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수석코치 제의를 받아들인 진짜 이유는?

궁금했다. 경남 FC 감독 교체 시기만 되면 단골로 ‘감독후보 0순위’로 이름을 올리던 그가 감독이 아닌 수석코치 직을 수락하고 경남 코칭스태프에 합류하게 된 이유가. 이 궁금증을 해결하고자 1월 23일 터키 안탈리아 선수단 숙소에서 이흥실(52) 수석코치의 방을 노크했다.

“고향 팀 유니폼 한번쯤 입고 싶었다”

방안에는 선수단 훈련 상황을 적어 놓은 일지부터 다음 날 훈련 스케쥴이 담긴 메모지만 한가득 이었다. 누가 보더라도 축구팀 코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런 방이었다. 다짜고짜 물었다. 왜 수석코치 제의를 수락했느냐고.

이 수석은 경남행을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구단에서 감독이 아닌 수석코치 자리를 제안해 고민도 많았다. 내가 전북에서 대행이긴 하지만 감독을 지난 터여서 주위에서 만류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돌이켜보니 전북에서 지도자 생활을 할 때도 항상 고향 팀 경남에 대한 그리움이 컸더라. 항상 경기가 끝나면 경남 결과도 궁금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결심했다. 자리를 떠나 고향 팀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만 생각하자고.”

   

이흥실 수석코치가 경남행을 결심한 데는 고 전형두 경남축구협회장과의 남다른 인연도 한몫 거들었다.

이 수석은 마산공고 감독 재직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전형두 회장과 부자(父子)처럼 지냈다. 전 회장이 경남에 프로축구단을 만들자며 백방으로 뛰어다닐 때도 이 수석은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응원으로 힘을 보탰다. 구단이 창단할 때는 당시 적은 않은 돈을 내 주주로 참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친분 때문에 주위에서는 이흥실 수석이 경남의 감독이 되지 않겠느냐는 말도 많았다.

하지만, 전형두 회장이 두 차례나 경남 FC의 대표이사를 지냈음에도 그에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 창단 당시 초대 감독으로 이름이 거론됐지만 ‘프로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경험을 쌓고자 ‘전북 현대’ 코치생활을 위해 고향을 떠났다.

전 회장도 생전 “흥실이를 한 번 데려와야 하는데…”라는 말을 곧잘 하곤 했다.

이 수석은 “고 전형두 회장님이 얼마나 어렵게 구단을 만들었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나 역시도 팀에 대한 애착도 남다르다”면서 “굳이 감독이 아니더라도 구단에 도움이 되는 일을 맡아서 하는 게 고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일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축구계의 진짜 사나이, 원클럽맨(One club man)

진해가 고향인 이흥실 수석은 마산중앙중과 마산공고를 졸업하고 한양대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1985년 2라운드 지명을 받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하여 1992년까지 원클럽맨으로 활약했다.

   

선수생활은 화려했다. 프로 첫 시즌이던 1985년 총 21경기에 출장해 10득점 2도움을 기록해 K리그 신인선수상을 수상했고, 이듬 해인 1986년에도 2년차 징크스를 깨고 소속팀 포항을 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K리그 베스트 11에만 5번이나 선정
(1985,1986,1987.1989,1990년)되는 기염을 토했고, K리그 역사상 '30-30 클럽'을 최초로 달성한 주인공 역시 이흥실이었다.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며 이탈리아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했다. 이흥실 수석이 돋보이는 이유는 프로 8년간 한 눈 팔지 않고 ‘원클럽맨’으로 생활했다는 점이다.

경남 FC 박재영 단장은 “원클럽맨은 선수와 구단의 신뢰뿐 아니라 선수의 꾸준한 경기력, 구단의 대우 등이 결합해야 이뤄낼 수 있는 레전드급 선수”라며 “이 수석이 포항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은퇴할 때까지 포항에서만 뛴 것 보면 오로지 축구만 생각하고 운동했다는 걸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선수 은퇴 후 1993년부터 2005년까지도 그는 한결같이 모교인 마산공업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으로만 지냈다.

그는 마산공고 재임시절 무학기와 청룡기 등에서 팀을 정상에 올려놓으며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이 수석은 “훌륭한 지도자가 되려면 프로뿐 아니라 학원축구도 경험해야 봐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면서 “은퇴 후 조금 기다렸다 프로팀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을 수도 있었지만 마침 모교에 자리가 비어 있어 감독 제의를 흔쾌히 수락했다”고 말했다.

떠날 때는 말없이, 1년 휴식은 나에게 준 선물

2012년 12월 12일. 이 수석은 전북현대 감독대행직에서 물러났다.

2005년 7월 전북의 수석 코치로 부임해 최강희 감독과 함께 공격적인 전술인 ‘닥공’ 전술을 펼치며 팀을 이끈 지 7년 5개월 만이었다.

