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현장 인근 소음피해 극심하지만…산업부, 헬기사용 변경 승인에 주민 분노

기온이 뚝 떨어진 4일 오후 2시, 밀양시 상동면 여수마을 회관 앞에 주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바람까지 세찼다.

여수마을 주민들은 초고압 송전탑 공사장으로 자재를 실어 나르는 헬기 소음 때문에 괴롭다. 70여 가구가 사는 이 마을 주변에는 122번부터 126번까지 철탑 6기가 들어서는 데 125번과 부북면 쪽 126번은 조립이 끝났다. 주민들은 헬기가 마을을 지나갈 때는 창문이 '덜컹'거리고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라고 했다.

회관 앞에서 만난 박상용(62) 이장은 "어제 그리 돌아 댕기더만 오늘은 헬기가 안 뜬다"며 못마땅해했다. 민주당 장하나 국회의원이 이날 헬기 소음측정 나오는 데 실상을 못 보여주니 안타까워했다.

소 70여 마리를 키우는 젊은 주민은 "헬기 소리에 소가 펄쩍펄쩍 뛴다"고 했다. 20여 년 동안 양봉을 해온 김수하(여·62) 씨는 "한전에서 전화하니 '법대로 하라'한다. 분통이 터진다"고 호소했다.

민주당 장하나(맨 오른쪽) 의원이 4일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에서 환경부가 한전 헬기불법공사에 과태료만 부과하고 공사중지 조치를 하지 않은 문제점을 설명하고 있다. /표세호 기자

장하나 의원이 도착하자 마을회관은 인근마을 주민까지 모여 꽉 찼다. 간담회에는 낙동강유역환경청 환경평가과장과 실무자도 참석했다.

한전은 지난 2006∼2007년 환경부와 협의한 '765㎸ 신고리∼북경남 송전선로 건설사업 제2구간 환경영향평가서'와 보완자료 등에서 밀양구간 3곳에서만 헬기공사를 하기로 했으나 변경절차 없이 다른 곳에 불법헬기공사를 벌여왔다.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나자 한전은 산업통상자원부에 25곳에 헬기공사를 하는 것으로 변경승인을 받았다. 

그런데 이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낙동강청은 문제가 불거진 이튿날인 29일 한전 조사를 했고, 설연휴가 끝나자 산업부는 3일 낙동강청에 변경결과를 통보했다. 낙동강청은 그날 한전에 과태료 1000만 원 부과 결정을 하고 공사중지 조치는 하지 않기로 했다.

장 의원은 산업부가 변경승인 통보와 함께 보낸 '환경보전방안 검토서'에 대해 낙동강청이 내용 확인도 하지 않고 공사중지 조치를 접은 이유를 따졌다. 장 의원은 "내용을 보고 공사중지해야 되는 것 아니었느냐"고 물었다.

낙동강청 환경평가과장은 "공법 변경승인은 산업부가 법적 권한이 있고, 일정규모 이상만 환경부 권한이 없다"며 현행법으로는 할 수 있는 조치가 없다고 했다.

이렇게 오가는 이야기를 듣던 주민들은 '불법인데 왜 헬기공사를 중단시키지 않느냐'며 정부를 성토했다. 주민들은 "국회의원이 불법헬기공사 문제제기 안 했으면 눈감고 귀 막고 있었겠네. 이 건만 넘어가면 되는가", "짜고 치는 고스톱", "하루만 여기서 살아봐라", "과태료 1000만 원 우리가 줄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장하나 국회의원과 함께 온 환경공단 직원이 밀양 상동면 여수마을에서 송전탑 공사현장에 뜬 헬기 소음 측정을 준비하고 있다. /표세호 기자

부북면 평밭마을 장재분(여·57) 씨와 산외면 보라마을 이종숙(72) 이장은 소음뿐만 아니라 헬기가 실어 나르던 자재를 떨어뜨려 위험했던 상황들을 전했다. 장 씨는 "한전에 소음민원을 넣어서 얼마 전에 측정을 나오기도 했는데 작은 헬기가 뜨고 항로도 바꿔서 다니더라. 그런 형식적인 측정은 필요없다"고 말했다. 부북면 한옥순(여·66) 씨는 "가고 오고 2대도 뜬다. 전쟁이다"고 말했다.

밀양 송전탑 경과지 주민들이 지난해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헬기소음 재정 신청한 자료에는 122번 농성장에서 측정한 헬기소음이 53~80데시벨이다. 공사장 등 소음이 65데시벨을 넘어서면 피해로 인정된다. 주민들은 하루에 160여 차례 헬기가 마을을 지나간다고 증언했다.

밀양 765㎸ 송전탑 반대대책위 이계삼 사무국장은 "삭도보다 돈도 많이 드는 헬기를 왜 쓰는지 궁금하다. 주민을 제압하려는 것이 아니냐"고 묻기도 했다.

주민들의 헬기소음 피해 증언을 들은 장 의원은 "한전이 밀양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무단으로 헬기공사를 하고 과태료 처분받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넘어가게 하는 것이 환경부 역할인가. 환경영향평가법 취지가 과태료만 물리고 위반되풀이 하는 게 맞느냐"며 "이런 공사를 하도록 손을 들어준 환경부에 유감이다. 환경부 장관의 공식입장을 묻고 대책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공사헬기는 고장 난 수평비행유지 부품 교체로 오후 4시쯤에 겨우 몇 차례 장 의원 요구로 오갔을 뿐이다. 장 의원이 한국환경공단 소음 측정팀까지 데리고 왔으나 이날 바람이 거세 소음측정을 못했다. 장 의원은 환경공단과 송전탑 경과지 마을 헬기소음 상설측정이나 수시로 측정하는 방법 등을 협의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마을과 멀리 떨어져 빙 둘러 오는 헬기를 바라보며 '저렇게 색시처럼 다니면 문제없지'라면서 발길을 돌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