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거리로 나가 ‘진주 사람’을 찍는

김기종 씨(34)는 피플파워에 이미 4번 등장했다. ‘이런 모임 똑똑똑-꼴값’ 기사로 1번, 사진제공 바이라인으로 2번, 김재희 코리아드라마페스티발 팀장 기사 속 영상 촬영 장면 사진에 또 살짝. 그런 그가 요즘 진주에서 ‘핫’하다. 6,000에 가까운 ‘좋아요’ 수를 기록한 Humans of Jinju의 포토그래퍼를 시작한 지 석 달. 그를 깊게 파헤쳐보기로 했다.

김기종 씨(34)의 프로필은 요즘 젊은이들이 선망하기 딱 좋다. 30대에 자기 카페를 갖고 있고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관심분야 활동을 한다. 김기종 씨가 운영하는 진주 중앙동의 카페에서 마주 앉았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의 이미지부터 걷어내고 알려지지 않은 그의 청춘부터 파헤쳐보기로 했다.

빛나지 않았던 20대

김기종 씨의 20대를 장식한 키워드는 휴학, 졸업, 아르바이트, 공무원 시험공부. 대부분의 20대처럼 지극히 평범하고 막막한 시절이었다. 집에서는 공무원을 계속 권했고 자의 반 타의 반 시험 공부를 하던 나날 중 점심을 먹고 들어오다 그해 공무원 경쟁률을 보게 된다.

천 단위인 경쟁률에 기함하고 곧바로 사람이 칠 시험이 아니라고 결론을 냈다. 그 길로 시험을 접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후련함은 잠시, 시험에 가려졌던 캄캄한 현실이 눈앞에 다가와 있었다.

/사진 제공 김기종

“이런저런 상황 다 떠나서 내가 일을 하고 싶다고 해서 당장 할 수 없는 게 제일 슬펐죠. 사람들이 쌓으려고 노력하는 ‘스펙’이 전 아무것도 없었어요. 학점도 높지 않고 토익 공부는 해본 적도 없고 유일하게 운전면허 1종 있었어요. 막연히 좋아하던 커피를 하고 싶었지만 시작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어느 날 자려고 누웠는데 그 순간 너무 갑자기 막막함이 밀려오는 거예요. 꿈을 꾸기에는 20대 후반 28살인 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느껴졌어요. 진짜 괴롭더라고요.”

다행히 오래 굳어있지는 않았다.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했다.

“친한 친구가 옷가게를 했었는데 예전부터 친구가 밥은 안 굶길 테니까 같이 일하자고 했었어요. 하던 공부가 있으니까 거절해왔었는데 공부 접고 친구 가게 일을 계속 같이 했어요. 2~3년 정도. 지금도 정말 친한 친구인데 그때 주변에서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일로 엮이면 안 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 친구 주변에서도 그런 말 하고요(웃음).”

카페를 열다

좋아하는 것은 확고했다. 커피와 사진. 사진은 오래전부터 취미로 찍어왔지만 그걸로 먹고살기는 힘들 거라는 생각은 했다. 자연스럽게 목표는 커피숍이라는 공간을 갖는 것이 되었다.

“친구가 거창에 옷 매장을 열면서 제가 거기 1년 반을 있었거든요. 혼자 있으면서도 생두사서가정용 로스팅기로 로스팅해서 마시고. 그때 서울이든 부산이든 다닐 일이 많았어요. 사람 만날 때 커피숍 가면 그 지역 괜찮은 가게를 보게 되었고요. 그 경험이 알게 모르게 도움된 것 같아요.”

/사진 제공 김기종

마음은 조급했지만 현실을 인정했다. 언젠간 할 거라고 심호흡을 길게 하며 매일 상상했다. 어떤 분위기, 어떤 콘셉으로 가게를 할지. 몇 년을 보낸 뒤 기회가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카페는 돈이 많이 들고 준비도 많이 해야 하니까 일단 일하면서 지냈죠. 그러다 중간에 PC방 아르바이트도 했었는데 그때 경상대 후문에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는 카페가 오픈 했어요. PC방 사장님이 다녀오셔서 거기 사장님이 잘하는 것 같다고 칭찬을 하시기에 저도 가봤어요. 느낌이 좋더라고요. 그때부터 단골을 했죠. 일 마치면 10시인데 그때부터 가서 거기 문 닫을 때까지 있다가 집에 가고 쉬는 날에도 거기 가서 커피 마시면서 쉬고요. 계속 그렇게 하니까 거기 대표님이랑 친해져서 커피 얘기하고 상의도 하고요. 지금 생각하면 좀 그런데 그 카페 회의에도 참석했어요. 굳이 따지자면 손님입장에서 의견을 내는 거죠.”

