 곳도 있었고…. 지금도 남아있는 한 통술집은 당시 여주인이 아주 미인이었지. 그 여사장 얼굴 본다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혼자 찾는 손님이 있을 정도였어요. 나도 '당신이 여주인공인 영화 한편 만들자'고 농도 던지고 그랬어요. 가게 관두면서 못 봤죠. 한참 세월 지나서 산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그 이야길 잊지 않고 하더라고. 허허허."

진주 실비도 이와 비슷한 분위기를 안고 있다. 실비집이 모여 있는 신안동에서 만난 김 모(46) 씨는 이런 기억을 전했다.

"한 20년 전에는 테이블마다 여자들이 있었어요. 술도 한잔 따라주고 말동무도 해주고 그랬죠. 그래서 일 마치고 혼자 가서 먹기에 좋았죠. 이제 그런 건 없어졌지만, 가게 테이블마다 칸막이 된 곳이 더러 있잖아요. 옛날 그런 구조가 남아 있는 거죠."

술 내놓는 장사가 수월할 리 없다. 특히 여인네들은 더더욱 감당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다.

통영에서 다찌집을 하는 여주인은 "뭐 그리 좋은 거라고"라면서 이름 밝히기를 꺼렸다. 그래도 그리 힘들게 하는 손님은 많이 없는 듯하다.

"배 채우러 온 사람들이 많기에 여기서 주사 부리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그리고 여기는 무조건 1차잖아요. 술 한잔 먹고 여기로 2차 오는 사람은 없어요. 술자리라는 게 원래 그렇잖아요. 2차 넘어가면 그때부터 골치 아프거든."

이 여주인은 39살에 다찌집을 시작해 지금 63살이 되었다. 젊을 때 수산물 가공 일을 하다 친구 가게 일을 도와주면서 아예 자기 가게를 차렸다.

"이 일 하면서 골병 다 들었어요. 옛날에는 매상 올리려고 못 먹는 술을 한 잔씩 다 받아먹었어요. 이제 술은 일절 안 하고 주방만 보죠. 같이 일하는 이모 한 명 있어야죠. 혼자서는 힘들어서 못해요. 이제 나이도 있고 몸도 안 좋아서 얼마나 더 할지 몰라요."

통술·다찌·실비집 여사장들은 저마다 "갈수록 장사 재미가 예전만 못하다"고 말한다.

박찬일(49) 요리연구가가 어느 글에서 '이 시대 최후의 주모들'이라고 한 표현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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