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 애식가의 음식 이야기(20) 착한 식당이 싫어요

음식점들이 ‘착한 가게’ 지정을 거부하거나 취소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한다.

착한 가게, 정확히 말해 ‘착한가격업소’는 “인건비·재료비 등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는 상황에도 저렴한 가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소 가운데 안전행정부 기준에 의거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정한 업소”(안정행정부)를 뜻한다.

안전행정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 10월 기준 착한가격업소는 6793곳으로 지난해 말(7334개)보다 541곳 감소했다. 폐업한 곳도 많지만 물가 인상 부담 등으로 자진 취소, 지정 거부·탈락한 음식점이 적지 않다는 언론 보도다.

이제 화살을 반대로 돌려야 할까. 하루아침에 ‘착한 가게’에서 ‘나쁜 가게’로 얼굴을 바꿨다고 돌을 던져야 하나 이 말이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자영업자들의 현실을 무시한 채, 민생 고통의 책임을 일부 음식점의 ‘선의’에 떠넘긴 정부와 지자체 정책이 애초부터 ‘나빴다’고 보는 게 옳다.

혹자는 “다 같이 죽는 길”이라고 했다. 음식점들은 장사가 잘되거나 말거나 가격 인하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인근 가게에서 헐값에 음식을 팔고 있는데 태연할 수 있는 음식점주가 어디 있을까.

착한 가게로 지정된 업소 역시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물가가 올라도 ‘무조건’ 싼 가격에 음식을 내놓아야 하니 스스로 출혈에 출혈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음식의 질적 하락 역시 불 보듯 뻔한 수순이었다.

작년 8월 서울 구로구의 한 식당에 ‘착한가격업소’ 표찰을 전달하고 있는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연합뉴스

보다 근본적으로는 안전행정부가 정한 ‘착한’이라는 기준 그 자체부터 시비를 걸지 않을 수 없다. 짜장면 2000원, 갈비탕 5000원 등 음식값만 싸면 착하다는 등식이 대체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 위생, 친절도 등도 감안했다지만 ‘착한가격업소’라는 명칭에서 보듯 부차적일 뿐이었다. 저질 식재료에 화학조미료를 다량 퍼부어 음식을 만들어도 버젓이 착한 식당 간판을 달 수 있었다.

착한 식당이나 반값 식당이나

그렇다면 종편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이 선정하는 ‘착한 식당’은 어떨까.

이 프로그램은 전국 곳곳을 찾아다니며 좋은 재료로 정직하게 요리하는 음식점에 ‘착한’의 영예(?)를 안겨주고 있다. 취지는 나쁘지 않다. 그 자체로는 식습관 개선, 음식문화 발전에 기여할 여지가 있다.

문제는 역편향이다. <먹거리 X파일>은 착한 식당의 반대급부로 질 낮은 재료나 화학조미료 등을 사용하는 식당을 거의 ‘악’으로 몰아세우고 있다.

이 또한 정부·지자체의 착한가격업소 정책과 마찬가지로 하루하루 먹고 살기 힘들어, 지독히도 장사가 안 돼 음식점들이 어쩔 수 없이 타협을 택하는 현실을 눈감는 것이다. “MSG(글루탐산나트륨)·빙초산·나트륨이 한국인 입맛을 바꿔 놨다”(이영돈)는 정의감(?)에 불타는 분노만 있을 뿐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고민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물론 비용을 아끼기 위해서다. 신선한 제철 재료를 그때그때 부지런히 구입해, 적절한 조리만 더한다면 음식은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하지만 만들어 놓으면 뭐하나. 안 팔리는데.

결국 음식점들의 눈길은 냉동 재료나 가공·반조리 식품 등 오래오래 보관 가능한 것에 쏠릴 수밖에 없다. 화학조미료나 강한 양념(물론 저가의)은 이런 재료들을 그나마 먹을 만하게 만드는, 그들 입장에서 ‘최후의 방어 수단’이다. 오직 장삿속만 가득한 일부 음식점은 기본적인 노력조차도 안하겠지만 대다수는, 적어도 기자 믿음에는, 좋은 식재료와 조리법을 몰라 스스로 ‘맛없는’ 음식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추진해 화제를 모은 ‘반값 식당’ 역시 착한 식당 정책·담론과 본질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 저소득층의 생계와 자활을 돕는다는 훌륭한 명분으로 시작했지만 자영업자들의 반발에 부딪혀 ‘1호 식당’ 문도 열지 못한 채 결국 접을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은 있지만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앞서 말한 음식점들의 기본 현실을 무시한 대가이다. 음식점 종사자 다수가 이미 저소득층인데, 그들 전체를 바라보기보다 오직 지자체의 ‘외형적’ 성과에만 집착한 꼴이었다.

정직하게 장사하고 싶어도…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언론이 바꿔야 할 것은 자영업자들이 정직하게 장사를 하고 싶어도 도저히 할 수가 없는 근본 구조다. 골목 상권 보호만 문제가 아니다. 대기업 주도의 식자재 공급·유통 시스템, 과도한 임차료·권리금, 음식점 간 출혈 경쟁 체제(불안전한 고용 구조)에서는 6000~7000원대 밥값(주요 대도시)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이영돈식 착한 식당이 강조하는, 음식의 질을 높일수록 부담은 더욱 늘어난다.

월 매출 400만 원도 안 되는 개인 음식점이 절반에 이르는 현실이다. 임차료, 재료비, 인건비 빼면 남는 게 없다. 여기다 대고 ‘착한’이니 ‘반값’이니 도덕적 명분만 앞선 용어로 일도양단 음식점들을 가르는 건 폭력이나 다름없다.

단박에 문제를 해결할 묘수는 없겠지만 찾아보면 길이 있을 것이다.

채널A <이영돈 PD의 먹거리 X파일>에서 이영돈 PD가 ‘착한 삼계탕’을 시식하는 모습. 지난 9월 20일 방송. /캡처

이를테면 최근 정부가 일반 정육점에서 독일식 햄·소시지 생산·판매가 가능토록 정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 눈길을 끈다. 가공 시설과 노하우, 판매망 구축 등 각종 지원책이 뒤따라야겠지만 거대 식품기업 중심의 햄·소시지 시장에 균열을 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삼겹살·목살 외에 소비가 미미한 돼지고기 부위의 다양한 활용이 가능해지는 대안이라는 생각이다. 화학첨가물 범벅의 대기업 햄·소시지로부터 벗어나 제품의 고급화도 이끌 수 있고, 영세 자영업자 소득 증대도 기대할 만하다.

유수의 식품 대기업들은 물론, 대형마트 등 유통업체의 저항이 만만치 않으리라 예상된다. 착한 식당 따위엔 꿈쩍도 하지 않던 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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