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천덕꾸러기, 명물 대접받은 덴 진동 고현사람 공 크다

어느 지역 특산물이든 그렇다. 자연환경, 여기에 사람 손길이 더해지면서 소중한 자산을 안게 된다. '마산 미더덕' 역시 그러하다.

4월 초 어느 날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고현마을. 깊은 내만인데다 마을 앞바다 너머에는 여러 섬이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파도가 세지 않다. 태풍이 와도 비교적 온순함을 잃지 않는다. 그래도 적당한 물 흐름이 있어 깨끗한 물을 유지한다. 바다 아래는 펄 아닌 모래땅에 가깝다. 여기에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플랑크톤이 풍부하다. 이러한 자연조건은 이곳에 '미더덕'을 달라붙게 했다.

미더덕 주산지인 창원시 진동면 고현마을 바다는 잔잔하다.

미더덕은 <자산어보>(玆山魚譜·1814년)에 기록이 등장한다. 마산지역에서는 미더덕을 세시 풍속에 따른 음식으로 이용했다. 정월대보름이나 풍어제를 지낼 때 들깻가루를 넣은 미더덕찜으로 몸과 마음을 달랬다고 한다. 그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머리 희끗희끗해진 이들이 "우리 할아버지·할머니 시절에도 세시 음식으로 이용했다"고 전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여기저기서 널리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그리 오랜 세월은 아니다. 미더덕 하는 어민은 이렇게 전한다.

   

"어릴 때 보면 자연산 미더덕이 돌 여기저기에 붙어 있었거든. 할매·아지매들이 그걸 따서 대야에 담아 장에서 팔았는데, 사람들 반응은 신통치 않았지. 처음 보는 사람들은 징그럽다며 뭐 이런 걸 파느냐고 핀잔하고 그랬구먼. 그리 팔아서는 큰돈은 안 되었고, 조금씩 따서 집에서 먹는 정도였지."

아이들 도시락 반찬이 변변치 않던 시절, 고현마을 같은 곳에서는 미더덕찜을 이용하기도 했다. 이 지역에서는 그리 특별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이들이야 달걀말이·빨간소시지에 눈길 줬기에, 미더덕찜은 뒷전 취급이었다.

시간이 좀 더 지나서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기도 했다. 양식장이나 선박에 달라붙어 해를 끼쳤기 때문이다. 굴 양식을 본격화한 거제·통영 같은 곳에서는 이 '해적생물'이 달가울 리 없었다. 나라에서도 없애는 데 머리를 싸맸다.

하지만 흘겨보는 눈길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돈 되는 놈으로 생각하는 머리 좋은 사람들은 늘 있는 법이다.

고현마을 앞 바다는 섬으로 둘러싸여 있다.

진동면 고현마을에서는 1970∼1980년대에 꼬막을 많이 했다. 하지만 살림살이를 그리 넉넉하게 하지는 못했다. 자연스레 시선이 옮겨간 것이 미더덕이었다. 홍합 종패에 함께 붙어 올라오는 것을 보며 양식에 대한 고민을 이어갔다. 1980년대 초부터 시도에 나선 몇몇이 꽤 짭짤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당연히 옆집·앞집 할 것 없이 꼬막양식장을 미더덕으로 전환하면서 마을 전체로 퍼졌다.

하지만 여전히 나라에서는 양식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해적생물'이라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굴·멍게로 한창 재미 보던 인근 지역 어민들은 자신들 소득을 뺏어갈 새로운 놈의 등장이 불편했다. 양식허가에 대해 반대하는 분위기가 꽤 거셌다. 고현마을 사람들은 서울을 비롯한 전국 수산시장을 다니며 미더덕을 홍보했다.

그래도 여전히 허가가 나지 않아 불법 아닌 불법으로 미더덕을 하며 행정기관 눈치를 봐야 했다. 그러던 것이 2001년에야 양식이 허용됐다.

미더덕 까는 아지매들.

미더덕은 1980년대 중·후반 작은 어촌인 고현마을에 사람을 불러모았다. 한 어민은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당시 마산에서 수출자유지역이나 한일합섬 같은 데나 들어가야 좋은 직장이라 했거든. 그런 데 아니면 돈 벌기 쉽지 않지. 그 당시 그런 직장보다 미더덕 돈벌이가 더 좋을 정도였으니까. 이 작은 마을에 사람들이 북적북적했어. 그래서 우리는 '한일합섬 뒷골목 못지않다'고 말하기도 했지."

현재 시장에 나오는 미더덕은 모두 양식이다. 하지만 그 양식이라는 게 그물을 바다에 던져놓고 달라붙기를 기다리는 게 전부다. 그래서 자연산과 구분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전통 자연산은 이제 찾기도 어렵다. 흰 바위가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많이 달라붙었던 것은 옛 기억일 뿐이다. 워낙 깨끗한 물에서만 살 수 있는 습성 때문에, 환경 변화 속에서 도태한 것이다.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양식으로 대량수확할 수 있기에 굳이 찾아 나설 필요도 없다.

미더덕은 국내 전 연안에서 나기는 하지만 거제∼통영∼고성∼마산∼진해 해안 일대에 집중해 있다. 이 가운데 마산지역은 한때 전국 생산량의 70∼80%를 차지했다. 지금은 거제·고성 같은 곳에서도 많이 내놓고 있어 50∼60% 수준이다. 거제∼진해에 걸친 '괭이바다'에서 나는 것은 맛에서 큰 차이가 없다. 다만 펄 많은 전라도 해안에서 나는 것은 여기와 비교할 수준이 아니라고 한다.

미더덕을 까기 위해 특별 제작된 칼.

미더덕은 '바다의 더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미'는 바다의 옛말이다. 한편으로 여기저기 '더덕더덕' 붙어 있는 모양새도 그 이름에 스며 있다.

미더덕은 1월부터 8월 말까지 채취한다. 이 가운데 성장이 최고조에 이르는 3∼4월이 가장 맛있는 철이다. 미더덕 철이 끝나면 어민들은 또 다른 손님을 맞이한다. 주름미더덕, 일명 '오만둥이'가 8월 이후 본격적으로 난다. 경상도 말로 '오만 데 다 달라붙는다'해서 '오만둥이'라 불리지만, 물이 조금만 탁하면 폐사하는 민감한 놈이기도 하다. '오만둥이'는 그 가치가 미더덕의 절반 정도로 매겨진다. 그래도 찾는 이가 꾸준히 늘고 있다. 10여 년 된 '진동 미더덕 축제'는 한때 '미더덕·오만둥이'라는 이름을 함께 넣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그렇게 구분할 필요까지 없다 해서 '미더덕'으로 단일화했다. 2013년 9월 '진동 미더덕' 이름으로 '수산물 지리적표시제'에 등록, 지역 특산물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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