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년 전부터 현장 지켜 힘든 작업에도 거뜬…"미더덕 덕분"

마산지역에서 미더덕 양식업이 본격화된 것은 35년 가까이 됐다. 1세대 가운데 여전히 현장을 지키고 있는 이도 있다. 정옥준(74) 할아버지가 대표적이다.

가공장에서 만난 할아버지는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내가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건 미더덕을 많이 먹었기 때문"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할아버지는 한평생 경남 일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통영 욕지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은 고성에서 보냈다. 스무 살 넘어서는 거제에서 교육청 공무원 생활을 했다.

"나랏밥 먹는 걸로는 돈이 안 돼서 그만뒀지. 그러고는 거제에서 바다 일을 좀 했는데, 굴·홍합 부산물로 미더덕이 하나씩 올라오더라고. 그래서 어떤 그물을 써야 하는지도 모르고 여기저기 던져보니까 괜찮은 거야. 그렇게 내가 하는 걸 보고 주변에서 따라 하기 시작하더라고."

   

거제에 씨 뿌리는 역할을 한 할아버지지만 오래 이어가지는 않았다. 아이들 교육 때문에 마산으로 옮겼다.

이곳에서는 장사를 했는데 별 재미는 못 봤다. 그래서 다시 바다를 찾아 들어간 곳이 진동면 고현마을이다.

"내가 이 마을에 온 게 34~35년 됐지. 당시 이곳에서는 꼬막을 많이 했지. 나는 거제 때 경험이 있으니까 미더덕을 양식으로 하면 괜찮겠다 싶었지. 그래서 본격적으로 시작했어. 마찬가지로 내가 미더덕을 쏠쏠히 끌어올리니까 주변에서도 관심 갖더라고. 혼자 하는 것보다는 마을이 집단으로 하면 좋잖아. 반신반의하던 사람들에게는 함께 하자고 이야기도 하고 그랬지."

양식허가는 그로부터 20여 년 후에나 났다.

"주로 굴 많이 나는 곳에서 방해를 놨지. 새로운 뭔가가 나오면 굴 소비는 아무래도 줄어들 수밖에 없으니까. 그쪽 어민들이 나라에 압력도 넣고 그랬지. 어쨌든 양식허가가 결국 나서 다행이구먼. 그 덕에 고현마을이 돈 잘 벌게 됐으니까."

할아버지는 업을 아들에게 물려줄 준비를 하고 있다.

"미더덕은 좀 부지런하면 괜찮지. 일하는 사람 많이 안 쓰고 가족이 함께하면서 관리 잘하면 돈 벌어. 나도 잘될 때는 한 해 몇 억씩 벌기도 했고. 지금은 우리 아들이 사장이고, 나는 일꾼이야. 그런데 일은 젊은 사람도 나 못 따라오지. 아직도 손발이 자동으로 움직여. 미더덕 많이 먹어서 그런 거야. 그건 확실해. 미더덕 업 하는 사람 중에 고혈압 있는 사람은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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