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과 하고 싶은 게 아주 많은 남자

지금까지 열 차례 가까이 진행한 ‘맥을 짚는 사람들’ 코너 가운데 이번 주인공이 가장 젊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교방동에 자리한 성은한의원 김성은(35) 원장이다. 살짝 웨이브를 준 머리 모양은 이전에 만났던 한의사들 이미지와는 좀 차이가 있다. 그는 “환자분들도 예전과 달리 젊은 한의사라고 못 믿어 하고 그러지는 않아요”라고 말한다. 진료실 책장 한쪽 편에는 조립식 장난감 몇 개가 진열해 있다. 이래저래 궁금증을 자아내게 한다.

막연했지만 한 번도 변하지 않은 꿈

김성은 원장 집안은 좀 독특하다. 아버지는 약사, 큰외삼촌은 한의사, 작은외삼촌은 산부인과 의사다. 아버지가 약국을 하셨지만 정작 그는 어릴 때 약 먹은 기억이 없다. 주사도 거의 맞지 않았다. 감기에 걸리면 따듯한 음식을 먹어 땀 빼는 식으로 몸을 다스렸다. 또한 주기적으로 한약을 계속 먹었다. 보통 아이들은 그 쓴맛에 한약을 꺼리지만, 김 원장은 곧잘 먹는 편이었다. 그런 그에게는 약사인 아버지보다 한의사인 큰외삼촌 모습이 더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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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은 성은한의원 원장./남석형 기자

“한의사 꿈을 언제부터, 어떠한 계기로 키웠는지 저도 확실히는 모르겠어요. 부산 사는 큰외삼촌이 한의원을 하셨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막연히 한의사 꿈을 키웠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꿈은 한 번도 안 바뀌었던 것 같네요.” 

김 원장은 마산에서 태어나 거제에서 중학교를 다녔다. 고등학교는 진주로 유학 갔다. 대학은 한번 실패 끝에 대구대학교 한의학과에 들어갔다.

“고등학교 때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하다 보니 혼자 결정할 일이 많았죠. 진로도 스스로 결정했는데, 아버지도 제 결정을 존중해 주셨죠. 그런데 제가 한의학과에 입학했다고 하자 양의사인 작은외삼촌이 좀 못마땅해 하셨죠. 작은외삼촌은 제가 한의사 아닌 의사가 되길 바라셨죠. 뭐, 지금은 그런 내색은 안 하시지만 말이죠.”

한의학 공부를 하면서 큰외삼촌 도움을 많이 받았다. 방학이 되면 큰외삼촌 한의원에서 지냈다. 일종의 현장 공부를 한 것이다. 김 원장은 그렇게 한의사 될 준비를 차근차근 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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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성은 성은한의원 원장./남석형 기자

의술 아닌 마음으로 다가갔던 시절

군 복무를 대신해 보건의료 사각지대인 농·어촌에서 종사하는 이들이 공중보건의다. 김성은 원장 인생에서 36개월간의 공중보건의 생활은 큰 축으로 남아있다.

“저는 산청에 있었어요. 독거노인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죠. 자식들 멀쩡한데도 혼자 어렵게 사시는 분이 참 많아요. 나라에서 나오는 보조금이 있어도 거의 안 써요. ‘장례비는 만들어 놔야 죽어서 자식들에게 폐 끼치지 않는다’는 거죠. 그러다 보니 아파도 병원에 안 가세요. 한 달에 한 번 있는 저희 순회 진료만 기다리고 있는 거죠. 100세 넘는 할아버지도 계셨는데, 그분은 너무 정정하시고 집안도 매우 깨끗하게 하고 계시는 거예요. 그분에게는 다른 것 없이 말동무가 되어 드렸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금연 사업’도 했다. 김 원장은 그 당시 애연가였다. 스스로 담배를 피면서 아이들에게는 안 된다고 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었다. ‘침’이 아닌 ‘말’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대안학교 아이들이었어요. 일산화탄소 수치가 나와도 상담에서는 담배 안 피운다고 말해요. 사실 저도 담배를 피우고 있었으니 그냥 솔직하게 다가갔죠. 그래서 ‘나도 담배 피운다. 너희도 담배를 피우는 게 꼭 나쁜 건 아니다. 하지만 꿈을 이루는 과정에서 이 담배가 조금이라도 방해된다면 금연을 한번 해 보도록 해라’고 했죠. 그리고 다음에 찾아가니, 제 얘길 들었던 아이들이 모두 담배를 끊었더라고요.”

