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려는 정치인이 주목해야 할 학자

선거의 계절이자 정치의 계절이다. 정치와 선거를 통해 한국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이 주목해야 할 학자가 있다. ‘정치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안차수(50) 경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다. 그는 1993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와 오클라호마대학교에서 이 학문을 전공했다.

‘정치커뮤니케이션’이란 정치인과 미디어, 그리고 정치인과 대중 간의 소통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보면 될 듯하다. 정치학의 영역이기도 하고 언론학의 영역이기도 하다.

그는 경남도민일보 독자권익위원(고충처리인)으로 신문제작에 대한 조언과 충고, 비평을 담은 옴부즈맨 칼럼도 매월 쓰고 있다. 그를 만나 이 분야의 학문을 선택한 까닭과 과정, 지역신문이 가야할 길과 선거와 정치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많이 배울 필요 없다’던 어머니

-84학번이시죠? 1966년생이던데, 그렇다면 학교를 좀 일찍 들어가신 겁니까?

“아닙니다. 제가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본적은 진주 사봉면이었거든요. 식구가 많다보니까 좀 두고 보다가 안 죽으면 호적에 올린다고 하여 뒤늦게 출생신고를 했죠. 실제론 뱀띠입니다.”

-그러면 65년생이군요.

“덕분에 정년을 1년 더 할 수 있게 됐죠.”(웃음)

-학부는 경남대 신문방송학과를 나왔잖아요. 경남대 신방과가 몇 년도에 생겼나요?

“84년도죠. 첫 회 졸업생이죠.”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신방과 출신으로 모교의 출신 학과에 교수로 돌아온 첫 케이스네요?

“그런 셈이죠.”

-석사는 서강대에서 받으셨고, 박사는 오클라호마대학교에서 받으셨던데, 그 중간에 미네소타대학교는 뭡니까?

“그 당시는 한국에서 석사를 받아도 외국에서 다시 석사 과정을 밟는 게 일반적이었어요. 그래서 갔는데 논문을 쓰기 전에 IMF가 터졌어요. 굉장히 힘들어졌죠. 제가 갈 땐 환율이 700원대였는데, 1600원, 1700원까지 두 배 이상 올라갔어요. 그래서 한국에 되돌아오든지, 미국에서 어떻게든 버티든 해야 하는데, 한 가지 방법은 (이미 석사학위는 있으니) 박사 과정에 바로 가서 장학금을 받든지 어떻게든 버티는 것이었죠.”

-박사 논문은 뭐였나요?

“정치 캠페인 커뮤니케이션이었어요. 요즘 캠페인이 아주 공격적이잖아요. 이게 미국에서도 문제가 많는데, 그렇게 공격적인 정치 캠페인이 유권자들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투표율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 좋은 후보가 살아남는 문제, 그러니까 정치 캠페인에서 공격과 방어, 선거전략을 다룬 논문이죠.”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식구가 많다고 하셨는데, 몇 남 몇 녀인가요?

“위로 형이 한 분 있고, 누나가 넷, 그리고 제가 막내죠.”

-IMF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고 했지만, 대학 졸업 후 서강대 대학원, 그리고 미국 유학까지 갔다면 그동안 학비는 누가 대준 건가요?

“대학 다닐 때부터 거의 학비를 내지 않고 다녔죠. 아버지가 제 고등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시고….”

미국 오클라호마 대학에서./안차수 제공

-아버지는 뭘 하시던 분이었나요?

