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이 살아날 방법은 시사입니다"

김봉임 방송작가는 ‘방송일 10년차’로, 현재 MBC경남방송에서 ‘경남아 사랑해’ 로 활동 중이다. 그를 보면 누구나 느낄 것이다. 당찬 여성이다. 여기서 기자가 말하는 당찬 정도는 그저 ‘커리어 우먼’에서 느낄 수 있는 자기 당당함 정도가 아니라 숫제 자신이 직접 장수가 돼 전장터를 누벼야 하는 기질과 그에 걸맞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를 통해 방송작가의 세계를 알아보았다.

구치소도 즐거웠다

김봉임 작가(38)는 남해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딸만 8명인 집안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무한경쟁’인 집안이었다. 특히 그의 어머니는 주장이 강하고 여장부라는 소리를 자주 들었다. 그는 어머니에게서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배우며 자라났다. 그래서인지 그의 지금 모습은 이미 어린 시절에 어느 정도 굳어졌다.

“심심할 때 학교에 가서 생활기록부를 찾아보면 거의 평가가 같아요. 사교성 강하고, 리더십 있고, 잘 놀고, 자기주장이 강하다.”

김봉임 방송작가./임종금 기자

아이큐가 뛰어나 공부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에게 고등학교는 대입을 위한 관문이 아니라 ‘추억 만들기’의 시간이었다. 학생으로서는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성적이 크게 떨어지지는 않았다. 대입 수능 때 수학은 2~3개 밖에 못 맞췄지만 나머지 과목은 거의 만점에 가깝게 맞춰 창원대학교 사학과에 무난히 진학했다. 당시 창원대학교는 지방대학 치고는 운동권이 강한 대학이고, 특히 사학과는 그 중에서도 ‘강성’으로 분류될 정도였다. 거기서 그는 당연한 듯이 과 대표를 맡고 선배를 따라 운동에 나서다 구치소에서 7개월 동안 생활을 하게 된다.

“구치소 생활을 즐겁게 지냈습니다. 제 감방동기가 노태우 전 대통령과 김현철입니다. 제가 있는 곳이 서울구치소다 보니 ‘유명인’들이 많이 왔습니다. 교도관들과도 재밌게 지냈습니다. 교도관 중에 창원대 사학과 선배가 있어서 배려를 많이 해줬죠. 하루 평균 12통 씩 편지를 받았습니다.”

갑자기 그의 좌우명이 궁금해졌다. 도대체 어떤 생각을 가졌기에 구치소 생활도 즐겁다고 표현할까?

“좌우명이 내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한다면 살아갈 가치가 없다는 겁니다. 남들은 갈대처럼 살아라고 하지만 저는 대나무처럼 살 겁니다.”

단호했다. 더 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 없었다. 구치소건 어디건 그에게는 거칠 것이 없어 보였다.

휴먼으로 시작해 다큐로 끝나

그러던 그가 어느 날 방송작가가 됐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고등학교 때 피디가 되고 싶었어요. 친구들에게 김 피디라 불러달라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때부터 방송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는데, 대학교 때 생각해 보니 기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기자공부를 하던 차에 마산MBC 시사프로그램 <라디오 광장>에 작가를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아, 기자 공부에 도움이 되겠구나 싶어서 지원했죠. 솔직히 시사프로그램이니까 갔지, 다른 성격의 프로그램이라면 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렇게 그는 2006년 방송작가가 됐다.

김봉임 방송작가.

-방송작가가 되니까 어떻던가요?

“충격이었습니다. 내가 쓴 글이 전파를 타고 나가는 게 정말 신기했었죠. 그때 느낀 게 역시 언론의 힘이 크구나 무섭구나 절감했습니다. 학생 운동권이 유인물을 뿌린다고 애를 많이 쓰는데, 유인물 수만 장 뿌리는 것 보다 언론이 역할을 제대로 해 주면 훨씬 낫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시 어떤 내용을 주로 방송했나요?

“황창호 피디님과 함께 약한 사람이나 소외된 사람 얘기를 많이 했고, 보람도 많이 느꼈습니다.”

2007년에는 라디오에서 TV로 옮겨 <얍! 활력천국> 제작진에 합류했다.

-<얍! 활력천국>은 많이 들어봤는데, 어떤 프로인가요?

