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이 아니라 '미래' 품어 맛좋은 얼음골 사과

'밀양'하면 '얼음골 사과'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가 없다. 그만큼 '사과'는 밀양의 대표 상품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얼음골 사과'라고 하면 사과 가운데 박혀 있는 '꿀'을 떠올린다. 이 '꿀'이 없으면 가짜 얼음골 사과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요즘 '얼음골 사과'에는 '꿀'이 없는 것이 많다. 상표를 도용한 사과일까?

'밀양 얼음골 사과 발전협의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유명안농원' 안영규(46) 대표는 "우리 과수원 사과에는 소위 말하는 꿀이 없다. 꿀이 맛을 좌우하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얼음골 사과와 꿀의 비밀 이야기를 안 대표에게 들어 보자.
 
'꿀'은 꿀이 아니다

밀양 얼음골 사과는 밀양 중에서도 산내면 지역에서 생산되는 사과를 말한다.

"이곳은 일교차가 크고 산이 경사가 큽니다. 다른 곳은 일교차가 12~13도지만, 이곳은 기본 15~18도는 일교차가 납니다. 또 최남단이라 꽃 피는 시기가 최소 1주일에서 보름가량 빠르고, 늦게까지 수확할 수 있습니다. 즉 나무에 20~30일 더 달려 있을 수 있어 구미, 식감, 맛을 고루 갖추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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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얼음골 사과는 나무에서 충분히 맛과 영양을 품고 자란다는 설명이다. 

요즘은 재배 기술이 발달·보급돼 과거에 비해 보다 체계적으로 사과를 키우기 때문에 이 증상이 없는 사과가 많다는 것.

"유럽에서는 밀병 증상이 없도록 사과를 키웁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흠과로 분류하기도 하죠. 그 부분에 꿀처럼 단맛이 농축돼 있는 것이 아닌데 소비자들에게 잘못 알려진 겁니다."

특히 밀병 증상이 있는 사과는 장기간 보관이 어렵다고 한다. 눈으로 보기에는 맛있어 보이지만, 맛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얼음골 사과는 다른 브랜드 사과에 비해 고가에 속한다. '꿀'이 아니라면 무엇으로 진짜 얼음골 사과를 고를 수 있을까.

안 대표는 이에 대해 "상자 관리를 확실히 한다"고 말했다.

"밀양얼음골사과 발전협의회에서 상표권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각 농가에 재배면적에 따라 적절한 수량만큼 얼음골 사과 브랜드가 찍힌 상자를 줍니다. 또 지역 외에서 재포장해서 얼음골 사과로 둔갑하는 것을 단속도 합니다."
 
사과나무가 살길

넉넉지 못한 집안 5형제 중 셋째인 안대표는 어려서부터 농사를 짓기로 하고 사천농고 자영농과로 진학했다. 졸업 후 고향으로 와서 잠시 생활하다 군대에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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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밀양은 얼음골 사과가 알려지던 시기. 사과가 아니면 농사로 성공하기 어렵다고 어린 마음에 느꼈다. 그래서 5200㎡(1600평)에 사과나무를 심어 놓고 입대한 안 대표는 제대 후 그 나무를 돌보기 시작했다.

이때는 아직 나무가 어려 수입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남의 일을 해주고 막일을 하며 생활했다.

그러던 중 안 대표를 자극하는 일이 생겼다. 친구가 사과 재배로 성공한 것을 본 것이다. 사과가 앞으로 살아갈 방안이라고 다시 한 번 느끼게 됐다.

"주위 농가의 땅을 빌려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수입이 모이면 바로 투자해서 사과에 매진했습니다. 보통 주위 농가들은 3300㎡(1000평)가량으로 투자해서 1만 6500㎡(5000평) 규모로 사과재배를 하는데, 저는 버는 족족 투자해서 3만 3000㎡(1만 평) 이상으로 늘렸죠."

현재 안 대표는 사과 3만 5000㎡(1만 700평), 맥문동 3300㎡(1000평), 콩 6600㎡(2000평), 대봉 1600㎡(500평) 정도 재배하고 있다. 이중 2만 3000㎡(7000평)가량은 안 대표 소유이고, 나머지는 임차했다.

"아직 어린나무가 많아 규모에 비해 생산량은 적은 편입니다. 현재 45t가량 수확하는데 나무가 제대로 크면 90t까지 예상할 수 있습니다."

조생종에 해당하는 홍로는 8월 말부터 수확해서 출하하며, 재배 면적 대부분을 차지하는 부사는 보통 10월 말부터 11월 중순까지 수확작업을 한다.
 
여러 단체 활동에 매진

안 대표가 학교에서 배운 것은 농장을 스스로 경영하는 방법이었다. 안 대표는 지금도 "기술도 중요하지만 경영이 더 힘들다"고 말한다.

또 배운 기술을 체계적으로 적용시킬 수 있어야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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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대표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교 내 과수 포장 책임을 맡아 관리하면서 나무 키우는 방법을 더 상세히 알게 됐다. 학교에서 배운 여러 기술은 직접 농사를 짓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하지만 '욕심' 앞에 성공은 없었다.

