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포늪을 사랑한 시인이 만든 국수

창녕군 대합면 가시연꽃마을에 있는 ‘버들국수’ 주인장은 시인 송미령(56)이다. 우포늪을 아끼고 시를 사랑하는 이들은 송미령 시인의 ‘우포에는 맨발로 오세요’라는 시를 익히 알고 있다. 시인이 삶아낸 국수라고 별반 다를 건 없다. 주방에 있을 때는 시인이든 누구든 모두 요리사다.

요리사가 된 시인

1958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에서 태어나고 자란 송미령 씨는 지난 1981년 결혼한 후 시댁인 창녕군 영산면 신제리에서 생활하다

지금은 우포늪이 가까운 창녕군 대합면 신당리에 살고 있다.

“우포늪을 가까이 두고 사는 게 얼마나 행운인지 몰라요. 저는 창녕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아직도 시골은 여기서 난 사람 아니면 타향 살러 온 사람으로 여기곤 해요.”

손으로 꼽아 봐도 송미령 씨가 창녕에 산지가 어느덧 34년째이다.

/김구연 기자

스물넷에 결혼해 창녕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농사일이 쉽지 많은 않았지만 남편과 정말 부지런히 일했어요. 시부모님은 시골에 들어와 사는 걸 처음에 반대하셨죠. 실컷 공부시켜 도외지로 보낸 아들이 시골에 들어와 살겠다고 하니 아깝게 생각하셨어요.”

송미령 씨는 시골에서 산다고 할 일이 없이 지낸다면 큰 오산이라 했다. 그의 이력만 보더라도 할 일이 ‘천지’라는 말이 떠오른다. 자연환경해설사, 문화관광해설사, 학교숲 코디네이터.

“우포늪 해설사로 일했어요. 새벽 5시에 찾는 우포는 말로 설명할 수가 없어요. 귀로 코로 온몸으로 느껴지는 늪의 기운은 체감해 보지 않으면 백번 말해도 몰라요. 새벽에 늪을 거닐기를 원하는 이들에 맞춰 새벽 해설을 하기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새벽 해설가로 알려 지기도 했어요.”

우포늪을 빠진 송미령 씨는 지난 2005년부터 5년 넘게 우포늪 해설사로 일했고, 지난 2011년 <우포에는 맨발로 오세요>라는 시집을 냈다.

송 시인의 ‘우포에는 맨발로 오세요’를 몇 자 옮겨 본다.

“봄날 우포로 가는 길목 왕버들 여린 싹눈 틔우고 고요로운 물위로 조각난 햇살 찰랑입니다/ 한낮의 노오란 기린초 위로 청실 잠자리 떼 비행하고 애기 물방개 바쁘게 오르락 거릴때 보랏빛 석남풀꽃 피어나 반갑다고 손을 흔듭니다/ 밤에는 말갛게 세수한 별들이 총총 풀섶엔 바딧불이 동심의 호롱불을 밝힙니다…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고 일억만 년 원시와 함께 호흡하게 되는 곳 우포늪에 들어서면 우리 가슴도 칠십만 평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아름다운 삶은 영위하는 곳 우포늪에 오실 땐 맨발로 오세요”

시인 송미령은 현재 창녕문인협회 회원이며, 한국농어촌여성문학회 경남대표를 맡고 있다.

/김구연 기자

송 시인은 지난 1996년 비사벌 문예상(시부문)을 수상하면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나는 시인이기 전에 농부였고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국숫집을 열게 됐어요. 내가 만든 백숙 맛이 좋다는 소리에 백숙집을 할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매일같이 닭의 모가지를 비트는 일보다 차라리 국수를 만드는 게 나을 것 같았어요.”

자연을 사랑하는 시인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자 국숫집을 차렸다. 요리사가 되었지만 말없는 생명을 제 손으로 끊는 일은 적성에 맞지가 않았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하던 끝에 정한 메뉴가 국수였다.

버들잎으로 만든 버들국수

“육수 남기지 마세요.”

엄마가 생각났다. 육수 내는 데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면만 쏙 건져 먹고 국물은 아깝게 버리느냐고 잔소리를 하던 엄마와 같다.