불투명했던 계획이 점점 선명해졌다. 카페 대표가 브랜드를 런칭하기로 했고 김기종 씨가 시내에 지점을 내기로 한 것이다. 모은 돈 만으로는 부족했다. 가족들의 도움도 받아 생각보다 무리해서 오픈을 준비했다. 맘에 드는 자리를 찾아 발품을 판지 7~8개월. 입이 바짝 마르는 시간이었다. 그러다 지금의 이 자리를 발견하자마자 일은 신기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사진 제공 김기종

“정신 차리니 내일이 오픈이더라고요. 제가 사진 찍는 걸로 알려지긴 했지만 커피 욕심이 엄청 많아요(웃음). 맛도 좋지만 커피 마시는 행위 자체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바쁘게 일하다가도 커피 한 모금씩 마시면 그 순간 쉬는 기분이거든요.”

사진, 그리고 ‘Humans of Jinju’

카페 운영이 본업인 김기종 씨는 요즘 매일 거리로 나가 사람들에게 말을 건다. 신분확인용 명함(이 명함은 김기종 씨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교환할 수 있다.)도 만들었다. ‘Humans of Jinju’라는 프로젝트가 그 이유다. ‘Humans of Jinju’는 ‘Humans of Newyork’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뉴욕에 사는 브랜든(Brandon)이라는 포토그래퍼가 뉴욕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을 찍고 인터뷰해 페이스북에 꾸준히 올리고 있는 이 프로젝트는 3년이 넘게 진행되고 있다.

/사진 제공 김기종

“‘Humans of New York’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건데 ‘Humans of Seoul’도 있고 다른 몇몇 지역에서도 지금 진행되고 있어요.”

그렇게 뽑아낸 이야기와 사진으로 만들어진 콘텐츠는 간단하게 보고 즐길 수 있도록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HumansofJinju) 페이지에 담아낸다. 3월 11일 현재 페이지 좋아요 수 5,905, 하루에 업데이트 하는 콘텐츠는 보통 1~3개. 게시물마다 반응도 뜨겁다.

현재 페이스북 ‘Humans of Jinju’ 페이지에 드러난 운영진은 셋이다.

‘Humans of Jinju’를 기획하고 전체적인 운영과 그래픽 작업을 담당하는 김재희, 사진촬영과 인터뷰를 맡는 김기종,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번역을 해서 보내주는 장재욱이다.

김기종 씨는 외출할 때 항상 인스턴트커피와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고 했다. 첫 카메라는 군대를 다녀오고 휴학할 당시 30만 원 정도를 주고 산 200만 화소 똑딱이 디지털 카메라. 아르바이트비와 용돈을 모아 산 뒤로 어디를 가든 가지고 다녔다고 한다. 지금은 소장한 카메라의 기종과 스펙이 엄청나게 달라졌지만 사진 찍을 때 느끼는 재미는 여전히 같다고 했다. 사진을 도구로 무언가를 하는 재미를 알게 되자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판이 만들어졌다. 그중 ‘Humans of Jinju’는 김기종 씨에게도 고마운 제안이었다.

/사진 제공 김기종

“사진은 스케치촬영 등 여러 가지 방식으로 찍고 있었어요. 근데 ‘HOJ’는 제가 예전부터 정말 해보고 싶었던 형태의 프로젝트였어요. 생생한 ‘스트릿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을 예전부터 했었거든요.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제의가 들어왔을 때 바로 ‘오케이’ 했고 참여하게 됐어요. 그렇게 시작한 게 석 달이 다 되어가네요.”

진주뿐 아니라 다른 지역에까지 많이 알려진 ‘Humans of Jinju’. 길거리에서 사람들이 포토그래퍼를 알아보고 메시지를 보내 촬영 요청을 할 정도로 반응이 뜨겁지만 의외로 포토그래퍼가 몸소 겪는 현장분위기는 만만치 않은 듯했다.

“촬영해 달라는 메시지가 많이 오는 데 웬만하면 응하지 않아요. 길에서 우연히 만난 사람을 찍는 게 기본 콘셉인데 그걸 지켜야죠. 혼자 다가가 말을 걸고 사진을 찍는 데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가기까지가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말을 걸어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고 인터뷰를 해도 멘트에서 포인트 잡기가 힘든 경우도 있고요. 그리고 연령대가 높은 분들은 이 프로젝트 자체를 이해 못 하세요. 페이스북을 기반으로 진행하는 건데 페이스북을 모르시니까요. 설명을 드려도 길거리에서 모르는 사람이 ‘뭐 이런 거 하는 데 사진 좀 찍을게요.’ 이런 느낌이니까. 주로 응하시는 분들이 20~30대죠. 다가갈 때 더 노력해야죠.”

기억에 남는 일화를 물었다.

“설에 한복 입은 사람을 찍고 싶어서 돌아다녔는데 한복 입은 아이가 부모님하고 같이 가더라고요. 부모님께 허락받고 사진을 찍었죠. 그런데 그냥 재밌다는 반응이어도 감사한 데 ‘좋은 일 하시네요.’하고 칭찬을 하시더라고요. 참 기분이 묘했어요. 좋게 봐주시니까 감사했죠.”

