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상회 점원 티아라(22)

진주상회는 김해전통시장 안에 있는 외국인 전용 야채가게 중 하나다. 주로 동남아 이민자들이 이곳에서 야채를 사간다. 부산에 사는 이민자들도 쉽게 이곳을 이용하는 이들이 많았다. 생전 처음 보는 야채들이 종류별로 진열되어 있었다.

아이 손을 잡은 예쁘장한 외국인 여성들이 가게 앞을 차지한 채 점원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점원의 얼굴을 유심히 보니 한국 사람이 아니다.

스물 두 살의 티아라. 티아라는 2010년 캄보디아 작은 시골에서 왔다. 결혼과 동시에 왔지만 지금은 딸과 둘이서 살고 있었다.

“법적 이혼 절차가 거의 끝나가는 중이에요. 아들은 아버지가 데려가고 딸은 저랑 살아요. 이제 2살이어서 출근할 때 어린이집에 맡기고 퇴근할 때 데려와요. 지금은 원아 혜택을 받지 못해 어린이집 회비가 제일 큰 지출이에요.”

티아라는 그래도 이곳 생활이 재미있다고 말한다. 비교적 한국어가 능통했지만 뭐가 재미있는지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다. 그녀의 삶에 가벼운 연민을 함부로 보낼 수는 없으리라.

진주상회 티아라

티아라는 일주일에 하루는 쉬고,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매일 12시간을 일했다. 임금을 밝힐 수는 없지만 빠듯하게나마 딸과 생활하기에는 무리가 없다고 했다.

“여기 있으면 캄보디아에서 온 친구들도 만나고, 베트남이나 다른 곳에서 왔지만 비슷하게 사는 사람들도 만날 수 있어요.”

자매반찬 점원 김영란(56) 아지매

자매반찬은 외국인들도 선호하는 반찬이 여러 종류다. 건너편 아시아마트는 상호에서 엿볼 수 있듯이 베트남 등에서 온 이름도 잘 모르는 야채가 여러 종류다. 자매반찬과 아시아마트는 주인이 같은 사람이다.

“처음에 반찬가게만 하다가 아들이 외국 야채가게를 시작했제. 내는 주인이 아이고 일하는 사람이라예. 주인은 오전 6시에 나와서 11시까지만 일하고 볼일 보러 가제. 그라모는 직원들이 판매 하고 또 부족한 반찬이 있으모는 다 알아서 만들어 놓지예.”

영란 아지매는 이 가게에서 일한 지 10년차 베테랑 직원이다. 오전 6시에 나와 3시가 되면 퇴근한다.

자매반찬

한양왕족발 박정민(55) 아지매

“시장에서 장사한 지가 그러고로 30년이 넘었네예. 왕족발 장사 한 지는 17년 넘었고.”

정민 아지매는 나이보다 훨씬 젊어보였고 활달하고 싹싹했다. 한 번 온 손님은 절대 놓치지 않을 것 같았다. 가게 진열대에는 꼬리, 껍데기, 귀, 편육 순으로 비닐 포장을 해두었다. 진한 갈색을 띠는, 윤기가 반질한 게 군침이 돌았다.

“우리 집 족발은 소문이 짜한데. 배달은 안 하는데 단골이 많아서 잔치, 행사 등 단체주문이 마이 들어오구만. 매일 아침 오전 6시에 나와서 그날 팔 것은 그날 삶지예. 한약재를 넣어서 삶는데, 무얼 넣는지 몇 시간 삶는지는 말할 수 없어예. 그게 비법이니께.”

맛도 맛이지만 시내 상점가로 들어서는 시장입구에 위치해 있어 장사가 제법 잘 될 듯했다.

한양왕족발 박정민 아지매

“내는 시장에서 온종일 산다. 시장 가게들이 저녁 8시 되면 문 닫는데 우리 집은 10시까지 문 열어둔다. 아무래도 족발은 술안주니까 저녁 장사아이가.”

정민 아지매는 직접 농사 지은 배추 속, 짭짜리 토마토, 당조고추를 족발과 같이 팔았다. 이것들은 입안을 개운하게 해서 족발 먹을 때 같이 먹거나 혹은 후식으로 먹기에 좋은 것들이었다.

한양왕족발 점원 유은주(45) 아지매

은주 아지매는 주인인 정민 아지매와는 달리 저녁 7시면 퇴근을 한다.

“여게서 일한 지 7년 됐어예.”

“하이고 오래됐네예. 인자 자매라 해도 되것네. 속사정이야 알 것 다 알 끼고. 싸우기도 마이 했겠네예.” 은주 아지매가 말없이 웃고만 있자 너스레를 떨었더니 되려 정민 아지매가 웃음을 터뜨리며 말한다.

“하모. 머리 뜯고 싸우지는 않아도 사람 사는 기 서로 맘이 안 맞을 때가 있으니 목소리 높이고 안 좋은 소리 할 때도 많제. 좋은 일도 많고.”

한양왕족발 유은주 아지매

푸른야채·하동통닭. 김연미(35)

장터 골목을 돌다가 야채 가게 앞에서 젊은 아지매를 만났다. 더러 젊은 상인들이 눈에 띄였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젊은 것 같았다. 미혼일 것 같았는데 결혼한지 7년차라는 김연미 씨.

“처음에는 생 통닭을 파는 ‘하동통닭’을 인수해서 4년 정도 하다가 얼마 전에 바로 붙어있는 야채가게까지 인수했지예.”

