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명성 되찾으려면 자족도시 기능 갖춰야

올해 초 새누리당 대변인으로 선출된 박대출(53·진주갑) 의원이 지난 7월 초 출범한 신임 김무성 대표 체제에서도 계속 대변인 직을 맡게 됐다.

김무성 대표가 얼마 전 단행한 당직 인선을 앞두고 누가 주요당직을 맡을지 여러 관측이 난무하는 가운데서도, 박대출 의원의 대변인 직 유임은 거의 확정적인 것으로 전해진 터였다.

박 의원은 집권 여당 대변인이라는 중책을 수행하면서도 초선 의원으로서 상임위 활동에 의욕적으로 임해야 하고, 무엇보다 지역구 현안에도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처지이다. 말 그대로 무척이나 바쁘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떠나지 않는다. “맡은 바 일을 열심히 하는 거죠”라고 말할 뿐 한 번은 나올 법도 한 ‘힘들다’는 내색을 전혀 드러내지 않았다.

1.jpg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박대출 의원실 제공

1998년 서울신문에 입사한 박 의원은 정치부 선임기자를 거쳐 논설위원을 마지막으로 기자직을 그만둔다. 그리고 2012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국회에 기자 출신 대변인이 흔한 때이긴 하지만 박 의원은 또 자신만의 색깔로 새로운 대변인 상을 개척해 나가고 있었다.

황제에게 비굴하지 말고 거지에게 오만하지 말자

-기자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는가?

“개인적인 성향과 잘 맞았던 것 같다. 어릴 적이나 기자직을 시작하면서 늘 좌우명처럼 마음속에 품고 있던 게 ‘황제에게 비굴하지 않고, 거지에게 오만하지 말자’는 것이었다. 우리 사회에 저변에 깔려 있는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세태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좌우명을 성실하게 수행할 수 있는 직업이 기자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기자 생활에 스스로 만족을 했다. 긍정적인 삶의 밑바탕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박 의원은 기자 초년병 시절 사회부에서 4∼5년 정도 일하다가, 기자 생활 대부분을 정치부에서 보냈다.

- 정치부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나 특종보도 사례가 있다면?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 문제가 기자로서의 소명과 늘 일치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신뢰하는 취재원들에게 취재했던 뉴스가 그 취재원을 곤란하게 하는 경우가 있을 때는 기사를 못 쓸 수도 있다. 기자와 취재원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서 신뢰를 쌓으며 서로 속마음을 많이 털어놓는 편이었다. 

때로는 기자답지 않은 기자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기자라는 사명감에 불성실했던 게 아니라 더욱더 기자라는 직분에 성실하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개인적으로 보고 싶다.”

2.jpg
박대출 새누리당 대변인./박대출 의원실 제공

- 기자 시절 박근혜 대통령과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2000년 경제 파트에 잠깐 있다가 다시 정치부로 오게 됐는데, 그때가 2004년인데 마침 한나라당 ‘차떼기’ 사건이 벌어졌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 대표 시절 여의도에 천막당사를 설치했고, 그곳에서 취재를 했다.”

- 아까 말씀하신 대로라면, 당시 박근혜 대표라는 취재원과 깊이 소통하는 관계였나.

“(웃음) 그건 좀 주제넘은 이야기가 될 것 같고……. 여러 정치인들과 주변 분들에게 나쁜 인상을 주지는 않은 것 같다.”

- 대변인을 취재하던 입장에서 지금은 여당의 대변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감회가 남다를 것 같기도 하고 다른 점도 많을 것 같은데.

“대단히 조심스럽다. 말 하나하나에 더욱 조심해야 한다. 기자 처지에서는 뭐든지 묻고 말할 수 있겠지만, 정치인들은 늘 국민의 시선에 들어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특히 대변인이라면 당의 입장을 대변하는 위치이기에 매사에 말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한다. 수위 조절도 고민해야 하고, 작은 표현 하나도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게 쉽지만은 않은 것 같다.”

박대출 대변인은 직접 브리핑 문서를 작성하는 때가 많다. 매일 매일 이어지는 주요 당직자 회의에 참석해야 하고 수시로 언론 브리핑에 나서야 한다.

3.jpg
새누리당 회의 모습./박대출 의원실 제공

- 체력적으로 힘들지는 않나.

“쉬운 일은 아니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한다.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겠다는 것이다. 능력이 모자라니까, 열심히 하면서 모자라는 걸 채워야지.(웃음)”

- 아무튼 무척 바쁜 건 사실이고, 그렇게 되면 아무래도 상임위 활동이나 지역구 현안 사업을 챙기는데 소홀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자칫하면 소홀해지기 쉽고, 물리적 시간이 부족한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틈틈이 비록 짧은 시간일지라도 매주 한번은 진주에 다녀온다. 다만 대변인을 하다 보니까 지역에 머무르는 시간이 짧다. 하지만 대변인으로서 당정의 주요 정책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게 되면서 지역 현안을 직간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진 장점도 있다.”

진주중앙유등시장이 놀이터였던 포목상집 아들

박대출 의원은 6남매 중 막내다. 또한 집안 내 22명의 사촌 중에서도 막내라고 한다. 부모님들은 작고하신지 오래됐고, 지금 진주에는 친지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다.

- 진주 토박이라고 알고 있다.

