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호 옛 추억 되살리는 '진주 찜닭' 이어가는

진주 진양호. 지금이야 경제적 성장과 함께 국내외 여행이 자유로워 관광명소로서 의미가 많이 퇴색됐지만 한때 창녕 부곡온천과 함께 경남 신혼부부들 신혼여행 1번지로 꼽히던 화려한 이력을 자랑하는 지역의 명소다. 한창때인 1970~80년대만 해도 하루에만 십수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찾아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인기를 모았다.

이렇게 사람 모이는 곳에 음식점도 성행하는 법. 특히 진양호 주변에는 유별나게도 각양각색의 ‘통닭집’이 우후죽순 자리를 잡았다. 진양호 입구서부터 동물원까지 이어지는 언덕배기 길가로 통닭집 수십 호가 줄지어 늘어서 장관을 이뤘다. 당시 진주에서 유년기부터 청년기를 보낸 사람이라면 진양호 통닭에 얽힌 추억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이 역시 세월의 풍파를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양호가 1969년 6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이 된데다 지난 2004년 6월에는 남강댐 증축 공사로 말미암아 보호구역이 확대 지정되면서 일대 통닭집들이 대거 영업을 중단하거나 시내로 이전을 하게 된 것이다.

진양호 통닭 얽힌 진주사람 향수 담아

진주시 상평동 상평일반산업단지 내에 있는 ‘진양호 통닭’.

이 집 역시 진양호 주변에서 오래도록 장사를 하다가 지난해가 되어서야 시내 중심가로 자리를 옮긴 집 가운데 하나다.

진양호 인근에 영업할 당시만 해도 ‘삼거리 통닭’이라는 상호를 쓰다가 위치를 현재 자리로 옮기면서 상호를 ‘진양호 통닭’으로 바꿨다.

진주에서 나고 자란 이 집 정연해(39) 사장 역시 어릴 적 진양호에서 먹던 통닭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사람이다. 가게 이름을 진양호로 한 것도 다 옛 추억 덕이다.

“명성이야 예전보다 많이 쇠퇴했지만 아직도 진주 사람들 기억 언저리에는 ‘통닭’하면 ‘진양호’가 떠오릅니다. ‘진양호 통닭’이라는 말만 들어도 거리상으로는 진양호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옛 기분을 느낄 수 있으니 상호로 안성맞춤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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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해 사장과 어머니 강미숙(57) 씨가 통닭집을 한 계기는 우연에 가깝다.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암으로 일찍 남편을 잃은 강미숙 씨는 슬하에 삼 형제를 키우고자 보험업으로 생계를 꾸렸다. 다행히 장성한 아들들이 어머니를 돕고자 일찍 돈벌이에 나섰고, 정연해 사장 역시 어머니와 함께 보험업을 하면서 일손을 도왔다.

보험업에 오래 몸담던 어느 날 강미숙 씨는 진양호에서 통닭집을 운영하던 보험 고객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는다. 처분을 앞둔 자신의 통닭집을 운영해보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갑작스런 제안이었지만 강미숙 씨는 약 10분 만에 이를 승낙했다. 함께 보험업을 하는 아들과 서로 인맥이 겹쳐 더는 보험 확장이 어려운데다 한 가지 일을 오래하다 보니 지루함이 느껴진 터였다. 무엇보다도 남편이 세상을 뜨기 전 상평공단 내에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제법 규모가 큰 식당을 성공적으로 운영해 본 경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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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양호 찜닭은 진주 고유 음식”

이렇게 지난 2008년 삼거리 통닭은 인수한 후 지난해 7월 현재 자리로 옮겨왔다. 한데 자신은 있었지만 맛을 내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었다.

좋은 닭을 선별해 들여오는 법부터 양념 비율과 졸이는 시간 등 모든 요리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다. 이 때문에 벌써 개업 후 6년이 지났지만 여태껏 장사를 쉬어 본 날은 3~4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이토록 오랫동안 맛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을 계속해 왔다. 진양호 아래 언덕배기집들 대부분은 백숙보다는 찜닭으로 유명했다. ‘진양호 통닭’이 자랑하는 메뉴 역시 ‘찜닭’이다. 한데 진주 찜닭은 ‘안동찜닭’으로 대변되는 간장 양념을 기본으로 하는 여느 닭찜 요리와는 다르게 붉은 기운 맵싸한 것이 칼칼한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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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어려서부터 진양호 아래에서 먹던 찜닭은 붉은 고춧가루 양념에 닭과 채소를 졸인 후 덖어낸 것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다른 지역은 어떤가 하고 장사를 시작하고 나서 안동 등지에 찜닭으로 유명한 집들을 여럿 찾아다녀 봤어요. 알다시피 안동은 자작한 간장 양념 국물을 기본으로 닭과 각종 채소 그리고 당면을 넣어 먹는 것이 기본이잖아요. 진주와는 확연한 지역적 차이가 나죠. 그래서 저는 진양호 인근에서 만들어 먹던 찜닭은 ‘진주 찜닭’으로 상품화하고 스토리텔링화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별다른 육수를 없이 깨끗한 물에 닭, 간장, 물엿, 고춧가루를 넉넉히 넣어 센 불에 끓이다 단단한 당근을 넣은 다음 양념을 졸인다. 이후 다진 마늘과 파, 오이 등 여남은 채소를 넣고 불을 줄인 후 약 5분간 덖어내면 찜닭이 완성된다. 빨갛다 못해 검붉은 기운이 얼굴을 화끈거리게 한다. 닭과 채소 등 재료 위에 다진 마늘이 다량 올려져 있어 매운 기운이 입에도 넣기 전에 땀구멍을 연다. 한데 먹어보면 적당히 맵싸하고 달큰하면서도 입에 착착 감기는 뒷맛이 일품이다.

