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외면하면 평생 후회하며 살겠죠”

인터넷언론 ‘진실의 길’ 신상철(57) 대표는 지난 2월 4일 서류 한 묶음을 들고 창원지검을 찾았다. ‘2012년 제18대 대선 부정 혐의’로 김능환 당시 중앙선거관리위원장과 광주시선거관리위원장, 춘천시선거관리위원장을 고발하기 위해서다. 신 대표는 최근까지 인터넷웹진 ‘서프라이즈’ 대표로 있었다. 이보다는 ‘천안함 조사위원’으로, 아니 ‘천안함 좌초설’을 설파하는 이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신 대표는 천안함 관련 포함, 지금까지 소송에 휘말린 것만 5개이다. 여기에 직접 하나를 더한 것이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잘못을 외면할 수는 없다”고 말한다. 참 피곤한 인생을 살아간다 싶기도 하다. 그가 언제부터, 왜 이러한 길을 걷게 됐는지 찬찬히 들어보았다.

천안함 이어 대선 문제까지 뛰어들어

신상철 대표는 이번 고발장 제출 이유를 이렇게 적어놓았다.

/김구연 기자

‘중앙선관위 및 지역선관위는 2012년 12월 19일 치러진 제18대 대통령선거의 투표 및 개표과정에서 선거부정과 개표조작을 한 것으로 판단되는 바 민주절차에 의한 국민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택이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그 부정한 행위의 상세를 밝히고 엄벌코자 고발에 이른 것입니다.’

/김구연 기자

신 대표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광주 북구 개표 상황표 위원장 도장 위·변조 및 공문서 위조’ 등을 내세우고 있다. 즉 같은 위원장 날인에 도장이 두 개 사용됐다는 것이다. “왜 도장을 하나 더 만들었느냐에 대한 부분입니다. 광주선관위에 문의해 보니 도장이 두 개 사용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은 그것 자체로 문제 되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위원장은 도장이 하나 더 만들어진 것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 자체로 위법 아닌가요? 또한 춘천시에서는 개표 완료 1시간 반 전에 위원장이 결과를 공표한 상황이 있었습니다. 즉 개표가 진행 중인데도 각본대로 방송사에 결과를 통보한 것이죠. 이렇듯 지난 대선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부정선거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것에 대한 진실을 밝히지 않고서는 앞으로도 국민의 선택이 정당히 집행되는 건 불가능한 것이죠.”
신 대표가 휘말린 5건의 소송 가운데 천안함 관련해서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것만으로도 벅찬 건 사실이다.

“사실 대선 문제까지 나서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컸습니다. 하지만 너무 중대한 사안이라 그냥 있을 수 없었죠. 누군가 나서주면 좋겠지만, 그래도 천안함 문제로 좀 알려져 있는 제가 고발하면 좀 더 관심 가질 것도 같았고요.”

고발 며칠 후 새누리당 홍문종 사무총장은 최고위원회의에서 “대선 부정 의혹의 불씨를 살리고 국론 분열을 일으키겠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고교 때 낙서사건으로 긴급조치 9호 경험

/김구연 기자

신상철 대표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실눈을 뜨고 쳐다보는 이도 많다. 하지만, 내용의 진실 여부 혹은 의도를 떠나, 그의 ‘끈질긴 기질’ ‘사회에 대한 관심’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이미 이런 싹수(?)가 보였다. 신 대표는 서울이 고향이지만 6살 때 부산으로 와 초·중·고를 나왔다.“고등학교 2학년 때 낙서사건으로 긴급조치 9호에 걸렸던 적이 있어요. 제가 글씨를 좀 잘 쓴다 해서 환경미화를 앞두고 늦게까지 남아서 준비를 했죠. 지금 와서 얘기지만, 저녁 도시락 먹으며 소주도 한잔 곁들였어요. 술이 들어가 알딸딸하니 말이 막 나오더라고요. 그러면서 ‘박정희는 독재자’라고 마구 얘기했는데, 그걸 단지 말로 그치지 않고 글로 적었어요. 그 종이를 없애버렸어야 했는데 교실 쓰레기통에 그냥 버려둔 채 집에 간 거죠. 다음날 선생님이 보시고는 부산 영도경찰서에 신고해 버렸어요. 그런데 그 경찰서장이 경찰 출신인 아버지하고 동기 동창이라 풀려날 수 있었어요. 나올 때 각서를 하나 썼어요.

‘대학 진학할 때 문과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쪽 계통으로 진학하면 데모할 게 뻔하다는 거였겠죠. 사실 그 일이 제게는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실제로 무조건 이과만 생각하고 한국해양대와 부산대 건축공학과 두 군데 원서를 냈으니까요.”

두 곳 모두 합격했지만 한국해양대학을 선택했다. 이후 ROTC(학사장교훈련단) 생활을 하며 해군 장교로 임관해 진해·서해 5도 등 곳곳을 다녔다. 제대 후에는 해운회사에 들어가 항해사 생활을 했다. 배 만드는 프로젝트에도 참여해 8년 동안 감독관 일을 하기도 했다.

이런 다양한 경험 덕에 훗날 천안함 조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데 해운회사 시절 그는 또 다른 이력을 쌓았다.

