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5주년 특집 안차수 독자권익위원-김주완 편집국장 대담

경남도민일보에는 독자권익위원(고충처리인) 제도가 있다. 독자권익위원은 오보나 명예훼손 등 보도로 말미암아 독자의 권익이 침해당했을 때 이를 조사해 신문사로 하여금 정정이나 반론보도, 손해배상을 권고하는 일을 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하려면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고 시간도 많이 걸리지만, 독자권익위원을 통하면 인터넷 게시판(http://www.idomin.com/bbs/list.html?table=bbs_50)에 글을 올리거나 간단히 전화 한 통으로 처리할 수 있다.

현재 본사 독자권익위원은 안차수 경남대 신문방송학과 교수(51)다. 언론학자로서 그는 신문제작에 대한 조언과 충고, 비평을 담은 옴부즈맨 칼럼도 매월 쓰고 있다. 미국 미네소타대학교와 오클라호마대학교에서 정치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그를 김주완 편집국장이 만났다. 창간 15주년을 맞은 경남도민일보를 그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경남도민일보는 '지역밀착' '독자밀착' '독자참여'를 모토로 사람을 특히 중시하는 지면을 제작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신문이 지역사회 공론장(Public sphere)으로써 건강한 지역공동체(Local Community)를 구축한다는 게 저희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물론 궁극적으로는 이를 통해 지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도록 하는 게 목적이죠. 언론학자의 입장에서 볼 때 지역신문의 지향과 목표는 어떠해야 할까요?

"철저히 그렇게 가야죠. 지역신문은 철저히 지역에 밀착하지 못하고 어중간하게 '중앙지' 흉내를 내선 지역에 뿌리내리기 어렵죠. 말 그대로 커뮤니티 역할을 해야죠. 서구의 경우 애초부터 도시국가로 존재했으니까 그런 커뮤니티가 잘 되어 있죠. 우리는 도시의 역사가 짧아 커뮤니티 형성이 잘 안 돼 있지만 신문이 그런 역할을 해야죠."

-독자가 참여하고 독자가 언제든 활용할 수 있는 신문, 이웃과 이웃의 소통망이 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1면에 매일 '함께 축하해주세요' '함께 응원해주세요' '함께 격려해주세요' 등 평범한 독자들이 보내오는 짧은 메시지와 사진을 싣고 있습니다. 제가 알기론 우리나라 신문 중에서는 경남도민일보가 유일하게 운영하고 있는 지면인데, 혹 외국의 지역신문에선 이와 유사한 코너나 지면이 있을까요?

"예. 이런 코너는 외국의 신문에서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출생했다는 소식도 그 지역신문에 다 실립니다. 성인이 되어서도 그날 치 신문을 찾아보면 자기의 출생소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고도 마찬가지고요."

김주완 편집국장(좌)과 안차수 본보 독자권익위원.

-원주투데이 오원집 발행인이 미국 지역신문 연수 때 방문한 지역신문의 그날 1면 머릿기사가 동네빵집 주인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였다고 합니다. 그 이유를 물으니 '이제 다시는 그 분이 만든 빵을 먹을 수 없으니까요'라는 답을 들었다더군요. 실제 미국 지역신문들에는 어떤 기사들이 실리나요?

"그게 미국적인 거죠. 미국의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게, 보통사람들도 언제든 우리의 히어로(영웅)가 될 수 있다는 거잖아요. 그래서 보통사람들의 성공스토리가 굉장히 중요하게 취급되죠. 그리고 미국의 지역신문들은 우리와 달리 이중적이지 않아요. 우리는 일단 언론이라면 권력기관으로 상정하잖아요. 그런데 미국은 기자들 급여도 그냥 보통 수준이고 단지 내가 좋아서 하는 직업일 뿐이지, 정치·사회·경제적 파워그룹의 일원이라는 의식 자체가 없어요. 그러니까 내가 자주 가던, 우리가 아끼던 커피숍에 무슨 일이 생기면 기사가 되는 거죠."

-우리는 주로 관공서를 위주로 한 출입처 중심의 취재시스템이잖아요. 미국은 다른가요?

