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판의 무죄와 강기훈의 무죄…천지 차가 나는 대한민국 사법부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말을 굳게 믿는다." 이 말은 무죄 판결을 받은 김용판이 기자들에 둘러싸여 의기양양하게 읊조린 말이다.

"이 사건으로 삶이 뒤틀린 수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다. 이 판결로 그분들의 아픔에 위안이 되길 바란다." 이 말은 '유서대필 사건'의 재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강기훈의 소감이다.

사나흘 짬으로 내려진 두 개의 판결을 바라보며 느끼는 심회는 참으로 착잡하다. 김용판 사건이야 코앞의 일이니 모두가 알다시피 '서울지방경찰청장인 김용판이 대선 무렵 국정원 소속의 댓글녀가 일으킨 소란의 배경을 눙치고 여당후보를 도운 정황이 있는가?' 하는 것을 묻는 재판이었다. 방망이는 판사가 쥐고 있으니 두드리는 걸 막을 도리도 없고 '김'을 방면한들 딱히 뼈아파할 터수도 없다. 다만 그리되면 존경해마지않는 경찰 권은희 선생의 양심적 선언을 폄훼하는 것이 아닌가 함에 주목할 뿐이다.

부끄럽게도 운동권이라곤 그 언저리에도 가보지 못한 소시민으로 격랑의 시기를 방관하고 살았던 자로서도 '유서대필 사건'과 '강기훈'은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그것은 그즈음에 팔팔한 아이들이 줄이어 초개같이 자기 목숨을 버리는 광경을 보며 받은 충격 때문이다.

노태우 정권 말기. 전두환을 물리친 여세로 사회변혁을 요구하던 목소리가 팽배할 때 대학생 강경대 군이 시위 중 경찰의 쇠 파이프에 맞아 숨졌다. 국가권력의 폭압에 대하여 저항 세력은 같이 쇠 파이프를 드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몸에 불을 붙였다. 전국에서 아이들이 분신하거나 투신했다. 그 아까운 죽음을 애도할 말미를 준다면 정권이 흔들린다는 판단이었을까. 그때 이미 맛이 간 김지하가 조선일보에 "죽음의 굿판" 어쩌고 하는 바람을 잡고 서강대 총장 벼슬의 사제 박홍이 "어둠의 세력" 운운하며 배후설을 제기하며 터진 것이 유서대필 사건이다. 동료의 투신을 교사한 원흉으로 지목된 강기훈은 공공의 적이 되어 회오리처럼 정국을 빨아들였다. 강기훈은 3년 징역을 살았다.

국가폭력의 무자비함은 이승만 이래 군사정부를 지나오며 그 참상을 치가 떨리도록 목도했다. 지배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권한으로 경찰·군·정보기관·사법기관을 권력의 도구로 사용하면 국가는 폭력의 정당성을 법으로 보장받은 가장 강력한 조직폭력 집단이 된다. 여기 걸리면 개인의 인생쯤은 풍비박산되며 정신은 멸절되어 허깨비로 남는다.

강기훈에게 씌워진 유서 대필이라는 혐의의 증거인 '필적'이 국가기관인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권위에 기댄 것이었으나 감정책임자 김형영(당시 국과수 문서분석실장)은 후에 감정과 관련된 뇌물수수와 허위감정으로 구속되었다. '강기훈 씨 무죄석방을 위한 400인 선언'의 성명서처럼 "부도덕한 집권세력이 위기 정국을 벗어나기 위해 무고한 젊은이의 명예와 인권을 제물로 삼은 것"임을 인정한 것이 이번 재판의 결과였다.

하지만 그따위 판결이 무슨 소용이랴. 재심에 재심을 거듭해 죄 없음이 밝혀진다 한들 그 판결문 따위가 혈기방장하고 의기 넘친 한 청년과 그 가족의 영육에 남긴 잔혹한 상처에 무슨 위로가 된단 말인가. 누가 이들이 잃어버린 시간을 복원해줄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이것이 군사정권 시절의 억압적 구조 속에서 일어난 옛날이야기냐는 것이다. 온통 올림픽이야기로 도배되는 틈새를 비집고 들리는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논란이 쉬쉬 와중에도 중국에까지 닿았다. 20년 전 그때 그 판검사와 벼슬아치들이 고스란히 지금의 집권 상부에서 영달을 누리고 있는 현실과 무관할까? 투철한 국가관을 부르대는 그들의 머리를 열어 '국가'란 '국민'임을 부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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