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 후보자 잇단 탈락에 정홍원 유임…편집국장보다 못 한 정부 인사 시스템

국무총리 후보자의 역사관 문제로 정국이 시끄럽던 최근 며칠 새 경남도민일보와 경남신문, 경남일보 등 도내 신문 3사 편집국장이 바뀌었다. 세 신문사는 모두 '임명동의제'를 시행하고 있다. 사장이 편집국장 후보를 지명하면, 기자들이 투표를 통해 동의 여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국무총리 임명동의 절차와 거의 같다.

경남도민일보의 경우 사장의 지명을 받은 후보자는 임기(2년) 동안 어떻게 편집국을 운영할지, 어떤 신문을 만들지 소견과 공약을 밝힌다. 노조와 기자회는 이에 대한 설문조사와 함께 후보자에게 하고픈 질문을 받는다. 이렇게 해서 나온 질문만 50개가 넘었다.

이어 열리는 '후보 검증 토론회'에서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되고, 패널의 질문과 후보자의 답변이 약 2시간 동안 진행된다. 토론회라곤 하지만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 가치관, 공약 등을 검증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국회의 인사청문회와 진배없다. 이런 과정을 거쳐 진행된 투표에서 과반수 찬성을 얻지 못하면 그 후보자는 탈락하고, 사장은 새 후보자를 다시 지명해야 한다. 게다가 임기 절반(1년)이 지나면 중간평가도 거쳐야 한다. 이 역시 똑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이땐 3분의 2가 거부하면 임기 중에라도 물러나야 한다.

편집국장 선임과 해임 과정을 이처럼 엄격하게 정해놓은 것은 그 자리가 가진 중요성 때문이다. 편집국장은 기사의 게재 여부와 지면 배치 등 기사 취급 결정권과 편집국 기자에 대한 인사 제청권을 갖는다. 따라서 신문의 논조와 의제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무거운 자리다. 일개 신문사의 편집국장이 이럴진대 국가 행정을 책임지는 국무총리는 오죽하랴. 반드시 인사청문회를 거치고, 임명동의까지 받도록 한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신문사에서도 좀체 일어나기 힘든 희귀한 일이 대한민국 정부에서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이 고르고 고른 끝에 지명한 국무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거치기도 전에 중대한 결격사유가 드러나 사퇴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두 명이 연달아 그렇게 탈락했다. 그러자 대통령은 더 이상 새로운 국무총리감을 찾는 일을 포기해버렸다. 실제 청와대에서 접촉한 인물 상당수가 총리직을 고사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결국 대통령은 이미 본인이 사퇴 의사를 밝혔고, 청와대가 수리하겠다고 발표까지 했던 정홍원 총리를 다시 눌러앉힌 것이다. 대통령의 인력풀 안에서는 이제 더 이상 총리감이 없다는 걸 자인한 셈이다.

국무총리 시킬 사람이 없는 나라 대한민국? 세상의 별의별 기괴한 일들을 찾아 보도하는 '해외토픽'이나 <세상에 이런 일이> 같은 프로그램에 나올 일이다. 사실 나는 유임이라는 발표를 보고 모멸감이나 분노를 느끼기보단 그냥 헛웃음이 먼저 나왔다. 내 주변 사람들도 그런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정색을 하고 이런 칼럼을 쓰는 것조차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유임 결정 이유로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공백과 국론 분열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인사청문회와 여론 탓으로 돌리고, 새누리당은 자신들이 만들었던 인사청문회 제도를 무력화하겠다고 나서는 걸 보니 이건 정말 아니다 싶다.

   

신문사 편집국장은 선임 과정도 그렇지만 부서장과 기자들에 대한 인사 제청권도 확실히 행사한다. 국무총리도 헌법에 의해 국무위원에 대한 제청권이 있지만 대통령은 이것도 무시하고 있다. 신문사 편집국장보다 못한 국무총리, 그런 국무총리조차 할 사람이 없는 대한민국. 참 부끄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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