“당시 진주사범(현재 진주교대)을 다니던 중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라 일본으로 갔다가 해방되면서 넘어오셨다 하더군요. 당시 영어와 일본어가 필요한 시점에서 부산 미군부대 군수창 의약품 담당을 하셨다고 합니다. 전쟁 통에 약품이 무지 귀하던 시절 유효날짜가 지나면 모두 버리는 미군 의약창에서 민간 의약상들이 엄청난 돈을 싸들고 와서 유효기간 지난 약품 제발 팔라고 하는 걸 거절하면서 ‘저 약이면 엄청난 사람 구할 텐데 하는 갈등을 많이 했다는 말을 어릴 때 다른 분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 주위에서 약을 못 구해 발을 동동 구르면, 약간씩 융통성을 발휘하여 귀한 약을 구해기도 했다는 말도 들었고요. 그리고 마산으로 이사 와서 한국철강에서 제법 괜찮은 관리직을 하신 것 같은데, 사람들 도와주는 일은 열심이었지만, 치부나 가족 챙기는 것은 거리가 영 멀었던 것 같아요. 그래도 어릴 때 우리 집에 진공관 앰프가 있었고 고복수에서 이미자까지 음반이 가득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기분파였던 셈이죠. 항상 집에 손님이 득실거렸고, 식구들은 손님 술상 보느라 기진맥진했던 기억이 많아요. 고지식하고 원칙대로 하는 성격, 그리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 때문에 집안은 늘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좀 부유한 집안이었을 텐데, 학비 지원이 없었단 말인가요?

“어머니가 어떤 계기로 많이 배운 사람에 대한 반감을 갖고 있었어요. 배운 놈들이 못 믿을 놈이다. 그래서 고등학교 졸업하고 공무원 시험 치라고 권하셨죠.”

-중·고등학교는 어디 나왔나요?

“집이 신마산 쪽이었는데, 당시 연합고사를 쳐서 추첨을 했는데 창원고로 걸리더라고요. 중학교도 창원중학교였고….”

-대학 때부터 학비를 내지 않고 다녔다는 말은?

“거의 장학금을 받았다는 거죠. 그걸 안 받았다면 다닐 수 없었죠.”

-서강대 석사과정도 그렇게?

“서강대 갈 때 처음으로 어머니가 첫 등록금을 주시더라고요. 그리고 그 후에는 조교를 하면서 대학원을 마쳤죠. 미국 갈 때는 로타리 장학금을 받아서 갔죠. 그게 1년 정도 체류할 수 있는 금액이었어요. 그 다음에는 또 벌어서 썼죠.”

-미국에서도 알바를 했단 말인가요?

“학내 식당에서 접시 닦는 알바를 했죠. 학내에서 하는 게 임금이 높아요. 일종의 장학금 개념도 임금에 보태져 나오니까.”

-그럼 미국에 있을 때도 어머니의 지원은 없었나요?

“이거 이러다 우리 어머니 성토장 되겠는데요.(웃음) 어머니도 그 때 힘들었으니까…. 그리고 집사람이 희생을 많이 했죠.”

음악 밴드 활동으로 방황을 극복하고…

-부인이 마산MBC DJ 출신 엄혜선 씨죠? 언제 만났나요?

“흐흐흐. 별 이야기가 다 나오네요. 음. 제가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죠. 89년인가 그랬는데, 만났다기 보다 복학해보니 같이 수업을 듣는 후배 중에 그런 사람이 있더라고요. 군인처럼 당당한…. 캠퍼스 커플을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선후배로 지내다가….”

아내 엄혜선 씨./안차수 제공

-몇 살 차이인가요?

“68년생이니 세 살 차이.”

-방송 DJ는 어떤 계기로?

“학교 다닐 때 마산엠비씨가 주최한 디제이 콘테스트에서 우승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기회가 생겼죠. 아마 89년부터 ‘세계의 음악여행’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했죠.”

-대학부터 장학금을 받았다면, 어릴 때부터 공부에 관심이 많았나요?

“아뇨.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데 학문 쪽으로 인생 방향을 정한 계기가 있었을 거잖아요.

“그게 아마 군대 전과 군대 후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 돌아가신 후 방황을 좀 했죠. 그러다 손 댄 것이 음악이었고, 그래서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활동을 했죠.”

-어떤 음악활동을?

“밴드죠.”

-어떤 악기를?

“저는 베이스 기타였죠. 동기들 중에서 제가 가장 집안 간섭이 없었으니까 제가 친구들을 끌어모았죠.”

-창원고등학교에서요? 밴드 이름이 뭐였나요?

“지금은 엘레강스라고 알려져 있고, 그 전에 다른 이름을 하나 만들었는데 쓰지 않고….”

-지금도 창원고에 그 밴드가 이어져오고 있다는 말씀?

“그런 모양이더군요. 중간에 공부 방해된다고 못하게 했다가, 거기 출신 선배들을 보니 다들 괜찮거든요? 그래서 다시 학교에서 허용을 했나 보더라고요.”

