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총독이 하지 못하는 일은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뿐이다.”

일제 강점기 식민지 조선에서 총독이 지닌 강력한 권력을 풍자하던 말이다. 이 말이 진실임을 극명하게 보여준 이가 바로 제 7대 총독 미나미 지로(南 次郞)다. 일본 군인 출신인 그는 1936년 총독으로 부임하자마자 악명높은 ‘황민화(皇民化)’ 정책을 밀어붙였다.

그 결과 조선 민중은 심각한 ‘정신 분열’에 시달리게 됐다. 생긴 꼴이나 속마음은 조선어를 쓰는 조선인인데,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든 것을 일본인으로 바꾸라는 요구가 어찌 가당키나 했겠는가.

흔히 일제 시대를 말할 때 우리는 독립운동 역사에 초점을 맞춘다. 국권 회복을 위해 투쟁한 선열들을 기리고, 그들이 남긴 정신을 이어받자고 말한다. 이런 관점은 타당하지만 가해자, 즉 일본인들을 깊게 살피지 못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미나미 지로.

일제 침탈을 말할 때 조선에 가장 악랄한 영향을 미친 이로는 미나미 지로가 으뜸이다. 그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선 ‘당시 한반도 상황’을 깊이 있게 파악할 수 없다. 미나미 전기(傳記)에 따르면 “그는 한반도를 완전한 황토(皇土)로 만들고 한반도 전 민중을 나무랄 데 없는 황민(皇民)으로 만든다는 꿈을 지니고 있었고, 결국 이 목적을 완전히 달성했다”고 돼 있다.

황민화 정책은 잘 알다시피 신사참배 강요, 조선어 폐기, 창씨개명, 징병제 등으로 요약된다. 정책 하나하나가 조선을 말살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이 정책은 조선을 ‘대동아 성전’ 기지로 활용하고, 젊은이들을 병력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이를 위해 내건 구호가 ‘내선일체(內鮮一體)’다. 즉 내지(內地)인 일본과 조선이 완전히 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이 정책은 무차별· 평등으로 귀결된다.

미나미도 “저열한 조선 민중을 일본인과 동등하게 대할 순 없다”며 반발하는 세력을 무시하고, 내선일체가 종국적으로는 무차별· 평등에 이르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는 조선 민중으로부터 자발적 복종을 이끌어내려는 수단에 불과했다. 그는 1942년 추밀원 각의에서 “조선은 수천 년에 걸쳐 사상·인정·풍속·습관·언어 등을 달리하는 이민족”이라며 공개적으로 속내를 드러낸 바 있다.

내선일체를 주장하면서 ‘일본과 한국은 멀리 신화시대부터 깊은 관계가 있고, 인종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동일한 뿌리에 속한다’며 조선인이 완전한 일본인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고 선전해놓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 바로 이 지점에서 미나미를 비롯한 침탈자들이 쓰고 있던 ‘가면’이 드러난다.
그렇지만 당시 조선 지식인 중에는 내선일체 이론에 감격한 나머지 대일본제국 신민이 되기를 공개적으로 갈망하는 이들이 많았다. 미나미가 남긴 유산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황민화 정책을 펼쳤던 일본인들은 그 정책이 몰고 온 수많은 파열음을 자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조선에 은혜를 베푼 것이라고 주장했다. 현 극우세력도 이런 논리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교학사 역사교과서 파동에서 드러나듯 ‘그때 그 시절’을 미화하는 움직임이 노골화되고 있다. 악역을 맡았던 미나미는 후에 자신이 식민지 조선에서 다시 부활할 것을 알고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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