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 수출농업 부활요? 첨단 시설이 받쳐줘야죠

첨단 영농으로 우리나라 수출 농업을 이끌었던 김해의 농업을 다시 부흥시키려는 사람이 있다. 한국토마토생산자중앙연합회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김해 현영농장 주현철(54) 대표. 농사라곤 전혀 몰랐던 공고 출신 귀농인이 지금은 누구보다 앞선 열혈 농업인으로 수출 영농의 최일선에서 땀 흘리고 있다.

첨단 농업단지 조성 필요

주현철 대표는 먼저 ‘첨단 농업단지 조성’ 필요성에 대해 강조했다.

한국 농업에 대한 걱정과 김해 농업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다.

“김해시는 시설 원예를 처음으로 해 왔고, 한동안 전국 시설 원예 기술과 시설을 선도하는 지역이었습니다. 행정에서도 신경을 많이 써서 기술 지원이나 선진기법 도입 등을 해 왔는데, 지금은 도시화 되면서 농지가 많이 잠식되고 농사짓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그동안 쌓은 노하우, 기술, 농민 응집력이 모두 와해되고 있습니다. 김해에 첨단 농업 단지를 만들어 김해 농업의 부흥을 이끌어야 합니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산업단지를 조성, 분양에 골머리를 앓는 경우가 많지만, 정작 산업의 가장 기초가 되는 농업 첨단 단지에 관심을 갖는 지자체는 드물다.

/이원정 기자

주 대표는 김해가 시설 영농의 적지라고 평가했다. 인근에 부산시 등 대도시가 있고, 일본 수출도 용이한 지역이다.

“김해는 시 예산으로 미래농업대학을 운영하는 등 첨단 교육을 하고 있는데, 그것을 현실에 적용하는 게 힘이 듭니다. 개인의 시설이 교육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시에서 첨단농업단지를 지어서 임대하든지, 농민들에게 분양하든지 해서 지역 농업 기반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주 대표에 따르면 도 농업기술원 등의 노력으로 경남이 첨단 농업에 먼저 발을 들였지만, 넓은 농지가 없다는 것이 한계. 이를 첨단 시설을 이용한 수경 배지 재배로 극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수경 배지 재배는 식물의 성장과 번식에 필요한 영양분을 체계적으로 공급하기 때문에 토경재배에 비해 장기간 수확이 가능한 장점이 있다.

더 좋은 수출 상품 고민

이렇게 김해 농업 부흥에 힘을 쏟고 있는 주 대표이지만, 처음부터 농사를 지은 것은 아니다.

진주에서 기계공고를 졸업한 후 장사를 하는 등 젊어서는 농업과 전혀 관계없는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주 대표의 주머니는 늘 샜다. 돈이 모이지 않았다. 살길을 찾아야 했다.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고향을 떠났다.

“부산 사상공단에 취직하려고 왔는데, 돈이 없어 흘러 흘러 이곳 김해시 대동면에 집을 얻게 됐습니다. 부산까지 버스 타고 출퇴근하는 것도 힘들고 해서 여기서 하우스 짓는 막노동을 1년가량 했습니다.”

환경이 사람을 만들었다. 주위에 농민이 많아 자연히 주 대표도 농업에 관심을 갖게 됐다. 어차피 이곳에서 살려면 농지를 빌려서 농사를 지어 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원정 기자

“처음에는 주키니 호박을 했습니다. 농사에 대한 지식 하나 없이 옆에서 하니깐 따라 한 거죠. 그런데 수지타산이 안 맞는 겁니다. 예전에 장사를 한 경험이 있다 보니 경영적인 부분이 자연스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다보다 호박’이라고 다른 품종을 도입했습니다. 주키니호박보다는 나았지만, 사정이 크게 나아지지는 않았습니다.”

수지 분석 없이 관행 농업에만 매달려 있을 수는 없었다. 다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지금은 농업 경영인이라고 하는 농업후계자 신청을 해서 정책 자금을 지원받아 하우스를 지었습니다. 1999년쯤이었죠. 당시에는 최첨단으로 3m 정도 높이의 일반 온실을 지어 방울토마토를 재배했습니다.”

당시 대동에는 방울토마토 수출 작목반이 있었다. 주 대표는 작목반에 합류해 방울 토마토 수출을 하게 됐다.

“작목반 총무와 반장을 하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국내 소비 시장은 상품 종류가 다양하지만, 수출은 기존에 정해진 크기와 품질의 상품만 가능합니다. 공산품은 기계로 같은 상품을 만들 수 있지만, 농산물은 절대 안 됩니다. 작목반 내 농가들 사이에서도 품질 격차가 상당했죠.”

그 원인을 토경 재배 방식에서 찾았다.