-대학에서도 계속 밴드 활동을 했나요?

“대학교 밴드는 사이펀이라는 하드록 그룹으로 학교응원단 소속이었고요. 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갈등과 반항이 당시 대학문화에서 유행하던 밴드음악으로 이끈 것 같습니다. 당시 학생들이 낮에는 데모, 밤에는 모여서 노래 불렀던 같아요. 군대 가기 전까진 대부분 그랬던 거 같아요. 고등학교 때까지 책을 좀 보다가 아버지 돌아가시고 군대 갈 때까지 그랬던 거죠. 군대에서 저는 통신차량 운전했는데 주로 한 달씩 산으로 올라가서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요. 별보며 철든 거죠. 누가 그러는데 인생걱정을 하면 철든 거라는데, 걱정이 되더라고요. 앞으로 어찌 사나? 어쨌던 다시 책을 잡았고, 몇 년 동안 읽지 못한 책을 더블백으로 가득 담아 와서 산에서 읽곤 했는데, 그 속에 당시 군대서는 읽어서는 안 되는 책들도 좀 있었죠. 공부를 좀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이때 하게 된 거죠.”

대학시절 록 밴드 활동 당시./안차수 제공

-요즘도 가끔 기타를 치나요? 왜 그런 영화도 있잖아요. 중년 남자들이 다시 모여 밴드를 결성하는….

“저희가 올해 졸업 30주년이거든요. 그래서 동문회에서 30년 기념으로 간단한 공연이라도 하라고 하는데, 바쁘기도 하고, 이런 사회 분위기에서 되겠어요? 하게 되면 어렵지 않게 할 순 있을 거예요.”

-어쨌든 군 제대하고 진로를 결정했는데, 학문의 길을 택한 이유가 있나요?

“취업할 거냐, 공부할 거냐를 결정해야 하는데, 제 성격상 회사에 들어가서 남의 밑에서 순종적인 일을 못하겠더라고요. 대부분 공부하시는 분들이 그런 이유 때문인데, 저도 그렇더라고요.”

-리버럴한 성격이라서요?

“리버럴하기도 하고 직장생활을 하기에는 안 좋은 성격이죠. 시키는 대로 하지 않는…. 그래서 생각한 게 약 2년 동안 사회진출을 유예하는 대학원으로 간 거죠.”

-그래도 오클라호마에서 학위를 받고 귀국하자마자 용케 교수가 되신 거네요?

“아니죠. 돌아와서 6개월 정도 시간강사를 했죠. 그 때 고생 좀 했어요. 왜냐하면 당장 생계를 해야 하니까 집사람이 다시 방송 일을 했거든요. 그 때 제가 아이들을 봤죠. 아이들이 그 땐 어렸기 때문에….”

-미국에서도 부인과 함께 있었군요. 자녀는 어떻게 되시나요?

“아들만 둘입니다.”

미국 유학시절 공부하던 모습./안차수 제공

지역신문이 갈 길은 오로지 지역밀착

-이 정도로 호구조사는 마치고 신문 이야기 좀 해볼까요? 경남도민일보는 ‘지역밀착’ ‘독자밀착’ ‘독자참여’를 모토로 사람을 특히 중시하는 지면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하버마스가 말한 개념이죠? 신문이 지역사회 공론장(Public sphere)으로써 건강한 지역공동체(Local Community)를 구축한다는 게 저희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지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죠. 언론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역신문의 지향과 목표는 어떠해야 할까요?

“철저히 그렇게 되어야죠. 지역신문이 철저히 지역에 밀착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중앙지’ 흉내를 내선 지역에 뿌리내리기 어렵죠. 말 그대로 로컬 커뮤니티 역할을 해야죠. 서구의 경우 애초부터 도시국가로 존재했으니까 그런 커뮤니티가 잘 되어 있죠. 우리는 도시의 역사가 짧아 커뮤니티 형성이 잘 안 돼 있지만 신문이 그런 역할을 해야죠.”

