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2구간 방광~산동~주천

지난 일 년 동안 부지런히 걸었다. 뚜벅뚜벅 서두르지 않고 ‘걷는 즐거움’을 온몸으로 만끽했다. 사계절 길 위에서 만나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바람 한 점조차 놓치지 않으려 살피고 또 살폈다.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21개 읍·면 120여 개 마을 지나는 ‘지리산 둘레길’은 존재 이유와 무엇이 진정한 행복인지 깨닫는 성찰의 시간을 가져다주었다. 274㎞의 이 길은 모두 22개 구간으로 자연과 생명의 메시지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새해 벽두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에서 전북 남원시 주천면에 이르는 21~22구간을 다녀왔다. 한 땀 한 땀 수놓듯 마을과 마을을 잇는 그 길에서 모든 생명체와 공존과 화해, 평화의 메시지를 함께 나눈 소중한 시간이었다.

◇방광마을~산동마을(13.1㎞)

지리산둘레길 시작과 끝./황상태

돌담이 정겨운 마을이구나

전남 구례군 광의면 방광마을 초입에 들어섰다. 소한(小寒) 끝자락이라 그런지 점심 무렵인데도 찬 냉기 때문에 코끝이 시리다. 당산나무 아래서 길 떠날 채비를 마치고 마을 안쪽으로 난 골목길을 따라 방향을 잡았다. 크고 작은 돌멩이로 만든 담장이 인상적이다. 아무렇게나 쌓아 올린 것 같지만 정겹다. 콘크리트 벽돌로 쌓아 올린 도시의 담장과는 사뭇 다른 운치를 느낄 수 있다. 둘레길 표지목을 따라 마을 아래로 내려서면 작은 개울을 건너 산길로 들어선다. 옷을 모두 벗은 나무 숲 사이로 대나무만 바람에 일렁이며 사각사각 소리를 낸다. 수확을 마친 단감농장은 을씨년스러운 표정에 제 속살을 모두 드러내었다. 길을 내어준 농장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이다.

단감농장을 지나자 미소가 온화한 ‘대전리 석불 입상’이 발길을 잡았다.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86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오랜 세월의 풍상에 제 모습을 잃었다. 눈, 코, 입 부분이 훼손돼 정확한 형태를 알아보기 어려운 통일신라시대 기법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될 뿐이다. 지금도 소원성취를 비는 사람의 발길이 계속되는지 관리상태가 정갈하다. 불상 앞에 그 뜻을 헤아리기 어려운 불교용어로 삼배(三拜)를 하라는 글귀가 있어 합장하며 절을 올렸다. 지금 이 길을 걷는 우리의 모습이 무수한 세월이 흐르고 나서 어떤 기억으로 남아있을지 자못 궁금해진다.

지금껏 지리산 둘레길을 지나오면서 만난 여러 인연 가운데 하동 위태~하동호 구간에서 만난 강정근 씨가 불현듯 떠오른다. 김해고 한문 교사를 마지막으로 정년퇴직 후 고향인 하동에 정착한 강 씨는 부인과 함께 텃밭을 일구며 산다. 낙남정맥 종주에 나선 정맥꾼과 둘레길 탐방객에게 널리 알려진 ‘궁항정’은 강 씨가 폐교된 위태초교 궁향분교를 개조해 만든 민박집으로 ‘자연 건강 밥상’으로 유명하다. 궁항정의 밥상은 자연으로 차려진다. 강 씨 내외가 직접 텃밭에서 기른 각종 채소에다가 인근 야산에서 채취한 산나물로 한정식 수준의 밥상을 차려낸다. 열무, 연근, 죽순, 머위, 곰취, 취나물, 쑥갓, 참죽나물, 호박, 고들빼기 등 그 이름을 다 열거하기도 벅찰 정도다.

방광마을 돌담길./황상태

궁항정에서 ‘자연 건강 밥상’을 먹어본 탐방객이라면 다시 한 번 더 찾고 싶은 곳으로 기억될 것이다. 옛 초등학교의 모습이 그대로 남은 손때 묻은 칠판과 책·걸상, 교실 한쪽에는 〈고향의 봄>을 연주하는 선생님의 모습이 그리운 풍금도, 제자리를 지키는 궁항정이 그립다. 강 씨 내외가 오래도록 그 자리를 지켜주길 바랄 뿐이다.

대전리 석불 입상에서 둘레길 표지목을 따라 다시 길을 나섰다. 산 아래 구례 들판의 풍경이 아늑한 언덕배기에 건축 잡지에나 나올법한 잘 지은 주택 여러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다. ‘화가 마을’로 더 잘 알려진 당동마을로 이국적인 풍경이다. 집 앞마당에 설치된 조각 작품을 잠시 감상하며 길을 조금 더 나아가자 갤러리가 있는 마을이 나왔다. 갤러리를 가로질러 뒤편으로 올라서면 소나무 숲사이로 둘레길이 계속된다.