가게 한쪽 벽 천 위에 새겨진 ‘육수를 남기지 말라’는 손글씨를 보고 있자니 음식을 사랑하는 주인장의 마음이 보였다.

/김구연 기자

송미령 씨가 직접 손으로 쓴 메뉴판은 단출하다. 버들국수, 파전, 버들계란이 전부다.

그가 내온 버들국수와 부추전 그리고 삶은 버들계란을 맛봤다. 메뉴판엔 파전이라고 적혀 있지만 준비되는 재료에 따라 부추전, 호박전, 김치전 등 뭐가 나올지 모른다.

국수는 손님상에 오를 때까지 면과 육수가 분리돼 따로 나온다. 노란 주전자에 담긴 육수를 먹을 만큼 그릇에 적당히 부어 먹으면 된다.

버들국수라 이름 붙은 이유는 밀가루 면을 뽑을 때 버들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어릴 적 버드나무 그늘에서 뛰어논 적은 있어도 버들잎을 입으로 가져가 본 적은 없으니 맛이 궁금했다.

쓴맛. 맵고, 짜고, 단 음식은 먹어봤어도 쓴맛이 나는 음식은 처음이다. 면발에서 나는 첫 쓴맛은 고명과 육수가 어우러져 덜해졌다.

삶은 부추, 빨간 고추, 쪽파, 김가루, 달걀 노른자와 흰자로 따로 부친 고명이 전부지만 면을 덮을 만큼 올려져 국수 그릇이 푸짐했다.
육수는 시원하면서도 약간 단맛이 났는데 알고 보니 대추 때문이었다.

버들국수 육수 재료는 무·멸치·밴댕이·다시마·표고버섯·밤·대추이며, 3시간 정도 우린다.

“버들잎이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서 면만 먹으면 몸이 냉해질 수 있어요. 다른 육수 재료는 일반 국숫집과 비슷하지만 밤과 대추가 들어가는 게 좀 다르죠. 따뜻한 성질을 내는 육수를 만들어 곁들이면 중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봤어요.”

강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버드나무에서 나는 버들잎은 잘 알려진 약품 ‘아스피린’의 주원료다.

/김구연 기자

의학사를 살펴보면 기원전 5세기 히포크라테스는 환자들의 고통을 덜고자 버들잎을 씹게 했다고 한다. 버드나무에는 열을 내리고 통증을 완화하는 성분이 있다.

국수를 먹다 보면 면이 중간에 툭 끊어지기도 하는데 송 씨에게 물으니 “가성소다(양잿물)를 넣지 않아 탄력이 덜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국수 가락을 뽑기 위해 2주에 한 번 읍에 나간다. 버들잎을 찌고 말리는 일은 송 씨 몫이지만 얇은 면가락을 뽑을 재간이 그에게는 없다.

부추전은 집에서 구워먹는 맛과 별반 다를 게 없지만 찍어 먹는 간장 맛이 일품이다.

/김구연 기자

버들국수는 가게 담벼락 옆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가 말해주듯 직접 메주를 띄워 장을 담근다. 공장에서 찍어내는 간장 맛과 차원이 다른 이유다. 여기에 직접 만든 과일 효소가 설탕을 대신한다.

버들국수 주방 한쪽에는 송미령 씨가 각종 열매나 잎에서 발효시킨 효소가 병에 빼곡히 담겨 있다. 20여 개가 되는 병에 견출지를 붙여 만든 날짜와 재료를 적었다.

마지막 메뉴인 버들계란은 얼핏 보면 구운 달걀처럼 검다. 껍데기를 까서 먹어보면 구운 달걀보다 수분이 촉촉이 살아 있어 목이 덜 멘다. 버들계란은 버들잎을 우린 물에 하루 꼬박 삶아 노른자까지 연갈색을 띤다.

“자연에서 구한 재료로 능력껏 내는 국수 한 그릇에 오늘도 정성을 다합니다.”

<메뉴 및 위치>

◇메뉴: △버들국수 5000원 △파전 5000원 △버들계란 3개 2000원.
◇영업 시간: 낮 12시∼오후 7시(매월 셋째 목요일, 일요일 휴무).
◇위치: 창녕군 대합면 쟁반2길13(신당리).
◇전화: 055-532-8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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