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는 안 된다. 솔직히 방해만 되고…."

물메기잡이 선상 취재를 위해 섭외를 했을 때 돌아온 대답이다.

지난여름 고성 하모잡이 배에 동승한 후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그간 하모, 전어, 홍합, 굴 등 수 차례 배에 올라 현장을 경험했다. 눈치가 안 보였던 건 아니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여명을 배경으로 전어 그물을 펼치던 장면은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하지만 두툼한 물메기 살만큼이나 틈이 없어 보이는 대답에 더 이상 어쩌질 못했다. 이유인 즉 그간 여러 방송에서 다녀갔는데 여간 번거롭지 않았던 모양이다. 당연하다. 방송의 특성상 장비와 스태프가 많은데 크지도 않은 배에 그것들과 함께 탔으니 상상이 가능한 장면이다.

일정을 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선상 취재를 목적으로 통영 추도를 가려 했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가능해졌으니 고민이 깊어진다. 배가 하루 두 번만 다녀 들어가니 무조건 1박을 해야 한다. 사실상 아무 계획 없이 오후 2시 30분 통영여객선터미널에서 추도행 배에 올랐다. 여하튼 배는 탄 셈이다. 불안한 출발이다.

배 위에서 바라본 추도 전경. /남석형 기자

1시간 10분여 걸려 도착한 추도. '물메기의 고향'이라는 커다란 세로 간판과 선착장 입구의 물메기 덕장을 보니 조금 안심이 된다.

배에서 내려 동네를 한 바퀴 돈다. 물메기가 없는 집이 없다. 수십 수백 마리씩 물메기를 말리고 있는 덕장이 마을 곳곳에 있고, 누가 살기는 할까 싶은 집 마당에도 반드시 몇 마리씩 배를 가른 물메기가 널려 있다. 빨래는 없어도 물메기는 있으니 신기한 풍경이다. 진짜 물메기의 고향에 온 것이다.

겨울 추도는 밤낮이 없다. 새벽 3~4시에 나간 배가 오전 9~10시에 돌아오면 종일 물메기를 손질해서 덕장에 너는 작업을 하고 한쪽에선 어구를 정비한다. 그렇게 일을 마치는 시간이 저녁 7시. 별 보고 나가서 별 보고 들어오는 힘든 '겨울농사'다.

추도가 물메기로 유명한 것은 말린 물메기 덕분이다. 물이 풍부하고 해안이 완만한 추도는 물메기를 말리기에 제격이다.

때문에 바다에서 물메기를 잡는 일은 여기 '물메기 농사'의 그저 한 부분이다. 통발을 손질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잡은 메기의 피를 빼고 배를 갈라 손질을 해 말리기 좋은 형태로 가공하는 것도 예삿일이 아니다.

때문에 이곳 주민 중 한 분은 "추도 물메기의 진짜 주인공은 여기 할매들"이라고까지 한다. 수십 년 쌓은 '할매들'의 칼솜씨가 있었기에 지금의 추도가 있다고 주장한다.

'슥! 삭!' 전설의 칼솜씨를 가진 할머니께서 물메기를 손질하는 모습. /권범철 기자

사실 그러했다. 오전 9시 30분. 멀리 배가 들어오는 것이 보인다. 대기 중인 트럭에 물메기를 싣고 향한 곳은 선주의 집 옆 창고마당이다.

깨끗한 물로 잡은 메기들을 씻는 아주머니. '칼솜씨'를 보여주실 분인가 싶어 물었더니 손사래를 치신다. "에유~ 나는 손도 못 대고 이제 기술자가 오실 거예요."

곧이어 나타난 그 분! 칼날은 짧고 날카롭고 도마는 길고 좁다.

"슥, 슥! 주욱! 삭, 삭! 텀벙!" 배를 갈라 내장을 빼고 칼 길을 내어 맑은 물에 담그는 시간 10여 초! 소문대로다. 여기 '할매'들은 품삯도 물메기로 가져간다. 해질녘 조그만 수레에 물메기를 싣고 마을 언덕을 힘겹게 오르던 그 분도 실은 전설의 추도 '칼잡이'셨던 것이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