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판매왕 출신 ‘만담가’

해설위원 “관중 중에는 막걸리에 빨대를 꽂아 드시는 분들도 있더라고요.”
캐스터 “절대 술은…. 나발이라고 하죠? 불지 말라고 하는데….”
해설위원 “아나운서들은 그런 말씀 못 할 줄 알았는데, 우리 캐스터는 서민적이라,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자주 하세요.”
캐스터 “제 별명이 마당쇠잖아요.”
해설위원 “아하? 마님이 좋아하시는….”
MBC경남의 ‘프로야구 NC다이노스 홈경기’ 라디오 중계방송 내용이다. 해설가는 MBC스포츠플러스 한만정(53) 위원이다. 그는 MBC경남 아나운서인 김진철 캐스터와 호흡을 맞춰 ‘NC 편파 해설’ ‘만담 해설’을 하고 있다. 지역 야구팬들은 이제 그의 목소리가 익숙하다. 하지만 ‘야구인 한만정’은 여전히 생소해하는 분위기다. ‘도대체 뭐 하던 사람이야’와 같은 의문이 있는 것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들여다봤다.


NC다이노스-넥센 전이 열리고 있는 창원 마산야구장. MBC경남은 올해 NC 모든 홈경기를 라디오로 중계하고 있다. 한만정 위원도 이날 중계석에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방선거 개표방송으로 중계가 취소됐다. 경기장 함성을 뒤로 하고 인근 야외 커피숍으로 자리를 옮겼다. 지나가는 야구팬들은 연신 그를 알아보고 인사했다. 한만정 위원은 사람 좋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답례하기 바빴다. 그는 이런 일화를 들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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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정 해설위원이 김진철 캐스터와 함께 라디오 중계 준비를 하고 있다./남석형 기자

“어느 날 마산에서 택시를 탔어요. 기사님이 목소리만 듣고 바로 저인줄 아시는 거예요. 기사님들이야 라디오가 친구나 마찬가지이니, 바로 알아차리는 거지요. 내릴 때 택시비 안 받겠다는 기사님과 한참을 실랑이하고 그랬죠.”

한만정 위원은 3년째 지역에서 라디오 해설을 하며 마니아 팬을 확보하고 있다. 그의 해설에는 독특한 개성이 있다. 우선 유쾌하다. 그리고 목소리에는 늘 자신감 넘친다. 해설 내용에는 인생을 비유하는 부분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그의 지난 삶과 연결된다.

고교 때 친화력으로 김성근 감독 신임 얻어

한만정 해설위원 고향은 서울이다. 아버지는 군인, 어머니는 경찰관이었다. 4남 1녀 중 막내인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먼저 야구를 시작한 작은형 따라 저도 맨날 쫓아다녔죠. 작은형은 공부를 잘했어요. 그래서 아버지가 야구를 못하게 했죠. 저는 뭐, 공부에는 관심 없고 노는 것만 좋아했기에 계속 할 수 있었죠. 기술적인 부분에서 센스가 있는 편이었죠. 덩치도 있고 해서 5학년 때부터는 포수를 맡았습니다.”

특기자로 야구 명문인 신일중학교에 진학했다. 양승호(55·전 롯데 감독), 김정수(작고·전 MBC청룡)가 2년 선배였다. 그는 체격·기술·센스를 갖춘 유망주로 성장해 갔다. 하지만 2학년 막 올라갈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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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MBC경남 프로야구 중계팀, 팬과 함께


“당시에는 운동할 때 물을 못 먹게 했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탓에 신장염에 걸려 장기입원을 했습니다. 퇴원하고 다시 운동을 시작했는데, 몸도 마음도 이전 페이스로 돌아오지 않는 거예요. 그 즈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정신적인 충격도 컸고…. 신일중 졸업하면 신일고로 진학하는 게 코스인데, 저는 충암고로 갈 수밖에 없었죠.”

고교 시절에는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는 태생적으로 성격이 밝고 친화력도 좋았다. 여기서 ‘야신’ 김성근 감독 이야기가 등장한다. 당시 충암고 감독이었다.

