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영비 올라도 요금 못 올린다

1995년 11월 18일 첫 방영한 KBS드라마 <목욕탕집 남자들>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서울 변두리 쌍문동에서 30여 년간 대중목욕탕을 업으로 살아온 고집스러운 김복동 할아버지와 3대에 걸친 대가족이 목욕탕 건물에 함께 살면서 가족의 의미를 깨닫는 과정을 그린 홈 코믹 드라마다. 김복동 할아버지의 부인 역을 연기한 강부자는 이 드라마로 1996년 'KBS 연기대상' 대상을 받기도 했다. 이 드라마에서 매회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장면이 목욕탕 신이었다. 할아버지, 아들, 손자 3대가 탕 안에 몸을 담그고 옥신각신 가족회의를 하는 장면이나 일렬로 한 방향을 보고 앉아 등을 밀어주는 장면은 아직 기억에 남는다.

1970년대 전후 경제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공업단지가 있는 곳이나 사람들이 많이 살던 도회지에는 목욕탕들이 하나둘씩 들어서며 호황을 누렸다. 아파트가 속속 생기기 시작하는 1970·80년대, 90년대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묵은 때를 벗기려는 사람들로 목욕탕은 붐볐다. '흥행'은 계속됐다.

하지만 가정에 욕실이 생기고 찜질방, 온천 등 목욕장이 대형화되고 스포츠센터가 속속 생기면서 동네 목욕탕은 점차 쇠퇴기를 맞고 하나둘씩 문을 닫고 있다. 한국목욕업중앙회 경남도지회 자료에 따르면 2013년 경남에서만 37개 목욕탕이 폐업신고를 했다. 2010~2012년에는 101개의 목욕탕이 문을 닫았다.

현재 운영 중인 도내 922개 목욕탕도 상·하수도 요금, 전기료 등 공공요금 인상으로 영업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창원시 마산지역의 목욕탕 굴뚝들. /경남도민일보 DB

◇찜질방과 경쟁하는 동네 목욕탕 = 경상남도청의 자료에 따르면 6월 말 현재 도내 목욕장업은 922개다. 창원 313개, 김해 107개, 진주 107개 순으로 인구 수와 비례한다. 예외로 온천이 발달한 창녕은 36개로 인구 수가 비슷한 거창(21개), 함안(18개)보다 많다. 공중위생관리법에서 '목욕장업'은 숙박업 영업소에 부설된 욕실 등은 제외돼 있어 시군별 현황보다 실제는 이보다 더 많을 수 있다.

창원은 옛 마산지역 목욕장이 161개(마산합포구 86개·마산회원구 75개)로 옛 창원지역 103개(의창구 69개·성산구 34개)보다 훨씬 많다. 진해구는 목욕장이 49개다.

한국목욕업중앙회 경남도지회(지회장 이광헌)는 전국(2013년 말 기준)에 8100여 개의 목욕장이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약 300㎡ 미만인 소형목욕장이 전체의 72.9%를 차지하고 약 300~1000㎡ 미만의 중형목욕장이 11.7%, 1000㎡ 이상의 찜질방, 불가마 사우나 등 대형목욕장이 15.4%를 차지하고 있다. 소형목욕장의 50~60%는 임대업소다.

이광헌 지회장은 "2000년부터 대형 찜질방 등이 생기면서 주변의 중·소형목욕장을 중심으로 목욕장 수가 급격히 감소하고 있다. 12년간 전국 목욕장 2500여 개가 감소했다"고 말했다.

또 최근에는 스포츠센터 내 수영장과 대형피트니스 등으로 고객이 이동하면서 경남도는 2010년 1월과 올해 1월을 비교하면 138개가 줄어 14.1%가 감소했다고 덧붙였다.

목욕탕 요금은 최하 2000원부터 최고 요금 6000원까지 동네마다 다르다. 이는 이전 가격신고제가 1991년 1월부터 자율요금 표시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평균 4500~5500원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한 동네 목욕탕은 어른 5000원, 어린이·75세 이상 노인 3500원의 요금을 받고 있다. 지난 1월 1일부터 전기료, 도시가스비, 상·하수도 요금이 올라 요금을 올릴까 고민했지만 되레 손님이 더 찾지 않을까 우려해 계속 이 요금을 유지하고 있다.

