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과 향, 맛과 육즙이 어울려 재료의 맛을 결정한다. 어느 한 가지만으론 맛을 낼 수가 없다. 수박이 달다고 해서 수분이 없다면 단맛 나는 가루에 불과할 것이다. 또한 멍게가 색이 좋다고 해도 그 향이 없다면 그냥 노랗고 물컹한 어떤 것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맛을 결정하는 것은 조화다.

'맛있는 경남'은 지리산 물을 제외한 총 22가지의 식재료를 다뤘다. 각 재료마다 각기 특징이 있었는데 어떤 것은 향에 끌렸고 어떤 것은 색에 끌리기도 했다. 이는 바다에서 났거나 땅에서 났다고 해서 드러난 차이가 아니다. 색에 끌려 눈을 잡는 것, 꼭꼭 씹어 단맛이 나게 하는 것. 코를 대고 향을 맡게 하는 것, 이 세 가지로 22가지를 분류해 봤다.

푸른 아침바다와 이어진 남해의 시금치 밭은 아름다웠다. 푸른 잎마다 맺힌 이슬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니 바다와 땅이 한 몸이 되었다. 우리는 흔히 시금치를 익혀서만 먹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남해 사람들은 싱싱한 것을 따서 그냥 먹는다. 상추와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색이 진하고 두툼한 것을 하나 따 먹어 봤을 때 그 맛을 잊지 못한다. 아삭하고 달았다. 겨울 바람을 맞아 더 이상 크지 않고 속으로만 영근 맛이다. 그래서 요즘은 김밥을 먹을 때도 시금치를 한 번 더 보게 된다. 기특해서다.

남해 시금치.

멥쌀로 빚은 망개떡에 푸른 망갯잎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요즘엔 소금에 절여 보관한 것을 내 떡을 싸지만 그 색은 여전하다. 하얀 떡이 푸른 잎에 싸인 그것을 보면 절로 손이 간다. 색에 끌리는 것이다.

의령 망개떡.

딸기는 아무리 향이 달다고 해도 그 붉은색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수박도 마찬가지다. 짙은 초록에 굵고 선명하게 줄이 가야 수박이다. 또한 갈랐을 때도 선명한 붉은 색이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수박과 딸기만큼 색으로 사람을 유혹하는 음식도 없다. 특히 수박은 이번 연재를 통해 새로운 매력을 발산했다. 수박의 껍질과 씨가 가진 효능 때문이다. 정력에 좋다는 수박 껍질을 이번 여름에 많이 드셨으면 한다.

함안 의령 수박.

왜 멍게와 털게가 '색'으로 왔는지 의아해할 것 같다. 둘 다 특유의 향으로 사람을 끄는 식재료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멍게의 선명한 주황색과 털게의 황금빛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 색은 맛을 그리게 한다. 그러니 맛보기 전에 맛있는 것이 멍게와 털게다.

남해안 털게.

최고의 향이라면 역시 굴이다. 비릿한 바다의 향과 굴 특유의 향은 그 맛을 다시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다. 통영의 한 굴 전문점에서 맛본 코스요리는 돈이 아깝지 않았다. 짭조름한 굴 구이와 새콤한 굴무침을 먹다가 탕수육과 국밥으로 마무리하면 고급 한정식 상이 부럽지 않았다.

통영 굴.

멸치 또한 비린 향이 장점이다. '처서(處暑)' 전에 잡아 잘 말린 멸치의 머리와 내장을 따 씹으면 짜고 달고 고소하다. 또한 남해 창선이나 미조에 가면 맵싸한 멸치쌈밥을 먹을 수 있는데 두툼한 멸치 살을 싱싱한 채소에 싸 먹는 맛이 아주 좋다. 땀을 뻘뻘 흘리며 먹다보면 그야말로 밥도둑이다. 생멸치가 올라오는 봄과 가을에 맞춰 간다면 더 좋다.

남해 멸치.

미더덕은 그 자체가 향이다. 산에서 나는 더덕의 그것과 닮은 껍질을 살짝 까서 탱탱하게 부푼 배를 따 그대로 먹으면 바다가 입 안으로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생미더덕을 잘 다져서 김가루와 들기름을 붓고 비벼 먹으면 간단하게 고급요리를 맛볼 수 있다.

미더덕.

재첩도 만만찮다. 숙취를 풀기 위해 재첩국을 찾으면 먼저 그 향에 속이 풀리는 듯하다. 잘게 썬 부추와 매운고추를 넣고 빈속에 한 모금 마시면 속이 편안해지면서 열이 오른다. 섬진강이 내려다보이는 곳에서 먹는다면 믿을 수 있고 몸에도 좋은 재첩요리를 맛볼 수 있다.

