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섹스? 소통과 배려의 다른 표현"

돌이켜 보면 어렸을 때부터 또래보다 빠른 애들이 늘 있었다. 빨리 수염이 나거나 목소리가 굵어진 애들, 성기를 소재로 한 욕이나 농담이 유난히 익숙한 애들도 있었다. 참·거짓을 가릴 방법은 여전히 없으나 이른 성경험을 무용담처럼 펼치던 애들도 있었다. 뭔가 늘 또래보다 앞서간다는 표정, 과장된 몸짓, 현란한 말솜씨.... 이제는 아련하게 남을 그들에 대한 인상이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해운동 ‘정규덕비뇨기과’에 들어서면서 정규덕(57) 원장에게 그런 익살과 과장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일간지에 섹스, 성기, 성기능 얘기를 대놓고 풀어놓는 전문가 아닌가.

“그냥 간단하게 합시다.”

처음 대하는 표정과 말투부터 익살·과장 과는 거리가 멀었다. 질문에 성실하게 답은하되 질문 이상을 더 풀어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흔히 느낄 수 있는 건조한 말투였다. 심드렁한 표정까지 더해 만만찮은 인터뷰가 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다. 쉽고 거리낌 없는 표현과 적확한 비유가 돋보이는 칼럼에서 느낀 분위기와는 점점 멀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질문과 답이 오가면서 성실한 답은 더욱 풍부해졌다. 말투에서 느꼈던 건조함은 내성적인 성향이 그저 다르게 표현된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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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덕 원장./박일호 기자

인문학이 익숙했던 의대생

“고등학교 3학년 2학기까지 문과였어요. 그 때 문과는 법대·상대 밖에 갈 데가 없었지요. 주변에서 법대를 가라고 했는데 제가 법대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그때 편도선염을 심하게 앓고 병원을 다녔는데 마침 의사가 괜찮겠다 싶었나봐요.”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지금처럼 문과·이과 구별 없이 전과목을 모두하던 시절이라 진로를 바꾸는 게 유별나게 어렵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규덕 원장은 지금도 자신이 문과 체질이라고 생각한다. 돌이켜 보면 역사를 공부하는 게 꿈이었다. “고등학교 선생님 얘기로 기억하는데..., 어떤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재능을 타고나 야하지만 어느 분야든 평범하게 중간 정도 하는 것은 노력만 하면 가능하다고 했어요. 그말에 공감하고요. 그저 열심히 하면 중간 정도 할 수는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요.”

정규덕 원장은 그렇게 의대에 들어갔다. 그러나 대학에 들어가서도 문과 취향은 여전했다. 당시 의과대학생들을 비롯해 이·공 계 학생들은 마침 나오기 시작한 과학잡지를 즐겨봤다. 하지만, 정규덕 원장 취향은  인문·사회 분야였다. 도서관에 앉아서 그런 책들만 찾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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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덕 원장./박일호 기자

“의사가 신문에 정기적으로 글을 쓰는 게 낯선 일이라고 하겠지만, 저에게는 오히려 익숙한 일이었지요. 오히려 그쪽이 저에게 는 더 익숙했던 것 같아요.”

이과를 전공한 것도 아니고, 인문·사회학에 빠져 지냈음에도 정규덕 원장은 재학생 중반을 걸러내는 과정을 재적 없이 무사히 마쳤다. 최고가 될 게 아니라면, 평균이상은 노력으로 가능하다는 선생님 말씀을 그렇게 확인한 셈이다.

계산 없이 선택한 전공, 비뇨기과

왜 비뇨기과였을까. 무표정하던 정규덕 원장 표정에 조금씩 미소가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에 의사 사이트를 들어갔더니 비뇨기과가 기피 분야가 돼 있더라고요. 비뇨기과에서 진료하는 분야 가운데 상당수 를 산부인과도 보고 있어서 그런지.... 그런데 우리 때는 무슨 과를 전공해서 앞으로 비전이 있다 그런 계산없이 순수하게 하고 싶은 분야를 했어요.”