"일단 우리와 사회적 분위기가 다르죠. 미국의 행정관서는 상시적으로 보도자료를 제공하지 않고, 어떤 사건이 있을 때만 브리핑을 한다든지 하는 거죠. 문화 자체가 달라요. 행정이나 국가, 정치가 우리만큼 국민들의 생활 하나하나에 개입할 일이 없어요."

-우리가 미국에 비해 관의 영향력이 크다는 얘긴가요?

"엄청나게 크죠."

-저희는 마산 어린교 오거리의 지하보도와 육교 때문에 횡단보도가 없어 노약자들의 보행권 확보가 안 된다는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 지하보도와 육교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횡단보도를 설치하는 성과를 낸 적이 있습니다. 또 한 버스정류장의 고질적인 불법주차 문제를 고발해 고친 일도 있고요. 비록 특정한 작은 지역의 사소한 문제이지만, 이와 비슷한 곳이 곳곳에 있을 거라는 차원에서 동네 주민의 작은 불편이나 민원 해결에도 나서야 하는 게 지역신문의 역할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런 보도가 우리나라 신문에선 익숙하지 않다보니, 오히려 독자님들이 생경해하고 이상하게 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이게 과연 1면에 실릴 기사냐'는 식의 항의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쨌든 신문이 변하지 않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건 다 느끼고 있는 현실이고요. 신문만 아니라 뉴스를 볼 수 있는 플랫폼이 워낙 많아진 상황에서 매체 특성에 맞는 쪽으로 변해야죠. 예를 들어 밀양 송전탑 문제나 진주의료원 폐업처럼 주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그 나름대로 역할을 다한다는 전제에서 보통사람들의 삶, 그 삶의 고단함, 성실한 사람들의 위대한 스토리도 1면에 담을 수 있어야죠."

안차수 본보 독자권익위원.

-지방선거철인데요. 외국의 지역신문들은 지방선거 보도를 어떻게 할까요? 우리가 벤치마킹해볼만한 보도방식이라든지, 원칙이라든지 그런 게 있을까요?

"미국언론은 선거 때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히죠. 그러면서도 사실보도에서는 상당히 균형을 맞추거든요. 그런데 선거 때 후보자들이 언론을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습니다. 워낙 마케팅 기법이 발달해있기 때문이죠. 여론조사라든지, 의제와 이슈 제기 등을 통한 PR 기법이 신문기사를 어떻게 만들어내나 하는 것은 연구도 많이 나와 있어요. 그래서 언론이 후보에게 휘둘리지 않기 위해 후보가 밝히는 공약을 그대로 다 싣지 않아요. 과연 그 공약이 타당한지, 주장은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지, 상대를 비판하는 말은 과연 정당한지, 이런 걸 전문가와 함께 팩트를 동원해서 체크를 해본다는 거죠. 그래서 맞다-틀렸다가 아니라 이건 상당히 신뢰성이 있다, 이것은 허언에 가깝다, 이것은 의도는 좋으나 실현가능성이 낮다 이런 식으로 평가가 이뤄지는 거죠. 물론 그런 팩트 체크와 평가 시스템은 신문사가 개발해야 하는 거죠. 뉴욕타임스를 비롯해 각 지역신문에도 모범적인 시스템이 많이 누적돼 있어요. 그런 걸 우리도 도입했으면 좋겠어요. 매니페스토가 있긴 하지만 공약의 실현가능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한계가 있어요. 공약 그 자체가 나쁜 공약인지는 가려내기 어렵거든요."

-선거 때마다 여론조사 보도가 문제가 되는데요. 최근 경남에서도 그런 사례가 있었죠. 표본이 잘못됐다든지, 결과가 조작됐을 여지가 있다든지. 또한 비록 제대로 요건을 갖춘 조사를 했다 하더라도 사실 예비후보의 인지도 자체가 낮은 상태에선 결국 인지도 높은 사람이 지지율도 높은 것처럼 왜곡될 가능성이 높죠. 이런 문제를 근본적으로 개선할 방법은 없을까요?

"우선 당내 경선을 여론조사로 해버리는 것은 큰 문제라고 봐요. 그건 그야말로 승리할 가능성이 많은 자에게 그냥 주겠다는 것이죠. 누구 이름을 많이 들어 봤나, 누가 인기가 많으냐는 거죠."

-그렇죠. 이미 유명한 사람, 이미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한 거죠.

