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

창원시 마산회원구 회성동 창원교도소. 통합창원시 이전에는 ‘마산교도소’로 불리었습니다.

현 창원교도소 위치는 1970년 오동동 한국은행 자리에 있던 마산형무소가 이전한 것입니다.

마산에 교도소가 들어선 것은 1910년대. 일제 강점기 전국적으로 의거운동이 일어나면서 감옥이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부산본감 소속 마산분감으로 출발하였다고 합니다. 마산분감은 지금의 부림시장 입구에 있던 경무청과 같이 있었고, 1913년 오동동으로 옮긴 것입니다. 1923년에는 ‘부산형무소 마산지소’였고, 1946년에 ‘마산형무소’로 승격되었습니다. 1961년에는 교정교화를 목적으로 ‘교도소’란 명칭을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주민들의 이전 요구로 1970년 지금의 위치로 옮겨간 것입니다.

창원교도소는 대한민국의 역사와 함께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독립운동을 하던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투옥되어 죽어갔고, 3·15의거와 부마민주항쟁, 5·16쿠데타를 거치면서 민주 인사들이 대거 수형생활을 했습니다.

창원교도소 일대 전경./김구연 기자

특히 해방이후에 특이할 만한 사실은 보도연맹으로 연루된 1600여명이 이곳에 수용된 후 학살되었으며, 5·16 직후에는 교원노조 이봉규 마산중등위원장과 황낙구 초등위원장, 전국양민피학살자 유족회 노현섭 회장 등이 수감생활을 하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인 권오석 씨도 한국 전쟁 당시 좌익사건으로 마산형무소에 수감돼 옥사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니다. 현 창원교도소는 이처럼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산 도심이 급격히 팽창하면서 이전을 요구하는 민원이 빗발치듯 일었고, 2004년부터는 내서읍 평성리 140번지 일대로 옮기는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습니다. 이 자리에 주거와 상업단지 및 법조타운 등을 세워 마산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계획입니다. 현재 공사 진행을 맡기로 했던 LH공사가 부채와 재정 여건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사업이 난관에 부딪혀 있습니다.

창원교도소는 현재 이전과 개발의 기로에 섰습니다.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요?

창원교도소./김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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