   

넘어야 할 고개가 아득하다

당동 화가 마을과 예술인 마을은 화가, 조각가, 사진가 등 예술인이 자체적으로 모여 마을을 이룬 곳으로 둘레길의 색다른 명소로 부각되고 있다. 예술인 마을을 지나 난동마을에 이르면 오미, 난동 구간의 갈림길이 나타난다. 난동마을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400년 수령의 소나무 군락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그 군락 가운데 가장 큰 소나무는 높이 16m, 둘레 2.6m에 달한다. 여름 이곳을 지나는 둘레길 탐방객에게 더할 나위 없는 쉼터로 손색이 없을 듯하다. 난동마을 갈림길에서 왼쪽 아래로 내려서면 난동~오미 구간으로 서시천을 따라 길이 이어진다.

비교적 가파른 마을길을 따라 오르면 잘 지은 양옥집 뒤로 길이 계속된다. 여기서부터 구리재까지 임도가 지그재그 반복된다. 생활도 그렇지만 길도 반복되는 모습이라면 새로울 게 없다. 간간이 보이는 잔설(殘雪)이 반갑다. 새해 들어 처음으로 밟아보는 눈에서 ‘뽀드득’ 소리가 난다.

갑작스런 한파 탓인지 휴일임에도 둘레길을 찾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날씨마저 흐려 산 아래 구례 들판의 모습도 전혀 보이질 않아 답답하다.

무료한 길을 걷노라니 지난 계절에 만난 사람이 불현듯 떠오른다.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 둘레길 15구간인 하동 원부춘에서 가탄마을까지 12.6㎞는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30도가 넘는 불볕더위에 해발 800m 고지를 넘어야 하는 고행이 계속됐다. 그나마 간간이 만나
는 계곡과 나무 그늘이 있어 포기하지 않았다. 구간 정상에 올라 발아래 까마득한 산골로 이어지는 길은 어찌나 가파르던지 오르는 것보다 내려가는 길이 더 힘들었다. 옛말에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비탈진 산비탈 아래에서 만난 ‘하늘 호수 차밭’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부추전 안주에 막걸리 한잔, 주위 풍광과 어우러진 집 모양새가 지친 몸과 마음을 푸근히 감싸주었다.

탑동마을 내려가는 길./황상태

이 집을 지키는 양진욱·배윤천 부부의 순박하고 푸근한 인상은 자연 그 자체였다. 기다림을 즐길 줄 아는 여유로움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렇듯 지리산 둘레길은 사람과 자연이 함께 하는 공존의 공간이자 만남의 장이었다. 이들 부부가 오랫동안 그곳에서 미소를 잃지 않고 오래도록 길손에게 행복을 전하는 지킴이로 있어주길 바랄 뿐이다.

꽃 피고 새 우는 어느 봄날 그곳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마음이다.

얼마나 걸었는지 시간을 재지도 않았고 그럴 마음도 없을 무렵 지초봉 바로 아래 구리재 정자에 도착했다. 지나온 길을 내려다보니 시작이 까마득하게 느껴진다. 구리재에서 반대편으로 내려서는 길은 오를 때와 정반대로 끝없이 아래로 내려간다. 그늘진 곳이라 여기저기 잔설이 많아 발걸음이 조심스럽다. 우리 콩체험장이 있는 탑동마을로 내려서자 지리산 온천랜드로 향하는 차량이 분주히 도로를 질주한다. 도로를 가로질러 효동마을로 들어서면 둘레길은 왼쪽으로 꺾어져 산동면사무소로 이어진다.

인월-금계구간 중황쉼터 막걸리 한잔./황상태

◇산동마을~주천마을(16.1㎞)

노란 산수유꽃이 그립다네

옛 정취가 가득한 돌담길을 따라 골목길을 빠져나오면 마치 80년대 어느 작은 면사무소가 있는 곳을 연상케 하는 산동면사무소가 나온다. 옛날 국밥, 중화요리 식당, 교회의 모습이 정겹다. 가져간 승용차를 찾으러 택시를 불러 21구간 시작점인 방광마을로 이동했다. 산동면사무소 주변에는 마땅한 민박집이 없는데다 추위에 언 몸을 녹이고자 지리산 온천랜드로 향했다. 휘황찬란한 불빛이 가득한 온천을 뒤로하고 탑동마을로 내려와 약수장이라는 곳으로 숙소를 정했다.

