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민 위한 쉼터 ‘상담에서 배움까지’

오래전부터 김해에는 이런 얘기가 있었다. 밤이나 주말에 김해시 서상동이나 동상동 일대에 가면 마치 서울 이태원에 간 것처럼 외국인이 북적대고, 한국인이 ‘이방인’처럼 느껴진다는. 하지만 이태원 분위기는 아니다. 누구나 여행자와 생활인은 쉽게 분간할 수 있듯이 이곳에는 이국을 여행하는 외국인이 아니라 일대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로 북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김해에는 공식 통계로만 외국인 노동자가 2만 명, 결혼이주여성이 1700명이다. 결혼이주여성만 두고 보면 경기도 안산시에 이어 전국 두 번째로 많다. 불법체류 노동자까지 포함하면 3만 명, 다문화센터에 등록되지 않은 결혼이주여성까지 더하면 2000명이 넘는다고 한다. 경남 도내 19개 시군에 9만 명 가까운 이주노동자나 결혼이주여성이 있는 사는 것을 감안하면 압도적으로 많다.

오미숙(59) 다문화카페 통 대표는 “이곳에 앉아 있으면 김해지역 중소기업 경기를 가름할 수 있어요. 일요일이야 쉬는 날이니 장 보러 나온 외국인노동자들이 많아요. 하지만 토요일에 일대에 외국인노동자들이 붐비면 중소기업에 일감이 그만큼 없다는 얘기고, 한산하면 공장에 일감이 많아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하느라 장 보러 안 나온다는 얘기죠”라고 한다.

그렇게 일찍부터 김해시 동상시장을 중심으로 다문화 거리가 조성됐다. 이 일대에는 다문화 음식점 21곳과 식료품점 5곳이 성업하고 있다. 나라도 다양하다.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파는 자밀라하우스,
사마리칸트, 레기스톤, 우르굿레스토랑, 차이하나레스토랑이 있다.

/정성인 기자

중국은 미니닭원조, 중국천점숯불꼬치하우스, 중국식품꼬치가 있다. 몽골음식점으로는 서윰버, 조농몽골전통음식점이 있고 인도는 나마스떼 김해레스토랑, 타지마할이 있으며 필리핀 음식을 파는 카바얀과 베트남 음식점으로 하노이퍼, 송흥콴, 베트남바베큐가 있다. 인도네시아 음식을 파는 발리인다, 와롱뽀족이 있고 태국 음식으로는 란콘므엉, 타이푸드가 있다. 이들 음식점은 각 나라 음식을 파는 단순한 ‘식당’을 넘어서서 산 설고 물 선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국땅에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에 대해 상담도 해주고 조언해주는 구실까지 하고 있다.

그뿐 아니다. 김해 외국인인력지원센터와 김해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다문화도서관 등 외국인 지원시설도 이 일대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 중심에 경남도와 김해시가 예산을 들여 다문화 음식점을 개설해 외국인 노동자와 결혼이주여성들을 지원하고 김해시민이 다양한 외국 음식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다문화 음식점을 개설했지만 당장 큰 반발에 부닥쳤다. 그 좋은 취지와는 달리 이미 자리를 잡고 영업 중인 다양한 외국음식점들의 영업권을 침해한다는 것.

실제 이들 음식점은 민간인이나 외국인이 투자해서 개업했는데 ‘통’은 행정의 지원을 받다 보니 경쟁에서 민간 음식점이 불리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런 갈등 끝에 ‘다문화 음식점 통’은 ‘다문화 카페 통’으로 정체성을 새로 세우게 됐다.

/정성인 기자

사회적 기업을 꿈꾸는 ‘통’

‘통’은 다문화음식점으로 출범할 때부터 사회적 기업으로 가겠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다. 인근 상인들과 상생 방향을 찾아낼 때까지 내·외부적인 여러 사정으로 곧바로 사회적 기업을 추진하지 못하다가 최근 들어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받고 사회적 기업이 되고자 준비에 한창이다. 그 중심에 지난 11월부터 대표를 맡게 된 오미숙 씨가 있다. 12월 13일 통 2호점 개점을 앞두고 개점 준비로 바쁘다는 오 대표를 10일 오전 통 1호점에서 짬을 내 달라고 떼를 써서 겨우 만났다.

만나자마자 컴퓨터 앞으로 가더니 뭔가를 출력해서 보여준다. 꽤 세련되게 작성한 보도자료였다.

“13일 통 2호점을 개점한다는 보도자료를 만들어 어제 김해시청 출입 기자들에게 보냈어요.”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이번 인터뷰는 ‘통’을 소개하는 게 아니라 ‘오미숙’이라는 개인의 삶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했고 몇 차례 같은 얘기를 되풀이했지만, 자꾸만 ‘통’을 홍보하는데 열정적이었다.