물론 정규덕 원장이 공부할 때도 비뇨기과는 선호분야라고 할 수 없었다. 다만, 일반의대생과 뭔가 다른 대학생활을 보내던 정 원장에게 비뇨기과는 흥미로운 분야였다. 주로 기독교 재단에 있는 의과대학에서 드물게 불교 활동을 했었고, 막연하게 남성 아래쪽에 관심이 있었다. 사람 몸을 째고 피를 보는 일은 성격에 맞지 않은 점도 있었다. 수술을 될 수 있으면 피하고 싶었는데 그래서 걸려든 전공이 비뇨기과였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군 장학금을 신청했지요. 그래서 군 복무를 7년 했습니다. 마산통합병원, 경기도 포천에 있는 국군일동병원 진료부장을 거쳐서 1991년에 나와 마산, 지금 이 자리에 개업을 했지요. 게을 러서 그런지 한 자리에서 21년째 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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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덕 원장./박일호 기자

비뇨기과는 다른 분야보다 환자 자체가 많지 않다. 게다가 비뇨기과 관련 이상이 있더라도 병원을 찾는 환자가 드물다. 특히 1990년대 초반에는 더욱 그랬다. 그런 질환을 다루는 병원이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한때 반짝 남성의학 분야가 사회적으로 새롭게 조명 받으면서 관심이 쏠리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산부인과가 비뇨기과 분야 진료를 일부 겸하면서 환자수는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 가 없는 편이다. 그러나 이런 사정과는 관계없이 정규덕 원장이 나름대로 관심을 두는 분야가 있었다.

“처음부터 발기 부전 쪽에 관심이 많았어요. 비뇨기과가 다루는 분야 가운데 아주 작은 분야이기는 하지요. 나이 60이 다 돼가니 남성학, 발기부전, 노화방지 쪽이 흥미롭더라고요.”

정규덕 원장은 지역에서 남성학 진료 초창기 멤버다. 정 원장이 진료를 시작했을 때는 경남지역을 통틀어서 남성학 관련 진료를 하는 의사가 한 손으로 꼽을 정도였다. 물론 지금은 스포츠신문이나 인터넷 배너광고에 넘칠 정도로 흔한 분야가 됐지만....

상담 그리고 칼럼

경남도민일보 홈페이지( www.idomin.com )에서 ‘정규덕’으로 검색하면 2002년 12월 8일 자에 쓴 글부터 나온다. 가장 최근글은 지난해11월 29일 쓴 ‘오르가슴 연기, 조루 남편 착각의 늪으로’이다. 10년 가까이 연재한 글은 처음에는 ‘Q&A’로 시작 해 ‘정규덕의 섹스토크’, ‘정규덕의 성 오디 세이’라는 제목으로 이어졌다. 소재는 조루, 자위, 성기, 정력, 동성애 등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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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덕 원장./박일호 기자

“신문에 글을 쓴 것은 제가 당시 담당기자에게 제안한 것입니다. 그때는 남성학 진료 관련 광고를 아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제 분야를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요. 어떻게든 신문에 글을 쓰면 홍보가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건강’ 코너를 만들자고 제안했지요.”

처음에는 원고지 4장 분량으로 시작했다. 하지만, 독자 반응이 좋았는지 주문하는 원고 매수가 점점 늘었다. 나중에는 제법 그럴듯한 분량으로 신문에 연재할 수 있었다.
“섹스는 서로 즐길 수 있어야 하고, 그러려면 함께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사람이 모두 같을 수 없기 때문에 그런 차이를 이야기하고 싶었지요. 일반 사람들은 섹스에 대한 상식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또 그 만큼 모르는 것도 많아요. 그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반응은 다양했다. 신선하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어떻게 신문에 이런 표현을 쓰느냐며 당황하는 독자도 많았다. 처음에는 여러 신문사에 기고를 했는데, 신문 독자층에 따라 반응이 다르기도 했다. 또 신문마다 허용하는 표현 수위도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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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규덕 원장./박일호 기자

“논조가 보수적인 신문을 보는 독자는 잘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조금 진보적인 신문을 보는 독자들은 오히려 표현에 관대했지요. 그래서 나중에는 이쪽저쪽에 글을 쓰지말고 한쪽에만 글을 쓰자고 생각했지요.  그게 의리 같기도 했고....”

