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사이트 되는 그 날까지 쭉~ 갑니다”

박근혜 정부가 내세우는 ‘창조 경제’를 두고 실체가 모호하다는 이야기가 많다. 그런데 한 기사에서는 ‘창조경제가 별건가’라며 여러 사례 가운데 이 사람 이야기도 담고 있다. 진주 경남과학기술대 산학협력관에 자리한 그의 회사를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벽에 붙어 있는 손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마음으로 재밌게 놀자’. 사무실 분위기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는 문구다. 곧 그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회사 대표라는 고정적인 관념과는 거리 먼 인상이었다. 짧은 머리에 검은 점퍼를 걸친 그는 “오늘은 머리도 안 감았어요”라고 했다. 뭐랄까, 대학 동아리 회장 같은 느낌이라면 실례일까?
그는 온라인 재능마켓 크몽(www.kmong.com) 박현호(37) 대표다.

무형의 상품을 팔고 산다?

이전까지 박현호 대표의 존재를 몰랐다. 온라인 재능마켓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사전 취재를 위해 ‘크몽’ 사이트에 들어가 보았다. 소개 영상을 보니 이러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모든 사람은 각자 훌륭한 재능을 갖고 있습니다. 그 재능은 어떤 누군가에게 아주 필요한 재능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당신만의 재능을 쇼핑하듯 쉽게 사고팔 수 있으면 어떨까 하고 말이죠.’

박현호 진주 크몽 대표./김구연 기자

풀어서 얘기하면 일반 온라인쇼핑몰과 다르지 않다. 다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재능상품을 팔고 산다는 차이점이 있다. 예를 들어 웹툰작가가 ‘얼마의 가격에 홍보용 만화를 그려주겠다’는 상품을 올려놓으면, 이를 필요로 하는 개인 혹은 기업이 책정된 가격을 지불하고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용하는 식이다.

‘크몽’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상품 몇 가지를 소개해 보자.

‘5000원에 디자인 수정, 이벤트 디자인 등 웹 관련 디자인을 해 드립니다.’

‘2만 원에 마케팅에 관한 전략을 총정리해 드립니다.’

‘2만 원에 페이스북 좋아요 1만 개 이상 보장해 드립니다.’

박현호 대표는 재능마켓은 곧 ‘가상의 지식 거래’라고 설명한다.

“제일 많이 거래되는 분야는 디자인 쪽이에요. 로고나 온라인 배너를 제작하는 것들 말입니다. 그리고 명함, 홍보용 웹툰, 캐리커처, 캘리그라피, 온라인마케팅, 문서번역 같은 것도 많아요. 요즘은 펜으로 사인할 일이 많다보니, 보기 좋은 사인을 만들어 주는 상품도 있습니다.”

사이트 주 카테고리는 ‘디자인’ ‘마케팅’ ‘문서’ ‘비즈니스’ ‘컴퓨터’ ‘음악&영상’ ‘생활서비스’ ‘핸드메이드’로 나뉘어 있다. 톡톡 튀는 상품도 많다.

“많이 거래되는 건 아니지만 ‘욕 들어주는 재능’도 거래됩니다. 상사한테 스트레스받은 이들을 위해 판매자가 상사 역할을 대신 하는 거죠. 최대한 그 상사와 비슷한 말투를 사용하면서 구매자가 몰입할 수 있게 하고, 또 때로는 험한 말을 듣는 것도 감내해야죠. 구매자는 상사한테 받은 스트레스를 그런 식으로 푸는 겁니다. ‘이별 대행 재능’도 있어요. 차마 스스로 이별 통보 못 하는 이들을 위해 대신해주는 거죠. 그밖에 연애상담, 모닝콜 같은 것도 있고요.”

그렇다고 희망하는 모든 상품이 거래될 수 있는 건 아니다. 도덕적으로 문제 소지가 있는 것들은 ‘크몽’에서 승인제를 통해 걸러주고 있다.

‘크몽’ 직원들 역시 자신들만의 재능을 판매하고 있다. 박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비즈니스 상담을 판매하고 있다. 5만 원 결제하면 이메일 상담, 20만 원 결제하면 오프라인 상담을 해 준다. 이 상품을 구매한 이는 30명가량 된다.