경남도민일보 창간 15주년 기념식장에서./김구연 기자

-독자가 참여하고 독자가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신문, 이웃과 이웃의 소통망이 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1면에 매일 ‘함께 축하해주세요’ ‘함께 응원해주세요’ ‘함께 격려해주세요’ 등 평범한 독자들이 보내오는 짧은 메시지와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신문 중에서는 경남도민일보가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는 지면인데, 혹 외국의 지역신문에선 이와 유사한 코너나 지면이 있을까요?

“예. 이런 코너는 외국의 신문에서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출생했다는 소식도 그 지역신문에 다 실립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날 치 신문을 찾아보면 자기의 출생소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고도 마찬가지고요.”

-원주투데이 오원집 발행인이 미국 지역신문 연수 때 방문한 지역신문의 그날 1면 머리기사가 동네빵집 주인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이제 다시는 그 분이 만든 빵을 먹을 수 없으니까요’라는 답을 들었다더군요. 실제 미국 지역신문들에는 어떤 기사들이 실리나요?

“그게 미국적인 거죠.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게, 보통사람들도 언제든 우리의 히어로(영웅)가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보통사람들의 성공스토리가 굉장히 중요하게 취급되죠. 그리고 미국의 지역신문들은 우리와 달리 이중적이지 않아요. 우리는 일단 언론이라면 권력기관으로 상정하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기자들 급여도 그냥 보통 수준이고 단지 내가 좋아서 하는 직업일 뿐이지, 정치·사회·경제적 파워그룹의 일원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자주 가던, 우리가 아끼던 커피숍에 무슨 일이 생기면 기사가 되는 거죠.”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우리는 주로 관공서를 위주로 한 출입처 중심의 취재시스템이잖아요. 미국은 다른가요?

“일단 우리와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죠. 미국의 행정관서는 상시적으로 보도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만 브리핑을 한다든지 하는 거죠. 문화 자체가 달라요. 행정이나 국가, 정치가 우리만큼 국민들의 생활 하나하나에 개입할 일이 없어요.”

-우리가 미국에 비해 관의 영향력이 크다는 얘긴가요?

“엄청나게 크죠.”

-저희는 마산 어린교 오거리의 지하보도와 육교 때문에 횡단보도가 없어 노약자들의 보행권 확보가 안 된다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지하보도와 육교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성과를 낸 적이 있습니다. 또 한 버스정류장의 고질적인 불법주차 문제를 고발해 고친 일도 있고요. 비록 특정한 작은 지역의 사소한 문제이지만, 이와 비슷한 곳이 곳곳에 있을 거라는 차원에서 동네 주민의 작은 불편이나 민원 해결에도 나서야 하는 게 지역신문의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보도가 우리나라 신문에선 익숙하지 않다보니, 오히려 독자님들이 생경해하고 이상하게 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게 과연 1면에 실릴 기사냐’는 식의 항의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쨌든 신문이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건 다 느끼고 있는 현실이고요. 신문만 아니라 뉴스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워낙 많아진 상황에서 매체 특성에 맞는 쪽으로 변해야죠. 예를 들어 밀양 송전탑 문제나 진주의료원 폐업처럼 주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그 나름대로 역할을 다한다는 전제에서 보통사람들의 삶, 그 삶의 고단함, 성실한 사람들의 위대한 스토리도 1면에 담을 수 있어야죠.”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사이비언론, 학자·시민단체가 나서야

-사이비언론 문제가 경남에서도 심각한데요. 심지어 무보수 명예직으로 기자를 채용하는 신문도 있더군요. 월급 대신 광고 권장비만 지급하는 곳도 있고, 쥐꼬리 만한 월급을 주더라도 할당된 의무 구독자 수를 채우지 못하면 구독료를 기자더러 대납하게 하는 신문사도 있더군요. 또 신문사에서 ‘연감’ 따위의 책자를 만들어 20만 원 정도 비싼 가격으로 각 기관, 단체, 기업은 물론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에게 강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고질적인 문제인데요. 혹 외국에도 이런 사이비언론이 있나요?

“미국에 있는 동안 그런 사이비언론은 보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언론통폐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가령 지역신문발전지원법에 따른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신문사에만 정부와 자치단체, 공공기관의 홍보예산을 집행하도록 제한한다든지….

