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 기념시집 펴낸

올해 2월 중순 우무석 (55)시인은 경남대 재학시절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부마항쟁 기념시집 <10월의 구름들>(불휘미디어)을 출간했다. 부마항쟁을 소재로 한 최초의 시집이다. 1000권을 펴냈는데 3월 초까지 벌써 절반이 나갔으니 반응이 좋은 편이다.

우무석 시인은 인터뷰하기 며칠 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신임회장으로도 뽑혔다. 불휘미디어 사무실에서 마주한 시인에게 “시집 반응이 좋네요?”라고 말을 건네자 우 시인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용에 대해서는 “미완성이다”고 겸손하게 답했다.

불휘미디어는 그와 그의 아내가 운영하고 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제8대 신임회장이 되셨지요?

“(한숨을 푹 쉬고는)어깨가 무겁습니다. <10월의 구름들>을 스스로 미완성시집이라 불렀는데, 회장이 됐으니 임기기간 동안 시집을 완성해야 되는 의무가 생겼지요.(웃음)

/김구연 기자

-<10월의 구름들>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인지요?

“부마민주항쟁 10주년 때 부마항쟁을 소재로 한 시집을 내보자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막연하게 생각했지요. 부마민주항쟁 30주년인 2009년에 제대로 작업을 해봐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시집이 나오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웃으며)게으른 탓이죠. 뭐”

/김구연 기자

-지난 2월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주최로 <10월의 구름들> 발간을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습니다. 그때 왜 이제야 ‘부마’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시집이 탄생했는가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을 다룬 시집이 처음이라니, 사실이야? 그런데 그것을 왜 우무석이 썼을까? 라는 의문을 보내는 이들도 있었습니다.(웃음)”

-1979년 부마민주항쟁 당시 경남대 학보사 기자로 활동했다고 들었습니다. 시인에게 부마민주항쟁은 어떤 의미인지요?

“그때 당시 난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부마항쟁을 겪으면서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 갑자기 불쑥 커서 막막한 기분이 들었죠. 문학평론가 김현이 ‘내 육체적 나이는 늙었지만, 내 정신의 나이는 언제나 1960년의 18세에 멈춰 있었다. 나는 거의 언제나 4·19세대로서 사유하고 분석하고 해석한다. 내 나이는 1960년 이후 한 살도 더 먹지 않았다. 그것은 씁쓸한 인식이지만 즐거운 인식이기도 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마산공고, 경남대 공대를 졸업했습니다. 왠지 적성에 안 맞았을 것 같은데요.

“적성에 안 맞았지요.(피식) 중학교 때 미술부에 있었는데, 여타한 이유로 공고에 진학했습니다. 에디슨 전구 어쩌고저쩌고…. 따분하고 수학은 재미없고. 그때 당시 ◌◌문고 등 문고판 시대였는데 문고를 독파하고 주간신문인 타블로이드판 <독서신문>를 끼고 살았습니다. 문예부장으로 교지를 만들기도 했지요. 18살 때 공장 산업체에서 실습을 나갔는데, 사고를 쳐서 취업을 안 하고 대학교에 진학하게 됐습니다.”

-대학교 때 세상에 대한 관심, 사회에 대한 관심이 있었나요?

“경남대 앞에 ‘흑과 백’이라는 다방이 있었습니다. 진해 흑백다방의 전신지요. 대학 다닐 때 거기를 자주 들락날락했는데, 경남양서조합(집현전) 회원들이 많았습니다. 자주 부딪히다보니 자연스레 그쪽 선배들과 어울리게 됐습니다.”

/김구연 기자

-집현전?

“마산여고, 마산고 출신으로 서울대 등에 들어간 사람들이 방학만 되면 마산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일종의 의식 계몽운동을 한 거지요. 경남양서조합 선배들을 만나면서 제3세계, 마르쿠제, 사회비판이론 등에 눈을 뜨게 됐습니다. ‘아, 우리 사회 말고도 또 다른 새로운 세계가 있구나’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뭔가를 바꿔야 한다는…. 미미한 수준이었지요. 집현전 활동을 통해서 무의식적으로 그런 의식이 스며들었던 것 같습니다. 싹을 틔웠다고 볼 수 있겠네요.(웃음)”

-<10월의 구름들> 첫머리에 실린 작품 ‘강남 유치장’은 정성기(전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와 최갑순과 옥정애는 77학번 동급생이다로 시작합니다. 시위 계획을 도모했던 이들 3명이 데모 터진 당일 앞서거니 뒤서거니 각각 붙들려 으스스한 마경 유치장에서 만나게 되었다는 사연이지요? 시인이 관찰자이자 체험자가 되어 1979년의 전후 시기와 풍경들을 촘촘하게 엮어내고 있다는 평이 있더군요.

“시집에 언급된 사람들은 좋아하더군요.(웃음)”

-85쪽을 보면 시 ‘마산’이 있습니다. 부마민주항쟁을 치른, 영광스럽고 저항의 정신이 충만한 마산이란 도시가 기껏 ‘사진 한 장’, ‘오염된 바다’, ‘질펀한 좌판’으로 정의됐는데.

