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 이른 아침부터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바구니 안에서 아기 배꼽에 탯줄을 자른 후 고정한 클립이 있는 채로 버려진 아기 이야기를 다들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해마다 길에 버려지는 아기가 한둘이 아닙니다. 갓 태어난 영아에서부터 신생아, 유아까지 쓰레기처럼 마구 버려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탯줄이 달려있는 영아를 건물 화장실, 담벼락 밑, 도로 옆, 여관방 등에 버립니다. 부모들이 아기를 버리는 이유는 크게 네 가지로 분류되던데요, 양육 포기, 어려운 가정 형편, 미혼모, 장애아입니다.

우리 사회는 보육의 질이 부모의 능력에 따라 상당한 차이가 있고, 미혼모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곱지 않으며, 미성년의 임신과 출산은 산모와 아이의 장래를 담보할 수 없는 환경임을 감안할 때 낙태를 죄로 처벌하는 것은 생명권이란 법익에 앞서 사회적 환경에 따른 합리적 결정권을 제한하므로 임산부와 아이의 행복추구를 보장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2013년 8월 대전지법이 업무상 촉탁낙태 혐의로 기소된 산부인과 의사 4명에 대한 항소심에서 검사의 항소를 기각하고 선고유예와 형의 면제를 판결한 원심 판단을 유지하는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여성계가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평했는데요.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태아의 생명은 사람의 생명과 마찬가지로 형법이 보호하고자 하는 법익의 하나이고 형법의 규범력이 여전히 유지되는 등 그 죄질이 가볍지 않은 점 등은 인정되지만, 여성의 낙태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고 사실상 낙태가 용인되는 사회적 분위기상 피고인들에게만 무거운 책임을 묻기 어렵다”고 판결의 이유를 밝혔습니다.

판결이 있은 후 여성 단체는 공동으로 논평을 내고 “이번 판결은 ‘생식’과 관련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진일보한 판결로 의미가 있다”며 “이에 우리 단체들은 인공임신중절 합법화를 통해 여성들의 몸에 대한 권리와 신체의 안전이 보장되길 요구하며 앞으로도 이 문제에 대하여 지속적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며 임신과 인공임신중절, 출산에 대한 결정권이 여성에게 있음을 고려하고 현실과 법의 괴리를 반영한 판결이며 한국사회에 인공임신중절이 만연하는 것은 생명존중사상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임신할 수 있는 여성의 몸, 성, 자기결정에 대한 존중의 부재로 출산과 양육을 선택할 사회적 구조가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공임신중절의 불법화로 인해 안전하지 않은 인공임신중절 수술이 비밀리에 행해졌다는 것을 기록을 통해 접할 수 있었는데요. 여성의 안전 및 건강에 심각한 위협을 받게 되고 수술 후 죽음을 맞이한 사례도 적잖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73년에 연방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사건에서 낙태의 자유를 명시하였습니다. 이 소송은 텍사스 주에 사는 임신 여성 로가 낙태를 금지하는 주정부 법무장관 헨리 웨이드를 상대로 다른 주로 ‘원정 낙태’를 떠나는 비용을 청구한 사건으로, 미국 연방대법원은 로의 손을 들어주어 임신여성의 임신유지 여부에 관한 독자적 결정권을 보장하였습니다. 이후 형성된 미 연방 대법원 판례는 임신 초기(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는 임신부의 독자적인 판단에 속하는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유럽 국가들은 낙태를 여성의 선택으로 보고 비교적 폭넓게 허용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1968년부터 임신 24주까지는 포괄적으로 낙태가 가능하도록 했더군요. 낙태 시술은 의사 2명의 동의를 얻어야 하며, 의사는 양심에 따라 시술을 거부할 수 있고, 임신 중절의 88%는 임신 13주 이내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싱가포르도 임신부의 요청 등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한 낙태를 인정하고 있으며 중화민국(타이완)은 임신 24주까지 포괄적으로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나라도 유엔 여성차별철폐협약에 근거해 인공임신중절한 여성을 처벌하는 ‘낙태죄’ 폐지를 고민해보아야 하며, 산모의 행복과 아기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원치 않는 임신의 경우 12주까지 낙태를 허용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기결정권이란 삶의 다양한 영역(결혼, 이혼, 출산, 피임, 낙태 등), 생명(연명치료, 자살, 장기이식 등), 생활방식(머리모양, 복장, 취미생활, 흡연, 음주), 성적 행동(성생활, 성적 지향 등)과 관련하여 광범위하게 적용됩니다.

“여성은 단상(pedestal) 위에 모셔지지만, 그 단상은 여성의 자유를 제한하는 감옥이 될 뿐입니다.” 글로리아 스타이넘(여성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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