1층에 대중탕이 있는 여관인데 시설보다는 주인아주머니의 후덕한 인상이 좋아 하룻밤 묵기로 했다. 여관 옆에 딸린 조그만 식당에서 저녁 한 끼를 해결하고 따뜻한 온천에서 피로를 말끔히 씻었다.

전남도 유형문화재 제186호 대전리 석불 입상./황상태

다음날 일찍 아침을 해결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지리산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을 맞으며 산동면사무소를 지나 10분쯤 오르면 왼쪽 큰 도로(남원 가는 4차로)와 오른쪽 수락폭포 가는 길 사이에 있는 백의종군로가 나온다. 둘레길은 백의종군로를 따라가다가 남원 가는 4차로 아래 지하통로로 이어진다. 현천마을 입구 현천재 앞으로 난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돌아서야 둘레길이 나온다.

유난히 빈집이 많은 연관마을을 지나 약간 아래로 내려서면 산수유 시목이 있는 계척마을이 나온다. 계척마을의 산수유 시목(山茱萸 始木)은 약 1000년 전 중국 산동성에서 가져와 이곳에 처음 심어진 것으로, 우리나라 산수유나무의 시조인 셈이다. 이러한 여유로 산동면이라는 지명도 이때부터 유래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오고 있다. 계척마을은 조선 선조 때 임진왜란을 피해 오 씨와 박 씨가 정착해 이룬 마을로 알려졌다. 계척마을을 벗어나 한동안 걸으면 편백나무 숲으로 둘레길이 이어진다. 나뭇잎이 싱그러운 계절이었다면 이 숲 속에서 잠시나마 여유롭게 삼림욕을 즐길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갈 길도 멀고 날씨도 추워 눈으로 보는 것으로 만족했다.

산 아래 동네를 지나면 밤재로 향하는 다소 지루한 임도가 계속된다. 1시간 남짓 오르면 견두산 등산로와 함께 해발 490m의 밤재가 나온다. 밤재에서 주천까지 7㎞는 임도와 마을길이 계속되는 내리막이다. 밤재에서 휴식을 취하고 청소년 수련시설로 사용되는 지리산유스호스텔로 향하는 임도를 따라 천천히 내려섰다.

중황쉼터 할머니를 찾아서

드디어 지리산 둘레길 1구간 시작점이자 종점인 주천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274㎞를 돌고 돌아 원점에 섰다. 처음과 끝이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다. 나름 힘들게 걸어왔던 길이라 감회가 새로웠다. 1구간 시작점인 이곳에서 경남 함양·산청·하동, 전남 구례를 거쳐 다시 이곳까지 3개 도(전북·전남·경남), 5개 시·군(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21개 읍·면 120여 개 마을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방광마을에서 당동마을 가는 길./황상태

사시사철 다른 모습의 산과 들, 그리고 그곳에 뿌리내려 사는 수많은 나무와 풀 모두가 둘레길을 걷는 사람에게 친구가 되었다. 힘들게 올라야 하는 산등성이를 넘어서면 언제 끝날지 모를 내리막길이 까마득한 길도 있었다. 물이 불어난 개울을 건너다 발을 헛디딘 경험도 기억의 저편에서 아련하다. 탐스럽게 익은 과일을 보며 잠시 마음이 흔들렸던 적도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모습을 보고 자신의 그늘을 양보해주시던 어느 마을 어르신의 마음도 둘레길에서만 느낄 수 있었던 추억이었다. 힘들게 밭일하느라 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던 일은 죄스럽기만 하다. 콘크리트 숲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메마름에서 잠시나마 벗어나 자연의 여유로움을 느끼게 했던 지리산 둘레길은 오래도록 기억 저편에 남아 있을 것 같다.

인월-금계구간 중황쉼터 김맹순 할머니./황상태

이런저런 사연과 인연이 함께 했던 지리산 둘레길, 그 길에서 만난 사람 가운데 지금 이 순간 가장 보고 싶은 분이 있어 차를 몰아 그곳으로 향했다. 인월~금계 구간의 중황쉼터로 전북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등구재 인근에 있다. 인월에서 출발해 중군마을과 장항·매동마을을 지나온 탐방객이 빠짐없이 들리는 쉼터로 시설은 보잘 것이 없으나 주인 할머니의 손맛이 기막힌 곳이다. 이곳 쉼터에 앉아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차로 30분 넘게 달려 중황쉼터에 도착했다. 이곳 주인인 김맹순(75) 할머니의 모습은 여전했다. 꾸미지 않은 수수한 모습에 정감 어린 말투로 손님을 맞았다. 후한 인심이 가득 담긴 안주와 함께 마신 막걸리 한잔이 그렇게 맛있을 수 없었다. 할머니가 손수 끓이신 청국장에 밥 한 공기가 지금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지리산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사람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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