“외지인에게 마산이 그렇게 비치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1970년대 자유수출지역. 기자들은 자유수출지역 후문 다방 2층에서 일을 마치고 나오는 인파를 찍어댔습니다. 마산이 가지는 이미지는 경제성에 머물렀고 개발뿐이었죠. 노동자의 인권과 권익보다는…. 정신도 없이 넉 놓아 버린 땅, 마산을 사랑하는 마음 안타까운 마음에 시를 썼습니다.”

/김구연 기자

-마산에 대한 애정이 강한 것 같습니다. 프로필을 보면 ‘1959년 현재는 경남 창원시 통합 전 마산에서 태어났다’고 적혀있습니다.

“애증의 관계지요. 사랑도 있고, 미움도 있고. ‘마산 놈’을 강조합니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낼 때에도 봉투에 ‘마산인 우무석’이라고 씁니다. 마산 사람은 몇 가지 특징이 있죠. 깡다구가 있고 남을 품는 마음이 있습니다.”

-<10월의 구름들>을 읽어보면 건조한 편입니다. 감정적이기 보다 묵묵히 사건을 바라보는데, 제목에서 구름들은 어떤 의미인지요?

“중의적입니다. 흰구름 뒤에 먹구름이 올 수도 있고 그 반대 일수도 있고. 구름하면 또 비가 연상되지 않습니까? 순환구조입니다. 역사적 순환구조.”

-시집에 수록된 작품 중에서 가장 강한 어조를 띠고 있는 시가 바로 ‘노산문인에게 고함’입니다. 노산 이은상을 대놓고 비판을 했던데…. 지난해 마산역 광장에 세워진 이은상의 가고파 시비를 두고 문인단체, 시민단체 등이 서로 충돌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노산을 따르는 자들은 토템주의자, 맹신주의자입니다. 노산을 아름다운 문장가지만 반사회적 작품도 있습니다. 일부 문인들이 광적이게 노산을 숭배하는데, 문인이라면 자유로운 개성, 깊은 사유로 대상을 바라봐야 합니다.”

-이런 주장이 있습니다. “노산 이은상이 역사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던 간에 작품 자체가 좋아서 기리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좀 전에도 말했듯이 노산의 시 중에는 아름다운 시가 많습니다. 하지만 지역 사회는 공공선을 만들어가는 곳이고 공공선은 작품뿐만 아니라 총체적 인격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혹자는 <10월의 구름들>에 대해 아쉬운 점을 표하기도 하더군요. 예를 들어 ‘그 당시(부마항쟁)와 오늘날, 시민들과 어떻게 공명하는지 또는 더 나은 곳을 향한 새로운 접점, 가능성은 있는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요?

/김구연 기자

“시가 굳이 미래지향적, 교훈적으로 뭔가를 도출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이번 시는 부마민주항쟁의 징후를 보여주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내 시적 모티브로 삼아서 정리한 것입니다.”

-불휘출판사를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어떤 일을 했는지요?

“마산전자 생산주임으로 1년 정도 일하다가 그만 뒀습니다. ‘노동 시간’을 두고 노동자와 회사 간부 사이에서 의견 충돌이 있었고, 내가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발언을 하다가 회사 사장과 충돌이 있었습니다. 후배 정일근이 ‘고등학교 문예부장과 학보사 기자의 경험을 살려 출판사를 해볼 것’을 추천했고 1986년 가을쯤 출판사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운영은 잘 됐는지요?

“그 당시 마산 분수로타리 근처 꼭대기 층 쪽방에서 문화운동 유인물, 찌라시 만들었습니다. 겨우 명맥을 유지했지요.(웃음)”

/김구연 기자

-1994년 경남정보사회연구소를 창립해 마을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벌이고 마을문학백일장을 마련했습니다. 그리고 1995년 경남시사랑문화인협의회를 결성해 <김달진문학제>와 <권환문학제>를 만들었고요.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차정인, 이은진, 박영석 등 창립멤버와 함께 마을도서관 만들기 운동을 한 것은 감개무량합니다. 전국적으로 평생교육이라는 개념이 서지 않았을 때 평생교육의 모델을 만들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달진문학제>와 <권환문학제>에 대해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큽니다.”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신임회장이 됐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죠?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 및 관련자 명예회복심의위원회 구성이 지지부진합니다. 조속히 실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적 가치를 어떻게 구현시킬 것인가, 우리세대 그다음 세대 연결고리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대해서 고민해보겠습니다.”

우무석 시인은 ‘할 말은 하는’ 사람이었다. 기자가 ‘이런 말해도 괜찮겠습니까?’라고 물어볼 정도로 직설적으로 말했다. 지상주의가 만연하고 매사에 남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에서 그의 태도는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2년 동안 부마민주항쟁기념사업회 회장을 맡는다. 앞으로도 ‘할 말은 하는’ 우무석 시인이 되길 바라고 임기 동안 <10월의 구름들> 후속편이 나오길 기대해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