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족해협 거센 물살 이용한 전통어획법, 상처없이 멸치 잡을 수 있어

남해군 창선면과 삼동면을 잇는 창선교는 1980년 6월 5일 만들어졌다. 그러다 1992년 7월 30일 교량 붕괴로 1명이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부실공사가 원인으로 드러났지만 '물살이 워낙 세다 보니 다리까지 무너졌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창선교 아래 지족해협은 물살이 시속 13~15km로 전국에서 두 번째로 세다. 이곳은 '좁은 물길'이라 하여 '손도'라고도 한다. 물 흐름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냇물이 세차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남해군 삼동면과 창선면을 잇는 창선교. 그 아래 지족해협은 물살 세기로 유명하다. /김구연 기자 sajin@

이러한 지족해협에 죽방렴이 자리하고 있다. 죽방렴은 참나무 말목을 V자로 박고, 그 사이사이 대나무 발을 두른 '물고기 함정'이다. 죽방렴은 지족해협에 23개, 남해~사천 사이에 21개가 있다. 1960년대에는 하동·거제에도 있었지만, 배 운항에 걸림돌이 되고 소득도 떨어져 사라졌다. 현재는 전 세계적으로 남해 일대가 유일하다고 한다. 필리핀에도 흡사한 것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남해 사람들은 "지혜나 효율성에서 비교가 안 된다"라고 말한다.

죽방렴 역사는 수백 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1469년 편찬된 <경상도속찬지리지>에는 '남해 방전(죽방렴)에서 멸치·홍어·문어가 잡힌다'는 내용이 있다. 550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그 형태는 변함없다. 죽방렴을 이루는 자재만 조금씩 바뀌었을 뿐이다. 죽방렴은 2010년 8월 18일 국가지정 명승에 포함됐다.

남해군 지족해협에는 죽방렴 23개가 펼쳐져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

죽방렴 하나는 1억 5000만 원에서 많게는 5억 원에 이른다고 한다. 같은 지족해협에 자리하고 있더라도 위치에 따라 생산액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죽방렴은 현재 제도적으로 더 이상 만들 수 없게 돼 있다.

선두를 따라 떼로 움직이는 멸치는 시야각이 넓은 쪽으로 향하는 습성이 있다. 죽방렴 원형 안으로 들어가면 두 개의 문에 부딪히면서 계속 '8'자 형태로 돌기만 할 뿐 빠져나오지 못한다. 지족해협에는 밀물·썰물이 하루 두 번씩 오간다. 밀물 때 죽방렴 안에 들어온 멸치를 썰물 때 뜰채로 건진다. 물이 빠지면 수심 3m까지 내려가는데, 죽방렴 안은 1m 정도 된다. 지반을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어민들은 썰물 때 들어가 그대로 건져 나오면 된다. 그물과 달리 상처 나지 않은 멸치만 잡을 수 있는 것이다.

▲남해군 창선교 아래 지족해협에서 볼 수 있는 죽방렴. /김구연 기자 sajin@

죽방렴은 멸치만을 위한 어구는 아니다. 멸치가 특히 많이 잡힐 뿐이지 갈치·꽁치·조기·전어·감성돔·문어 등 모든 어종이 대상이다. 멸치는 바다 먹이사슬에서 가장 아래에 있어 먹잇감이 된다. 죽방렴 안에 갇힌 다른 어종은 멸치를 먹으려다 빠져나가지 못한 놈들이다. 감성돔 같이 영리한 녀석은 멸치만 먹고 달아나기도 한다.

성질 급한 멸치를 대하는 여기 사람들은 느긋할 수가 없다. 죽방렴에서 멸치를 걷는 것에서 삶는 데까지 30분 안에 처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멸치 내장이 터져버린다. 우스갯소리로 죽방렴 하는 이들은 죽은 아버지가 와서 '아들아' 하고 불러도 듣지 못한다고 한다.

