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 밴 두툼한 살점 동치미 곁들인 건메기찜, 안주로 반찬으로 '강추'

푹 곤 무 국물에 물메기를 맑게 끓여 국물과 고기째 마시는 것이 남도의 겨울 맛이다.

◇물메기 대신 곰치국 = 서울 생활 중에도 찬바람이 불면 그 맛이 그리웠다. 홍대 주변에서 입소문이 난 생선요리 가게. 겨울이면 물메기 사촌인 곰치국이 등장한다. 묵은지와 고춧가루를 풀어 칼칼하게 끓여낸 국물은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곰치의 양이 너무 적다. 돈을 더 드릴테니 고기를 푸짐하게 넣어달라는 떼를 써도 요지부동이다. 그래서 늘 아쉬웠다.

그런 나를 위로하고자 친구가 데려간 곳은 종로의 한 생선국 집. 곰치국을 제대로 한다는 말에 앞뒤 안 가리고 갔다. 묵은지 없는 얼큰한 국물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고기도 듬뿍 넣어주니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비쌌다. 진짜 너무 비쌌다. 친구에게 빚 진 기분이 들어 뒷맛이 좋지 않았다.

그나마 위로를 받은 곳은 속초다. 곰치국으로 꽤 유명한 옥미식당은 이른 시간부터 손님을 받는다. 조금 비싸다 싶어도 상차림을 보면 위로가 된다. 뭐든 아끼지 않는 집이다. 무엇보다 해장에 그만인데 고기며 알도 푸짐하다. 싱거운 매운탕에 가까워 밥을 말아 먹으면 오전 내 든든하다.

하지만 시원하고 맑은 물메기탕에 대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었다. 혀가 간사하다.

통영 항남동 한 식당에서 만난 물메기탕.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드디어 물메기를 만나다 = 취재를 위해 통영 항남동 수정식당을 찾았다. 이곳은 사실 복요리로 유명한 곳인데 겨울이면 물메기와 대구가 인기다.

큰 찜 솥엔 더운 물이 준비돼 있고, 그 오른쪽 두 군데 불 위의 큰 양은 냄비엔 대구나 물메기가 끓고 있다. 고기가 익으면 먼저 건져내어 작은 양은 냄비에 담고 국물은 다시 육수가 끓는 냄비에 붓는다. 육수는 더 진해져야 하고 고기는 물러지면 안 되기 때문이다. 사발이 아닌 냄비에 국이 나온다. 모자기, 대파, 무밖에 없고 국물은 맑다.

상차림은 간소하나 멸치젓갈이 인상적이다. 밥과 함께 먹을 때 도움이 된다. 호불호가 갈린다. 일행 중엔 먹을 만한데 또 먹고 싶은 맛은 아니라고 하기도 한다.

하지만 국물은 더할 수 없이 시원했고 부산하게 뼈를 발라먹지 않게 한 배려가 좋았다. 푸짐하게 물메기국을 내 오는 가게라 할지라도 절반 이상은 껍질과 뼈들이라 먹은 건지 정리한 건지 헷갈릴 경우가 많으나 여기선 그런 걱정할 필요가 없다. 후자가 '물메기국'이라면 여기는 '물메기탕'이다. 탕은 국의 높임말이다. 가격도 맘에 든다. 한 그릇 1만 원.

추도로 가는 배 시간이 여유도 있고 소화도 시킬 겸 주변을 둘러본다. 동피랑 입구엔 물메기 도매상이 있는데 여기서 일하는 청년이 구수한 건메기 굽는 냄새로 관광객을 유혹하고 있다.

달군 숯에 자른 건메기를 굽는데 먹어보라며 북 찢어 고추장에 찍어 준다. 속살과 껍질이 다른 매력으로 어울린다. 바삭한 껍질에 구수한 살맛이 고추장과 제법 어울린다. 짭조름하면서 홍어 삭힌 맛도 살짝 나 영판 바다 맛이다. 이 또한 호불호가 갈릴 듯하다.