“참 어려운 문제죠. 좋은 언론이 소멸되고 사이비언론이 판을 치게 되면 공론장이 붕괴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죠. 그런데 얼마 전에 보니 경남에도 신문의 숫자가 60여 개나 되더군요. 문제는 이 중에서 ‘괜찮은 언론’을 가려내는 건데요. 법에 따른 지원요건에 부합하는 신문에만 예산을 집행하도록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긴 하죠. 하지만 그걸 정부가 강제하게 되면 언론 통제라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죠. 따라서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요구하는 게 맞죠. 그러니까 우리 시민들이 이런 사이비언론 때문에 힘들다는 거죠. 좋은 언론을 고사시키고, 여론을 호도하고, 선거 때면 줄서기를 하고, 기업들의 약점을 잡아 책이나 광고를 강요하고 이런 폐해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독버섯 같은 사이비 언론에는 시민의 세금을 지원해선 안 된다는 요구를 학계와 전문가, 시민단체들이 하자는 거죠. 신문등록을 취소한다든지 그렇게는 않더라도 최소한 지원은 안 된다는 시민의 입장을 전달하는 거죠. 행정은 주민의 요구를 들어야죠.”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그게 결국 시민의 수준이고 민도인 셈인데,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도 지금 학생들을 취업시킬 때 4대 보험은 되는지, 근로조건은 어떤지 이런 걸 따지잖아요. 우리가 볼 때도 언론사가 가져야 할 기본적인 조건이 있지 않겠어요? 그 기본 조건을 지역신문발전위원회에서 만들어놓은 거잖아요. 종업원을 정식으로 고용하는지, 4대 보험은 되느냐, 임금체불은 없느냐, 소유주가 범법사실이 있느냐, 편집 자율성은 보장돼 있느냐 하는 이런 조건이 있으니까 그걸 지방자치단체도 받아들여서 예산 집행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는 거죠.”

-경남도민일보가 창간 15주년을 맞았는데요. 저희한테 조언이나 충고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경남도민일보는 잘 하고 있죠. 과거 마산MBC도 상당히 혁신적인 프로그램이 많았잖습니까? ‘두드릴고’라든지 ‘아구할매’라든지…. 그래서 예전에 어디 가면 항상 우리 지역에 이런 자랑스러운 지역언론이 있다고 얘기해왔습니다. 현재 MBC는 위축이 되었고 경남도민일보는 안정화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MBC의 경우 중앙과 관련이 깊고 방송의 내용이 지역적 특성을 이루어내는데 실패한 통폐합의 길을 걷게 되었죠. 반면 경남도민일보는 그야말로 지역에 밀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바로 그 점이 지역 언론은 지역성, 정확히 말하면 지역 정체성만이 활로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2002년에도 그런 위기가 있었듯이, 조직이라는 게 쌓아 올라가기는 어려운데 위태로워지거나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지금 이 마음으로 바른 언론, 든든한 지역 언론으로 발전해가길 바라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여론조사로 후보 공천? 말도 안 돼!

-지방선거철인데요. 외국의 지역신문들은 지방선거 보도를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벤치마킹해볼만한 보도방식이라든지, 원칙이라든지 그런 게 있을까요?

“미국언론은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죠. 그러면서도 사실보도에서는 상당히 균형을 맞추거든요. 그런데 선거 때 후보자들이 언론을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습니다. 워낙 선거마케팅 기법이 발달해있기 때문이죠. 여론조사라든지, 의제와 이슈 제기 등을 통한 PR 기법이 신문기사를 어떻게 만들어내나 하는 것은 연구도 많이 나와 있어요. 그래서 언론이 후보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후보가 밝히는 공약을 그대로 다 싣지 않아요. 과연 그 공약이 타당한지,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상대를 비판하는 말은 과연 정당한지, 이런 걸 전문가와 함께 팩트를 동원해서 체크를 해본다는 거죠. 그래서 맞다-틀렸다가 아니라 이건 상당히 신뢰성이 있다, 이것은 허언에 가깝다, 이것은 의도는 좋으나 실현가능성이 낮다 이런 식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거죠. 물론 그런 팩트 체크와 평가 시스템은 신문사가 개발해야 하는 거죠.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각 지역신문에도 모범적인 시스템이 많이 누적돼 있어요. 그런 걸 우리도 도입했으면 좋겠어요. 매니페스토가 있긴 하지만 공약의 실현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한계가 있어요. 공약 그 자체가 나쁜 공약인지는 가려내기 어렵거든요.”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 보도가 문제가 되는데요. 최근 경남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죠. 표본이 잘못됐다든지, 결과가 조작됐을 여지가 있다든지. 또한 비록 제대로 요건을 갖춘 조사를 했다 하더라도 사실 예비후보의 인지도 자체가 낮은 상태에선 결국 인지도 높은 사람이 지지율도 높은 것처럼 왜곡될 가능성이 높죠.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요?