“김성근 감독님이 한번 말씀하시면 그건 무조건 해야 해요. 운동장 50바퀴 돌리면, 다른 감독님 같은 경우 적당히 시간 지나면 그만두게 하는데, 김성근 감독님은 절대 그런 것 없어요. 훈련 끝나고 선수들 세워놓고 미팅을 한 시간 넘게 한 적도 있어요. 운동 끝나고 나면 소변 마려운데 한 시간을 어떻게 참겠어요. 다들 말도 못하고 그냥 옷에 줄줄 싸는 거지요. 저는 그래도 친화력이 있는 편이라 김성근 감독님 따까리(자질구레한 심부름을 하는 이)하면서, 감독님 방에도 유일하게 들어가고 그랬죠. 지금도 김성근 감독님은 인터뷰 다 거절해도 저한테는 해 주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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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MBC경남 김진철 아나운서와 함께

그런데 김성근 감독이 갑자기 신일고로 떠났다. 새 감독이 오자 남은 2학년 선수들은 푸대접을 받았다. 보성고등학교로 전학을 갔다. 하지만 전국대회 4강 이상 성적을 올리지 못해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다.

그래도 상무에 들어가 계속 운동을 이어갔다. 제대 무렵인 1980년대 중반이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 실업팀 창단 붐이 일었다. 사실 정부 압력에 대기업이 떠맡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가운데 대우그룹은 야구를 맡았다. 한만정 위원은 야구팀에 합류하기 위해 대우자동차에 입사했다. 새로운 삶이 기다리고 있었다.

‘자동차 세일즈’ ‘김우중’ 대우그룹 인연

한만정 해설위원은 대우자동차에서 생산현장 일과 운동을 병행했다. 하지만 야구팀은 실업팀 수준으로 이어지지 못하며 흐지부지 됐다. 그런데 그는 회사 내에서 느닷없이 노동조합 일을 맡게 됐다.

“운동선수 출신이고, 친화력도 있으니 주위에서 노조 대의원 선거에 나가라는 겁니다. 그렇게 떠밀려 나갔는데, 압도적 지지로 당선되었죠. 이후에는 노조 조직부장까지 했습니다. 나름 노사 간 조화를 이루는데 한몫했다고 생각하며 임기를 마쳤죠. 그런데 주변으로부터 ‘어용노조’ 이런 얘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죠. 그즈음 부서장이 현장직 아닌 영업직을 추천했어요. 저도 노조 얘기에 대한 회의감도 들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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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대우 소프트볼 감독 시절

영업 일을 본격적으로 하기 위해 한 달가량 교육을 받았다. 그때 한만정 위원은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었다.

“자동차 판매왕 했던 분들이 와서 강의하잖아요. 듣다 보니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까지 되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야구도 그렇고, 노조 일도 그렇고, 또 이미 아이가 둘인 가정을 풍족하게 한 것도 아니고…. 뭐 하나 제대로 한 것이 없는 거예요. ‘빈 수레가 요란만 떨었다’는 생각 같은 거죠. 그래서 이번만큼은 제대로 해보자 다짐했죠. 판매왕들이 했던 것을 그대로 따라 하기로 했죠. 매일 6시 집에서 나왔습니다. 서울 강남시장에 무작정 가서는 상인들과 안면 트고, 일 돕고 그랬습니다. 내가 자동차 영업한다는 말은 절대 하지 않고 말이죠. 그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매일 명함 100장씩 받아왔습니다. 교회에도 나가 교통정리 봉사도 하고요. 구두가 한 달에 한 켤레씩 닳더군요. 그렇게 석 달 정도 하니, 연락이 툭툭 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시장 상인들이 ‘너 대우 다닌다며?’라면서 트럭 살 사람 소개해 주고, 교회 전도사님도 부르고…. 그렇게 1년 지나니까 저 혼자서는 감당이 안 될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찾는 겁니다. 오히려 개인 직원까지 둬야 했습니다. 그렇게 1년 터울로 주임·대리·과장·차장으로 초고속 승진을 했죠. 1994년에는 대우자동차 전국 판매왕까지 했습니다. 해외여행에 르망자동차가 부상으로 나왔어요. 연봉도 1억 3000만 원정도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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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대우자동차 재직 기념패

하지만 그에게 ‘야구의 끈’은 완전히 끊어지지 않았다. 회사 사람들이 모여 이화여대 소프트볼팀과 가끔 시합했다. 하루는 감독 자리가 공석인 이화여대 선수들이 도움을 요청했다. 그는 영업 목적도 있고 해서 감독 제안을 받아들였다. 자동차 영업과 소프트볼 지도를 병행한 것이다. 졸업을 앞둔 이화여대 선수들은 실업팀이 없어 선수생활을 이어갈 수 없는 현실에 부닥쳤다. 한만정 위원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비공식적으로 대우 소프트볼팀을 운영하기로 한 것이다. 들어가는 돈은 그의 주머니에서 충당했다. 그런 상황에서 전국체전에 출전해 우승하자 회사에서 정식 팀을 창단했다. 그의 이야기가 대우그룹 총수 귀에까지 들어갔던 가 보다.