/정성인 기자

“처음에는 김해시 다문화가정 지원센터에 팀장 요청을 받았어요. 이미 ‘통’은 만들어져 있었고요. 팀장이라지만 ‘홍보요원’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고 실제로 한동안은 홍보에 열중했죠. 하하.”

커피를 차에 싣고 다니면서 팔기도 하고 각종 행사장에 홍보부스를 만들어 시음회도 하는 등 적극 홍보에 나섰다. 그러다 보니 그간 여러 봉사활동을 통해 알게 된 좋은 사람들 도움도 받게 되고 격려도 받았지만, 자존심도 많이 상했다. 남편이 돈을 못 버니 생활전선에 나선 것 아니냐는 시선 때문이었다.

“저기 남편께서도 앉아 계시지만, 이런 말씀을 드렸어요. ‘당신이 직장을 안 나가고 또 집에 먹을거리가 없어 이 일을 했다면 아마 못했을 거 같아요. 차라리 아는 사람 없는 동네에 가서 했으면 했지’라고요.”

특히 젊은 시절 말로 다 표현 못 할 고생을 하면서도 어렵다는 내색 한 번 안하고 살아온 그에게 이런 시선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물론 그 사람들은 농담으로 던진 말이라고 이해하려 했지만, 마음이 상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인맥 도움으로 2호점을 마련하게 됐다.

“하루는 여기(1호점)에 앉아 있는데 에스오일 주유소를 하시는 강병수 사장님이 지나가시는 거예요. 모시고 들어와 커피를 대접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내가 여기 대표로 있다면서 이 카페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등에 대해 말씀을 드렸죠. 뭔가 말씀을 하실 듯하면서도 저어하시더니 다음날 바로 전화가 왔어요. 주유소에 공간이 있는데 2호점을 거기에 내면 안 되겠느냐고.”

원래 그곳은 월 임대료 100만 원씩 받으면서 카센터에 내줬는데 사람이 들락거리면서 담배도 피우고 하는데, 주유소에서 그러니 위험하기도 하겠다 싶어 카센터를 내보내고 비어있던 공간이었다. 내보내고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자 했으나 인근에 적십자 무료급식소가 있어 그도 못하고 비워두고 있었던 것이었다.

공간은 ‘공짜’로 얻었지만, 내부 인테리어 비용 마련에 어려움을 겪었다. 인테리어 업자에게 맡기면 1억 원은 족히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지만 4000만 원 선에서 공사하기로 했다. 역시 그의 폭넓은 인맥이 톡톡히 구실을 했다.

비용을 마련하고자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마사회에 요청했는데 마사회에서 흔쾌히 3000만 원을 지원해준다고 해서 개점에 탄력이 붙었다. 공동모금회에서도 지원받을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개점이 2014년으로 미뤄질 형편이었고, 에스오일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개점하기를 원하다 보니 마사회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봉사는 하는 게 아니라 받는 것

문화관광해설사, 숲 해설가, 원예치료사, 사찰 꽃꽂이 강사, 봉사활동으로 만난 인맥의 도움….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는 듯했다. 인터뷰 내내 자꾸만 새로운 역할이 튀어나오면서 인터뷰 초점을 어디다 맞춰야 할지 헷갈릴 정도였다.

인터뷰를 위해 카페에 들어서자마자 그가 건넨 첫마디가 이랬다.

“제가 봉하마을에 문화관광해설사로 있을 때….”

/정성인 기자

2001년 무렵이었다고 한다. 김해시가 관광가이드 자원봉사자 교육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바로 지원했다. 95년에 김해로 이사 와서는 종합사회복지관에서 도시락배달 자원봉사를 하던 중이라 사는 지역에 대한 역사적인 공부도 좀 하고 이것도 자원봉사다 싶은 마음에 참가하게 됐다고. 그렇게 하다 보니 2002년에 경남 문화관광해설사를 모집하는 걸 보고는 참가한 것이 지금까지 문화관광해설사로 활동하게 된 계기였다.

“여러 가지 활동을 많이 하는 것 같은데, 처음 어떤 계기로 자원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는지” 물었다.

“제가 종교가 불교거든요. 창원에 80년쯤 이사 와서 15년을 살았는데, 성주사를 나가게 됐어요. 성주사 불교 기초교리 강좌를 하는 불모학당이 있는데 거기 1기로 공부를 하면서 절 일을 많이 하게 됐죠.”