/이원정 기자

“땅은 지력에 따라 품질격차가 큽니다. 같은 하우스 안에서도 수확물의 품질 차이가 크죠. 비슷한 품질의 상품을 수확하려면 수경 재배를 도입해 비슷하면서도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수출을 안 했다면 하지 않았을 고민이었죠.”

하지만 당시 수경 재배 기술이 보편화되지는 않았고, 바로 도입하기도 어려웠다. 토경에서 재배하되 기계적으로 물과 영양을 공급하는 ‘관비재배’를 1년 동안 도입했다. 그 후 연차적으로 작목반에 양액재배라고도 하는 수경재배를 도입했다.

유럽식 신기술 도입

배지를 이용한 수경재배를 도입하기 위해 주 대표와 작목반원들은 준비를 많이 했다. 도 농기원 등에서 교육도 받고 농기원의 지원으로 2008년 작목반 전체가 네덜란드에 견학도 다녀왔다. 그 덕에 신기술 도입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다.

“누군가 성공했다는 이야기만 듣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은 다릅니다. 그때까지는 일본식 영농교육을 하다가 어느 날 유럽식 교육을 하는데 수확량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더군요. 10배가량 유럽 방식의 수확량이 많았습니다. 믿을 수가 없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네덜란드에 가서 시설을 둘러보니 딱 계산이 나오는데, 이해가 됐습니다. 현장에서 성공한 것을 직접 보니까 자신이 생겼습니다.”

주 대표는 대동지역 토마토 작목반을 ‘깨어있는 작목반’이라고 소개했다. 수출에 유리한 신품종 방울토마토 도입에도 이곳 작목반은 앞선 걸음을 보였다.

그런데 유럽식 신기술 교육은 용어부터가 생소했다. “거름은 줬느냐”고 말하던 것을 “양액은 공급했느냐”고 물어야 했다.

작목반 자체적으로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용어를 입에 익히고, 교육을 많이 받으러 다녔다. 백문이 불여일견. 보는 것이 중요했다.

/이원정 기자

하지만 주 대표는 더 앞서갈 생각을 했다.

“기후가 변해가고 세상이 변해 가는데 같은 환경에서 연속적으로 농사를 지어서는 발전이 없었습니다. 계속 바로 옆 사람하고만 비교하게 되니까요. 그래서 친환경에 눈을 돌리게 됐습니다.”

친환경 인증을 받아 2006년 친환경 급식 납품을 했다. 소규모 25개 학교에 납품을 시작했는데, 주 대표가 경리, 발주, 수송 등 1인 다역을 했다. 반응이 좋아 2007년에는 67개 학교로 늘어 본격화된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법인도 설립했다.

“혼자서 모든 일을 체계적으로 처리하려니 너무 힘들었습니다. 3개월쯤 하고 나니 담배가 하루 2갑으로 늘었더군요.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사람에게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고민을 했다. 당시 4대 강 사업 보상을 받은 돈이 손에 있었다. 농사를 그만두고 택시 운전을 할 생각도 했다. 하지만 기반 없는 도시민의 삶은 손에 쥔 돈을 쉽게 까먹을 수 있겠다 싶었다. 그러면서 이제까지 해 왔던 것을 돌아보게 됐다.

“그동안 해 왔던 것을 생각하니까 너무 주먹구구식으로 농사를 지은 것 같았습니다. 옆 사람하고만 비교해서 만족했던 것도 같고요. 그래서 보란 듯이 농사를 한번 지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시 토마토 재배에 매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완숙 토마토로 전환

좋은 시설이 필수라고 느꼈다. 다른 지역 선도농가에 견학 가고 각종 교육을 받았다.

2010년 첨단 시설로 하우스를 지었다. 경영기법 개선도 절실했다.

“예전에는 아내와 둘이 농사에 종일 매달리고, 모자라는 부분에 외부 인력을 썼습니다. 그런데 경영 기반을 제대로 갖추고 나니 내가 할 일은 따로 있었습니다. 시스템을 안정화하는 것이 내가 할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선진 기술 도입과 수출 업무 등이 내가 정말 해야 할 일이었죠.”

하지만 무엇보다 주 대표가 강조하는 것은 ‘기본’이다.

“기본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육받은 것을 그대로 지키려고 합니다. 관행 농업에 젖은 사람은 교육을 잘 받고도 이를 무시하고 기존 농사 노하우에 바탕을 두고 여전히 같은 농사를 짓는 사람이 많습니다. 열심히 교육 받아놓고도 물을 주고 거름을 주는 것을 기존 하던 대로 그대로 하는 거죠. 또 많은 농민을 만나고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익히더라도 스승은 하나입니다. 귀가 얇게 이 말 저 말 듣고 흔들려서는 안 되죠. 기본에 충실하게 관리하면서 지식은 순수하게 습득해야 합니다. 욕심이 앞서고 성공에 집착하면 악수를 두게 됩니다.”