“우선 당내 경선을 여론조사로 해버리는 것은 큰 문제라고 봐요. 그건 그야말로 승리할 가능성이 많은 자에게 그냥 주겠다는 것이죠. 누구 이름을 많이 들어 봤나, 누가 인기가 많으냐는 거죠.”

-그렇죠. 이미 유명한 사람, 이미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거죠.

“그렇죠. 누가 더 이번 선거에 적합하냐고 물어봐도 그냥 사람들은 인지도로 평가해버리죠. 당내 경선이라면 그 정당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구현할 사람을 내세워야 하는데 이런 여론조사 경선은 문제가 있죠. 그래서 당내 경선을 하면서 왜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에게 부담을 주느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거죠.”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미국에서도 비당원까지 포함하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하지 않나요?

“여론조사로 공천하진 않죠. 오픈프라이머리도 일부에 국한된 것일 뿐 진성당원에 의해 결정하는 방식이 훨씬 압도적이죠. 어떤 후보의 어떤 정책이 우리 당의 지향과 부합하느냐는 당내 토론을 거치면서 당원들이 많이 몰리는 쪽으로 결정되는 거죠.”

김제동·윤도현 등 유명인 영향력 연구

-요즘 관심을 두고 있는 연구과제는 뭔가요?

“지금 유명인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경우 오프라 윈프리라는 유명한 방송인이 있는데요. 사실상 오바마 대통령을 당선시킨 일등공신입니다. 아까 저에게 왜 학문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느냐고 물으셨는데요. 사실 항상 빚이 있었어요. 80년대 한참 민주화운동이 불타오를 때 군대에 있었고, 그래서 사회에 빚진, 부채의식이 있죠. 그래서 학문 분야를 택할 때도 철저하게 실용적인 쪽을 했어요. 사회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쪽으로. 정치 커뮤니케이션 중에서도 실용적인 연구를 통해 어쨌든 한국의 정치지형을 바꿔내는 데 도움이 될 연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처음에 했던 것이 정치광고입니다. 그걸 통해 좋은 후보나 좋은 정치세력의 지평을 넓히는데 기여하고자 한 거죠.”

-박사과정에서 전공한 것도 그건가요?

“예. 그래서 오클라호마대학이 정치광고 분야에선 세계 최곱니다. 가장 많은 자료를 갖고 있어요. 수십만 개의 세계 정치광고를 다 갖고 있죠. 그래서 몇 년 동안 그것만 봤죠. 그러면 패턴이 나오잖아요. 어떤 캐릭터가 어떤 정책을 갖고 뭘 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걸 공부해서 한국에 오면 내가 지지하거나 한국에 필요한 정치세력에 도움이 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한국에 보수 우익은 과잉이잖아요. 리영희 선생님 말마따나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날아야 하니까 다양성이 필요한 것이고…. 그래서 오자마자 많이 불려 다녔잖아요. 아시다시피. 그렇게 10년이 되었네요. (지금 진보세력이 처한 상황을 보면) 만감이 교차하는 거죠.”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네. 그 때 기억이 납니다.

“이번 세월호 때문에 느낀 게 이런 상황까지 벌어지게 된 책임이 보수 쪽에만 있는 게 아니라 진보 쪽에도 있다는 거죠. 서로 조금의 양보를 못해서, 조금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해서 이렇게 와해된 측면이라든지, 그래서 건강한 진보까지 다 잃어버린데 국면, 이런 게 참 안타깝죠.”

-정치커뮤니케이션이라는 분야가 조지 레이코프의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는 책 내용과도 연관이 되는 건가요? 프레임과 네이밍이 중요하다는….