그렇게 기초 교리반을 수료하고 취미반을 개설했다. 거기서 88년께 꽃꽂이를 배웠고 불교꽃꽂이라는 분야에 푹 빠져들었다고 한다. 이후 불교 꽃꽂이를 가르치면서 창원시내 웬만한 불교 행사용 꽃꽂이는 도맡다시피 했다.

김해로 이사 온 후 부산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불교호스피스교육을 받고 부산지역의 노인요양원 등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내가 김해 사는데 부산 와서 봉사하다니. 이건 아니지’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김해 종합사회복지관을 찾아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데 할 만한 일이 없겠느냐’고 물었단다. 마침 복지관에서는 도시락 배달 봉사단을 만들고 싶었는데 차를 가진 봉사자를 찾지 못해 차일피일하고 있었는데 오 씨가 자원하면서 곧바로 도시락 배달 봉사단이 꾸려졌다.

이후 김해시 여성자치회 동문회장으로 있으면서 결혼이주여성 친정엄마 맺기 사업을 주도했고, 그때 필리핀 딸과 중국 딸이 생겼다.

김해중부경찰서 시민경찰 3기 회장을 맡고는 독거노인 칠순잔치를 만들었는데 올해로 7년째 이어오고 있다. 경남 여성지도자협의회 사무총장도 지냈고 그동안 복지부 장관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도 받았다.

또 봉사가 아니라 사회복지를 제대로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야대 사회복지학과 공부를 하고 지금은 인제대 사회복지대학원에 다니고 있다.

/정성인 기자

“봉사라는 거요? 내가 시간 남아서 하는 게 아니고 시간을 절약해서 하는 겁니다. 하지만 사실은 내가 봉사하는 게 아니고 받는다고 생각해요.”

문화관광해설사를 하면 오전 10시에 나가서 오후 5시 퇴근하는데 성주사 꽃꽂이하고 겹치면 새벽 5시쯤 가서 작업 마치고 시간 맞춰 해설하러 나가곤 한다.

“몸이 힘든 거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거죠. 시간만 조금 줄이면, 잠을 조금만 줄이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 엄마들 다 그리하셨잖아요. 내가 몸이 편안하고 그러려면 그냥 놀러다녀야죠.”

봉사활동도 ‘융합(?)’

“노인 봉사도 좋지만, 요즘은 아이들에게 봉사를 많이 하려고 해요. 노인들은 무조건 잘해드리면 좋아하셔요. 하지만 청소년들은 사각지대가 많더라고요. 원예치료 하면서 청소년 프로그램해보니 그 아이들 마음을 돌릴 수 있는 게 참 좋고, 그 아이들 마음이 바뀌어 가는 게 눈에 보이면 좋아서 아이들하고 많은 시간을 함께 하려고 노력합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면 좋은 게 ‘할머니 선생님’이라는 거라고. “처음 인사할 때부터 할머니 선생님이라고 하거든요. 그러고는 손잡고 다니면서 얘기도 해주고 하면 아이들도 참 좋아해요.”

친정엄마 맺기 사업을 할 때는 취업교육도 함께했다. 행사 규모를 조금 줄여 비용을 아끼고 그 돈으로 네일아트나 비즈공예 같은 동남아 여성들이 좋아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들도 기술을 가지고 경제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

“회장이 바뀔 때마다 중점을 주는 분야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계속해오고 있어요. 요즘은 풍물을 배우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취업교육을 받은 결혼이주여성들로 봉사단체인 ‘넝쿨당’을 만들어 노인들이나 장애인들에게 이·미용 봉사활동도 나가곤 한단다.

꽃꽂이로 시작된 봉사활동은 원예치료사, 문화관광해설사, 숲 해설가로 영역을 확장했다. 복지관 도시락 배달 봉사는 호스피스 활동, 독거노인 칠순잔치, 다문화 가정 지원 사업, 이주노동자 사업으로까지 확장됐다.

그런 다양한 경험이 농축되면서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고사리 봉사단’ 활동으로 이어졌다.

“유적지 청소도 하고 앞으로도 계속 관리돼야 한다는 얘기도 해주고, 그에 얽힌 이야기도 해주고 합니다. 그런데 벌써 고사리 봉사단 출신 아이가 대학에서 고고학을 전공하기로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는 참 보람을 크게 느꼈답니다.”

부산 등지에서 김해 쪽으로 체험활동을 오겠다고 하면 가서 유적지 안내와 설명을 해주고, 동상동 서상동 일대 다문화 거리로 안내도 해주고, 다문화 음식 체험도 안내해주고 하는 게 그런 다양한 경험에서 묻어난 생생한 이야깃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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