/이원정 기자

새로 하우스를 꾸미면서 주 대표는 방울토마토 대신 완숙토마토를 도입했다. 소비자가 일반적으로 ‘토마토’라고 부르는 주먹만 한 토마토를 말한다. 올해가 4번째 재배로, 방울토마토에 비해 소득이 안정적이다.

“복합제어장치 등을 동원한 첨단 하우스로 토마토 생육 환경이 1년 내내 비슷하게 유지되니까 항상 생산 최대치 수확이 가능합니다. 토경재배를 하면 3개월밖에 수확하지 못하지만, 배지를 이용한 수경 재배를 하면 9개월 동안 수확할 수 있습니다. 정식 후 열매가 열리기까지 기간을 고려하면 1년 동안 농사를 짓는 겁니다. 하우스가 완전히 비는 것은 1년에 단 15일뿐입니다.”

아들에게 시설 물려주고파

현재 현영농장은 부지 6000㎡(1800평)에 5600㎡(1700평)의 하우스 시설을 갖추고 있다. 연간 총 수익(조수익)은 3억 원이 넘지만, 제반 비용을 감안하면 1억 원가량의 소득을 얻는다.

“소득 구조가 안정적이니깐 농사가 좋습니다. 보통 자식들은 농사를 짓지 않기를 바라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얼마든지 아들에게 물려줄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들이 자세가 되어 있는가 하는 겁니다. 의지가 있고 잘하면 하우스를 증설해서 물려줄 생각도 합니다.”

아들 원찬(25) 씨는 요즘 토마토 판매에 관심이 높다. 제법 수완도 발휘한다. 자신의 얼굴 사진을 넣은 ‘미인 토마토’ 홍보 전단을 만들고 좋은 행사나 단체에 토마토를 기부하기도 하며, 지인들을 통해 판매도 하고 있다.

/이원정 기자

주 대표는 아들의 대인 마케팅을 ‘판매 방식 다원화’ 측면에서는 좋게 보면서도 제동을 걸었다.

“물건을 팔려고 하지 말고 소비자들이 사고 싶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들이 너무 판매에만 급급한 게 아닌가 싶어 물건을 주지 않겠다고 했는데, 한번 먹어본 사람들이 아들에게 계속 주문을 해오네요. 허허.”

주 대표와 작목반원들은 국내 토마토 가격이 크게 뛰어도 이에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수출하며 신뢰성을 잃지 않는데 집중한다. 수출 단가가 3000원, 국내 단가가 7000원일 때도 묵묵히 수출 물량을 출하했다. 주 대표는 작목반의 이러한 마인드를 높게 샀다. 자칫 눈앞의 이익에 현혹될 수도 있지만, 신뢰를 놓치면 더 큰 것을 잃게 될 수도 있다.

현재 주 대표가 속한 작목반은 3년 전 만든 김해완숙토마토수출작목반. 이 작목반을 통해 공동 선별, 공동 출하를 하고 있다. 김해완숙토마토작목반은 농촌진흥청의 탑과채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전국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주 대표는 이 작목반을 대동방울토마토수출작목반과 통합해 수출 시장의 요구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는 방안도 고민 중이다. 바이어가 원하는 물량을 맞추기 위해 신규 토마토 재배농을 확보하기 보다는 두 작목반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작목 변경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수출 실적이 전국 최상위권이고, 10여 년간 수출이 끊긴 적이 없는 것이 김해 토마토 농업의 자랑이지만, 규모가 작은 것이 애로점. 그래서 보다 많은 물량이 생산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다.

“우리는 수출 1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후도 많이 바뀌고 FTA(자유무역협정) 등 외부 환경도 급변했는데, 시설은 조금씩 개선됩니다. 시에서 수출을 잘하는 지역에 선택과 집중을 통해 첨단농업단지를 만들어주면 지역 농업, 한국 농업 발전에 큰 힘이 될 겁니다.”

<추천이유>

◇김종봉 김해시농업기술센터 경제작물담당 채소담당자 = 현영농장 주현철 대표는 농업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소비자가 원하는 고품질 농산물 생산을 위해 지식을 공유하는 진정한 강소농입니다.

2013년 농촌진흥청 탑과채 시범단지 조성에서 우수단지로 선정되어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으며 美人(미인)토마토 브랜드를 등록하여 상품 홍보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측고가 높은 하우스를 설치하고 복합환경제어시스템을 운영하는 등 작물 특성에 맞는 환경관리로 품질 좋은 토마토를 생산, 일본수출과 대형매장 납품, 도매시장 등 안정적인 소득원을 확보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특히 비닐하우스 발상지역에서 토마토의 재배기술 혁신을 선도하는 성실한 일꾼입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