“숲골이라고 부르는 이현동이 본적지다. 공설운동장 쪽에서 진주 IC로 빠지는 샛길 같은 곳이다. 고조부 때부터 밀양에서 건너오셔서 정착을 하셨다. 어린 시절 중안초등학교(현 진주초등학교)를 5학년까지 다니다가 금성초등학교에서 6학년을 마치고 졸업을 했다.”

이후 박 의원은 진주남중과 진주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에 입학했다.

4.jpg
여성경제인 연합회 방문./박대출 의원실 제공

- ‘진주’ 하면 가슴에 아련한 느낌 같은 게 찾아올 것 같다.

“그렇다. 어릴 때 늘 좋은 경관을 보며 남강이라는 환경 속에서 자랐다. 지금의 중앙유등시장이 놀이터이자 성장 터였다. 할머니 때부터 그곳에서 포목상을 했다.

어릴 적 기억 중 하나는 시장에 큰 화재가 난 것이다. 봉곡동에 있는 집에서 새벽에 큰불이 난 걸 봤다. 그때 아버지 포목상도 불탔다. 어려움도 있었지만, 막내로 귀여움을 받고 자란 것 같다.”

- 대부분 지방도시들이 다 그렇지만 진주 역시 옛날의 교육도시 명성이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진주 시민들은 진주가 교육도시라는 자부심 속에서 살고 있다. 제가 객지 생활을 할 때도 진주 출신이라고 하면 꼭 두 가지 말이 뒤따라 나왔다. ‘진주라 천릿길’이라며 아주 먼 곳에서 왔다는 것과, 진주 하면 명문 도시라는 평가였다. 이렇게 진주는 교육도시라는 자부심이 높았는데 어느 순간 희석되고 약화되기 시작했다.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교육도시 명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소관 상임위인 교육문화체육관광 위원회에서 하나씩 챙겨나갈 생각이다.

그리고 덧붙이자면, 교육도시 명성을 되찾기 위해서는 진주가 자족도시로서의 기능을 갖추어야 한다. 혁신도시와 항공산업단지의 국가산업단지화, 그리고 경남도청 서부청사 등의 시너지 효과가 일어나면 조금씩 나아질 거라 기대하고 있다.”

5.jpg
브리핑 모습./박대출 의원실 제공

- 진주 의료원 문제는 어떻게 마무리되어야 바람직하다고 보나?

“제 입장은 이렇다. 서부 청사가 진주로 이전돼 오는 건 환영할 일이고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그리고 기존 진주의료원은 폐원되었지만 진주시민은 물론 서부경남 주민을 위한 공공의료시설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서부청사가 오더라도 진주의료원 대부분 공간은 비게 된다. 치매 요양 병원이나 산부인과 등 전문 특화 병원으로 재개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 총선 당시 지역 행정구역 통합 공약을 발표했다.

“자족도시가 되려면 기본적으로 인구가 어느 정도 규모가 되어야 한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통합 이야기가 나오자 대상 지역에서 예민하게 반응했고 반대 추진위도 만들어졌다. 지역 화합을 위해 꺼낸 공약이 오히려 지역 화합을 해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집에 사는 원수가 되기보다는 가까운 이웃사촌으로 사는 게 상생과 화합에 바람직한 방향 아니겠나.”

6.jpg
▲ KNN과의 인터뷰 모습./박대출 의원실 제공

포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인정받겠다

- 다시 대변인 활동에 대한 질문을 드리겠다. 혹시 당론과 소신의 충돌이 발생하는 경우는 없나.

“구체적인 사안 앞에서 개인적인 소신과 당론이 맞지 않아서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든 상황은 없었다. 저의 정체성과 당이 맞아떨어지고, 박근혜 대통령의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 또 만약 소신과 당론이 어긋나는 부분이 생긴다면 그것도 바람직한 일은 결코 아니다.”

- ‘친박’으로 분류되지만 김무성 대표 체제에서 다시 대변인 직을 맡았다. 당과 청와대 사이 가교 역할 등 앞으로의 역할에 대해 기대하는 언급들이 많다.

“과분한 기대이고 저에게는 무거운 짐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어쨌든 제 스스로 그런 부분을 의식하지는 않는다. 스스로에게 성실하면 된다는 생각이다. 낯간지러운 행동이 아니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행동하고, 그 자체를 평가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 기자들 사이에서 인기도 꽤 좋은 것 같다.

“(웃음) 후배들이 예쁘게 봐주셔서 그렇다. 대변인이라는 직을 떠나서 앞과 뒤를 재고 자기 잇속 차리고 잔머리 굴리는 게 보이면 촉과 감이 빠른 기자들이 저를 예쁘게 봐주겠나. 억지로 생색을 내고 만들려고 하면 사람만 얇아지는 것이고, 있는 그대로 솔직하고 진솔하게 다가가는 게 좋은 거 아니겠나.”

- 수없이 많은 대변인들이 거쳐 갔다. 어떤 대변인으로 남고 싶나.

“제 삶이 그랬듯이, 내가 속해 있는 새누리당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비쳐지도록 하고, 새누리당의 솔직한 면이 전달될 수 있게 한다면 저로서는 대단한 영광이고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본다.”

박대출 의원은 ‘솔직함’과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강조했다. 억지로 포장하지 않고 진솔하게 다가가는 것만이 자신의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길이라는 것이었다.

박 의원은 “학창시절 친구들 좋아하고 노는 것도 좋아했다. 특별히 모범생도 아니었지만 큰 말썽 피우지 않는 평범한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창시절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던 건 아니었다. 제 일에 충실하다 보니 길이 생겼고 또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말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