건메기찜. /권범철 기자

◇건메기의 고향 추도 = 물메기 취재 계획을 세우면서 가장 궁금했던 것은 '건메기'라 부르는 말린 메기의 정체다. 제법 큰 어시장이 있는 창원만 하더라도 건메기를 접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통영에서 건메기는 긴 세월 이 곳 사람들과 함께 해 온 음식이다. 한 축에 10마리인 건메기를 몇 축 씩 사다가 소금을 깐 항아리에 세워 넣어두면 1년 내내 보관할 수 있다고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란 색이 짙어지는데 쌀뜨물에 불려 양념해 쪄 먹어도 좋고, 국을 끓여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이를 생일에 챙겨 먹기도 한다니 그야말로 통영은 메기의 고장이다. 그러니 건메기의 맛을 모르고 물메기를 알았다고 하면 안 된다.

이 건메기의 고향이 바로 통영 추도다. 수협 위판장에 나오는 대부분의 건메기는 추도에서 온 것이다. 통영항 주변에도 건메기찜을 하는 곳이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추도에서 알아보고 싶었다. 추도라면 진짜 물메기 요리를 맛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선착장과 멀지 않은 곳에 동네 유일한 가게가 있는데 여기서 음식도 한다. 볼락 낚시로 유명한 이곳을 찾는 낚시꾼들에게 숙소도 제공하고 동네 슈퍼와 식당 역할도 하는 곳인데 주인 부부는 부산에서 들어와 산 지 오래됐다.

건메기찜을 주문했는데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건메기를 물에 불려야하기 때문이다. 숙소에 짐을 풀고 몸을 녹이고 있으니 가게로 건너오라는 신호가 왔다.

고추장을 찍은 건메기. /권범철 기자

그런데 찜은 없고 무침이 한 접시 있다. 찜이 될 동안 맛보라며 물메기 회무침을 만든 것이다. 부드러운 살을 도톰하게 썰어 갖은 야채와 무친 회무침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추도에서 난 몽땅한 무와 제법 어울린다. 밥과 비벼 먹으니 금상첨화다. 회로도 먹는다는 물메기는 두껍게 썰어 고추냉이에 찍어 먹으면 좋다는 주인의 설명이다. 동지 지나 잡은 물메기는 짠 맛이 강해지기 때문에 간장도 필요 없다는 조언도 덧붙인다.

◇건메기찜의 맛 = 간장으로 간한 건메기찜이 나왔다. 고추장이나 된장도 쓴다지만 여기 주인은 이 맛이 젤 낫다고 자부한다. 오늘은 급히 닥친 손님이라 쌀뜨물이 아닌 맹물에 불려 찜을 했다고 한다. 불린 물은 버리지 않고 요리할 때 부어가며 쓴다.

보통은 불린 건메기를 압력솥에 쪄서 먹는다고 하지만 마치 아귀찜을 하듯이 센 불에 졸여가며 만든 건메기찜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두툼했던 살이 바싹 말랐다가 다시 양념을 흡수하며 불려진 맛은 풍부했다. 찜 역시 무의 역할이 컸다. 추도 메기에 추도 무로 만든 특별한 건메기찜이 완성된 것이다. 안주로도 밥반찬으로도 추천할 만하다. 맵게 만들어 동치미와 먹는다. 볼락 무김치 역시 이곳에서만 맛 볼 수 있다. 주객의 구분 없이 취하는 밤이다.

며칠 후 추도에서 가져온 건메기로 직접 국을 끓여 보았다. 건메기를 가위로 잘게 잘라 황태국 요리하듯 참기름에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인다. 무가 없어 싹이 난 마른 감자를 좀 썰어 넣었다. 마치 우유를 부은 듯 뽀얀 국물이 인상적이며 맛은 황태에 비할 바가 아니다. 훨씬 풍부하고 담백해서 물메기 요리의 갈무리를 제대로 한 느낌이다. 물메기의 계절이 끝나가는 지금, 벌써 내년 겨울이 기다려진다.

 

※이 취재는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기업 ㈜무학이 후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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