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속으로] MBC 드라마 조기종영

참으로 대중적인 취향을 가졌건만 유독 드라마 선택에선 맥을 못 춘다. 꼼꼼히 방영 시간을 챙겨가며 시청하는 드라마들이 유독 조기종영 압박에 자주 시달리는 걸 보면 나의 취향을 회의적으로 돌아봐야 할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MBC <개과천선>이 '웰 메이드'라는 평판 속에서도 영 시청률에서 맥을 못 춰 안타까움을 자아내더니 급기야 조기종영으로 쐐기를 박는다.

애초 18회로 종영할 예정이었으나 2회를 축소해 16회로 마친다는 것이다.

MBC 측은 이에 대해 "6·4 지방선거 개표 방송과 월드컵 평가전 중계 등에 따른 결방 때문"이라며 "주연배우 김명민의 영화 스케줄로 인해 추가 촬영이 어렵다"고 해명했다.

절대 시청률 때문이 아니며 '이게 다 김명민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MBC 시청자 게시판은 조기종영의 근거가 충분치 않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18부작은 원래 드라마 제작 전부터 계획된 것이고, 6·4 지방선거 개표방송이나 월드컵 평가전 중계 등이 돌발적인 상황이 아닌데도 두 차례 결방 탓에 출연진의 스케줄을 맞추지 못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논란이 가열되자 김명민 측은 지난 14일 장문의 보도자료로 상황을 설명했다.

요는 "MBC가 조기종영 이유를 김명민의 스케줄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26일까지 촬영을 해서라도 18부를 소화하고 이동하기로 약속했지만 촬영 현장은 그렇게 돌아가지 못했다"라고 열악한 제작 환경이 이런 사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김명민 측은 또 "유종의 미를 거두고자 극도의 피로와 스트레스 속에서도 고군분투하려 했던 배우에게 모든 잘못의 굴레가 씌워지는 듯한 모양새는 옳지 않은 것 같다. 그저 연기만 하고 싶어 하는 배우가 이런 일련의 소란스러운 과정 때문에 아직 남은 기간 연기하는 데 방해가 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앞선다"는 말도 덧붙였다.

결방이 되면 촬영 시간이 좀 더 확보되고 조금의 여유가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쪽대본과 거의 '생방'으로 진행되는 드라마 제작 현실 속에 보기 좋게 빗나갔다.

MBC가 시청자와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이유를 배우 탓만으로 돌린 것은 아무리 봐도 성급했다.

MBC의 옹색한 해명 탓에, 저조한 시청률은 물론 부조리한 현실 풍자와 관련한 외압 때문에 조기종영됐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시청률에 탄력을 받으려던 찰나에 결방은 독으로 작용했음이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개과천선>을 시청률의 잣대로만 평가하기엔 아쉬움이 남는다.

2007년 태안 기름유출사고를 비롯해 복잡한 금융사기 사건이었던 키코 사태, 재벌의 부실 사채 판매 등을 연상시키는 에피소드를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금융과 관련한 지식이 없는 시청자도 푹 빠질 만큼 이해하기 쉽고 긴박하게 끌고 가는 구성이 탁월했다.

<개과천선>은 이제 막 기억상실 전의 김석주와 기억상실 후의 김석주가 싸우는 이야기의 물꼬를 텄다. 차영우 로펌을 떠난 김석주와 차영우 로펌에 스카우트된 전지원(진이한), 차영우(김상중)와 치열한 두뇌 싸움도 시작되려는 찰나다.

아버지와 관계를 통해 자신이 차영우 로펌에선 절대 하지 않았을 서민들의 편에서 변호를 맡게 되는 과정과 그 속에서 김석주가 어떻게 개과천선할지 설득력을 얻어야 할 시간은 이제 단 3회다. 김석주는 아버지와 화해도 드라마틱하게 이끌어내야 한다. 악혼녀, 여주인공과 관계는 또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조기종영이라는 갑작스러운 결정 앞에 <개과천선>이 과연 중심을 놓지 않고 시청자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그런데 말입니다!"

혹여 <개과천선>의 시청률이 독보적으로 좋았다면 이리도 쉽게 조기종영을 결정할 수 있었을까?

온갖 해명이 오가지만, 시청률이 잘 나오면 추가방영을 이야기하고 저조하면 조기종영부터 이야기하는 행태를 우리는 수없이 보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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