   

이스라엘 어느 사이트 벤치마킹

‘크몽’은 박현호 대표가 2011년 5월 실험적으로 시작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해외 사이트를 벤치마킹한 후 이를 국내 정서와 시장에 맞게끔 변형했다.

“사실 인터넷 초창기부터 지식 거래 시도는 많았어요. 하지만 상품 거래로 연결되지는 못했습니다. 외국 사이트를 찾다가 이스라엘 ‘파이버(fiverr.com)’라는 사이트를 벤치마킹했습니다. 처음에는 큰 사업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냥 어떤 반응일까 궁금해서 시작하게 됐어요. 재능 판매 가격도 건당 5000원으로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마추어 중심이었는데, 갈수록 실력자들이 모여들었어요. 여기서 돈을 벌려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상업적인 성격이 커진 겁니다. 그러면서 큰 규모 거래 등 더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됐죠.”

실험에서 벗어나 법인 설립을 한 것이 2012년 6월이다. 그러니 회사 골격을 갖춘 지 2년도 채 안 됐다. 하지만 그 기간에 비해 ‘크몽’은 사람들 곁에 바짝 다가가 있다. 회원은 5만 명을 넘어섰으며, 1월 현재까지 성사된 거래는 6만 건을 향하고 있다. 매출은 지난해 10억 원가량이었고, 올해는 50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크몽’은 거래금액의 20%를 수수료로 돌린다. 여기저기 생겨난 재능마켓이 10여 개 되지만 ‘크몽’이 업계 점유율 60~70%를 차지한다. 직원은 10여 명 정도며 진주 외에 서울에 별도 사무실을 개설했다.

애초 건당 판매 가격을 5000원으로 묶어뒀지만 이제 그 제한이 없다. 지금까지 건당 최고가 거래는 웹툰 제작 500만 원이었다. ‘크몽’을 이용하는 판매자 가운데는 단순한 부업 아닌 생계형 비즈니스로 활용하는 이도 많다.

실패, 또 실패, 그리고 크몽

최근 박현호 대표는 페이스북에 자신이 소개된 기사를 링크했다. 박 대표는 그런데 좀 못마땅한 듯 ‘기사가 났는데 제목이 좀…’이라는 멘트를 달았다. ‘창업실패로 신불자 된 30대男, 지리산 낙향 뒤 월매출 1억’이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박 대표는 ‘신불자’라는 말이 좀 걸렸던 듯하다.

박현호 진주 크몽 대표./김구연 기자

진주가 고향인 박 대표는 6살부터 컴퓨터에 빠져 살았다. “사촌 형 집에 8비트 컴퓨터가 있었어요. 늘 사촌 형 집에 가서 컴퓨터 게임하며 놀았죠. 중학교 때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는데 너무 재미있더라고요. 그때부터 프로그래머 꿈을 안게 됐습니다.”

그는 그렇게 단국대학교 컴퓨터공학과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공 공부는 뒷전이었다.

“학교 수업은 이론적인 것만 하니 재미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수업은 안 들어가고, 혼자 도서관에 처박혀서 컴퓨터프로그래밍이나 하고 그랬죠. 또 허름한 한 아파트에 컴퓨터 좋아하는 선후배들과 모여 함께 놀았죠. 그러다 1학년 때 게임쇼핑몰을 만들었어요. 제가 진주에 살다 보니 지역에서는 게임 소프트웨어 구하기가 어렵다는 걸 알았거든요. 그냥 재미 혹은 공부 삼아 만들었는데, 실제로 주문이 들어오더라고요. 주문받으면 서울 용산전자상가에서 직접 사서 부쳐주는 거죠. 남기는커녕 오히려 마이너스죠. 그래도 내가 만든 사이트를 사람들이 이용한다는 게 신기했죠. 나는 손에 잡히는 이런 일을 하고 싶은데, 학교 공부가 방해되더라고요. 별 고민 없이 학교를 관뒀습니다. 부모님들도 별 말씀 없으셨고요.”

학교를 그만두고 나서는 피시방 관리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다. 이후에는 4억 원가량 투자받아 전자쇼핑몰을 운영했다. 하지만 ‘닷컴버블’ 한파 속에서 2001년 박 대표도 쪽박을 찼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 시도했다. 국내에서 아직 이종격투기 붐이 일기 전, 외국 경기를 실시간 제공해주는 사이트를 만들기도 했다. 저작권 문제로 오래 이어가지는 못했다.