정규덕 원장이 쓰는 글은 일단 쉽게 읽힌다. 사회현상, 고전 등을 넘나드는 인용이나 비유도 적절하다. 인문·사회학이 더 맞았다는 학창시절 취향이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아울러 그가 쓴 글에 등장하는상담 사례는 더욱 흥미를 부추긴다. 정 원장은 실제 상담사례를 적절하게, 자주 칼럼에 인용한다.

“우리 병원에는 발기 부전 환자가 많습니다. 20대에서 80대까지 있어요. 20대는 여자친구와 문제 때문에 병원을 오고요. 80대도..., 사실 80대가 아니라도 죽기 전까지 섹스를 즐길 수 있는 의학시스템은 이미 돼 있어요. 병원에 찾아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모습이지요.”

섹스는 성기가 아니라 머리로 즐기는 것

정규덕 원장 전공분야로 더욱 들어가보기로 했다. 원장님! 섹스란 무엇입니까? 

“일단 즐겁게 즐겨야 합니다. 섹스는 사정보다 과정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단어로 표현한다면 ‘세련된 희롱’이라고 할까요. 사정을 하지 않더라도 과정을 즐길 수 있다면 좋은 섹스입니다. 섹스는 아랫도리가 아니라 머리로 즐기는 것이지요.”

정규덕 원장이 쓴 수많은 글을 관통하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다. 바로 ‘배려’와 ‘소통’이다. 자기만족에 집착하는 게 아니라 상대가 느끼는 즐거움을 통해 더 큰 만족에 이르는 과정이 배려다. 아울러 솔직하게 자신을 표현하고 상대 느낌을 들어주는 과정이 소통이다. 하지만, 정작 정규덕 원장은 ‘소통’과 ‘배려’라는 표현을 낯설어 했다.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라는 말을 쓴 것 자체가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저도 예전에는 소통이라는 말을 잘 몰랐어요. 그런데 돌이켜 보면 결과적으로 소통이 맞는 표현인 것 같아요. 제가 소통이라는 단어를 쓰지는 않았지만, 서로 느낌이 맞아야 하는 것이지요. 성기는 중간 도구일 뿐입니다.”

그래서 한 발 더 나아갔다.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고 하고, 이론만 강하지 실전은 약하다는 사람도 흔하지 않은가. 원장님! 원장님 점수는요?

“저는 타고난 허약체질이에요. 채식 위주로 식사를 해서 그런지 한 끼만 못먹어도 허기가지고 진이 빠져요. 하드웨어는 평균 이하인 편이지요. 하지만, 즐거운 섹스를 하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상대방이 어떻게 하면 만족하는지를 알아요. 힘보다는 기교가 있다고 할까. 같은 나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보면 상위권일 것입니다.”

정력적이지는 않을 수 있으나 정력적으로 사는 법을 아는 정규덕 원장에게 계획을 물었다. 그는 서울에는 있지만 지역에는 없는 비뇨기과 전문 병원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비뇨기과 전문의 몇 사람과 힘을 합쳐 규모가 크고 각 분야를 나눠서 볼 수 있는 시스템이다. 당장 밑그림이 나온 단계는 아니지만, 정 원장은 60을 바라보는 나이에 뚜렷한 목표를 세울 자체가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처음에는 의사가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의사라는 직업이 좋습니다. 하루 한 시간만 돈 생각 않고 자기재능을 발휘하면 참 좋은 직업이에요. 저는 노인들 성생활을 도와주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봉사 활동아닙니까. 제가 충분히 잘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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