/사진 제공 김기종

‘Humans of Jinju’를 시작한 지 석 달. 예상보다 더 열렬한 반응이 돌아오고 있다. 김기종 씨는 매일 업데이트를 해야 한다는 것이 힘들지만 먼 미래에도 자신이 ‘Humans of Jinju’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일하고 남는 시간에는 쉬어야 하는 데 그 시간에 거리로 나가야 하는 거예요. 마음이 바쁘죠. 그래도 가끔 그리는 미래 제 모습은 할아버지가 되어서도 카메라 잡고 있을 것이고 제가 진주에 있는 한은 이 프로젝트를 계속 하지 않을까 싶어요. 대신 하루에 꼭 하나 이상 포스팅해야 하는 의무는 짧게는 1년으로 하고요. 나중에는 저를 좀 풀어주면서 하고 싶어요(웃음).”

아직 또렷하지 않아 말을 아끼긴 했지만 더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오프라인 매거진 형태의 편집물 제작도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사람들이 거침없이 ‘좋아요’를 누르게 한 ‘Humans of Jinju’의 담백한 매력은 유지하는 선에서.

재밌는 진주로

김기종 씨는 요즘 바쁘다. 카페 운영이라는 생업과 ‘Humans of jinju’ 말고도 찾는 곳이 많다. 꼴값, 청춘학교, 골목길아트페스티발, 오프스테이지라이브 촬영 이외의 개인적인 작업 등. 피플파워 9월호에 이미 소개된 꼴값을 제외하고 다른 활동을 간략히 들어보았다.

“청춘학교는 진주에서 한 안철수·박형철 청춘콘서트에 서포터즈로 같이 참여했던 친구들과 계속 만남을 이어나가는 모임이에요. 단순한 친목모임은 아니고 이것저것 하고 싶은 거 같이 하고 공부하는 거예요. 정치적인 성향 단체는 아니고요(웃음). 골목길아트페스티발은 1회 때 포스터를 보니 다른 카페에서 공연을 하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내 가게가 생기면 이런 걸 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관심 있게 봤는데 가게 오픈하고 5회 때 관계자분이 오셔서 문화공간으로 참여를 부탁한다고 하셔서 엄청 반가웠죠. 그때는 공간으로 참여하고 작년에는 전시팀 스텝을 했고 올해도 같이 하는 데 좀 더 깊숙이 참여할 거 같아요.”

김기종 씨는 청춘콘서트 스케치 촬영이 이런 활동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 뒤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김제동이 어깨동무합니다’ 행사 촬영이 이어졌다. 경남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인디 뮤지션의 디지털콘텐츠 제작지원사업 ‘오프스테이지라이브’에서는 뮤직비디오 촬영 스텝으로 함께하기도 했다. 기회가 오기도 했고 스스로 찾아 나서기도 했다.

/사진 제공 김기종

김기종 씨 활동의 기반은 ‘사람’이다. ‘Humans of Jinju’를 진행하는 운영진들도 문화코드가 맞아 사적으로 먼저 친해진 사람들이고 다른 활동 역시 사람들과 교류하며 구상하고 즐긴다. ‘Human of jinju’를 포함한 거의 모든 일이 차비도 안 나오는 게 대부분이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은 듯하다. 3월 14일에 김기종 씨의 가게에서 열린 ‘웨이닝미러볼나이츠’도 그런 활동 중 하나이다. 커다란 미러볼 돌아가는 카페에서 열린 인디 뮤지션의 공연. 이쯤 되면 이런 공식이 오버가 아닐 듯싶다.

작가로서 스스로 인정

2014년 4월 20일 김기종 씨는 두 번째 개인전을 열 생각이라고 했다.

“사진을 취미로 오래 찍어왔는데 길 가다가 누가 사진사냐고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면서 그냥 좋아해서 들고 다니는 거라고 했어요. 스스로 사진사, 포토그래퍼 라는 말이 부끄럽더라고요. 근데 앞으로는 찍는 것 자체에 만족하지 않고 결과물을 선보이려고 해요. 예전에 인도에서 찍었던 사진으로 첫 개인전을 했었거든요. 제 가게에서요. 부끄러운데 그 전시는 포토그래퍼라는 선언 같은 거였던 것 같아요. 그 말에 부끄럽지 않게 공부해야 하니까 이제 시작이죠. 두 번째 개인전은 어쨌든 날짜는 잡았고 오롯이 제 개인적인 작업이에요. 전시에 대한 평가는 둘째 치고 스스로 진행하는 과정이 의미가 있더라고요.”

밝은 표정으로 자기 이야기를 들려주던 목소리의 톤이 잠시 낮아졌다.

“많은 나이는 아니니까 모르는 사람이 볼 때 젊은 애가 여기저기 자기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다닌다, 이런 시선이 있을 수도 있어요. 카페 하고 싶다고 막 그러던 놈이 결국 카페를 열었고 이렇게 손님이 올 자리가 아니었는데 손님도 꽤 있고 그렇게 카메라 들고 다니더니 지 좋아하는 사진 만날 찍으러 다니고. 누군가에게는 미운털이 박혀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받아들여야죠. 이렇게 되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는 보여줄 수 없으니 아쉽지만요(웃음). 공짜가 어디 있어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너머 그의 실체는 행동하는 젊음이었다.

쉽게 지치지 않을 에너지가 전해졌다. 김기종, 재밌는 일이 벌어지는 진주 어딘가에 가면 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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