"그렇죠. 누가 더 이번 선거에 적합하냐고 물어봐도 그냥 사람들은 인지도로 평가해버리죠. 당내 경선이라면 그 정당이 지향하는 바를 가장 잘 구현할 사람을 내세워야 하는데 이런 여론조사 경선은 문제가 있죠. 그래서 당내 경선을 하면서 왜 당원이 아닌 일반 국민에게 부담을 주느냐는 이야기도 나오는 거죠."

-미국에서도 비당원까지 포함하는 오픈프라이머리를 하지 않나요?

"여론조사로 공천하진 않죠. 오픈프라이머리도 일부에 국한된 것일 뿐 진성당원에 의해 결정하는 방식이 훨씬 압도적이죠. 어떤 후보의 어떤 정책이 우리 당의 지향과 부합하느냐는 당내 토론을 거치면서 당원들이 많이 몰리는 쪽으로 결정되는 거죠."

-사이비언론 문제가 경남에서도 심각한데요. 심지어 무보수 명예직으로 기자를 채용하는 신문도 있더군요. 월급 대신 광고 권장비만 지급하는 곳도 있고, 쥐꼬리 만한 월급을 주더라도 할당된 의무 구독자 수를 채우지 못하면 구독료를 기자더러 대납하게 하는 신문사도 있더군요. 또 신문사에서 '연감' 따위의 책자를 만들어 20만 원 정도 비싼 가격으로 각 기관, 단체, 기업은 물론 지방선거 출마예정자들에게 강매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정말 고질적인 문제인데요. 혹 외국에도 이런 사이비언론이 있나요?

"미국에 있는 동안 이런 사이비언론은 보지 못했고 듣지도 못했습니다."

-다시 한 번 언론통폐합을 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요? 가령 지역신문발전지원법에 따른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 신문사에만 정부와 자치단체, 공공기관의 홍보예산을 집행하도록 제한한다든지….

"참 어려운 문제죠. 좋은 언론이 소멸되고 사이비언론이 판을 치게 되면 공론장이 붕괴된다는 점에서 심각한 민주주의의 위기죠. 그런데 얼마 전에 보니 경남에도 신문의 숫자가 60여 개나 되더군요. 문제는 이 중에서 '괜찮은 언론'을 가려내는 건데요. 법에 따른 지원요건에 부합하는 신문에만 예산을 집행하도록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긴 하죠. 하지만 그걸 정부가 강제하게 되면 언론통제라는 문제가 있을 수 있겠죠. 따라서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요구하는 게 맞죠. 그러니까 우리 시민들이 이런 사이비언론 때문에 힘들다는 거죠. 좋은 언론을 고사시키고, 여론을 호도하고, 선거 때면 줄서기를 하고, 기업들의 약점을 잡아 책이나 광고를 강요하고 이런 폐해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이런 언론에는 시민의 세금을 지원해선 안 된다는 요구를 학계와 전문가, 시민단체들이 하자는 거죠. 신문등록을 취소한다든지 그렇게는 않더라도 최소한 지원은 안 된다는 시민의 입장을 전달하는 거죠."

-그게 결국 시민의 수준이고 민도인 셈인데, 그렇게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경남도민일보가 창간 15주년을 맞았는데요. 저희한테 조언이나 충고하고픈 말씀이 있다면.

"경남도민일보는 잘 하고 있죠. 과거 마산MBC도 상당히 혁신적인 프로그램이 많았잖습니까? '두드릴고'라든지 '아구할매'라든지…. 그래서 예전에 어디 가면 항상 우리 지역에 이런 자랑스러운 지역언론이 있다고 얘기했습니다. 현재 MBC는 위축이 되었고 경남도민일보는 안정화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MBC의 경우 중앙과 관련이 깊고 방송의 내용이 지역적 특성을 이루어내는데 실패한 통폐합의 길을 걷게 되었죠. 반면 경남도민일보는 그야말로 지역과 지역에 밀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데, 바로 그 점이 지역언론은 지역성, 정확히 말하면 지역정체성만이 활로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2002년에도 그런 위기가 있었듯이, 조직이라는 게 쌓아올라가기는 어려운데 위태로워지거나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지금 이 마음으로 바른 언론, 든든한 지역언론으로 발전해가길 바라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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