“경남 곳곳에 있는 마을로 가서 어르신의 일상을 담고, 마을뉴스도 만들고, 마을잔치도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가수도 부르고 놀고 마을 발전기금도 주는 등 그야 말로 그 마을에서 즐겁게 놀아드리는 겁니다. 그때 처음으로 지역 사투리를 방송에 그대로 썼고, 자막도 사투리 그대로 옮겼습니다. 얍! 활력천국 이후 비슷한 형태의 지역밀착 프로그램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저는 자막에다 시사풍자를 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지역 말고도 서울에서 젊은 사람들이 DMB에서 방송을 보고 빵 터졌다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상도 많이 탔습니다. 이달의 프로그램상, 방송대상 피디상 등등.”

그리고 그는 2010년 토론 프로그램인 <말쌈>을 하게 됐다.

“지금의 <썰전>과 비슷한 테마의 프로그램입니다. 전문가만 나오는 게 아니라 일반시민들도 토론을 즐기고, 앞에 먹을 것도 까먹으면서 토론을 했습니다. 사소한 것, 그러니까 술 자리에서 논쟁 붙는 것을 테이블로 옮겨보자고 해서 만든 겁니다.”

원고작업을 하고 있는 김봉임 방송작가./임종금

-기억나는 토론이 있나요?

“흡연 문제로 토론할 때 재미있었습니다. 흡연에 반대하는 주부가 나왔고, 찬성측에서는 한국흡연자모임의 회장이 나왔는데 MBC아나운서 국장 출신입니다. 2:2로 불꽃튀는 토론을 벌였는데 지금도 기억에 남습니다. 말쌈 안에 ‘여기 사람이 있다’는 코너가 있습니다. 저는 거기서 시사적인 것을 많이 다뤘는데 환경미화원의 수당을 떼 먹은 일, 엉터리로 된 장애인 점자 블록 같은 것을 고발했습니다.”

-정말 시사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제 주변에서 ‘김 작가는 휴먼으로 시작해 다큐로 끝난다’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집에서 자주 보는 프로그램이 있습니까?

당연히 집에 텔레비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물어본 것이었다.

“방송작가이지만, 텔레비전이 없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면 아이디어가 안 나오고, 그냥 남의 것을 따라가려고 할 것 같아서 안 봅니다.”

이후 <당신의 이야기 통>을 했다가 현재는 <경남아 사랑해>를 하고 있다. 이건 무슨 프로그램일까?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저녁 6시 20분부터 7시 15분까지 하는 종합프로그램입니다. 코너가 엄청 많은데, 저는 ‘동네방네 빅뉴스’를 합니다. 잡다구리한 소재를 다루는데 시사부터 인물까지 다 다룹니다. 하루에 8분씩 일주일에 32분을 소화해야 합니다.”

-코너를 어떻게 만드는 건가요?

“기획-아이템 선정-섭외-촬영구성-촬영-편집-내레이션과 자막 작업-다시 아이템 선정-섭외. 이 과정이 일주일 내내 돌아갑니다. 주말까지 쉬지를 못합니다. 바빠서 회의는 전화통화를 하거나 촬영갈 때 차 안에서 합니다. 솔직히 자주 프로그램을 했고, 책임피디와 저의 감각이 크게 다르지 않으니까 여태껏 꾸려올 수 있었지 손발이 안 맞았다면 엉망이 됐을 겁니다.”

-코너 만들 때는 힘들지 않나요?

“여러 일을 동시에 해야 하니까 작가가 아니라 '잡가'가 되는 일이 많습니다. 인맥이 없으면 이 코너를 할 수 없고, 깡다구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어정쩡하게 인터뷰 할 것 같다가도 마음이 어떻게 변할지 모릅니다. 바로 파악을 섭외 대상자를 판명해야 합니다.”

방송작가 제대로 대우해야

방송작가를 인터뷰 해 보기는 처음이다. 방송작가의 세계가 궁금했다.

-보통 작가라고 하면 드라마 작가를 많이 생각하는데, 작가들도 다양한 분류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드라마 작가-시나리오 작가-구성작가가 있습니다. 시사프로그램이나 예능프로그램에서 하는 작가들은 다 구성작가입니다. 저도 구성작가죠. MBC경남에는 드라마 자체편성이 없으니까 드라마 작가는 없죠.”

-작가들도 경력에 따라 직계가 따로 있거나 하지 않나요?