공중보건의 시절 감사의 편지를 공개적으로 받기도 했다. 한의사 길을 걷고 있는 지금까지를 통틀어도 아주 큰 기억으로 남아있다.

“골반 쪽이 좋지 않아 다리 저림이 심하고 양반다리가 안 되는 환자분이었어요. 꾸준히 치료해야 할 것 같은 분이었거든요. 그분께도 그리 말씀드렸고요. 그런데 침 한번 놔 드린 이후 바로 좋아지셨어요. 사실 저도 좀 놀랐죠. 그분이 고마운 마음에 산청군청 홈페이지 ‘칭찬합니다’라는 코너에 감사의 마음을 남기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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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은 성은한의원 원장./남석형 기자

“이름 걸고 한의원 하겠다” 다짐 

김성은 원장은 공중보건의 생활 이후 개인 한의원 개원 여부를 두고 많은 고민을 했다. 개원에 좀 더 무게를 두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두려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결혼을 앞두고 있어 집에서는 우선 취직부터 할 것을 권했다. 그래서 선배가 운영하는 울산 한의원에서 일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후 마산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다, 지난 2011년 지금 자리에서 개원했다. 자신 이름을 넣은 ‘성은한의원’이다.

“부모님은 거제로 오길 바라셨지만, 그건 부담스럽더라고요. 고향이기는 하지만 아무도 없는 마산에서 한번 시작해 보자 싶었죠. 이름 지을 때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제 이름을 걸고 하면 더 책임감 있게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처음에는 성까지 넣어 ‘김성은 한의원’으로 해 볼까 했는데, 별로 안 예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성은 빼서 ‘성은 한의원’으로 결정했죠. 괜찮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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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재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김성은 성은한의원 원장./남석형 기자

김 원장은 철학적인 부분을 더 많이 이해해야 하는 사상체질 쪽을 전문으로 한다. 이제는 몸을 통해 마음의 병을 조금씩 짚어가고 있다. 성은 한의원에는 근골격계 환자나 아이들이 많이 찾는다. 대부분 한의사가 그렇듯 김 원장 역시 의료보험 문제를 진지하게 꺼내 든다.

“치료할 때도 제한적인 부분이 있죠. 환자에게 의료보험 적용 범위 내의 것부터 치료를 권할 수밖에 없죠. 의료보험 적용 범위가 넓어지면 우선 부담 없이 와서 치료받을 수 있고, 그러다 보면 또 다른 병을 빨리 알아 다스릴 수 있는데…. 지금 현실이 그러지 못하니 안타깝죠.”

꾸준히 치료받아야 하는 환자들도 ‘침 한 방 맞으면 바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인식이 여전히 크다.“한방 치료는 꾸준히 몸을 다스리고 보강해 주는 의미가 커요. 하지만 한 번에 치료 안 되면 ‘실력 없는 한의사’로 생각하는 분이 많아요. 왜 그럴까 생각해 보니, 예전에 돌팔이 의사들 탓이 큰 것 같아요. 그 사람들은 ‘침 한 번이면 해결된다’고 말하잖아요. 교회 집사한테 벌침 맞았다가 부작용으로 찾아온 환자분도 있어요. 안타까운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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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은 성은한의원 원장./남석형 기자

“아들 크면 함께 온라인게임 즐겨야죠”

인터뷰를 한 이날, 김성은 원장 얼굴색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전날 음식을 잘못 먹어 밤새 고생했기 때문이다. 스스로 침을 놓아 몸을 진정시켰다고 한다. 