목욕탕 주인인 ㄱ씨는 "한 달 목욕비를 한꺼번에 내는 달 목욕비는 8만 원이다. 한 달 두 번 쉬니 이들 하루 이용요금은 2850원이다. 9만 원으로 올리고 싶지만 매일 보는 친한 사이라 몇백 원 올리기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도내 목욕장 수와 맞먹는 체력단련장 = 한국목욕업중앙회 경남지회는 지난 5월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2014 경남 소상공인 포럼'에서 기초지자체가 지원하는 스포츠센터 건립을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도민 건강 증진과 건전한 여가활동을 지원하고자 설립되는 스포츠센터가 본의 아니게 목욕장업을 운영하는 이들에게 '경영 악화'라는 피해를 주고 있다.

도내에는 각 시군에서 지원(혹은 운영)하는 스포츠센터(공공체육시설)는 20개가 있다. 창원 9개, 통영 2개, 그 외 지역에 각 1개씩이다. 양산, 의령, 함안, 창녕, 하동, 함양, 거창엔 없다. 이 외에도 민간이 운영하는 신고체육시설업이 진주 6개를 포함해 도내 32개가 있다.

공영 스포츠센터(9개)가 많은 창원시 목욕장 업소는 특히 이용고객 유출이 크다. 시설관리공단에서 관리하는 창원 우리누리청소년문화센터 실내수영장 이용료는 성인 기준 하루 3000원, 월 자유이용료가 5만 5000원이다. 2012년 설립된 창원시립곰두리국민체육센터 수영장은 하루 이용료가 성인 3000원(월 5만 원), 청소년 2000원(월 4만 원)이다. 여기에 여성과 다가구 자녀는 10% 할인혜택이 있다.

거기다 피트니스센터와 골프연습장 등 샤워시설이 있는 체력단련장이 도내 731개로 동네 목욕탕 수와 비슷하다. 대형목욕장을 포함해 목욕장업이 313개가 있는 창원시는 체력단련장이 303개다.

이광헌 지회장은 "시군에서 전기·수도·가스요금 등을 지원해 수영장 요금을 낮춰 주위 목욕탕은 경영에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유사업종으로 고객이 이동하면서 목욕탕이 점차 쇠퇴기를 맞고 있다"며 "침체해 있는 목욕업을 살리려면 시·군 비용으로 운영하는 스포츠센터 건립을 자제하고 목욕장과 거리 제한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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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단 공공요금 인상…'떼돈' 벌기 힘들다 = 뭐니뭐니해도 목욕탕을 운영하는 이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것은 공공요금 인상이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1월 4%, 11월 5.4%가 인상됐고 도시가스요금은 지난해 7월 4.4%가 인상된 데 이어 올해 1월 5.5%가 추가 인상됐다. 상하수도 요금은 올해 1월 평균 10%, 하수도요금은 지난해 7월 지하수이용부담금을 1t당 85원 부과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75%나 인상됐다.

손님이 많건 적건 냉·난방을 유지하고 물을 데워야 하는 목욕업은 수도광열비(수도료, 전기료, 도시가스요금, 기타 냉·난방비 등을 처리하는 계정)가 매출의 50%를 차지해 직격탄을 맞았다.

창원시 의창구에서 동네 목욕탕을 운영하는 ㄴ씨는 "식당은 손님이 오면 음식을 만들어 내지만 목욕탕은 항상 물을 받아놓고 찜질방은 온도를 높여야 한다. 한 달 전기료만 평균 400만 원"이라고 말했다.

더구나 목욕탕의 여름 비수기인 5~8월에는 적자 운영을 피할 수 없다.

ㄴ씨는 "목욕업은 겨울에 벌어 여름에 쓰는 꼴이다. 목욕탕 이용요금이 5000원인데 하루에 어린이와 노약자 포함해 100명이 찾는다고 치면 40만 원을 번다. 그런데 하루에 100명이 찾아오질 않는다. 지난달은 하루 평균 14만 원을 벌었다. 여름 비수기에는 한 달에 많게는 500만 원씩 적자를 보고 있다. 나는 임대료가 안나가기 때문에 그나마 버티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ㄴ씨는 특히 지난 1월은 공공요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12월 운영비와 비교해 300만 원 차이가 났다며 분통을 터트렸다.

이에 한국목욕업중앙회는 해마다 상수도와 하수도료 인상을 자제해 줄 것과 유류와 가스비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광헌 지회장은 "공공요금이 올해처럼 이렇게 한꺼번에 인상이 되는 경우는 없었다"며 "적자 운영을 하면서도 투자비가 높아 마지못해 운영하는 이들이 많은 만큼 목욕업 활성화 종합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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