“맞습니다. 그거죠.”

-그럼 유명인 연구는 정치커뮤니케이션과 어떤 연관이?

“조지 레이코프의 책은 직접 선거캠프가 유권자를 상대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룬 거라면 유명인 연구는 간접적인 거죠. 그러니까 사람들이 어떻게 해서 저들을 받아들이게 되고 좋아하게 되느냐 이런 거죠. 그런데 요즘 사람들이 정치를 혐오스럽게 생각하고, 특히 젊은 층들은 이탈해버렸잖아요. 이건 미국도 그렇죠. 결국은 투표를 해야 세상이 바뀌는데 아예 안 해버리니까 이게 문제잖아요. 그래서 그럼 젊은 사람들은 뭘 좋아하느냐는 거예요. 스타죠. 셀레브리티, 유명인, 그 중에서도 젊은이들의 롤 모델이 되는 좋은 사람들의 조그만 움직임이 엄청난 효과를 발휘한다는 거죠. 그래서 저는 지금 김제동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 유명인이 정치나 선거에 어떤 영향을 얼마나 미치나를 연구하는 건가요?

“김제동 뿐만 아니라, 사실 보수는 지지층이 공고하잖아요. 이건 미국도 마찬가지거든요. 기독교 근본주의라든지, 게이 문제를 용납하지 않는 사람들이라든지, 그래서 진보가 이기려면 기존의 자원과 방식만으로는 어렵다는 거죠. 그래서 한 분야가 미디어인데요. 예전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 노사모가 새로운 방식으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활용했잖아요. 자원도 모자라고 맨 파워도 부족할 때 누가 어떤 미디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 되는 거죠. 거기에 유명인이 결합하면 큰 힘이 될 수 있죠.”

-그 연구는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나요?

“두 개는 이미 발표했죠. 유명인의 호감도와 의견일치도, 그것이 정치에 대한 관심과 후보 지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한 거죠. 김제동은 확실히 파워풀합니다. 윤도현, 이효리, 김여진 등 저쪽에서 소셜테이너라고 딱지를 붙인 사람들, 그리고 유인촌, 김흥국도 넣어봤죠.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좋아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의견을 따르는 것은 아니라는 거죠. 도올 김용옥? 그 사람의 학식은 높다고 생각하지만, 젊은 사람들과 교감은 별로 없어요. 반면 소설가 이외수는 젊은 사람들과 코드가 맞아요.”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김구연 기자

그가 발표한 유명인에 관한 논문은 「정치참여 연예인 및 인기 지식인의 선거 영향력」(정치커뮤니케이션 연구, 통권 31호)과 「유명인의 정치참여와 대학생의 정치태도 및 투표행위에 관한 연구」(언론과학연구, 13권 2호)였다.

전국 8개 대학 446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유명인에 대한 호감도와 의견일치도, 선거관심도, 후보지지도 등을 조사한 연구였는데, 호감도에서는 윤도현이 가장 높았고, 김제동, 이외수, 이효리, 공지영, 진중권, 김여진, 김용옥, 주진우, 김미화, 문성근, 조국, 김흥국, 변희재, 유인촌 순으로 나왔다. 반면 의견일치도에서는 김제동이 가장 높았고, 이외수, 윤도현, 이효리가 뒤를 이었다.

이들 중 김제동은 호감도와 의견일치도, 선거 관심, 정치 참여, 후보 지지 등에 모두 강력한 영향력을 보였으나 윤도현은 높은 호감도와 의견일치도에도 불구하고 영향이 없거나 오히려 정치 참여를 억제하고 후보 지지 감소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논문은 이렇게 분석한다.

“김제동이 일련의 정치적 사건과 그의 토크 콘서트를 통하여 그 정치적 가치와 의견이 보다 명료하게 대학생 집단에 공유될 가능성과 달리, 윤도현과 이효리는 다소 막연하게 정치적 입장을 위치시킴에 따라 후보 지지의 방향성과 결부되지 못했을 가능성을 유추할 수 있다.”

결국 평소 꾸준한 소통(communication)이 답이라는 것이다.

조지 레이코프 교수가 미국에서 그랬듯이 그의 이런 연구가 한국의 정치지형을 바꾸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안차수 경남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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