이흥실 수석은 2011년도 연말 최강희 감독이 국가대표팀으로 자리를 옮기며 대행으로서 전북의 한 시즌을 책임졌다. 비록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예선 탈락의 고배를 마셨지만 주전 선수들의 부상에도 팀을 K리그 2위에 올려놨으며, 2013년 아시아챔피언스리그 진출을 이루는 등 지난해 챔피언의 자존심을 지켰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단호했다. 주위에서는 최강희 감독과의 불화설 등 여러 소문이 흘러나왔지만, 그는 “지난 8년간 전북에서 행복했다”는 한 마디만 남긴 채 팀을 떠났다.

이후,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축구 연수를 받았다. 지난 1년 공백은 프로 은퇴 이후 쉼 없이 달려온 그가 스스로에 준 선물이었다.

   

이 수석은 “프로 은퇴 이후 모교인 마산공고에서 지도자생활을 했고, 2005년부터는 8년간 전북까지 한 해도 쉬지 않고 치열한 축구판에서만 생활했다”면서 “지난 1년간 가족여행도 다녀보고 선진 축구도 경험하면서 충분한 재충전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라운드에선 혹독한 조련사, 숙소에서는 형님

그렇게 그라운드를 떠났던 이흥실 수석은 1년간의 짧은 휴식을 끝마치고 고향팀 경남에 돌아왔다. 이차만 감독을 보좌할 수석코치역이었다.

안탈리아에서 만난 이 수석은 혹독한 조련사로 통했다.

하루 세 타임 운동을 제안한 것도 그였다. 선수들은 입에 단내가 날 정도라며 혀를 내두르지만, 이 수석은 기나긴 시즌을 보내려면 반드시 치러야 하는 신고식이라고 당연한 듯 말했다.

그는 “연령대가 낮고 특출난 스타 플레이어가 없는 경남에서는 모든 선수들의 기량이 평준화를 이뤄 홈과 원정에서 각각 베스트 11을 추려낼 정도가 돼야 험난한 강등의 터널을 빠져나올 수 있을 것”이라며 “이번 해외 전지훈련은 35명 선수단 전원이 한 단계 기량을 끌어올린다는 각오로 훈련에 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남 FC 훈련장의 이 수석코치의 조련 속에 날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다. 선수들은 훈련 내내 강한 집중력을 보이고 있고, 이 수석도 날카로운 눈으로 선수들의 움직임을 하나하나 체크 중이다.

시즌이 끝난 후 운동을 쉬며 몸이 무거워진 선수들에게는 어김없이 체중 감량의 명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훈련장에서는 ‘호랑이 선생님’이지만, 숙소로 돌아오면 ‘든든한 맏형’으로 역할이 바뀐다. 매일 저녁 선수들을 불러 개인 면담을 통해 격려도 하고 조언도 아낌없이 해준다.

“제가 경남 출신이라 그런지 이곳에 온 선수들을 보면 뭔가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어요. 강하게 훈련을 시키는 것도 그 맥락에서 보시면 이해가 되겠죠”

앞으로 구체적인 팀 운영에 대해서는 “지난해 1년 정도 경남의 경기를 지켜봤다. 대략적인 플랜을 머릿속에 구상했고, 이번 동계훈련을 통해 시스템적인 부분을 조금씩 다듬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알리 축구’ 선보일 것

경남은 그가 7년간 몸담았던 전북에 비해 열악한 팀이다.

지난 시즌 하위권을 맴돌다 겨우 강등권에서 벗어났을 정도로 선수층도 얇고, 구단 재정도 전북에 비할 바가 아니다. 선수 구성도 최고 레벨의 선수들이 즐비했던 전북과 달리 경남은 올해 고액 연봉자를 대거 내보내는 대신 신인 위주로 새 판짜기에 분주한 모습이다.

이 수석은 이에 대해 오히려 “뭔가를 만든다는 것이 더 재미있다”고 했다.

그는 “전북은 선수들에게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선수들이 어느 정도 해주는 것도 있다”라면서 “경남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야 하지만 오히려 이런 것들이 더 나를 의욕적으로 만드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이 코치는 지난달 취임식에서도 꼭 이겨보고 싶은 팀으로 전북을 꼽아 눈길을 꼽았다. 그는 “사실 경남이 전북한테 중요한 경기마다 졌었다”면서 “치고받고 재미난 경기를 한번 해보고 싶다. 상대적으로 약한 우리가 강팀을 이기면 팬들이 더 좋아하지 않을까”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이 코치가 현장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들은 최강희 감독은 그에게 “이제 고향 팀으로 갈 때가 됐으니 가서 열심히 하라”고 진심 어린 조언을 남기기도 했다.

이 코치가 지향하는 경남의 팀 컬러에 대해 묻자 “코치들과 ‘알리 축구를 하자’고 했다”면서 “계속 두드려 맞다가 제대로 된 한방으로 이겼던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처럼 빠른 공수 전환을 통해 상대를 무너뜨리고 싶다”고 밝혔다.

지난 7년간 2인자 자리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온 이흥실 수석이 고향 팀 경남에서 써내려갈 축구인생 2막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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