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로 기억한다. 늘 좋은 음악을 조달해주는 후배가 비디오테이프를 한 장 보내왔다. 제목은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아프로 쿠반(Afro-Cuban) 재즈를 세계에 알린 음악 다큐멘터리다. 먹고사는 일이 바빠 그땐 이런 음반이 나왔는지, 누가 기획했는지도 몰랐다. 전화로 ‘굉장하다’는 이야기만 듣고 테이프를 틀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놀라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세계에 감동 던진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

원래 이 음반과 공연을 기획한 사람은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Ry Cooder)다. 음악팬들에게도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매력적인 스틸 기타리스트로 본토에서는 꽤 유명한 이다. 80년대 초 음악매거진 <롤링 스톤(Rolling Stone)>에서도 그를 조명한 글을 본 적이 있다.

다큐멘터리 감독은 영화 ‘파리 텍사스’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빔 벤더스다. 두 사람이 어떻게 의기투합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50년대를 열광시켰던 옛 쿠바음악을 발굴하고, 또 아직 죽지 않고 있던 늙은 명인들을 불러 모으는 과정이 참 감동적이었다.

1982년 싱가폴 인터내셔날재즈페스티발 유복성 신관웅 길옥윤 조원익.

한국판 소셜클럽 ‘브라보 재즈 라이프’

3년 전 한국에서도 이를 모방한 작품이 나왔다. 이름하여 ‘브라보 재즈 라이프’. 팬들에게 생소한 한국 재즈 1세대를 ‘부에나 비스타’를 본뜬 형식으로 만든 다큐멘터리다. 해설 글이나 연주 동영상을 본 적은 있는데, 다큐 전체를 온전히 감상하지는 못했다. 그러다 우연히 독립영화 채널에서 이 다큐를 상영하는 걸 보고 비로소 전체 줄거리를 파악할 수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작품성과 예술성이 뛰어난 다큐는 아니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을 원용했지만 그에 상응하는 격을 구현하진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재즈 1세대가 걸어온 신산한 과정을 비교적 충실하고 담고 있었기에 색다른 감동을 느낄 수 있었다.

다큐에 등장하는 타악기 연주자 류복성 씨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는 술자리에서 후배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봉고 치는 일이 알려져 TV 묘기 대행진에 출연했다”며 “봉고 연주가 무슨 묘기라고!” 재즈가 대중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을 때다. 그가 겪은 황당함은 지금 들어도 황당하다. 그래도 굴하지 않고 재즈 외길을 걸어온 그에게 후배들이 “이젠 거장”이라고 말하자 곧장 이를 되받아친다. “거장은 무슨 거지지!”

제2회 박성연 재즈의밤.

봉고 들고 묘기 대행진 나간 1세대

같이 폭소를 터뜨렸지만 마음은 짠했다. 어떻게 저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수십 년을 버틸 수 있었을까? 백발이 성성한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증언한다. 음악에 대한 열정 때문이라고. 재즈가 지닌 매력에서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고.

연주곡 중에는 중견 피아니스트 임인건 씨가 연주하는 ‘강선생 블루스’가 특히 인상적이었다. 원로 트럼페터 강대관 씨에게 바치는 곡이었는데, 데이브 브루벡을 연상시키는 피아노 맵시가 너무 좋았다. 사실 다큐에 등장하는 재즈곡은 잘 알려진 스탠더드 곡들이 대부분이다. 색소폰 연주자 강태환 씨가 프리재즈 듀오인 박재천·미연과 공연하는 작품 한 컷을 제외하고는, 거개가 팝 선율과 별반 다를 바 없다.

게다가 하이라이트 공연에서 보컬리스트 김준 씨가 ‘마이 웨이(My Way)’를 부르는 걸 보고는 오금이 저렸다. 재즈가수들도 즐겨 부르는 레퍼토리이긴 하지만 노래방 필수 코스인 ‘마이 웨이’를 저런 공연에서 내세우다니! 다소 격이 떨어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마이 웨이’는 사절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한국인에게 팝송 ‘마이 웨이’는 특별한(?) 곡이다. 가사에 담긴 의미가 각별한데다 선율이 제법 무게가 있다 보니, 우수마발이 짧은 혀로 이 노래를 부르곤 한다. 음악을 사랑하는 친구는 그래서 내게 늘 충고한다. “제발 노래방에서 ‘마이 웨이’ 좀 부르지 마라!”

친구가 염려하는 것은 아마 이런 것이리라! 영어가사에 담긴 기름기-노래 자체가 원래 느끼하다-그리고 그걸 뒷받침하는 마초이즘 등등. 아마 한국 중년 남성의 현시욕이 가장 잘 발현된 노래가 바로 ‘마이 웨이’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설령 이런 노래를 부르더라도 재즈 창법을 동원하면 좋으련만 반주만 재즈 형식일 뿐 김준 씨가 부르는 노래는 그저 원곡 그대로다. 옥에 티는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재즈 보컬은 팝 보컬과 좀 달라야 하는 것 아닌가?

물론 그런 사소한 찌푸림이 있다고 해서 다큐가 지닌 미덕이 훼손되는 건 아니다. 전체적으로는 재즈 1세대의 진솔한 모습과, 그런 파이오니어에 대해 예의를 갖추는 후배 음악인들이 어울리는 장면이 참 보기 좋았다. 역시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사람들이 이루는 성취는 ‘역사를 통해 쌓이는 누적치(累積値)’라는 옛말이 틀리지 않음을 실감한다.

첫번째 야누스클럽에서.

몽크-듀크를 만나다

재즈 1세대를 이야기할 때 빠트릴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드러머 최세진 씨다. 그는 홍콩에서 오래 활동했는데 <재즈 피플>은 최근호에서 그가 당시 재즈 레전드인 피아니스트 텔로니어스 몽크와 협연했음을 사진으로 보여준다. 당시는 이런 경험이 무척 드물었을 텐데, 재즈인들 입장에서 보면 기연(奇緣)이라고 말해도 크게 틀리지 않으리라! 김준 씨도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밴드 내한공연 때 마이크를 들고 무대에 올랐을 때가 일생 중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회고하는데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여하튼 다큐 제작 이후 재즈 1세대들이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낸 것은 이 영화가 거둔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을 비롯한 재즈 본토를 찾아가는 유학 물결이 80년대부터 본격 시작되면서 한국 재즈는 중흥기를 맞이한다. 지금 재즈 신에서 한 가닥 한다하는 뮤지션들은 죄다 유학파들이다. 이들은 딴따라라는 비아냥을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니다. 재즈가 예술장르로 대접받는 시기에 개화(開花)한 사람들이다.

가시밭길을 배워라!

그래서 그런지 테크닉도 좋고, 음악에서도 세련미가 넘쳐난다. 그런데 아쉬운 건 1세대 같은 헝그리 정신이 없어서 그럴까? 색깔 없는 온실음악이 많다. 보기도 좋고 듣기도 좋은데 말랑말랑하기만 할 뿐 폐부를 찌르는 감동이 없다. 재즈인들이 한국 재즈 1세대에게서 배워야 할 것은 그들이 걸어온 가시밭길이 아닐까? 이빨이 다 닳아 없어질 때까지 트럼펫을 놓지 않겠다는 강대관 씨를, 영어 스탠더드를 죄다 우리말로 옮기겠다는 작곡가 이판근 씨를 닮아야 하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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