“배 타고 태평양을 건너면 온종일 수평선만 보게 됩니다. 그래서 시간 보낼 방법을 궁리하다가 소형 컴퓨터를 하나 샀어요. 그때부터 매일 그걸로 놀았는데, 선박에서 일어나는 배 안정도 계산 등 여러 기능을 탑재해 활용했죠. 그냥 수작업으로 하면 2~3시간 걸릴 것을 금방 할 수 있게 된 거죠. 소문이 퍼져서 다른 배에 깔아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 생활을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다. 요즘 말로 ‘갑질’을 하는 협력사 직원한테 물잔을 얼굴에 뿌리면서 결국 스스로 회사를 관두었다. 하지만 배 타며 익힌 컴퓨터는 그를 인생 2막으로 이끌었다.

/김구연 기자

“처가 쪽이 병원을 하고 있어, 제가 전산실장으로 들어갔죠. 시간이 지나면서 나름 병원전산 프로그램 쪽으로 소문이 났어요. 어느 날 마산대학교 보건행정학과 교수님 두 분이 찾아와 프로그램에 대한 도움을 요청하더라고요. 그렇게 인연이 되어 학교에서 겸임 교수로 8~9년 생활하게 됐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

신상철 대표는 이후 부산·경남을 주 무대로 병원 전산개발 사업을 이어갔다. 흔히 말해 ‘먹고 사는 데 지장 없는 삶’을 살았다. 마산에 6층짜리 건물도 있었고, 전국 곳곳에 땅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다 2002년 노무현이라는 사람을 알게 되면서 그는 또 다른 길로 틀었다.

/박일호 기자

“자기한테 손해인 줄 알면서도 바보 같은 선택을 계속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이 대통령 되면 살맛 나겠다는 생각을 했죠. 생각했습니다.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뭘까를 말이죠. 그래서 칼럼을 쓰게 됐죠. 사실 초등학교 백일장 이후로 제대로 글 쓴 건 처음이었습니다. 처음에는 ‘디지털국회’ 같은 곳에서 활동하다 이후 서영석 씨가 운영하는 인터넷정치웹진 ‘서프라이즈’에서 글을 썼죠.”

그가 바라는 대로 2002년 12월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당선됐다. 하지만 2004년 3월 노무현 대통령 탄핵사태가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일어나 세수를 하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는 겁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예비군복 차림으로 서울 국회로 향했죠. 한판 붙어야겠다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3~4일 동안 저녁에 촛불 들고, 술 한 잔 마시고, ‘서프라이즈’ 서영석 대표와 이야기 나눈 게 다였어요. 다시 돌아오려고 하는데, 서영석 대표가 ‘서프라이즈’를 좀 맡아달라는 제안을 하는 겁니다. 하지만 거절하고 차를 몰고 떠났죠. 그런데 여의도에서 더 이상 발이 안 떨어지는 겁니다. 밤새 차 안에서 고민했어요. 다음 날 아침 서 대표를 만나 결국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신 대표는 ‘서프라이즈’를 맡은 이후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며 경영에서 안정적인 궤도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서프라이즈는 참여정부를 뒷받침하는 사이트’라는 정치권 인식 속에 어려움에 직면하기도 했다. 자신의 재산을 쪼개가며 근근이 운영해 나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서프라이즈’에 대해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고 한다.

“한번은 서프라이즈에 ‘저는 노무현 대통입니다’라는 댓글이 달렸어요.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청와대에 확인해 보니 직접 올린 게 맞더라고요. 노 전 대통령과는 세 번 독대했습니다. 생전 마지막 인터뷰도 제가 했지요. 한번은 저를 정말 미안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운영하기 참 힘들지요. 제가 서프라이즈에 마음의 빚이 참 큽니다’라고 하더군요.”

그는 최근에 ‘서프라이즈’ 대표직을 그만두고 인터넷언론 ‘진실의 길’만 운영하고 있다.

말로는 “이젠 좀 쉬어야죠”라고 하지만…

해양조선 전문가인 신 대표는 2010년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에 조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이후 국방부·해군참모총장 등으로부터 고소·고발을 당해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 “좌초한 천안함이 폭침으로 둔갑하는 것을 보고서 침묵할 수 없었죠. 사실 고민을 많이 했죠. 이 진실이 드러나면 여파가 엄청나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하지만 만약 진실을 말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할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결국 나서게 됐죠.”

/박일호 기자

이제는 ‘천안함 좌초설’을 설파하기 위해 전국을 돌며 강연하고 있다. 그리고 천안함에 이어 대선 문제에까지 뛰어들었다. 사실 그는 다른 데 무리할 건강이 아니다. 대장암으로 지난해 두 차례 수술과 열 번 넘는 항암치료를 받았다. 신 대표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이명박 정권 5년 동안 생긴 사리”라고 표현한다.

지금은 김해 장유 집에서 아내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각각 법대·의대 다니는 아들·딸은 서울에 있다. “제가 천안함 문제에 한창 매달릴 때 아내가 그런 말을 했어요. ‘너무 그러면 사람들한테 음모론자로 비칠 수 있다’고 말이죠. 나는 진실을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데, 남도 아닌 아내가 그런 말을 하니 많이 답답했어요. 하지만 아내 역시 사회 부조리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사람이라, 제가 지금껏 이러한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거지요.”

/박일호 기자

누가 등 떠밀어서 하는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사서 하는 고생을 마다치 않는 신상철 대표. 그의 앞으로 계획이 더 궁금하다.

“누군가는 국회의원 배지 달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라고 하는데, 저는 제도권 정치를 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되돌아보면 해양조선에서 10년, 의료전산에서 10년, 정치분야에서 10년을 보냈네요. 벌써 50대 중반인데, 새로운 10년은 좀 쉬어야지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다시 ‘대선 부정 고발장’을 넘겨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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