“어느 날 갑자기 기획조정실로 발령이 난 겁니다. ‘경기고 100주년 사업단’에 야구 담당으로 간 거예요.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이회창 대선 후보가 경기고 출신이잖아요. 경기고 개교 100주년과 대선이 맞물려 분위기를 띄워보자는 거죠. 당시 경기고 야구부는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김우중 회장과 마주했는데 ‘몇 년 안에 우승할 수 있느냐’고 하기에 ‘3년’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본격적으로 일을 맡으면서 팀 분위기부터 싹 바꿨죠. 지금 일본에 진출한 오승환도 그때 영입했습니다. 그리고 결국 우승 약속을 지켰습니다. 하지만 대우그룹 전체가 무너지면서 빛이 바랬죠.”

우연히 잡은 해설 마이크 ‘대박’

한만정 위원은 이화여대와 인연을 맺으면서 소프트볼 국가대표 감독까지 맡았다.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에도 출전했다. 해설 인생의 첫 출발이 이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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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정/ 남석형 기자

“남·북전을 앞두고 SBS PD가 소프트볼 해설할 사람이 없다는 거예요. 저는 팀을 이끄는 책임자니, 당연히 생각하지도 않았죠. 그런데 PD가 ‘경기도 중요하지만 소프트볼을 알리는 것도 의미 있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그 말에 꽂혀 하기로 했죠. 저는 선수들과 한솥밥 먹었으니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다 알잖아요. 그런 얘기들을 다 풀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죠. ‘저 선수 얼굴에 흉터가 있는데, 화장실에서 맞아서 그런 겁니다. 하도 남자같이 생기다 보니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남자 들어왔다고 놀란 할머니한테 맞았던 거죠.’ ‘저 투수가 술을 잘 먹어요. 오늘 소주 한 병 마시고 올라왔으면 더 잘 던질 텐데 아쉽습니다.’ 방송 보는 분들이 ‘깔깔깔’ 하면서 뒤집어진 거죠. 애초 계획은 중계를 중간에 끊는 것이었는데, 제 해설 때문에 끝까지 간 겁니다.”

이때를 계기로 소프트볼 경기가 있으면 계속 해설 마이크를 잡았다. 그러던 것이 ‘야구도 한번 해보자’는 권유가 있으면서 SBS·원음방송에서 야구 해설을 했다. 2006년까지는 야구해설과 본업인 대우자동차 일을 함께했다. 지금은 MBC스포츠플러스 프로야구 해설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스포츠는 재미있어야 한다”

KNN 이성득 해설위원이 롯데 편파해설로 유명하지만 한만정 위원도 뒤지지 않는다. 비단 NC다이노스 경기뿐만 아니다. 지난 황금사자기 고교야구에서는 “나는 NC 중계를 맡고 있기에 지역 연고팀인 용마고를 응원해야 한다”며 편파 해설을 하기도 했다. 이뿐만 아니라 그에게는 ‘만담 해설’이라는 수식어도 곧잘 붙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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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만정/ 남석형 기자

“스포츠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저는 쉽게 푸는 것이 목적입니다. 또한 서론-중론-클라이맥스-결론이 있는 해설, 야구를 넘어 인생을 논하는 해설을 하려 합니다. 예를 들어 한 관중이 파울볼을 잡아서는 아이에게 줬습니다. 그러면 그 아이 입장에서는 ‘단순한 공 하나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동차 세일즈 일을 오랫동안 한 것이 이러한 해설에 큰 도움이 됩니다. 영업은 50번 퇴짜 맞으면 1번 성공할까 말까입니다. 흔히 야구를 인생에 비유하는데, 그런 삶을 살았기에 야구 흐름도 잘 보이지 않겠습니까?”

그는 현직 프로야구 해설가 중에 유일한 부분이 있다. 프로야구와 전혀 인연을 맺지 못했지만, 해설 마이크를 잡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부분이 해설 스타일과 맞물려 곱지 않은 시선을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해설이 천편일률적으로 잘하면 뭐가 재미있겠어요. 색깔이 있어야죠. 모두 장동건같이 잘 생긴 사람만 나와야 하나요? 주연보다 감초가 필요하죠. 저처럼 좀 모자란 사람이 속을 어루만져 주는 것도 필요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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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공-두 아들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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