김 원장은 한약을 스스로 지어 꾸준히 먹고 있다.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친척 보약도 늘 챙긴다. 김 원장 스스로 “환자들보다 저와 친척들을 위해 짓는 한약이 더 많을 정도”라고 말할 정도다.

체격이 큰 편은 아니지만, 몸은 건강한 편이다. 어릴 때부터 지금껏 운동을 꾸준히 했기 때문이다. 태권도·테니스·골프는 그렇다 치더라도, 유도는 선수 아니고서야 쉽게 할 수 있는 운동은 아니다.

“중학교 때는 아주 왜소했죠. 그래서 이래저래 툭툭 건드리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한날 친구한테 일방적으로 맞고 집에 돌아왔죠. 아버지가 열이 받아서 바로 유도장으로 데리고 가셨어요. 그때부터 꾸준히 하다 보니 나중에는 검은 띠까지 땄죠. 그런데 또 한날 저한테 시비 거는 친구가 있었어요. 유도에서 배운 발뒷축걸기 기술을 사용하니 그 친구가 벌러덩 나자빠지더라고요. 이후부터는 친구들도 저를 함부로 못 하데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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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에게 줄 장난감 택배가 도착하자 즐겁게 살펴보고 있는 김성은 성은한의원 원장./남석형 기자

애연가였던 그는 7년 전 담배를 끊었다. 결심하고서 단 한 번 만에 결실(?)을 이뤘다.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좀 있었는데, 그때 오히려 담배를 끊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내 삶에 대한 절박함 같은 게 있는지 시험해 보고 싶었던 거죠. 그런데 이후 딱 한 번 피웠던 적은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했을 때입니다. ‘노빠’까지는 아니더라도 답답한 마음에, 또 추모 의미를 담아 한 모금 했습니다.”

김 원장은 간호사였던 아내와 29살 때 결혼했다. 지금은 5살 된 딸, 2살 된 아들을 두고 있다. 그는 아이들 이야기에서 요리사 이야기를 꺼냈다.

“제 아이들이 커서 한의사가 되겠다면 굳이 말리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장려하지도 않을 거예요. 한의학 의료 현실이 그리 좋은 것도 아니고, 한의원이라는 이 공간에 늘 갇혀 있어야 하는 것도 답답하니까요. 그보다는 요리사가 되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제가 먹는 것도 좋아하고, 음식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거든요. 언젠가는 제가 직접 조리사 자격증에 도전할 계획입니다.”

이야기를 나누던 도중 마침 택배가 도착했다. 아들에게 줄 장난감이었다. 김 원장은 자랑이라도 하듯 그 자리에서 포장을 뜯고 한동안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김 원장은 스스로 조립식 장난감을 좋아한다. 진료 후 한의원에 남아 장난감 조립에 빠져들기도 한다. 컴퓨터와 전자기기 쪽, 온라인게임에도 관심이 많다. 

“어릴 때부터 뭘 만드는 걸 좋아했어요. 건담 만드는 동호회에 가입해 사람들과 종종 만나죠. 컴퓨터·IT 쪽에도 관심이 많죠. 2009년부터 스마트폰을 썼으니 빨리 이용한 편이네요. 개원할 때는 진료에 이용하기 위한 태블릿 PC를 바로 구매했죠. 책은 스캔해서 전자책으로 이용하고, 환자 정보도 종이 아닌 컴퓨터로 활용하죠. 대학 다닐 때는 온라인게임을 통해 인간관계를 많이 넓히기도 했습니다. 정기모임 하러 서울에도 자주 갔으니까요.”

하지만 김 원장은 토요일 오후 3시 진료를 마치면 일요일까지는 가족에게 집중한다. 그는 아주 소박한 꿈 얘기를 했다.

“지금 두 살인 아들이 빨리 컸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나란히 앉아 온라인게임 함께 하는 게 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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