매운 기운을 뿜을 듯했던 다진 마늘이 열기에 중화되면서 구운 마늘이 내는 고소하면서도 약간 달큰한 맛을 돋워냈기 때문으로 풀이됐다. 어떻게 보면 양념치킨 고추장 양념에 튀기지 않은 닭을 채소와 함께 덖어 먹는 기분이 들기도 하는데, 맛은 여느 양념치킨 이상이다. 중량이 1㎏ 이상 나가는 중간 크기 닭을 사용해 양도 푸짐하게 느껴진다. 함께 주문한 닭튀김은 카레가루, 튀김가루, 후추만으로 간해 맛을 낸다. 별다른 기교 없이 투박하면서도 바삭하게 튀겨내 흡사 시장 난전에서 갓 튀겨내 꺼내놓은 통닭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양파절임, 오이냉국, 마늘종 절임, 삶은 감자 같은 밑반찬 재료는 대부분 새벽 5시 진주 중앙시장 새벽장에서 직접 눈으로 골라 들여오거나 인근 농촌 지역에 사는 지인들 편으로 직 구매하니 역시 믿고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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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어야 할 벽 ‘진양호 통닭 = 조광래 집’

정연해 사장은 어느 집보다도 맛깔나게 음식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하지만 상호와 관련해 가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겪을 때는 허탈해지기도 한다. 진주 사람들은 흔히 ‘진양호 통닭’이라고 하면 조광래 전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어머니가 운영하던 ‘진주집’을 먼저 생각하기 때문이다. 진주 사람들 머리엔 은연중에 ‘진양호 통닭 = 조광래 집’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혀 있다. 물론 ‘진주집’이 아직도 진양호 근처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이지만 이를 극복하고 ‘상생’(?)해 나가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런 일도 있었어요. 하루는 어떤 손님 한 분이 찜닭 예약전화를 했어요. 30분 뒤에 도착한다는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예약상을 차리고 음식을 만들었죠. 그런데 이 손님이 1시간 이 지나도록 오지 않는 거예요. 기다리다 못해 제가 전화를 했죠. 그런데 벌써 2층에서 음식을 먹고 있다는 거예요. 우리 집은 2층이 없으니 황당하기 그지없었죠. 알고 보니 진양호 근처에 다른 통닭집에서 이미 음식을 먹고 있었던 거예요. 황당함에 웃음이 나오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죠.”

진주 전통 음식 특화할 길 찾아야

불과 30여 년 전만해도 진주에는 진양호뿐만 아니라 중앙시장 근처에도 닭집 골목이 형성돼 꽤나 성행했다. 현재 50대 초중반으로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닭집 골목에 대한 추억 또한 켜켜이 쌓여 있다. 생닭은 물론 몸집이 작은 닭에 튀김 반죽을 얇게 입혀 통째로 튀겨 낸 옛날 통닭을 파는 집이 여럿 있었다. 이후 이뤄진 도시개발로 인해 많이 자취를 감췄지만 정연해 사장은 이런 옛 향수를 기억할 수 있는 먹거리 타운이 생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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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에는 진주 찜닭, 진주 냉면, 남강 장어구이, 진주비빔밥 등 진주 내에서만 발달한 독창적 음식이 참 많아요. 예전에는 이런 음식점들이 밀집한 동네가 많았는데 많이들 사라졌어요. 진양호 닭집도 그렇고, 남강 장어거리도 곧 사라질 거고. 저는 이게 너무 아쉬워요. 뜻이 맞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진주가 가진 전통 음식이 특화된 타운을 만든다거나 하는 일을 함께 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할 때가 있어요.”

지속되는 도시 개발과 먹거리 환경 변화로 지역의 전통 음식과 이를 전승‧보존하는 집들이 점차 사라지는 추세에 있다. 과도한 경제 논리가 더는 전통의 발현을 어렵게 하는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한 지역의 전통 음식이 그 지역 사람들의 삶과 정신을 잇게 하는 매개라는 점에서 ‘진양호 통닭’을 통해 지자체나 민간 차원에서 이런 소중한 문화를 굽어 살피는 실천적 움직임이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메뉴 및 위치>

◇메뉴: △찜닭 소 2만 5000원, 대 3만 6000원 △백숙 소 2만 5000원, 백숙 대 3만 6000원 △닭튀김 1만 9000원 △옛날 닭국 2만 5000원 △닭도리탕 2만 5000원 △옻닭 5만 원.
◇위치: 진주시 상평동 269-20번지. 055-747-48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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