박 대표는 이렇게 저렇게 만든 사이트만 20개, 사들인 도메인만 50~60개에 이른다. 하지만 성공과는 거리 멀었다.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만 2번이었고, 이 밖에 7번의 실패를 경험했다. 작은 프로젝트까지 포함하면 20번 가량 쓴맛을 봤다.

“처음에는 나 자신이 재미있어 시작했는데, 조금 지나면서 계속 성공해야 한다는 욕심이 커졌어요. 어릴 때는 또래에 비해 늘 빨리 출발한다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몇 번의 실패를 경험하면서 심리적인 부담감이 컸던 거죠. 단기간 대박을 터트려야 한다는 생각이 오히려 실패를 거듭하게 한 겁니다.”

대학은 손 놓았고, 빚 1억 원을 떠안은 신용불량자 신세가 됐다.

2010년 가을 부모님 있는 산청으로 돌아왔다.

박현호 진주 크몽 대표./김구연 기자

“서른 넘은 아들이 빚만 떠안고 집에서 빈둥빈둥한 거죠. 그런데도 부모님은 잘될 것이라며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좋아하는 일은 미친 듯이 하지만, 싫은 건 절대 못 하는 성격이에요.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아이템을 계속 찾았습니다. 이번에는 초심으로 돌아가기로 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사용하라고 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을 내가 만들자고 말이죠. 그런 마음으로 접근한 게 ‘크몽’입니다. 일단 실험적으로 시작해서 사용자 반응을 보면서 조금씩 수정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니 괜찮은 반응을 얻은 것 같아요.”

“결혼요? 아직은 더 일에 집중해야죠”

‘크몽’이라는 이름은 입에 감기는 느낌이 있다. 사실 별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예전에 어느 뮤직비디오를 봤는데, ‘컴온 컴온’이라는 말이 ‘크몽 크몽’으로 들리더라고요. 그 느낌이 좋아서 ‘크몽’ 도메인을 사놓았고, 이번에 사용하게 된 거죠.”

‘크몽’은 ‘평범해지지 말자’를 좌우명으로 하고 있다. 또한 이 회사에는 직책이 없다. 박현호 대표도 직원들로부터 ‘대표님’이라는 말을 듣지 못한다.

박현호 진주 크몽 대표./김구연 기자

“저희는 대리·과정·부장·대표, 이런 직책이 없습니다. 각 파트에 대한 책임자는 있지만 수직적인 직책이 아니라 역할인 거죠. 그런데 직책을 없애다 보니 호칭이 좀 곤란하더라고요. 그래서 저희는 각자 영어 이름을 만들어 부르고 있어요. 저는 ‘토니’라는 이름을 써요. 학교 다닐 때 즐겨 먹었던 바비큐 레스토랑 이름에서 따온 거예요. 다른 분들은 ‘써니’ ‘다니엘’ ‘루시아’ 같은 이름을 사용하죠.”

‘크몽’ 사이트에는 최근에 합류한 새 식구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며칠 전 수많은 이력서 중에서 눈에 띄는 한 통의 이력서가 들어왔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기업의 고객센터를 만들고 운영하신 고객센터장으로서 17년 경력의 전문가가 지원하셨습니다. 이분이 바로 고객서비스 달인 Sunny님 이십니다.’

박 대표는 ‘크몽’ 가족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다.

“재미있는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언론 노출이 좀 많았어요. 그래서 각 분야 실력 있는 분이 많이 합류하셨어요. 비전 하나 보고 대기업 다닐 때 연봉 절반만 받고 일 하시는 분도 있습니다. 아직 규모는 작지만, 모두가 일하고 싶어 하는 회사로 만들고 싶네요.”

박 대표는 강의도 종종 나간다. 실패를 하도 많이 겪었기에 이를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한다. 그 외에는 늘 ‘크몽’ 일에 매달린다. 그는 결혼하지 않았다. 산청 부모님과 함께 지낸다. 아직은 여유가 없다.

“예전보다는 일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였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크몽’을 성장시키는 데 집중해야죠. ‘크몽’을 국민적인 사이트로 만들고 싶습니다. ‘G마켓’ 하면 모든 물건을 다 살 수 있다고 생각하듯, 생활에 밀접한 서비스가 필요할 때 ‘크몽’에 들어오면 모두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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