상호가 ‘푸른야채’. 장사라고는 전혀 모르던 연미 씨가 시장 상인으로 발을 내딛게 된 것은 언니의 권유였다. 일찍부터 시장 안에서 자리를 잡은 언니는 쉬엄쉬엄하면 그럭저럭 할만하다고 했던 것이다.

“바로 옆 가게는 동생이 하는 홍삼식품이고, 건너편이 언니가 운영하는 건천상회라예.”

세 자매가 딱 붙어서 매일 얼굴을 보며 장사를 하고 있다. 일손이 딸리거나 자리를 비울 때는 서로 가게를 봐주는 등 ‘니 장사 내 장사’가 없었다. 세 자매가 뭉치면 웬만한 일은 거뜬히 해낼 것 같았다.

푸른야채

폐백음식 예가 박옥희 아지매

제법 널찍한 가게지만 세 아지매가 바삐 움직이기에는 좁아 보였다. 폐백음식점 예가.

“칼국수타운 옆에도 예가 점포가 있던데예?”

“그게는 창고로 쓰고 있제. 이기 일손도 많아야지만 이것저것 딸린 물품들이 많아예.”

늘 네 명이 일하는데 이중 한 명은 오전만 일한다고 했다. 오전에 일하는 아지매는 전만 부치는데 손이 안보일 정도라고.

“여기 아지매들이 전부 달인이라예. 이 아지매는 꼬지 달인, 또 이 아지매는 동그랑땡 달인… 다들 일하는 것 보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지예. 아이고, 토요일 잔치상이 나가는데 그때 왔더라면 구경할 기 더 많을 낀데 아깝네.”

옥희 아지매는 8년 전에 폐백 이바지 자격증을 따고 이 일을 시작했다. “자격증을 따서 하는 사람은 별로 없제”라고 말하는 옥희 아지매의 얼굴에는 자부심이 가득했다. 일머리도 있고 손이 빨라 손님들도 좋아할 것 같았다.

옥희 아지매는 폐백음식은 가격이 정해져 있지는 않다고 했다. 주문하는 사람의 예산에 맞춤해서 만든다. 많게는 200만 원에서 적게는 50만 원짜리도 있다. 01045719915

예가

동언상회 임씨 할머니

시장 중앙도로에 있는 참기름 짜는 집이었다. 젓갈이나 여러 양념 종류도 진열이 되어 있었다. “인자 한 30년 넘게 일했나보다.” 임씨 할머니는 큰아들과 하다가 지금은 작은아들이랑 하고 있다.

합천 삼가가 고향이라는 할머니는 “늙은이 이름은 말라꼬”라며 이름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삼가가 고향이래서 “그라모 삼가댁이라 할까예”라고 하니 “고마 됐다”라며 입을 다문다. 허리가 아파 꼬부장한 걸음걸이가 불편해보여 뭐라 더 이상 말을 건네기가 송구스러웠다.

“김장철이라 양념이 제일 마이 나가제. 참깨, 마늘이나 이런 거는 창녕 생산지에서 직접 갖고 오거만. 우리 집 꺼는 값도 싸고 물건이 아주 좋은 기라.”

동언상회

윤씨상회 윤정호 아재

“어머니는 50년 동안 시장에서 생선장사를 했습니다.”

그 가게를 아들이 물려받았다. 윤씨상회 윤정호 아재.

“나야 인제 8년 정도 됐지만 우리 집 손님 중에는 40년 이상 거래하는 사람도 있지예. 어머니가 물려주신 재산이지예.”

‘물이 좋은’ 가게였다. 좌판에 내놓은 생선 종류와 짜임새가 보통이 아니었다. 규모도 번듯했다. 대뜸 윤정호 아재는 “우리 집이 ‘첫손님가게’라예. 들어봣심니꺼?”라고 묻는다.

‘첫손님가게라니?’ 난생처음 듣는 말이었다. 그제야 가게 입구에 달려있는 ‘첫손님가게’ 명패를 다시 보게 되었다. 첫손님가게란 우리 동네 기부가게로 생명나눔재단의 생활 속 기부 콘텐츠 중 하나였다.

“매일 첫손님한테 판 수익의 반을 기부하는 겁니더. 하루에 만 원 정도. 한 달 기부 상한선이 20만 원이라예.”

윤씨상회

김해전통시장에서 유일한 ‘첫손님가게’ 윤씨상회.

마산해물 아지매

시장 중앙통로에서 옆으로 난 작은 골목 어귀였다. 그늘이 지고 사람이 드문 위치라 을씨년스러웠다. 키가 겅중하니 큰 아지매는 끝내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다.

“우리 집 큰아 업고 다니면서 했제. 내가 한 40년 했고, 친정어머니가 내 낳기 전부터 생선장사를 했는 기라. 김장철 되면 사람천지였는데 요새는 사람이 없다아이가. 이리 뒤로 나앉은 골목에는 사람이 더 안 온다예. 오늘은 장사가 영 그렇거만.”

짧은 해는 어느새 기울어가고,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시장 안은 벌써 파장 분위기였다. 마산해물 아지매 얼굴은 밝지 않았다. 사람좋게 주차장 가는 길을 가르쳐주던 아지매였지만 주섬주섬 좌판을 챙기는 얼굴에는 어느새 눈밑 그늘이 깔렸다.

 

마산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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