“보통 20대 중반에 작가를 하려는 친구들이 아르바이트를 많이 합니다. 이 작가들을 스크립터라고 합니다. 이 스크립터에서 이겨내는 친구들이 작가로 올라가는데, 많이 떨어져 나가죠. 그 다음에 서브 작가, 메인 작가 같은 체계가 있지만 그 룰을 억지로 적응시키기는 힘들고, 또한 라디오 프로그램은 스크립터 없이 작가가 1명이 있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원고를 살펴보는 김봉임 방송작가./임종금 기자

-작가 1명이 여러 프로그램을 소화할 수는 없나요?

“불가능합니다. 아까 말했다시피 하나의 프로그램에 일주일 내내 매달려야 합니다.”

-MBC경남에는 작가가 몇 명이나 있나요?

“15~20명 정도 될 겁니다. ‘경남아 사랑해’만 작가가 5명입니다.”

작가는 원고로 말하는 사람이다. 그는 하루에 얼마나 원고를 쓸까?

“내레이션 원고는 5분 당 7~8쪽이 나옵니다. 자막도 뽑아야 합니다. 원고와 자막을 뽑으면 4시간이 흐릅니다. 그걸 하루에 2개씩 해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섭외와 촬영구성, 기획 등을 하다보면 하루 종일 시간이 다 가버립니다.”

-그럼 작가들 대우는 어떻나요? 정규직이 있나요?

“100% 프리랜서입니다. 그러니 조합도 못 만들고, 또 서로 개성이 강하다 보니까 모임도 없습니다. 그래서 처우에 문제가 좀 있습니다. 작가료가 적은 것도 있고, 올림픽이나 이벤트 때문에 방송이 빠지면 그건 그대로 작가료가 깎입니다. 어차피 준비는 똑같이 해놨는데도 말이죠. 서울에서는 방송이 빠져도 작가료를 준다고 알고 있습니다. 또 작가료도 부정기적으로 나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제가 신용카드를 못 만듭니다. 결재일을 맞출 수 없으니. 서울만 가도 잘 나가는 구성작가는 연봉이 1억이 넘습니다. 지역은 그게 안 되니 자꾸 작가들이 빠져나가고 그게 지역방송의 질을 더욱 낮추는 것 같아요. 누가 했는지 몰라도 처음부터 시스템을 잘못 잡아놨습니다.”

그의 비판은 거침없이 쏟아졌다.

“왜 장인들이 인정받겠습니까? 10년 한 작가를 새내기 작가가 따라갈 수 없죠. 작가들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도록 조건이 형성돼야 하는데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은 작가료입니다. 그래도 이렇게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방송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이 많고, 그들에게 억지로 일을 시키면 돌아는 가겠지만 (이런 체계로는)프로그램의 질이 높아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그래도 작가의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요?

“좋은 점은 내가 일상을 디자인 한다는 점입니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내 생활을 내가 짤 수 있습니다. 또 사람들의 세계를 많이 보니까 배우는 것이 많고, 내 프로그램으로 인해서 조금이라도 세상이 변하거나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긍지를 가질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처우 문제만 개선되면 참 좋은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꼭 해보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나요?

“정말 명품 다큐를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주제는 부락 공동체나 지역 역사를 했으면 합니다. 화려한 자막이나 영상이나 CG가 아니라 담담하게 내용을 풀어낼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습니다. 그게 진정으로 오래 갑니다.”

김봉임 방송작가./임종금 기자

최근 지역방송이나 언론은 지역밀착을 강조한다. 그래서 여행이나 사람이나 음식, 건강 등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다양한 소재를 다룬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지역방송이 가장 필요한 것이 시사입니다. 그건 서울에서 속속들이 알 수 없는 겁니다. 시사가 지역방송의 존재이유라고 봅니다. 사람들이 억울하고 풀지 못하는 것이 많은데 이걸 풀어줘야 합니다. 시사가 약하면 지역언론이 살아남을 수 없다고 봅니다.”

그는 방송에 대해서는 긍지를, 처우에 대해서는 답답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프로그램으로 누군가의 아픔을 닦아 주거나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에 버텨온 것 같았다. 음식이나 여행, 휴먼 같은 말랑말랑한 것을 굳이 거부하고 민감하고 피곤한 시사에만 죽어라 몰두하는 이런 작가를 앞으로 내가 다시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들의 처우가 개선 돼 작가들이 더 창의성과 열정을 쏟아붓고, 그걸 바탕으로 지역의 방송이 더 나아지길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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