마늘과 산양삼은 쓴 향이나 질리지 않을 건강한 향이다. 또한 그 향이 없었다면 특유의 쓰고 매운 맛을 어찌 감당했을까. 몸에 좋은 것이 쓰다곤 해도 흙냄새와 섞인 그 향이 없었다면 이렇듯 인기가 없을는지도 모른다.

마늘.

녹차는 궁극의 향이다. 맛이 향이나 다름없다. 차는 향으로 먹고, 색으로 먹고, 맛으로 먹는다지만 아무래도 차는 향이다. 때문에 흐린 날 맛이 다르고, 맑은 날 맛이 다르다. 또 도시에서의 맛이 다르고, 산에서의 맛이 다르다. 쌍계사 계곡에서 마신 '황차'를 생각하면 지금도 침이 고인다.

녹차.

 

최고의 향이 굴이라면 최고의 육은 갯장어다. 흔히 '하모'라 불리는 이것은 통제하기 힘들 정도로 힘이 좋다. 전갱이 살을 잘라 일일이 낚싯바늘에 꿰어야 잡을 수 있을 만큼 잡기도 어렵다. 때문에 비싼 몸값을 자랑한다. 두툼한 살을 길게 갈라 구워 먹으면 최상급 민물장어 못지않다. 차지고 달고 고소하다. 때문에 샤부샤부용으로도 인기가 많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회다. 물기를 잘 빼고 잘게 썬 갯장어 회는 여름철 별미다.

하모회.

전어도 고소하다. 살이 붉은 전어는 지방도 많아 뼈째 썰어 회로 먹을 때 가장 맛있다. 초여름에서 초가을까지가 제철인데 더 큰 것은 구워먹는다. 집 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바로 그 맛이 이 순간에 나온다. 지방과 가는 뼈들이 불에 익으면서 사람 애간장을 녹인다.

남해안 전어.

물메기는 가장 특이한 '육'이다. 흔히 무와 모자반을 넣고 끓여 먹는데 술꾼들에겐 최고의 해장국으로 통한다. 부드러운 살과 물컹한 껍질을 함께 후루룩 마시면 생복어국이 부럽지 않다. 물메기는 말려서도 먹는데 큼큼한 향이 나는 그것을 쌀뜨물에 불려 쪄 먹어도 맛있고, 그냥 찢어 먹어도 맛있다. 겨울이 빨리 왔으면 하는 이유는 오로지 이 물메기 때문이라 할 정도다.

근육질 조개로 소개한 피조개는 자체로 훌륭한 식품이다. 초봄에 진해나 마산수협 등지에서 회로 포장된 것을 사 그냥 먹어도 좋고 무쳐 먹어도 좋다.

진해 피조개.

흑돼지는 맛있는 경남의 식재료 중 가장 무거우면서 고칼로리 음식이다. 때문에 느끼할 것이란 선입견을 갖고 취재를 갔었다. 하지만 지리산 마천계곡에서 먹어본 흑돼지 구이는 지방이나 다이어트 따위는 잊고 싶을 정도로 맛있었다. 대를 이어온 고기 숙성법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두툼하게 살이 오른 홍합은 가장 추천하고 싶은 식재료다. 무엇보다 싸고 싱싱했기 때문이다. 단 몇천 원으로 한 가족이 풍성하고 건강한 한 끼 식사가 가능한 재료이기 때문이다. 잘 씻어 끓여 국물과 함께 먹어도 좋고, 살짝 끓여 쌀에 국물과 함께 넣어 밥을 해 먹어도 좋다. 넓은 그릇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게 퍼서 참기름을 올려 비벼 먹으면 아이들도 좋아할 맛이다.

마산 홍합.

사과와 단감이야말로 육질이 맛을 결정한다. 꼭지와 반대편 배꼽 부분이 예쁘게 안으로 말려 올라갈 때까지 잘 익혀야 상품이 된다. 또한 하나의 좋은 육질을 위해 끊임없이 솎아줘야 한다. 그래서 사과나 단감은 스스로 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키우는 것이다. 또한 버릴 것 없이 몸에 좋은 과일이라 가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지역의 축복이다. 특히 단감의 감식초나 감잎차는 뛰어난 건강식으로 알려져 있다.

가까이 있어서 축복인 것이 또한 양파다. 각종 음식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으면서 성인병과 항암효과까지 뛰어나다. 심지어 싸고 흔하기까지 하다. 

거창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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