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라스트베가스

중년 혹은 노년의 삶을 들여다보는 다양한 장르의 시도가 많아졌다. 중·노년층의 연륜과 지혜가 주는 감동과 함께 사랑과 가족 등에 대한 의미를 깨닫게 하는 데 '실버' 코드는 참으로 유용한 듯하다.

그러나 문득문득 서글프다. 일흔 살 욕쟁이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스무 살의 몸을 갖게 된다는 <수상한 그녀>. 20살 오두리의 뽀얀 피부가 유독 눈부셨던 건 세월을 거스를 수 없었던 오말순 여사의 늙음과 대조를 이루기 때문이다.

늙음이 내가 잘못해서 받은 벌이 아니라 해도, <은교>에서 이적요가 느꼈던 절망스럽기까지 하던 외로움은 텅 빈 듯한 그의 육체를 바라보는 데서 시작된다.

이런 가운데 지난 8일 개봉한 존 터틀타웁 감독의 신작 <라스트베가스>는 노년의 현실을 동력 삼아 판타지로 유쾌한 여행을 떠난다.

'58년 우정을 지켜온 무적의 4인방'.

오랜만에 전화 온 친구가 새 소식이 있다고 하자 "전립선?"이라고 건강 걱정부터 한다거나, 빌리(마이클 더글러스)가 32살 여자와 결혼한다고 말하자 "내 치질이 32년째"라고 응답하는 등 직설적인 대화로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전화로만 서로 안부를 묻던 이들이 간만에 뭉칠 기회가 생긴다.

70살의 빌리가 32살짜리 '베이비'와 결혼을 발표하면서 샘(케빈 클라인)과 아치(모건 프리먼)가 총각파티를 열어주겠다고 나선 것.

아내 장례식장에 오지 않은 빌리에게 토라져 있는 패디(로버트 드니로)도 우여곡절 끝에 여행에 합류하게 된다.

자꾸만 고장을 일으키는 몸 때문에 서글픈 아치와 늙어가는 것에 외로움을 느끼던 샘. 아내를 잃은 슬픔으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패디.

'머리로는 몸이 늙어가는 걸 받아들일 수 없어' 베이비와 결혼을 결심했던 빌리까지 노년의 우울하기만 했던 삶은 라스베이거스에 도착하면서부터 180도 달라진다.

쿨한 아내 덕에 콘돔과 비아그라를 들고 비행기에 오른 샘, 아들 몰래 연금의 절반을 털어 복대에 품은 아치 등 일상을 벗어난 그들은 라스베이거스와 친구 덕분에 어릴 적 기분에 휩싸인다.

하지만 정지선이 없을 것 같던 그들의 일탈은 술도, 파티도, 춤도, 여자도, 도박도 딱 적정선에서 멈춘다. 초반의 격한 들뜸에 함께 들떴던 관객이라면 실망스러울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그들의 안정적 일탈이 싱겁게 느껴지지 않는 데는 어느덧 일흔 안팎에 접어든 네 배우의 앙상블과 능청스러운 연기에 있다.

마이클 더글러스, 로버트 드니로, 모건 프리먼, 케빈 클라인의 농익은 연기를 한자리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입가엔 미소가 번진다.

젊은 날을 회상하며 그때의 감정을 그리워하지만, 늙어가는 현실 또한 인정하는 그들을 통해 내 인생의 '화양연화'는 바로 지금임을 깨닫는다면 <라스트베가스>에서 보낸 2시간의 여행이 아깝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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