죽방렴 안에서 작업하는 어민들의 모습./남해군

배로 5분 거리에는 육지 작업장, 즉 발막이 있다. 죽방렴에 갇혀 있는 멸치는 한 번에 삶을 수 있는 가마솥 양만큼만 가져온다. 한꺼번에 많이 삶으면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건멸치는 삶을 때 소금 치는 것이 맛을 좌우한다. 소금은 간을 맞추는 역할도 하지만, 멸치 속이 터지지 않게 하는 역할도 한다. 삶은 후 냉·온풍 건조기로 말리는 이도 있고, 자연 바람에 이틀 정도 건조하는 이도 있다. 아무래도 자연에 맡겨두는 정성이 더 좋은 맛으로 연결되겠다. 죽방렴 멸치는 수협 위판도 일부 하지만, 대부분 인터넷 등을 통한 주문판매다.

이렇듯 죽방렴 멸치는 지족해협의 빠른 물살, 상처 없는 어획, 그리고 적당량을 최대한 빨리 삶을 수 있는 점 등이 합쳐져 최고 상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어떤 이들은 죽방렴 멸치가 일반 멸치보다 10배가량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지족마을 주민은 '두 배 정도'라고 낮춰 말한다.

▼죽방렴의 원리. 죽방렴 속으로 들어간 멸치떼는 시야각이 넓은 쪽을 향하는 습성 탓에 빠져나오지 못한다.

죽방렴 멸치는 남해에서 잡히는 것의 1%도 안 된다. 하지만 많은 이가 남해 멸치라 하면 죽방렴 멸치부터 떠올린다. '남해 멸치' 이름값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멸치를 잡는 방법은 다양하다. 옛 시절에는 그물을 펴서 어류를 그 위에 모이게 하는 들망이라는 방법을 이용했다.

오늘날에는 끌배 두 척을 이용하는 기선권현망이 전체 절반 이상 차지한다. 거제 같은 곳에서는 해방 이후 일본 사람들이 남기고 간 기선권현망 장비로 큰돈을 만진 이도 많다고 한다. 먼바다에 나가는 기선권현망은 끌배 두 척, 어탐선 한 척, 가공선 한 척 등 여러 배가 호흡을 맞춘다. 사람이 10여 명 달라붙으니 인건비, 기름비 같은 비용을 충족하려면 한번 나갔을 때 1500만~2000만 원어치는 잡아야 한다고 한다. 그물로 끌어올리기에 아무래도 멸치 손상이 있고, 바로 삶기는 하지만 건조작업은 뭍에서 할 수밖에 없다.

일정한 수면에 어구를 설치하는 정치망은 연안에서 이뤄진다. 죽방렴도 정치망의 한 종류다. 흘림걸그물이라 불리는 유자망은 멸치 지나는 길목에 그물을 쳐 놓는 식이다. 앞만 보고 가던 멸치가 그물코에 사정없이 머리를 박으면 이를 털어서 수확한다. 털기 작업할 때는 '으라차야지~' '에이야 차차'와 같은 바닷노래로 호흡을 맞춘다.

4~6월은 금어기인데, 이는 기선권현망에 해당하는 것이다. 유자망 같은 것은 1년 내내 가능하지만 일손 부족으로 가능하지도 않다. 금어기에 들어간 기선권현망 일손을 받아 4~6월 집중 작업하는 식이다.

남해에서 잡힌 멸치 가운데 일부는 삼천포수협으로도 들어와 위판된다. /김구연 기자 sajin@

남해에서 잡힌 것 가운데 생멸치는 남해군수협에서 위판하지만, 건멸치는 모두 삼천포수협으로 보낸다. 삼천포수협은 전국 수협 가운데 거래액이 세 번째로 많다고 한다. 이 가운데 전체 거래량에서 멸치가 30%가량 차지한다고 한다. 액수로는 450억 원 가까이 된다. 인근 삼천포시장에는 건어물 가게가 즐비하다. 어느 가게는 매출액 60~70%가 멸치 몫이라고 한다.

봄은 멸치철이기도 하지만 관광철이기도 하다. 삼천포에 관광 온 이들이 멸치를 빼놓지 않고 찾는다고 한다. 꼭 이들 아니더라도 멸치를 구매하기 위해 서울·제주도 같은 곳에서도 일부러 찾기도 한다.

이곳 사람들은 서해안 쪽 멸치에 대해 '모래'를 꼭 덧붙인다. 수심이 낮고 모래층 많은 서해안 멸치에서는 모래가 씹혀 맛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고장 멸치' 자랑을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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