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씻을 '민물' 섬에 넉넉한 덕

통영시 산양읍에 속한 추도는 육지에서 20km가량 떨어져 있다. 이곳은 볼락 낚시꾼들이 몰리는 곳이다. 그런데 5~6년 전부터 '추도' 뒤에는 '물메기'가 따라붙는다.

통영여객선터미널에는 추도로 가는 배편이 하루 두 번 있다. 배에 오른 지 1시간 좀 못 돼 추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배 닿기 전 이미 저 멀리서부터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여기저기 널려 있는 건메기다. 섬에 발을 들이자 혼자 물메기와 씨름하는 아낙이 보였다. "물메기 좀 알아보러 왔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또 촬영 왔느냐"며 시큰둥해한다. 요 몇 년 사이 겨울만 되면 방송국·신문사에서 촬영·취재하러 들어오니 귀찮을 법도 할 것이다.

물메기를 지금처럼 많은 이가 찾게 된 것은 특이한 음식을 계속 찾으려는 매스컴 영향이 컸다. 그 속에서 통영 추도가 대표적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지금 이런 분위기가 뜬금없다고 느낀다. 이곳 팔순 넘은 어르신들은 이미 어릴 적부터 물메기로 먹고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오전 10시쯤 되자 새벽에 나갔던 배 한 척이 들어왔다. 물메기가 제법 잡혔다. 선장은 "한 150만 원어치 잡았네. 많을 때 500만~600만 원에 비하면 뭐…"라고 했다. 그래도 흐뭇한 표정으로 물메기를 배에서 끌어 내린다. 그리고 곧장 차에 실어 3분도 채 안 되는 집으로 옮긴다. 이곳에는 선장 부인, 그리고 일 도우러 온 아낙이 이미 만반의 준비를 해 놓고 있다. 도마와 칼, 그리고 물 가득 담긴 큰 대야 네 개다. 한 사람은 물메기를 반으로 갈라 내장·아가미·알을 제거한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은 물통 네 곳에 옮겨가며 '빡빡' 씻는다. 세척이 끝나면 바로 옆 덕장으로 옮겨 하나하나 넌다.

2일 정도 지나면 물기가 어느 정도 빠지는데, 7일에서 길게는 10일은 돼야 완전히 마른다. 이 과정에서 눈·비가 오면 얼른 비닐로 덮어야 한다. 그대로 뒀다가는 나중에 말라도 맛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또한 얼지 않도록 계속 신경 써야 한다. 한번 언 것은 살이 완전히 허물어져 버린다. 완전히 건조된 것은 아주 딱딱하다. 하지만 물메기는 여전히 물을 머금고 있다. 택배로 보낼 건메기를 종이상자에 그냥 담으면 얼마 가지 않아 눅눅해진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건메기 사이사이에 한지를 깔기도 한다. 추도에서는 이러한 작업을 반복하며 겨울을 보낸다.

건메기는 배를 갈라 내장·아가미·알을 제거한 후 깨끗한 민물에 서너 번 씻은 후 7∼10일가량 말린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물메기는 추도~사량도~욕지도로 이어지는 바다가 주 어장이다. 물메기로 먹고사는 곳은 추도만은 아니다. 통영 내 다른 지역뿐만 아니라 남해·진해 지역 같은 곳도 물메기가 넘쳐난다. 건메기 역시 추도만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기 추도 물메기가 특별한 이유는 경험, 그리고 물에서 찾을 수 있겠다.

건메기는 손질 기술이 중요한데, 가장 중요한 것은 피 뽑는 일이다. 이 과정은 배에서 잡았을 때 바로 한다.

"피를 잘 뽑아야 맛이 좋아. 예전 어른들은 잘 몰라서 쇠갈고리로 머리도 찍어보고, 칼로 여기저기 찔러도 봤지. 그런데 이제는 딱 한 곳을 찔러. 물메기를 잡아올리면 아가리를 딱 벌리는데 그때 아가리 위쪽에 칼을 넣어. 사람으로 치면 입 천장 부분인데, 거길 찌르면 피가 한꺼번에 쫙 빠지지. 간혹 잘못 찌르면 피가 다 안 빠져 색깔도 벌겋고 맛도 덜하지. 그런 건 상품으로 내놓지 않고 그냥 우리가 먹어 치워야지."

이후 손질 과정은 모두 아낙들 몫이다. 내장을 제거하고 물에 씻는 것이 뭐 그리 특별할까 싶지만, 핏기를 없애고 하얀 속살을 만드는 것도 60년 넘은 경험이 밑바탕 되어야 한다. 이곳에서는 품삯이 돈 아닌 물메기다. 하루 부지런히 움직이면 15~20마리도 가져간다. 마리당 7000원 정도로 잡아도 10만 원 훌쩍 넘는 돈이다. 이들은 집에 가져가 밥상에 올리기도 하고, 어촌계 도움을 얻어 내다 팔기도 한다.

물메기를 건조하기 위해서는 많은 물이 필요하다. 이때 사용하는 물은 민물이다. 바닷물로 씻으면 간이 너무 짜 먹기 어렵다. 이 대목에서 여기 사람들은 물 자랑을 빼놓지 않는다.

"추도는 물섬이라고도 해. 여기 물메기가 유명한 이유는 물 때문이지. 봤잖아, 작업할 때 얼마나 많이 씻는지. 하루에 수천 마리를 씻으려면 물이 엄청나게 필요해. 맑은 건 둘째치고, 섬인데 물이 부족하지가 않아. 섬에 있는 산꼭대기에도 사람이 살았어. 거기에도 물이 솟아났다는 거지. 예전에는 논농사도 많이 지었고."

실제 추도는 아래가 미륵도와 연결된 화산섬이다. 그래서 높은 압력을 가진 대서층 물이 땅 위로 계속 솟아오른다고 한다.

추도 사람들은 6개월 물메기 농사로 1년을 먹고 산다. 10월이 되면 어구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11월 중순부터 2월 말까지 수확에 들어가고, 3월에는 어구를 모두 거두고 6개월 후 쓸 수 있도록 손질하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팔고 남은 것은 말려서 창고에 두면 1년은 거뜬히 먹는다.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크게 벌이가 되지는 않는다.

추도에서 잡은 물메기는 통영수협 도천공판장으로 보낸다. 생물메기는 새벽, 건메기는 낮 12시에 경매한다. 추도 물메기는 그 이름값에 좀 더 높은 가격을 쳐준다. 어느 부부는 추도에 들어간 지 7년가량 되었다. 친정집에서 "추도 물메기 맛 좀 보자"면서 몇 마리 부쳐달라고 했다가, 다른 곳에서 나는 것보다 비싼 것을 알고서는 "그냥 놔둬라"고 했다고 한다.

이제 통영에서는 '추도 물메기'를 브랜드화할 예정이다.

추도 배를 타고 육지에 나온 이들은 저마다 건메기 몇 마리를 손에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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