"어린 욕심에 수확을 많이 내려고 나무 간격을 무시하고 무조건 많이 심었습니다. 밀식 장애가 와서 엉망이 됐죠. 결국 다 없애야 했습니다. 다시 재배기술을 배우고 적용하면서 소득도 늘어났습니다."

3년 전 이제 농사를 잘 짓는다고 자만에 빠졌을 때도 위기가 왔다. 병이 와서 한해 농사를 망친 것이다. 각성하고 다시 마음을 다잡아 공부한 덕에 회복될 수 있었다.

1992년 제대한 안 대표는 농사를 지으며 4H 등 여러 봉사 단체에서 활동했다.

"4H는 슬로건이 '좋은 것을 더욱 좋게, 실천으로 배운다'입니다. 농촌 학습 봉사 단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농촌에서 실질적인 정보 교환을 하고, 급한 일이 있으면 품앗이를 하는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 4H 활동을 통해 회의 진행 방법, 단체 운용 방법 등을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안 대표가 지역 사회에 알려지게 된 것은 2009년 무렵.

"농촌진흥청이 탑프루트 시범단지 사업을 하는데 밀양 산내면 13 농가가 모여 얼음골 사과단지를 만든 것이 지정됐습니다. 총무를 맡아 관리를 시작했죠. 여러 단체 활동을 하다 보니 정보가 빠르고 농업기술센터 등과 유대관계도 구축돼 있어 총무 활동에 유리했습니다."

2013년에는 경상남도의 명품 농산물 브랜드 이로로 재배농가로 지정돼 활동 중이다.

이 외에도 농업경영인회 활동 등 지역 여러 단체에서 총무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역 사과 농민들을 위한 교육 프로그램을 준비하는 것도 안 대표의 일. 향토산업육성사업으로 3년간 매년 14차례 기술 교육을 해야 하고, 브랜드 육성사업으로 연간 8차례 교육이 있다. 그 외에도 틈틈이 기술 교육을 시행하며 기술력 향상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남편 몫까지 바쁜 아내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안 대표의 부인 정순선(47) 씨의 고생은 이만저만 아니다. 안 대표가 다른 농가의 멘토로, 단체 총무로 바쁘게 뛰어다니는 동안 농사일은 아내 몫이다.

"아내가 고생이 많습니다. 저는 돈 모으는 것도 모르고 살았는데 아내를 만나서 저축도 하고 돈을 모으며 살게 됐습니다. 집안 대소사를 아내가 도맡아 하기도 했죠. 큰 집 제사까지 지냈으니 거의 종부 역할을 한 셈입니다. 항상 고맙죠."

사과뿐 아니라 여러 작물을 재배하는 것도 아내의 일손을 늘린다. 그러잖아도 여성의 세심한 잔손길이 많이 필요한 것이 농촌일이다. 각 작물의 생육 시기에 맞도록 작업을 하다 보면 1년 365일 쉴 틈이 없다.

그래서 온라인 판매를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주문서 정리부터 낱개 포장, 택배 발송까지 일이 많아 아내가 밤늦게까지 고생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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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로 보이지만, 인터뷰 중간 중간 슬쩍 아내 자랑을 하고, 사진을 찍을 때 아내를 꼭 챙기는 모습에서 살가운 애처가의 면모가 비쳤다.

사천 출신인 아내는 고등학생 때 처음 만났다. 안 대표는 "연애는 잘 못했다"며 얼굴을 붉혔지만, 첫사랑이었을 정순선 씨와 결혼한 것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사과나무 분양으로 차세대 소비층 확보

밀양 얼음골 사과 발전협의회는 사과 축제 등을 통해 얼음골 사과 알리기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은 지역에서 축제를 열며 공연과 시식코너, 사생대회 등을 했는데, 올해는 12월 초 서울 청계천에서 소비자를 찾아가는 축제를 마련할 계획이다. 사과 품평회, 사과 요리 대회, 그동안 치른 사생대회·사진전 작품 전시회 등을 준비하고 있다.

안 대표가 사과 홍보를 위해 또 하나 하고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은 사과나무 분양. 일종의 체험 농장이다.

꽃 필 무렵 예약받아 도시민들과 사과밭 구경을 가서 15만 원에 나무 한 그루를 지정하도록 한다. 모든 관리는 안 대표가 해 주고, 도시민은 언제든 와서 열매 솎기, 잎 따기, 열매에 글자 만들기 등 여러 가지 체험을 할 수 있다. 그리고 수확은 최소 30㎏을 보장한다. 지난해는 60㎏까지 수확했다.

"사과나무를 분양하면 최소 5명이 함께 옵니다. 100그루를 분양하면 500명이 이 지역에 와서 밥을 사먹고, 하다못해 음료수 하나라도 사먹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됩니다. 또 믿을 수 있는 상품이라고 사과나 사과즙을 사가니까 농가 활성화도 되죠. 행사를 연 4회만 해도 2000명이 방문하는 것이고, 수확 때면 2배가량 방문객이 늘어나니까 동네가 시끌벅적합니다. 이때는 동네 할머니들이 호박이나 콩 등 채소를 가지고 길에 나와 파시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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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은 밀양시 농업기술센터와 협의해서 5년 전 시작했다. 첫해 100그루로 출발해 250그루까지 늘렸지만, 올해는 아쉽게도 분양사업을 하지 않는다.

안 대표가 여러 단체에 몸을 담고 일하는 바람에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 여력이 없어서다. 내년에 어느 정도 단체 일을 내려놓고 나면 다시 분양 사업을 할 계획이라고.

"참여객들이 평생 고객이 됩니다. 도시민들은 이런 기회를 통해 믿을 수 있고 맛있는 사과를 살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됐다고 느끼죠. 사과나무를 분양받았던 사람이 그다음 해에도 추석이 되면 주문을 하곤 합니다. 나아가서는 차세대 소비자를 확보하는 일입니다. 어린 시절 사과 밭에 와서 나무에 달린 사과를 바로 따 먹은 경험을 아이들은 평생 잊지 못합니다."

도시민 초청 행사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안 대표는 보통 사과나무에 80개 정도의 열매를 남기고 솎아 낸다. 상품성을 위해서다. 하지만 체험객들은 주렁주렁 달린 것을 좋아해서 120개 정도 남긴다. 그만큼 나무도 밭도 약해지기 때문에 밭을 바꿔가며 행사를 벌이고 있다.

또 축제 때 진행하는 사생대회나 사진촬영 대회도 안 대표 밭에서 치른다. 

"순간적으로 수백 명이 밭에 들어가면 관리에 힘도 들고 피해도 있기 때문에 차마 다른 농민 밭에서 하자는 말을 못 꺼냅니다. 밀양 사과를 홍보하겠다는 사명감으로 하고 있습니다."
 
내실화·6차 산업 확대가 꿈

안 대표는 여러 사과 콘테스트에 끊임없이 출품한다. 자신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으로 평가받기 위해 전국 품평회에 나가는 것이다. 자신의 입지, 나아가서는 지역 사과의 입지를 확인하려는 의도이다.

"상은 안주면서 심사위원들이 지인들에게 선물할 사과는 꼭 저한테 연락합니다. 그런 걸 보면 모양은 안 좋아도 맛은 최고라는 거겠죠. 앞으로는 외형을 예쁘게 키우는 데 신경 쓸 겁니다. 밀양 얼음골 사과인 부사는 수분율이 낮습니다. 씨가 10개 들어차야 온전한 모양이 나오는데 여긴 3~4개 정도입니다. 그만큼 모양이 찌그러지고 예쁘지 않죠. 수분율을 높이기 위해 사과밭에 꽃사과를 심었습니다. 사과가 난 위치에 따라서도 모양이 달라집니다. 솎아낼 때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합니다."

안 대표는 앞으로 사회 활동을 줄이고 농사를 열심히 지어 내실을 다질 예정이다. 상품률을 끌어올리겠다는 계획. 현재 상품률이 65%가량인 것을 80%로 높일 생각이다. 나머지 흠과는 가공하거나 농심에 납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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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에서 만드는 과자 꿀꽈배기에도 얼음골 사과가 들어간다는 이야기. 안 대표에 따르면 조청 대신 사과 농축액을 바른 후에 꿀꽈배기 매출이 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그리고 6차 산업에도 관심이 많다. 가공과 체험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산내면이라는 좁은 지역에서 사과 생산만으로는 발전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특색 있는 사업으로 소비자들이 많이 오도록 하는 것이 최종 목표라고 설명했다.

지역 사과를 알리고 싶어 사과 시루떡을 만들어 홍보 행사장에서 시식용으로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기도 했고, 부산대학교 산학협력단에서 사과 스낵을 만들어 내놓기도 했다.

"이 지역 사과는 수출은 힘듭니다. 전국 최고 가격에 속하기 때문에 수출 단가를 맞추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신 지역 전체적으로 체험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차세대 소비층 확보에 주력할 계획입니다. 향후 체험관도 만들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교통이 좋기 때문에 치즈교실, 연극촌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서 체험장을 운영하면 얼음골 사과 홍보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사과 문의 010-4142-6127.

<추천이유>

◇이문헌 밀양시농업기술센터 과수화훼담당 = 안영규 유명안농원 대표는 3만 3000㎡ 규모로 사과를 재배하면서 높은 소득을 올리고 있는 4H 출신의 젊은 강소농입니다. 고품질 사과 생산기술로 소득을 창출하기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고 지역 실정에 맞는 새로운 기술을 연구 접목하면서 이웃농가에 기술을 파급하는 진정한 농업인입니다. 특히 온라인 판매망 구축과 사과나무 분양사업 등 추진으로 농업의 6차 산업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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